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30분 투자로 자격증 물론 대학졸업장까지현금필요없다! 엄친딸 이인혜의 영어비법보험중에 으뜸 실비보험, 늦기 전에 가입하자가입자가 몰린다. 실비보험 인기몰이.. 뉴스홈 > 사회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싸이월드 공감구글파견법보다 독한 파견노동자 '주봉희' [인터뷰] 계란으로 바위 깬 방송비정규노조 위원장 기자 ㅣ 입력 2006-06-30 21:11:17 / 수정 2006-07-01 12:30:01 노동운동판에서 주봉희를 모르면, 그는 '가짜'거나 '초짜'다. 주봉희는 어느 노동운동단체의 명망가나 끝발있는 대공장 노조 위원장의 이름이 아니다. 그는 아마도 머리에 파견철폐라는 붉은 글씨를 새기고 다녔던 파견노동자, 파견법보다 더 독하게 싸워서 결국 현장으로 돌아간 노동자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2000년 6월 해고자가 된 그는 '대가리를 박고 싸워서' 결국 4년 1개월만에 현장을 되찾았다. 알고보면 2차 하청이였지만, 그의 싸움을 지켜 본 이들에게 주씨의 복직은 어느 정규직화 투쟁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니들도 비정규직으로 살아봐라' 파견법이 시행된 98년 이전에도, 파견직이 없었던 건 아니다. 주봉희 위원장은 해고 당시 6년이 넘게 KBS에 근무해 왔는데, 다만 간간히 파견업체만 바뀔 뿐이었다. 98년 7월 1일, 파견제가 합법화됐다. 달라진 점은 파견이 점차 늘어났다는 점이고, 2년마다 해고가 발생한다는 사실 정도다. 연차를 거듭할수록 7-8배까지 차이가 나는 임금에 대해 KBS 파견직 노동자들은 숙명처럼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보다 피부로 느껴지는 차별은 다른데 있었다. "정규직 기사들 대기실이 따로 있고 파견 대기실이 따로 있는데, 정규직 대기실은 개인 탁지라든가 의자, 옷장, TV도 칼라로 세대씩 있었지. 냉장고 공기청정기 에어콘 빵빵하고." \"시골에 보면 그거 벼 날리는 선풍기 있잖어. 이따만한 거. 왱왱 방아찍는 소리나는 그 거\" ⓒ민중의소리 김철수 ⓒ민중의소리 김철수 "우리방은 50평에 54명이 바글바글했는데, 17인치 흑백 로타리 TV에, 시골에 보면 그거 벼 날리는 선풍기 있잖어. 이따만한 거 왱왱 방아찍는 소리나는 그 거 틀어놓고 있고. 의자는 옛날 극장식 의자에 앉아있다가 마이크로 부르면 나가곤 했는데. 우리는 채널도 MBC KBS SBS만 고정돼 있었는데. 한번은 박찬호가 경기를 하는데 못보는 거야. 정규직들 방에 몰래 보다가 걸리면 '야 용역' '야 렌트카' '나가 시키야' 물 먹다 걸려도 '니네 방에서 사먹어 시키야' " 그래서 파견직들은 한달에 2천원씩 돈을 걷어서 물을 사먹었다고 한다. "아까워서, 돈이 없으니까, 파견 노동자들끼리도 물을 먹는 것만 허용하기로 하고, 떠 가지는 못하게 했지" 출장 중에 정규직 노동자를 추월이라도 하면 도착지에서 불려다녀야 했다. 정규직한테 아침에 인사를 안 하고 고개를 돌리거나, 고분고분 하지 않아도 불러다녔다. 이튿날 동료가 보이지 않으면 으례히 교체된 걸로 여겼다. 파견 노동자들이 당시에 제일 무서웠던 건 사용자도 파견업체도 아니라 가까이 있는 정규직이었다. IMF 이후 정규직에 대한 강제 명예퇴직이 실시됐고, 그 자리를 파견 노동자들이 채웠다. 99년 KBS는 정규직 노동자 3백명을 정리해고 했는데, 파견 노동자들의 속이 후련했을 법도 하다. '니들도 비정규직으로 살아봐라' "파견으로 다시 온 사람들이 있었고. 그 당시에 울화통 터지게 얘기했지. 당신들 정규직으로 있을 때 얼마나 설움을 줬냐. 생각나냐." 짝수해, 파견노동자의 시련 지금도 그렇지만, 파견노동자에게 짝수 해는 시련이었다. 파견법이 시행되고 만 2년을 앞둔 2000년 6월, 운전직·카메라 보조·오디오맨·웹디자인 등 방송사 파견노동자들에게도 계약해지가 들이닥쳤다. SBS 437명을 시작으로 MBC 160명, KBS에서도 227명이 해고됐다. 전체적으로는 5천명 가량의 파견노동자가 그 해 계약해지된 걸로 추정된다. 6년 넘게 근무한 주씨를 비롯해, 파견노동자들은 5년에서 길게는 15년까지 KBS에서 일해 왔었다. '이렇게 오래 있었는데, 자르진 않겠지'라는 믿음은 여지없이 깨졌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민중의소리 김철수 " KBS는 '우리는 꼭 쓰고 싶다. 그런데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니 2년 후에 다시 오면 써주겠다. 파견법을 원망해라' 그랬어. 우리는 법을 몰랐는데, 아 파견법이 2년에 한번 쓰고 버리는 건가 보다 그때 알았지." KBS 운전직은 씨랜드 참사 당시, 현장을 촬영한 필름을 입수하고 삼풍백화점 붕괴 때도 인도를 타고 가서 특종을 만드는 등 뉴스보도에 큰 공을 세워왔다 실상 성수대교, 인천호프집 화재, 연천댐 붕괴 등 모든 특종은 운전직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한다. 처음 모인 파견노동자들은 운전직이었다. "그렇게 일했는데도 우리는 칭찬 한번 못받고. 