\"시골에 보면 그거 벼 날리는 선풍기 있잖어. 이따만한 거. 왱왱 방아찍는 소리나는 그 거\" ⓒ민중의소리 김철수 ⓒ민중의소리 김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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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노동절 퍼포먼스 시청광장
파견법 시행 14년 내 이럴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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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철폐와 정리해고분쇄를 위한 전국대장정 |
주봉희 | 방송사 비정규직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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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결·연대·투쟁·승리로 뭉친 전국순회투쟁단 비정규노동자들로 구성된 전국순회투쟁단은 방송사비정규직, 한국통신계약직, 인사이트코리아, 볼보코리아, 이랜드노조 등 붙박이 비정규노조원들로 이루어졌다. 투쟁단은 투쟁팀·연대팀·승리팀·단결팀 등 4개조로 나누어졌으며 각 팀마다 학생연대팀 또한 자발적으로 투쟁대오에 합류하였다. 그러나, 실제 투쟁계획에서 투쟁일정과 시간 등에서 미숙한 점이 현장에서 조금씩 불거지기 시작했다. 방송사 비정규직팀은 투쟁팀으로 합류해 전북지역과 광주지역을 목표로 시작된 3박4일간의 현장투쟁을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외치고 뛰었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전주 114안내국이었다. 새벽 눈보라 속을 가르며 힘찬 시동을 걸었지만, 제일 먼저 맞이한 것은 비정규조합원이 아니라 방패와 곤봉으로 무장한 경찰이었다. 우리 또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북본부에서 새벽부터 우리들을 맞이하느라 전북본부 본부장과 조직부장들이 방송차량을 대기시켜놓고 후위에 오들오들 떨고있는 모습에 우리는 다시한번 아랫배에 힘을 주고 대오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전주에서의 첫집회여서 그런지 동지들의 모습이 조금은 움츠려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조심스러워 하는 자세가 역력히 보였다. 처음 방송을 잡은 것은 투쟁팀 대오를 이끌고 있는 한통계약직 팀장이었지만, 새벽잠을 설치고 4시간동안 달려온 탓에 여독이 풀리지 않은 듯 힘있는 한통비정규노동자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필자는 대오에서 뛰쳐나와 마이크를 잡고 거침없이 토해내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양산하는 김대중정권 퇴진하라! 비정규직 완전철폐 정규직화 쟁취하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맺힌 한과 피눈물나는 지난 세월, 노동자 속에서 노동자계급을 다시 양산하는 현실에 굴욕감과 처절함, 뱃속의 허전함도 잊은 채 우리는 뭉쳤고 또한번의 동지애를 확인하며 외쳤다. 비정규직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더많은 비정규노동자들을 만났어야 했다 아침 출근하는 전주시민들은 묵묵히 우리들을 지켜보며 침통한 얼굴로, 걱정스런 모습으로 비정규노동자들의 절규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한 60대노인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니, 젊은이, 우리 선생님이 댁들한테 크게 잘못한 게 있남? 어렵게 대통령 됐는디 자꾸 물러나라면 워뜩혀 이 사람들아! 그리고, 비정규가 뭐여, 그것도 회사여? 비정규회사가 망한겨? 전화국하고 합작했남? 전화국 앞에서들 지랄하게, 잉? 시끄러워 못살겠네." 그렇다. 대다수 국민들과 노동자들은 그 분이 영원한 선생님으로 남길 원했고, 영원히 우리들의 가슴속에 맺혀있길 간절히 바랬는지도 모른다. 세명의 군사독재 정권하에서 모진 고문과 탄압은 그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뻔한 세월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을 민주화의 상징으로 영원한 선생님이기를 원했는지 모른다. 1992년 어느 일간지와의 인터뷰기사가 생각난다. 모든 정치의 원동력은 서민과 노동자와 국민 속에서 정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지의 말씀. 