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 노동자는 앵벌이

2010/12/11 12:55

파견 노동자는 앵벌이(?), 올해는 승리하는 투쟁을! 2
주봉희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사비정규지부 위원장 |제 51 호
 2000년 5월부터 함께 싸워왔던 동지들. 내가 세상에 태어나 그렇게 진한 감동과 의리를 느껴본 적이 없다. '용역새끼들, 렌트카 새끼들'이란 소리를 들으며, 비정규직이였지만 우리는 십 수년을 '형, 아우'하며 함께 동거동락 해왔다. 2000년 파견법이 우리를 슬프게 하였고, KBS의 비열함을 고발하려 투쟁했지만, 하루 하루가 지날수록 조합원들의 생계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족들의 성화에 지치고, 더위에 지치고, 조합비는 바닥나고, 어디 하나 기댈 곳조차 없던 그때를 생각하노라면 눈물이 줄줄 흐른다.
회의를 할라치면 사무실이 없어 여의도 나무그늘 아래서, (그늘이래야 공원이 개장한지 얼마되지 않은 때라, 나무가 자라지 않아 손바닥 하나 가릴만한 소나무 그늘이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삐질삐질 흘리는 땀방울을 냉수 삼아 훌쩍거리며 회의해야만 했다. 아침집회를 하기 위해 미리 약속한 방송차를 빌리러 갔다가 빈손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터덜터덜 걸어오며 "위원장님, 방송차…오늘 자기들이 써야 된대유." 충청도 합덕이 고향인 성욱이는 특유의 사투리를 내뱉으며 "아 더워 씨발. 전화라도 해주지" 라며 투덜거리곤 했다.


유난히 비정규 투쟁이 많았던 2000년 6월, 7월. 비정규직은 아니였으나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강렬하게 저항하던 '호텔롯데, 스위스그랜드 호텔, 힐튼호텔, 이랜드, 대상식품 사내하청노동조합' 등이 투쟁을 할 때, 우린 그 곳에 있었다. 방패와 곤봉이 더위와 비바람과 함께 춤을 출 때, 피와 땀으로 흥건히 젖어버린 그 여름. 힘든 그때는 영원히 잊어버리고 싶을 때가 많다. 호텔롯데 동지들의 막바지 싸움이던 9월초 함께 싸우던 동지들이 하나 둘 떠나가고, 남은 것은 '총무부장 송성재' 한 사람. 끝까지 남아 위원장과 함께 복직투쟁을 하겠다던 송성재 동지를 억지로 등 떠밀어 가정으로 돌려보낸 것이 그때쯤이다. 방송사비정규노동조합 4개지부가 새겨진 깃발을 들고 다녔던 송성재 조합원을 가정으로 보낸 뒤부터, 서울 시내의 모든 집회는 나 홀로 깃발을 들고 다녀야 했다. 400여 조합원들은 현업에 근무하고 있었고 아침 집회말고는 나올 수가 없었다.


2000년 11월초 KBS정규직노조와 아침마다 함께 연대집회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 악랄하기 짝이 없던 박권상 사장체제의 경영진은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조합을 깨기 위해 혈안이 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정규직 노조에서는 공동 아침집회를 할 것을 요청 해왔고, 우린 '얼씨구 좋다'고 신나게 아침 일찍부터 나와 정규직과 한 덩어리가 되어 KBS사장 출근저지 투쟁을 시작했다. 청경들에게 두들겨 맞아 병원으로 실려 가는 조합원들을 보면서, 우린 이 꽉 물고 싸웠고, 엎어지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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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02년 각 지부 조합원들은 파견법으로 모조리 해고되는 수모를 당했다. 싸움다운 파업 한번 못해보고 각 4사 지부는 모조리 깨지고 만다. 2년마다 노동조합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방송사비정규노동조합. 무능한 위원장만 쳐다보고 싸워 준 조합원들에게 미안 할 뿐이다. 하루에도 수 백번을 되뇌었다. '그만둬야지…' 주위에서 말하는 것처럼 "방송사를 상대로 한 싸움은 무모하다"고 한 말이 사실과 같이 들려오니, 힘이 쭈욱 빠져나가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더구나 비정규 투쟁에 신화적으로 싸워 온 한통계약직 동지들이 깃발을 내리면서, 내 마음은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깨지고 터지고 끌려가면서도 의지를 함께 불태우던 한통계약직 동지들과 일주일간의 정리여행을 다녀오면서, 방송사를 영원히 떠나기를 결심하고 시골로 내려갔다. (계속해서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2004년03월30일 21시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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