전부 해고된 거지. 처음엔 딱 열명을 만들었어. 그런데 모인 친구들이 안할라 그래. '나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노조를 만들어야 못 받은 연월차라도 받는다고 설득을 했어. 나도 이렇게 까지 올 줄 몰랐지. 골탕이나 먹이고 가자. 10년을 있었는데 KBS가 책임지는 게 뭐냐." 방송사비정규노조, 화장실을 접수하다 '비정규'라는 이름을 넣고 노조를 만든 건 이들이 처음이었다. 난데없이 한글학회에서 전화가 오기도 했단다. '한글을 똑바로 알자. 국어 사전에 비정규 노동자라는 건 없다. 불안정 노동자로 고쳐야 한다' 주봉희 위원장은 '군대도 정규군이 있고, 빨치산 같은 비정규군이 있지 않냐"며 이 이름을 고집했다고 한다. 주봉희 위원장도 처음부터 조합원 없이 싸운 건 아니다. 초기 400가까운 조합원은, 경찰특공대가 롯데호텔노조를 '작살'냈던 6월 29일에 방송사비정규직노조도 야간에 '습격'을 받고 27명으로 줄었다. 남은 이들은 투쟁을 할래도, 사무실도 투쟁기금도 없었다. 해고자들에겐 당장 깃발 하나를 살래도 '돈'이었다. 현장에 있을 때도 기본급 72만 5천원에, 식대 5만원. 시간외 근무만 100시간을 해야 겨우 100만원을 채웠던 인생들이었다. "여의도에서 15일을 보냈지. 회의하러가자 하면 여의도야. 그 땐 나무도 없고 그늘도 없어서. '형님 마포대교 갑시다'하면 거기 가서 회의하고 일정 짜는 거야. 2시에 대학로에 롯데호텔 집회 갔다가, 이랜드 집회 갔다가 저녁엔 다시 서강대교 밑으로 와서 막걸리 한잔 하고." 한번은 비가 '억쑤로' 쏟아진 날, KBS로 들어가려다가 여의치가 않자 여의도 공원 남자 화장실을 접수하게 됐다. "거기서 전략회의 했어. 우리는 아주 판이 이상해.. 조합원 꿔서 집회하고, 화장실에서 생쥐같이 비맞고 냄새나는데 회의하고 그랬어" 조합원도 없는 노조위원장 ⓒ민중의소리 김철수 ⓒ민중의소리 김철수 구차하고 승산없게 보이는, 비정규직의 싸움. 조합원들은 하나둘 떠나게 되고 결국 두달 후엔 주씨와 송진수(가명) 총무국장 이렇게 둘만 남게 된다. "나중엔 미안하더라고. 9월 15일인가 비가 무지 많이 왔는데. 롯데호텔 투쟁에서 '너 들어가라. 벌어야 하지 않냐' 그 놈이 딸만 둘인데 내가 깃대를 뺐었지. '보고 싶으면 핸드폰으로 전화해라' 비 쫄딱 맞고 막걸리 한잔 하고 울고 갔지. 삼각지까지 걸어가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고 거기서 헤어졌어. '형도 좀 있으면 들어갈 거다' " 당시를 떠올리는 듯 주씨의 눈 언저리가 발갛다. "그 동지 가고 나 혼자 딱 남았잔아. 허망하더라구. 아무도 없는거야." 조합원도, 사무실도, 당장의 차비도 없었던 주씨는 굶기를 밥먹듯 했고 잠자리조차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김종철이 당시 부대변인이었어. 그 친구가 파견철폐공대위 집행위장이던 윤애림 동지 선배야. 애림이가 연락을 해서 당 회의실 하나 줄 수 없겠냐고 해서 책상을 들어내고 그렇게 시작했지" 잠자리가 해결되도 배가 고픈 건 여전했다. 한창 더운 여름에 해고된 터라, 먹는 것도 시원찮은데 '꼭 나같은 비정규직의 피를 빨아먹는' 모기가 그는 그렇게 미웠다고 한다. "오늘은 어떻게 밥을 먹나. 집회가서 동지들 따라가는데. 그 동지 못쫓아가면 밥 못먹는 거고. 지하철도 많이 몰래타고. 어떻해. 집회는 가야하고. 조끼 입고 쪽팔리기는 하는데" 2000년 12월까지 민주노동당에서 더부살이를 하면서 이랜드, 한통계약직노조와 식구처럼 지내던 주 위원장은 겨울에 용두동에 있던 민주노총 서울본부를 '접수'했다. 2001년에는 굶지 않으려고 50을 바라보는 그가 명동성당 농성장 사수대를 자원했다. 당시 명동성당에는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차봉천 초대 공무원노조 위원장 등이 수배상태로 농성중이었다. '싸워야지, 여기오면 어떻하냐'는 단 위원장의 질문에 주씨는 '여기와서 싸우면 되요'라고 했지만 실은 '밥 세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명동성당에서 자고 새벽같이 마이크 차를 끌고 나와서 혼자 집회를 했다. 레미콘 노조원들을 꿔서 집회를 하다 혼자 남은 주씨에게는 사실상 '연대'가 없는 희망이란 없었을게다. 복직하던 날, 그가 떠올린 얼굴들은 그래서 참으로 많을 수 밖에 없었다. 2001년 여의도를 접수했던 레미콘 노동자들은 기꺼이 주봉희 위원장의 조합원이 되어주었다. 주봉희 위원장의 표현을 빌자면 그는 "사람 참 좋은 장문기 위원장에게 조합원을 꿔서" 집회를 했다. 경찰의 '도끼진압'으로도 유명한 레미콘 노동자들은, 그래서 경찰서에 끌려갈 때면 "왜 KBS 앞에 가서 그러느냐"는 질문을 받게 됐다. "하루도 안빼고 여의도에 갔는데. 내가 특이하잖아. 대가리에 파견철폐를 쓰고 다니니. 금방 알아보는 거야. 나는 돈이 없으니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얻어먹는 거지. 조합원 꿔다가 아침 집회 한 놈은 나밖에 없을 거야. 아침에 방송차 끌고가면 조별로 쭈욱 밥먹고 있어 그럼 '조합원 좀 꿔조' 그러면 KBS까지 쌀자루 뒤집어 쓰고 밥그릇 뚜들기면서 와.. 50명이고 200명이고 거의 한달을 꿔다 썼네." 