이는 작금을 살아가는 비정규노동자들과 갈수록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되는 지금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부인하지는 못하리라. 점심시간이 훨씬 넘게 전주 114안내국 앞에서의 집회는 114안내동지들과의 결합이 실패로 돌아갔다. 강인한 인내력과 투지넘치는 학생연대 동지들에게서 미래의 노동자 희망을 얻을 수 있었고, 공부하는 학생의 탈에서 벗어나 비정규 노동자들의 현실을 투쟁으로 각인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대견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참으로 흐뭇한 마음으로 뭉클한 가슴들을 접할 수 있었다. 다만, 전국순회현장투쟁단의 이름과 걸맞게 짜임새 있는 계획과 좀더 많은 비정규투쟁사업장을 방문하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타격투쟁 또한 한국통신에만 국한된 투쟁이어서 불만이 없지 않았다. 전주에서의 일정 또한 여성노동자대회, 전주화성섬유, 동산사내하청 등 비정규관련단체들과 좀더 많은 시간을 갖는 데 할애했어야 했다. 비정규직 완전철폐의 그날까지 특성상 지역 비정규노동자들과 충분한 토론과 현장상황을 좀더 적확히 파고들어 비정규노동자들의 연대와 동질성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시간 또한 부족한 것이 흠이다. 군산의 개정병원 동지들, 2년이 넘도록 힘겹게 싸우는 여성노동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이다. 한시간 남짓한 연대집회는 개정병원 동지들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아쉬움만 남겨주고 말았다. 군산 노동부 앞마당의 집회는 대우차동지들과 개정병원 동지들 그리고 현장투쟁단 등 합동연대집회 후 거리행진을 하며 정규직, 비정규직이 한마당을 이루었다. 이 끈끈한 연대집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을 실망하게 만들고 말았다. 마무리까지 함께 해주기를 원했던 군산 개정병원의 동지들이 아쉬워하며 우리들의 등뒤에서 끝까지 서서 떠나는 우리를 지켜보는 모습. 그 모습은 안타까움에 비정규들만의 아집과 고집을 그대로 보여주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군산에 왔으니 바다구경하자는 의견이 있었고, 군산시내에서 선전전을 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물론, 후자는 끝까지 이 곳에서 남아 마무리집회를 하길 원했지만, 결국 전국순회투쟁단은 아름답지 못한 모순을 남기고 말았다. 광주에서도 대우캐리어동지들과의 만남 역시 그 지역의 노동자들을 흥분하게 만들었고, 그들은 기대감으로 우리를 맞이하였다. 그렇지만, 결국 시간관계상 30분집회에 사내하청 동지들과 대화조차 하지 못하고 떠나야 했다. 민주노총에서 주관을 했건 공공연맹에서 주관을 했건, 계획과 예산, 시간일정 등 충분한 검토 없이 출발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전북본부와 광주본부 등 관계자들의 심적 고충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잠자리에서 식사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전북본부장님과 관계자 그리고 광주지역 본부장님께도 감사의 말씀드리며 다음 그런 기회가 나에게 주어진다면 다시한번 힘찬 투쟁의 정신으로 전남·북지역의 비정규동지들과 함께 외칠 것이다. 비정규직 완전철폐, 정규직화 쟁취하자! 노동자해방 쟁취하는 날까지 투쟁! 방송사 비정규직노동조합 위원장 주봉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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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에 갇힌 말이 말씀이랴! | |||||||||
[교회는 누구인가-김인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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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품없이 태어났어도 예수님은 하느님 말씀의 강생이셨다. 그 말씀은 매양 자유자재하셨으니 그물에 걸리는 일도, 올가미에 묶이는 일도 없었다. 간혹 말씀에 놀라 혼비백산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불쌍한 백성들은 늘 기뻐 환호작약하였다. 미움과 괄시로 그 몸이 찢긴 깃발처럼 십자가에 나부끼게 되었어도 말씀은 따뜻한 봄날의 민들레처럼 사방팔방 퍼져 나갔다. 십자가 높이만큼 멀리멀리 날아갔다. 그리하여 “말씀은 남는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진리가 생겼다. 정말이지 그분은 입에 재갈을 채워도 막아지지 않는 말씀이셨고, 땅속에 파묻어도 더 크게 메아리치는 말씀이셨다. 