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에 갇힌 말이 말씀이랴!

2010/12/17 17:35

 

       
 
옥에 갇힌 말이 말씀이랴!
[교회는 누구인가-김인국]
 
2010년 12월 16일 (목) 15:58:30 김인국 inkoook@hanmail.net
 

 

   
▲ 김인국 신부
옥(獄)이라는 한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자. 그 뜻에 놀라고 저절로 감탄하게 된다. 사나운 개 두 마리가 좌우에서 ‘말씀’을 지키고 있다. 으르렁대는 기세가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물어뜯을 것만 같다. 가여울 손, 말씀의 처량한 신세여! 그런 형국이 감옥의 실상이다. 추운 철창에 갇혀 있으나 언 손 호호 불어가며 은박지 위에 글을 적는 시인이 있다면 그의 처소는 차디찬 감옥이 아니라 엄연한 집필실이다. 구중궁궐 고대광실 따뜻한 서재, 푹신한 의자에 앉았어도 할 말 못하고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는 자가 있다면 거기가 바로 감옥이다.

 

볼품없이 태어났어도 예수님은 하느님 말씀의 강생이셨다. 그 말씀은 매양 자유자재하셨으니 그물에 걸리는 일도, 올가미에 묶이는 일도 없었다. 간혹 말씀에 놀라 혼비백산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불쌍한 백성들은 늘 기뻐 환호작약하였다. 미움과 괄시로 그 몸이 찢긴 깃발처럼 십자가에 나부끼게 되었어도 말씀은 따뜻한 봄날의 민들레처럼 사방팔방 퍼져 나갔다. 십자가 높이만큼 멀리멀리 날아갔다. 그리하여 “말씀은 남는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진리가 생겼다. 정말이지 그분은 입에 재갈을 채워도 막아지지 않는 말씀이셨고, 땅속에 파묻어도 더 크게 메아리치는 말씀이셨다. 그 말씀이 성경의 역사요, 이천 년 교회 역사다. 말씀이 울려 퍼질 때 만민이 평안했고, 굴비처럼 엮이고 송장처럼 갇혔을 때 만상은 시름에 빠졌다.

우리 형편이 이렇게 망가진 이유를 물어보자. 가짜와 진짜, 있는 것과 없는 것, 살림과 죽임, 전쟁과 평화, 빛과 어둠이 얼굴을 바꿔가며 누가 누군지 모르게 된 이 기막힌 일들은 어째서 무심히 반복되고 있을까? 다른 게 아니다. ‘말씀’의 행방이 묘연해진 바로 그 때문이다. 4대강사업을 둘러싼 논쟁에서 지겹게 보고 있듯이 산 것을 죽었다 하고, 죽이면서 살린다고 우기는 짓은 자고로 권세를 쥔 자들의 고질적인 행태니 부르르 떨거나 놀랄 일도 아니다. 2010년의 다사다난 가운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말씀의 실종이야말로 저 무수한 비극과 불행들의 실질적 배후라는 사실이다. 영리한 이명박 정부는 장차 벌어질 엄청난 반칙과 불법을 무마하려고 먼저 언론장악을 시도했다. 처리는 전광석화, 일사불란했고 결과는 놀라웠다. 맹독성 제초제를 살포한 듯 민초들의 마음을 달래주던 매체와 프로그램들은 빠르게 사라져간 것이다. 그 와중에 주교회의가 4대강 사업에 우려를 나타낸 것은 칠년대한의 단비처럼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었다. 오랫동안 빛나는 성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런데 오물 한 점이 국솥 전체를 망치는 일이 벌어졌다. 주교회의의 가르침에 고무된 전국의 많은 신자, 수도자, 사제들이 강을 살리자는 목소리를 드높이자 정진석 추기경께서 교회의 이런 활력에 찬물을 끼얹어 버렸으니 두 차례(2010.7.21일 자 한국일보, 12.8일 자 경향신문 참조) 4대강 사업에 대해 찬성 조의 발언을 낸 것이다. 그 부정적인 파장도 그렇지만 그의 발언은 합의정신(sinodalitas)과 단체성(collegialitas)을 존중하는 주교단의 오랜 전통을 깨버린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난 5월 명동성당 측이 전국사제시국기도회에 참가한 신부들을 박대하고 심히 모독했던 자신감의 출처와, 평화방송 ‘PBC 특강’에서 강연의 핵심이라 할 4대강 관련 발언을 잘라내고 껍데기만 방영하는(가톨릭뉴스 지금여기 12.6일 자 참조) 어처구니없는 이유가 풀리긴 하였으나 이는 너무나 안타깝고 비통한 일이었다. 서울대교구장은 아직도 자신의 매우 이상한 처신을 설명하지 않고 있다. 무슨 이유가 되었든 교회의 ‘말씀’이 두 마리의 짐승 사이에 포박된 현실을 비통하게 바라본다.

기왕 ‘말씀의 탄생’에 대하여 묵상하는 대림절이니 언론의 현실도 말해보자. 불량언론을 생산하는 자본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이를 일상적으로 구매하고 섭취하는 교회의 구성원들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올 3월 12일 주교회의의 성명을 두고 이른바 ‘조중동’은 전문성도 갖추지 못한 주교단이 현실에 개입했다며 맹비난을 퍼붓고 무시하였다. (‘주교들은 완벽한 존재인가’ 중앙일보 2010.3.29일 자) 그들다운 글쓰기이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그러나 이참에 아침마다 이런 신문들이 교회의 식탁에 올라오는 현실에 대해서 심각하게 반성하는 절호의 기회로 삼지 않으면 우리는 두고두고 이런 수모와 비웃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교도권을 조롱하는 저 오만방자를 보면서도 아침마다 ‘질 나쁜 종이’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면 우리야말로 옥에 갇힌 불쌍한 신세가 아닐 수 없다. 신자 대중은 물론이고 주교, 신부, 수도자들까지 언론자본의 횡포와 간계에서 자유로워지도록 실질적인 방도를 찾아야 한다.

교회의 현실 발언을 두고 돈이나 권력을 쥔 자들이 인상 좀 찌푸린다고 기죽거나 움츠리면 아무 구실도 못한다. 약자의 설움과 피조물들의 고통에 마음을 쏟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요 말씀의 운명이다. 언젠가 팔도의 사제들이 한 데 모여 “정치현실에 대한 의사표시를 사회구원 원리에 입각하여 사목 행위의 하나로서 삼겠다”고 결의한 적이 있었다. 바로 1974년 9월 24일의 일인데 그때가 지학순 주교께서 민청학련 사건으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힌 즈음이었다. 말씀이 갇혔으니 우리가 나서서 말씀이 되자던 그날의 차가운 다짐을 떠올리자. 말씀이 나시는 성탄이 머지않았다. 모두 기쁨과 힘을 누리시기를!

김인국 / 신부, 청주교구 금천성당 주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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