한국은 월드컵 열풍이 불면서 바디페이팅도 붐이 일었지만, 주 위원장은 이미 바디페인팅엔 전문가였다. 머리에 '파견철폐'라는 붉은 글씨를 쓴 주봉희 위원장이 집회장에 없으면, 사람들이 궁금해 할 정도였다. 주씨는 머리카락은 0.7cm 정도가 가장 글씨가 뚜렷하게 나온다고 설명한다. 더 길어지면 글씨가 드러눕게 되어 '파견'이 '파전'이 된다고. "한달 되면 깎아야 하는데.. 돈이 있어야지. 그래도 돈 생기면 밥은 굶어도 이거부터 했어. 사실 파견법 철폐라는 프랑카드, 구호하나 먼저 걸어주는 데가 없었지. 노동계에서도. 2003년에 경제특구법에 파견이 들어갔을 때 넣기 시작했지.. " 박상윤, 김주익, 배달호, 이용석, 정종태.. 주봉희 위원장은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다. 특히 주씨에겐 고 박상윤 서울본부 사무처장이 가장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아픔일 것이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민중의소리 김철수 "상윤이가 굉장히 애썼지. 상윤이가 살아 있을 때, 서울본부에서 주사모(주봉희를 사랑하는 모임)라는 걸 만들었어. 서울본부 대의원들하고 당시 한 삼심명 모집해서 CMS로 한달에 25만원에서 30만원씩. 집회 나갈 때 차비하고 밥먹으라고." "숙소가 서울본부 였는데, 3층이 내 방이야. 돈이 없어서 아침에 라면 반쪽에 고추장 풀어서 끓여먹고 책상위에 놓으면, 저녁에 와보면 박상윤, 여성호가 다 끓여먹고 없는거야. 어쩔 때 보면 스프 흔들어서 아작아작 먹고 있어. 내가 뭐라 했지." 고 박상윤 사무처장은 노동절은 있어도 생일은 몰랐던 주봉희 위원장에게, 새벽같이 몰래 끓여놓은 미역국과 초코파이를 챙겨 주기도 했다. '아침부터 소주 한잔 했던 생각 나네.' 그는 정말 무지하게 울었다. 주봉희 위원장은 '그래도 민주노조운동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 그런 활동가들, 내 숨을 던진 활동가들'이라고 믿는다. "김주익 동지는 손이 이 만해. 키도 크고. 2002년 8월에 부산에 갔더니 '위원장님 파견철폐 왜 지웠어요' '아. 머리가 빠져서' 다음달에 다시 쓸 거라고. 그게 마지막이었지. 2001년 배달호 열사부터 시작해서 당시엔 참 울다가 지쳤어. 이용석 동지는 하필 내 옆에서 분신했어.. 불이 확 올라오더라구. 몇 십초 순간이야. 내가 멎었어. 심장도 멈추고, 머리도 뭘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나. 피켓을 막 뽑아서 불을 끄고 난 다음에는 화기를 다 먹었어. 그 동지 그렇게 보내고 이듬해 복직되고 나니 이용석 열사가 돌아가셨잖아. 기가 막히더라구. 그렇게 아들 아들 하더니 서른 살 나이에.." 주봉희 위원장은 '이용석 동지는 전태일의 혼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말한다. 주씨가 걸어 온 길에는 그렇게 '힘에 겨워 굴리다 못 다 굴린' 덩이를 맡은 이들이 많았다. "정종태 동지도 잊을 수가 없지. 그 동지한테는 참 미안해. 내가 참 구박 많이 했어. 이문동 옥탑방에 살았는데 여름엔 30도 겨울엔 영하 20도. 요만한 이불 하나에 치약 치솔 밖에 없었다니까. 지가 입던 옷하고. 걔도 나만큼이나 굶었어. 저녁에는 결국 장충단 공원에 올라가서 소주. '너 조직 관리 그렇게 못하냐' 내가 많이 혼내고. 내 생각엔 4천 대오 있을 때를 일깨워 주려고 했는데. 밥이라도 제대로 먹고 건강관리 했다면 더 살았을텐데." 계란으로 바윗돌을 쳐서 이겼지. 다 할 수 있다고 주봉희 위원장은,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한때 '도망'쳤었다. "2002년이 제일 힘들었던 때인데. 한통계약직 깃발 내리고 나서. KBS, MBC 다 무너지고. 나도 이제 여기서 끝내자. 그만 하고 내려가야겠다. 연세대에서 같이 보따리를 쌌어. 한통 동지들이랑 같이 울고 그 길로 온양으로 내려간거야. 농사를 짓든 다른 진로를.." 주씨는 그러나 깃발을 내리지 못했다. 그를 붙잡은 것은 고 박상윤 사무처장과 같은 그런 '동지'들이었다. "누나네서 한달 반 정도 있다가 핸드폰을 꺼놨었는데, 받지 말았어야 하는데, 파견법 시행 5년이라고 철폐연대 서울본부 민변에서 뭘 하는데 발언해 달라고. 그게 계기가 되서 김혜진 동지나 이런 동지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죽기야 하겠냐' 여성호 박상윤도 '아 형님 도망갔다'고 난리를 피워서 2002년 말까지만 간다고 했는데 거기서 붙잡힌 거지." 47살에 해고된 주봉희 위원장은 결국 52살에 복직했다. 다른 게 있다면 그가 운전직이 아닌 사무직으로 배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주씨는 이제 실제 조합원들이 있는 방송사비정규직노조의 위원장이라는 점이다. "당시에 어떤 사람들은 계란으로 바윗돌치기라고 그랬지. 내가 계란으로 바윗돌을 쳐서 이겼지. 다 이길 수 있다고. 당신들 어차피 우리같은 사람 필요한 거 아니냐는 거지." ⓒ민중의소리 김철수 ⓒ민중의소리 김철수"에 해당되는 글 112건