그 말씀이 성경의 역사요, 이천 년 교회 역사다. 말씀이 울려 퍼질 때 만민이 평안했고, 굴비처럼 엮이고 송장처럼 갇혔을 때 만상은 시름에 빠졌다. 우리 형편이 이렇게 망가진 이유를 물어보자. 가짜와 진짜, 있는 것과 없는 것, 살림과 죽임, 전쟁과 평화, 빛과 어둠이 얼굴을 바꿔가며 누가 누군지 모르게 된 이 기막힌 일들은 어째서 무심히 반복되고 있을까? 다른 게 아니다. ‘말씀’의 행방이 묘연해진 바로 그 때문이다. 4대강사업을 둘러싼 논쟁에서 지겹게 보고 있듯이 산 것을 죽었다 하고, 죽이면서 살린다고 우기는 짓은 자고로 권세를 쥔 자들의 고질적인 행태니 부르르 떨거나 놀랄 일도 아니다. 2010년의 다사다난 가운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말씀의 실종이야말로 저 무수한 비극과 불행들의 실질적 배후라는 사실이다. 영리한 이명박 정부는 장차 벌어질 엄청난 반칙과 불법을 무마하려고 먼저 언론장악을 시도했다. 처리는 전광석화, 일사불란했고 결과는 놀라웠다. 맹독성 제초제를 살포한 듯 민초들의 마음을 달래주던 매체와 프로그램들은 빠르게 사라져간 것이다. 그 와중에 주교회의가 4대강 사업에 우려를 나타낸 것은 칠년대한의 단비처럼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었다. 오랫동안 빛나는 성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런데 오물 한 점이 국솥 전체를 망치는 일이 벌어졌다. 주교회의의 가르침에 고무된 전국의 많은 신자, 수도자, 사제들이 강을 살리자는 목소리를 드높이자 정진석 추기경께서 교회의 이런 활력에 찬물을 끼얹어 버렸으니 두 차례(2010.7.21일 자 한국일보, 12.8일 자 경향신문 참조) 4대강 사업에 대해 찬성 조의 발언을 낸 것이다. 그 부정적인 파장도 그렇지만 그의 발언은 합의정신(sinodalitas)과 단체성(collegialitas)을 존중하는 주교단의 오랜 전통을 깨버린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난 5월 명동성당 측이 전국사제시국기도회에 참가한 신부들을 박대하고 심히 모독했던 자신감의 출처와, 평화방송 ‘PBC 특강’에서 강연의 핵심이라 할 4대강 관련 발언을 잘라내고 껍데기만 방영하는(가톨릭뉴스 지금여기 12.6일 자 참조) 어처구니없는 이유가 풀리긴 하였으나 이는 너무나 안타깝고 비통한 일이었다. 서울대교구장은 아직도 자신의 매우 이상한 처신을 설명하지 않고 있다. 무슨 이유가 되었든 교회의 ‘말씀’이 두 마리의 짐승 사이에 포박된 현실을 비통하게 바라본다. 기왕 ‘말씀의 탄생’에 대하여 묵상하는 대림절이니 언론의 현실도 말해보자. 불량언론을 생산하는 자본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이를 일상적으로 구매하고 섭취하는 교회의 구성원들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올 3월 12일 주교회의의 성명을 두고 이른바 ‘조중동’은 전문성도 갖추지 못한 주교단이 현실에 개입했다며 맹비난을 퍼붓고 무시하였다. (‘주교들은 완벽한 존재인가’ 중앙일보 2010.3.29일 자) 그들다운 글쓰기이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그러나 이참에 아침마다 이런 신문들이 교회의 식탁에 올라오는 현실에 대해서 심각하게 반성하는 절호의 기회로 삼지 않으면 우리는 두고두고 이런 수모와 비웃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교도권을 조롱하는 저 오만방자를 보면서도 아침마다 ‘질 나쁜 종이’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면 우리야말로 옥에 갇힌 불쌍한 신세가 아닐 수 없다. 신자 대중은 물론이고 주교, 신부, 수도자들까지 언론자본의 횡포와 간계에서 자유로워지도록 실질적인 방도를 찾아야 한다. 교회의 현실 발언을 두고 돈이나 권력을 쥔 자들이 인상 좀 찌푸린다고 기죽거나 움츠리면 아무 구실도 못한다. 약자의 설움과 피조물들의 고통에 마음을 쏟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요 말씀의 운명이다. 언젠가 팔도의 사제들이 한 데 모여 “정치현실에 대한 의사표시를 사회구원 원리에 입각하여 사목 행위의 하나로서 삼겠다”고 결의한 적이 있었다. 바로 1974년 9월 24일의 일인데 그때가 지학순 주교께서 민청학련 사건으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힌 즈음이었다. 말씀이 갇혔으니 우리가 나서서 말씀이 되자던 그날의 차가운 다짐을 떠올리자. 말씀이 나시는 성탄이 머지않았다. 모두 기쁨과 힘을 누리시기를! 김인국 / 신부, 청주교구 금천성당 주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총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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