  1. 2011/03/10 2001 년 4월 아 그 날이여
  2. 2010/04/01 아...허세욱 열사여 2007년 4월 1일
  3. 2010/03/15 2000년 5월 슬픈 기억들
  4. 2008/10/31 이주발전글로벌포롬(GFMD)
  5. 2008/10/07 비정규직 고용기간 4년으로 연장 추진
  6. 2008/09/18 대법원, 불법파견에 대한 원처의 고용 책임
  7. 2008/07/28 민주노총 주경복 후보 선거유인물 불법 매도 항의
  8. 2008/07/19 코스콤 비정규직 투쟁 승리.언론의 무거운 침묵
  9. 2008/07/13 현대미포조선 하청노동자 원청 사용자성 인정돼
  10. 2008/04/18 우리 모두 배신자'가 됐다

2001 년 4월 아 그 날이여

2011/03/10 10:18

 

비정규직철폐와 정리해고분쇄를 위한 전국대장정
주봉희 | 방송사 비정규직노동조합 위원장
단결·연대·투쟁·승리로 뭉친 전국순회투쟁단

비정규노동자들로 구성된 전국순회투쟁단은 방송사비정규직, 한국통신계약직, 인사이트코리아, 볼보코리아, 이랜드노조 등 붙박이 비정규노조원들로 이루어졌다. 투쟁단은 투쟁팀·연대팀·승리팀·단결팀 등 4개조로 나누어졌으며 각 팀마다 학생연대팀 또한 자발적으로 투쟁대오에 합류하였다. 그러나, 실제 투쟁계획에서 투쟁일정과 시간 등에서 미숙한 점이 현장에서 조금씩 불거지기 시작했다.

방송사 비정규직팀은 투쟁팀으로 합류해 전북지역과 광주지역을 목표로 시작된 3박4일간의 현장투쟁을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외치고 뛰었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전주 114안내국이었다. 새벽 눈보라 속을 가르며 힘찬 시동을 걸었지만, 제일 먼저 맞이한 것은 비정규조합원이 아니라 방패와 곤봉으로 무장한 경찰이었다. 우리 또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북본부에서 새벽부터 우리들을 맞이하느라 전북본부 본부장과 조직부장들이 방송차량을 대기시켜놓고 후위에 오들오들 떨고있는 모습에 우리는 다시한번 아랫배에 힘을 주고 대오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전주에서의 첫집회여서 그런지 동지들의 모습이 조금은 움츠려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조심스러워 하는 자세가 역력히 보였다.

처음 방송을 잡은 것은 투쟁팀 대오를 이끌고 있는 한통계약직 팀장이었지만, 새벽잠을 설치고 4시간동안 달려온 탓에 여독이 풀리지 않은 듯 힘있는 한통비정규노동자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필자는 대오에서 뛰쳐나와 마이크를 잡고 거침없이 토해내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양산하는 김대중정권 퇴진하라! 비정규직 완전철폐 정규직화 쟁취하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맺힌 한과 피눈물나는 지난 세월, 노동자 속에서 노동자계급을 다시 양산하는 현실에 굴욕감과 처절함, 뱃속의 허전함도 잊은 채 우리는 뭉쳤고 또한번의 동지애를 확인하며 외쳤다. 비정규직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더많은 비정규노동자들을 만났어야 했다

아침 출근하는 전주시민들은 묵묵히 우리들을 지켜보며 침통한 얼굴로, 걱정스런 모습으로 비정규노동자들의 절규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한 60대노인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니, 젊은이, 우리 선생님이 댁들한테 크게 잘못한 게 있남? 어렵게 대통령 됐는디 자꾸 물러나라면 워뜩혀 이 사람들아! 그리고, 비정규가 뭐여, 그것도 회사여? 비정규회사가 망한겨? 전화국하고 합작했남? 전화국 앞에서들 지랄하게, 잉? 시끄러워 못살겠네."
그렇다. 대다수 국민들과 노동자들은 그 분이 영원한 선생님으로 남길 원했고, 영원히 우리들의 가슴속에 맺혀있길 간절히 바랬는지도 모른다. 세명의 군사독재 정권하에서 모진 고문과 탄압은 그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뻔한 세월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을 민주화의 상징으로 영원한 선생님이기를 원했는지 모른다. 1992년 어느 일간지와의 인터뷰기사가 생각난다. 모든 정치의 원동력은 서민과 노동자와 국민 속에서 정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지의 말씀. 이는 작금을 살아가는 비정규노동자들과 갈수록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되는 지금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부인하지는 못하리라.

점심시간이 훨씬 넘게 전주 114안내국 앞에서의 집회는 114안내동지들과의 결합이 실패로 돌아갔다. 강인한 인내력과 투지넘치는 학생연대 동지들에게서 미래의 노동자 희망을 얻을 수 있었고, 공부하는 학생의 탈에서 벗어나 비정규 노동자들의 현실을 투쟁으로 각인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대견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참으로 흐뭇한 마음으로 뭉클한 가슴들을 접할 수 있었다.
다만, 전국순회현장투쟁단의 이름과 걸맞게 짜임새 있는 계획과 좀더 많은 비정규투쟁사업장을 방문하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타격투쟁 또한 한국통신에만 국한된 투쟁이어서 불만이 없지 않았다. 전주에서의 일정 또한 여성노동자대회, 전주화성섬유, 동산사내하청 등 비정규관련단체들과 좀더 많은 시간을 갖는 데 할애했어야 했다.


비정규직 완전철폐의 그날까지

특성상 지역 비정규노동자들과 충분한 토론과 현장상황을 좀더 적확히 파고들어 비정규노동자들의 연대와 동질성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시간 또한 부족한 것이 흠이다.
군산의 개정병원 동지들, 2년이 넘도록 힘겹게 싸우는 여성노동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이다. 한시간 남짓한 연대집회는 개정병원 동지들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아쉬움만 남겨주고 말았다. 군산 노동부 앞마당의 집회는 대우차동지들과 개정병원 동지들 그리고 현장투쟁단 등 합동연대집회 후 거리행진을 하며 정규직, 비정규직이 한마당을 이루었다. 이 끈끈한 연대집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을 실망하게 만들고 말았다. 마무리까지 함께 해주기를 원했던 군산 개정병원의 동지들이 아쉬워하며 우리들의 등뒤에서 끝까지 서서 떠나는 우리를 지켜보는 모습.

그 모습은 안타까움에 비정규들만의 아집과 고집을 그대로 보여주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군산에 왔으니 바다구경하자는 의견이 있었고, 군산시내에서 선전전을 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물론, 후자는 끝까지 이 곳에서 남아 마무리집회를 하길 원했지만, 결국 전국순회투쟁단은 아름답지 못한 모순을 남기고 말았다.
광주에서도 대우캐리어동지들과의 만남 역시 그 지역의 노동자들을 흥분하게 만들었고, 그들은 기대감으로 우리를 맞이하였다. 그렇지만, 결국 시간관계상 30분집회에 사내하청 동지들과 대화조차 하지 못하고 떠나야 했다.

민주노총에서 주관을 했건 공공연맹에서 주관을 했건, 계획과 예산, 시간일정 등 충분한 검토 없이 출발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전북본부와 광주본부 등 관계자들의 심적 고충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잠자리에서 식사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전북본부장님과 관계자 그리고 광주지역 본부장님께도 감사의 말씀드리며 다음 그런 기회가 나에게 주어진다면 다시한번 힘찬 투쟁의 정신으로 전남·북지역의 비정규동지들과 함께 외칠 것이다. 비정규직 완전철폐, 정규직화 쟁취하자! 노동자해방 쟁취하는 날까지 투쟁!

방송사 비정규직노동조합 위원장 주봉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아...허세욱 열사여 2007년 4월 1일

2010/04/01 16:56

"머리띠를 풀어 바람에 날린 유골 가루를 묻힐 수밖에 없었다"
- 민주노총 주봉희 부위원장이 전한 유골수습과정


이날 촛불행사에서 민주노총 주봉희 부위원장이 허세욱 씨의 사망 이후 유가족들의 조문 거부, 유골수습 과정을 밝혀, 그 내용을 그대로 전한다.

허세욱 동지가 돌아가신 15일부터 16일까지 긴박하게 돌아간 과정을 밝히려고 한다. 오전 11시 55분 처음으로 메시지를 받아 민주노총에 도착한 것이 12시 40분이다.

동지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회의를 하다가 안성 성요셉 병원에 안치됐다는 소식을 듣고 안성에 내려간 것이 오후 4시 40분이다. 그곳에는 이미 한독운수 동지들과 민주노동당 경기도당 동지들 30여명이 있었다.

이미 가족들은 술에 취해서 흥분한 상태였다. 유가족들의 반대로 조문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범국본 어른들이 내려오면 전체 조문을 하기 위해 기다렸다. 오종렬 의장님과 평통사 홍근수 대표님,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님이 오후 9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그래도 가족들은 완강히 버텼다. 때로는 무릎을 꿇기도 했지만 위협을 가하기도 해, 어른들을 모시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문성현 대표는 영안실 밖에서라도 조문을 하겠다며 그곳에서 절을 하고 계셨다.

지역 동지들이 텐트를 구해 두 동을 쳤다. 그곳에서 촛불집회를 30여명의 동지들과 진행했다. 비가 세차게 내렸지만, 이대로 보낼 수 없다는 마음에 12시 넘게 촛불행사를 했다.

천막 안에 있는데 새벽 5시 58분에 주차장 밖이 이상해서 뛰쳐 나가봤다. 유가족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차가 지하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버스는 경찰들의 포위 속에서 빠져나갔다.

버스가 성남 화장터에 도착한 것이 8시 10분이다. 정보과 형사, 경찰들에 막혀 다시 한번 예를 갖추려 했지만 하지 못했다. 유골이 되어, 영정과 함께 나왔을 때 저는 매달렸다. 마지막 가는 길 인사라도 반절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했지만, 가족들은 유골을 들고 합사장으로 가버렸다.

이름 모를 유골들이 들어있는 합사장에 유골이 뿌려버렸다. 저희는 통곡을 하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은 합사장에 열쇠를 채우고 떠나버렸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머리띠를 풀어 바람에 날린 유골 가루를 묻히는 일 밖에 없었다. 산에 뿌리면 흙이라도 퍼오고, 강에 뿌리면 물이라도 퍼오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다른 동지는 주위에 흩어진 유골가루를 수습하고 나는 내가 가진 머리띠에 유골을 묻혀 범국본에 전달했다.

눈물을 머금은 채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항간에 민주노총이 조문을 막았다는 소문이 있다. 오해가 없길 바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2000년 5월 슬픈 기억들

2010/03/15 18:30

         
방송사 비정규직 노동조합 설립
 
2000년 06월 08일 (목) 00:00:00 민임동기 기자 ( gom@mediaonul.com)
 


각 방송사의 파견·용역 비정규 운전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방송사 비정규 운전직 노동조합(위원장 주봉희)이 설립됐다.

지난달 31일 서울시로부터 노동조합 설립필증을 받은 방송사 비정규 운전직 노동조합은 직종별 단일노동조합으로 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하고 있다.

주봉희 위원장은 “7월부터 파견근로법이 발효됨에도 4월말부터 방송사들이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있다”며 “이번 노동조합 결성으로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파견노동자들의 실태를 알리고 대량해고 사태에 놓인 파견노동자들의 생존권과 고용보장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 5일 방송사 비정규 운전직 노동조합은 KBS 본관 앞에서 ‘방송사의 부당해고 철회와 직접교섭을 촉구’하는 집회를 갖고 운전직 파견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한 계약해지 규탄과 근로자 파견제 철폐 등을 주장했다.

이날 집회에서 방송사 비정규 운전직 노동조합은 “KBS가 파견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한 계약해지를 자행하고 있으며 그 동안 두 차례에 걸친 교섭요구에도 응하지 않는 등 사태해결에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집회에서 KBS측은 차량부 대기실에 있던 조합원들의 집회참가를 막아 참가자들과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이 와중에 조합원 장성욱씨가 실신,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현재 KBS에서 해고된 파견노동자들은 5일째 출근투쟁을 계속하고 있으며 이달 말까지 방송사들을 순회하면서 지속적인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이주발전글로벌포롬(GFMD)

2008/10/31 10:09
성명/보도자료
[보도]이주발전글로벌포럼(GFMD) 민주노총 대표단 활동보고0
2008-10-30 19:30:36    
 
[보도]이주발전글로벌포럼(GFMD) 민주노총 대표단 활동보고
- 마닐라에 울려퍼진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 “이주노동권은 인권이다! 이주노동자는 상품이 아니다!”
- 민주노총 대표단, 국제노동조합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 조직

1. 민주노총은 이주발전글로벌포럼(GFMD)을 계기로 국제노동조합들이 필리핀 마닐라에서 10월 23일 - 28일 동안 조직한 다양한 행사에 주봉희 부위원장을 비롯하여 건설연맹, 이주노조 등 민주노총 대표단 7명이 참가하였습니다. 행사에는 샤론 버로(Sharon Burrow) 국제노총(ITUC) 위원장을 비롯하여 약 200여명의 노동조합 대표자들이 참가하였고, 수백명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도 참여했습니다.

2. 참가자들은 한 목소리로 "이주노동권은 근본적인 인권이다. 이주노동자는 상품이 아니다."를 외치며, 세계 각국 이주노동자들이 직면해 있는 열악한 현실을 고발하고, 평등한 대우, 차별금지, 노동권 보장을 각국 정부에 촉구하였습니다.

특히, 최근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세계금융위기가 야만적인 강제추방과 단속 강화 등 이주민과 이주노동자들에게 미칠 파괴적 영향이 심각하게 제기되었습니다. 세계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와 워싱턴 컨센서스의 실패와 새로운 사회상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위기가 늘 그래왔듯이 가장 취약한 노동자 계층에게는 더욱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인권과 노동권, 사회보장 혜택이 공평하게 보장되어야 하며, 각국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관심과 활동이 중요하다는 점이 공유되었습니다.

3. 이를 위해 민주노총은 24일 오후 1시 - 6시까지 홍콩노총, 네팔노총(GEFONT), 필리핀진보노동자연맹(APL) 등과 함께 이주노동자 조직화와 권리 보장을 위한 노동조합의 역할, 그리고 본국-이주국 노총들간의 협력방안을 모색하는 공동토론회를 트레이더스 호텔(Traders Hotel)에서 개최하였습니다.

토론회에는 ILO, 국제노총(ITUC), 국제공공노련(PSI), 국제건설목공노련(BWI) 등 국제노동조합 대표자들을 포함하여 약 70여명이 참가하였습니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각국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조건과 차별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가장 유력한 방안은 역시 조직화임을 확인하였습니다. 동시에 본국(country of origin)과 이주국(country of destination) 노동조합들간의 협력과 연대가 필수적임을 공유하였습니다.

한편, "노동자의 운동/이동 - 국경 없는 노동조합"이라는 구호아래 조직된 국제노동조합들의 토론회에서는 각국 참가자들이 이주노조에 높은 관심과 연대를 표명하였으며, 한국 정부의 반인권적인 단속추방 정책에 분노를 표시하였습니다.

4. 나아가 27일(월)에는 천여 명이 참가한 집회와 행진이 진행되었습니다. "이주노동자는 인간이다(Migrant Workers are human beings)", "이주노동권은 인권이다(Migrant Workers Rights are Human Rights)", "이주노동자는 상품이 아니다"(Migrant Workers are not for sale) 등의 구호가 마닐라 거리에 울려 퍼졌고 집회에 참가한 주봉희 부위원장은 연설을 통해, 세계 노동자는 하나이며,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 철폐와 노동기본권 보장을 각국 정부에 촉구하였습니다. 특히 한국 정부의 야만적인 이주노조탄압을 강도 높게 비난하였습니다.

5. 민주노총은 이번 이주발전글로벌포럼 참가를 계기로 다시 한 번 이주노조 인정, 노동권 보장과 야만적인 단속추방 중단을 한국 정부에 촉구합니다. 또한 고용허가제하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식적인 이주과정에 있어 본국과 이주국 모두에서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합니다. 민주노총은 네팔노총, 필리핀 노동총 등 본국 노동조합과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국내 이주노동자들의 권리 보장과 차별 철폐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해나갈 것입니다.

2008. 10. 30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비정규직 고용기간 4년으로 연장 추진

2008/10/07 07:58

비정규직 고용기간 4년으로 연장 추진

경향신문 | 기사입력 2008.10.07 02:51 | 최종수정 2008.10.07 02:56



ㆍ노동부, 파견대상 범위도 확대

ㆍ勞 "정규직 전환 막는 개악" 반발

정부가 현행 2년으로 규정돼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제한 기간을 2년 더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안이 확정될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제한 기간이 4년으로 연장돼 노동현장의 비정규직 감소를 요구하고 있는 노동단체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 관련기사 12면

6일 노동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2007년 7월1일부터 시행된 비정규직보호법의 일부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의 주요 개정안은 기간제 노동자 및 파견 노동자의 사용기간 연장과 파견업종 범위 확대 등이다. 정부는 개정안을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이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시점인 내년 7월1일부터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개정을 추진 중인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 기간 연장은 노사합의를 전제로 현재 2년으로 정해 있는 고용제한 기간을 2년 더 연장하는 '2+2' 방안이다. 파견 노동자의 파견 기간 역시 현재 2년에서 2년 더 늘리는 안이다. 파견대상 업무도 현행 32개 업무보다 더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개정안 추진 배경에 대해 내년 7월 정규직 전환이 불가능해 일자리를 잃게 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대책이라는 입장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비정규직의 고용기간을 현재보다 1년 또는 2년을 더 연장하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검토되고 있으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내년 7월 이후 고용기간 2년이 만료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기업들은 내년 7월이 되면 2년 이상 고용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인지, 해고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며 여기에 해당되는 노동자는 얼추 100만명이 넘는다"며 "복수노조 문제보다 시급한 것이 바로 비정규직법 개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노동단체는 개정안이 확정되면 비정규직 노동자가 현재보다 더욱 늘어나 비정규직 차별대우로 인한 사회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비정규직보호법의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경영주들은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기간 제한을 아예 철폐하거나 최소 4년으로 연장해 줄 것과 함께 파견업무 대상 확대를 요구해왔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크게 늘어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제정 및 개정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기간제(계약직) 근로자로 2년 이상 일하면 사용주가 사실상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대법원, 불법파견에 대한 원처의 고용 책임

2008/09/18 15:35

[보도]

대법원, 불법파견에 대한 원청의 고용 책임 명확하게 판시
- 불법파견도 2년이 넘으면 구 파견법 제6조 3항 고용의제 규정 적용된다. -


1.대법원 판결의 의의와 남은 과제

1) 의의
- 불법파견을 한 원청회사가 사용자로서 고용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에 의의
-특히 중간착취를 위해 불법파견을 남용해 온 사용자들에게 고용책임을 분명하게 제시하여 불파를 근절할 수 있는 계기.
- 엇갈리던 하급심 판결들로 인한 혼란을 정리한 것임
- 구 파견법 시행이 1998. 7. 1.부터이고 이미 해당 조항(구 파견법 제6조 3항)은 개정되어 없어진 상태(현행 파견법은 파견법 제6조의 2에서 불법파견 2년 경과시 직접고용의무 조항으로 규정)로 대법원이 10여년이 지난 지금에야 너무 늦게 입장을 밝힌 점은 아쉬움이 있음
- 다만, 구 파견법은 합법파견의 경우에도 2년 경과하면 직접고용이 의제되는데, 불법파견의 경우에는 당연히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상식을 확인한 판결임
- 간접고용 형태를 이용하여 고용관계상의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로서 의미가 있고 이에 대한 대법원의 의지를 읽을 수 있음(최근 현대미포조선 판결 참조 : 위장도급, 직접근로관계 인정)

2) 남은 과제
① 더 중요한 문제는 도급계약으로 고용관계를 회피하는 것을 엄격하게 막는 것임. 즉 지난 번 현대미포조선 판결처럼 원청업체와 직접 근로관계를 인정하는 것을 확대하거나, 최소한 파견근로관계로 인정하여 법적 책임을 지우는 것이 필요한데, 결국 파견과 도급의 구별기준에 대하여 대법원이 어떻게 판단하는가가 매우 중요함. 사용자가 외형을 조금 바꾸었다고 쉽게 ‘도급계약’으로 인정하게 되면 이 사건 판결 같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 즉 간접고용에서 ‘도급계약’ 인정은 아주 엄격한 요건 아래에서만 인정해야 함

② 2007. 7. 1.자로 파견법이 개정됨, 고용의제 조항은 삭제되었고 지금은 불법파견으로 2년이 경과한 경우에는 직접고용의무로 규정, 사용자가 직접고용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 그 법적 효과는 어떻게 되느냐. 즉 근로자는 불법파견을 한 원청회사를 상대로 어떤 청구를 할 수 있는가가 문제임. 즉 개정법의 ‘직접고용의무 조항’의 효력에 대한 해석 문제가 남아 있음
즉 “근로자파견법 제6조의2는 그 문언에 따라 사용사업주는 파견근로자에 대하여 고용의무를 부담하고, 파견근로자는 이를 사법상 권리(고용의무 이행 청구 가능)로서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함이 타당할 것임”

③ 도급계약이든, 아니면 파견근로관계이든 간접고용에 있어서 원청회사는 최소한 노동 3권에 있어서는 사용자로서 책임을 질 필요가 있음,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경우에 원청회사와 하청회사가 도급계약관계라고 하더라도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사업장 내 노조활동을 좌우하는 것은 원청회사임은 분명함. 원청회사의 단체교섭 의무, 하청 근로자의 사업장 내 노조활동 보장, 부당노동행위 금지 필요, 이 부분에 대하여는 원청회사의 사용자로서 책임 인정 해석 필요함.

2. 판결 요지

대법원은 2008. 9. 18. 구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2006. 12. 21. 법률 제807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6조 제3항에서 사용사업주가 2년을 초과하여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파견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의제한 직접고용간주 규정이 파견근로자보호법 제5조 제1항에 정한 파견대상업무가 아니거나, 파견근로자보호법 제7조의 허가를 받지 않은 파견사업주가 행하는 근로자파견의 경우에도 적용된다는 내용으로 재판관 전원 일치로 전원합의체 판결(재판장 대법원장 이용훈, 주심 대법관 김지형)을 선고하였다.

3.사건의 개요
- 원고 : 이경수외 1 / 피고 중앙노동위원회, 피고보조참가인 주식회사 예스코(구 극동도시가스)

1) 2000. 4. 3. ~ 2002. 4. 2. : 원고들은 A파견회사 소속으로 비서, 타자원 파견계약에 따라 주식회사 예스코에 파견되었으나, 실제로는 고객지원팀에서 근무
☞ 허용되지 않는 업무에 불법파견

2) 2002. 4. 3. ~ 2003. 11. 30. : 주식회사 예스코는 구 파견법에 따라 2년이 경과되자 직접고용 책임을 회피할 목적으로 이번에는 B회사(용역업체) 소속으로 종전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함(예스코는 B회사와 도급계약을 체결함)
☞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있었으나, 실질은 파견근로관계로 판단, 허용되지 않는 업무에 도급계약을 위장하여 불법파견을 행함

3) 2003. 12. 1. ~ 2005. 11. 30. : B회사(용역업체)의 도산을 이유로 예스코는 원고들과 계약직 근로계약을 체결한 후 1회 갱신한 후 2005. 11. 30.에 예스코는 원고들을 계약기간만료를 이유로 해고

4) 원고들은 주식회사 예스코를 상대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신청, 이후 중앙노동위원회, 서울행정법원, 서울고등법원을 거침
- 이 사건 하급심(서울행정법원, 서울고등법원)은 위와 같은 불법파견 사실을 인정하였으나, 불법파견에는 구 파견법 제6조 3항(2년이 경과하면 직접고용 의제)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여 원고들의 주장을 배척

5) 대법원은 2008. 6. 19. 이 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을 실시하였고 오늘 판결을 선고함

4.사건의 주요 쟁점과 대법원 판단

1) 원고들의 주장
- 불법파견에도 구 파견법 제6조 3항 고용의제규정이 적용되므로 2년이 경과한 2002. 4. 3.부터는 주식회사 예스코의 근로자로 고용이 의제되었음
- 그리고 고용의제가 된 경우에는 근로계약 기간을 정한 바도 없으므로 원고들과 주식회사 예스코와는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을 체결한 지위에 있음
- 주식회사 예스코가 2003. 12. 1. 원고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지 않고 계약직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기망 내지 중요한 사실의 착오에 기인한 것으로 무효임, 따라서 원고들은 여전히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계약을 체결한 상태(정규직)에 있으므로 예스코가 기간만료로 해고한 것은 부당한 해고임
- 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불법파견으로 3년 7개월, 계약직으로 2년, 도합 5년 7개월동안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업무 수행하였고, 예스코가 해고제한 조항 잠탈 목적으로 위와 같은 고용형태를 취한 것으로 계약직 근로계약은 형식에 불과하고 원고들은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자의 지위에 있다고 보아야 함, 따라서 기간만료로 해고한 것은 부당해고임

1) 쟁점 1. : 불법파견에도 구 파견법 제6조 3항(2년 경과후 직접고용 의제)이 적용되는지
2) 쟁점 2. : 직접고용이 의제된 경우에 그 근로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상의 지위에 있는 것인지 여부(고용 의제되는 경우에는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 근로계약기간에 대하여 아무런 의사합치가 없게 되므로)

3) 대법원의 판단 :
[요지] 직접고용간주 규정은 파견근로자보호법 제2조 제1호에서 정의하고 있는 “근로자파견”이 있고 그 근로자파견이 2년을 초과하여 계속되는 사실로부터 곧바로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 사이에 직접근로관계가 성립한다는 의미이고, 이 경우 그 근로관계의 기간은 기한의 정함이 있는 것으로 볼 만한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기한의 정함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이유] ① 직접고용간주 규정은 사용사업주가 파견기간에 관한 제한 규정을 위반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행위에 대하여, 행정적 감독이나 형사처벌과는 별도로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 사이의 사법(私法)관계에서도 직접고용관계 성립을 의제함으로써 근로자파견의 상용화·장기화를 방지하고 그에 따른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을 도모하는 데에 그 입법취지가 있다.

② 그러한 입법취지를 가진 직접고용간주 규정은 근로자파견이 파견근로자보호법 제5조에 정한 파견의 사유가 있는 경우라거나 또는 파견근로자보호법 제7조에 정한 근로자파견사업의 허가를 받은 파견사업주가 행하는 이른바 적법한 근로자파견에 한정한다는 것을 고용간주의 요건으로 들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용성립의제는 사용사업주가 파견기간의 제한을 위반한 데 따른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③ 직접고용간주 규정이 적법한 근로자파견’의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축소하여 해석하는 아무런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파견근로자보호법이 규정한 제한을 위반하여 근로자파견의 역무를 제공받은 사용사업주는 오히려 직접고용성립 의제의 부담을 지지 않는 결과가 되어 법적 형평에 어긋나고, 사용사업주로서는 당연히 근로자파견사업의 허가를 받지 아니한 파견사업주로부터 근로자파견을 받는 쪽을 더 선호하게 될 것이므로, 파견근로자보호법에 위반하는 행위를 조장하고 근로자파견사업 허가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릴 염려가 있으므로 타당하지 않다.

(민주노총 법률원 권두섭변호사 017-366-1103)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민주노총, 주경복 후보 선거유인물 불법매도 항의

 

박유진 기자
libero1990@naver.com
인쇄하기
기사본문
글자크기
민주노총 주봉희 부위원장이 서울시선관위 고승한 지도과장과 면담하고 있다.
ⓒ 민중의소리
 

민주노총 지도부가 28일 오후 "주경복 교육감 후보 관련 유인물을 불법으로 매도하고, 공정택 후보에 편향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며" 종로구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를 항의방문했다.

이들은 고승한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지도과장을 만나 "선관위가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노조 게시판의 게시물을 불법이라고 말하며 수거해가고, 노조 사무실까지 들어와서 유인물들을 가져가는 것은 명백한 정치탄압이다"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서 주봉희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민주노총은 지지후보를 밝히고 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 법적으로 보장된 정치단체고 지난 대선, 총선때도 조합원 교육지나 오픈된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우리의 뜻을 공개했다"며 "유독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만 통상적으로 해오던 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가 뭐냐"고 강하게 항의했다.

또 주 부위원장은 "주경복 후보 홍보 게시물은 일반인들이 다니는 곳이 아니라 공장 내부나 노조 내부 조합원용 게시판에만 붙인 것이고, 조합원 교육지에는 어디에서 교육하는 조합원용 교육지라고 명시가 되어있다"면서 "모 대학 구내식당에서 조합원용 교육지가 발견되었다고 불법이라 매도하는데 대학 노조원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두고 간 것일 수도 있는데 과잉 대응이다"고 말했다.

이에 고승한 지도과장은 "선거가 다가오니 긴박한 마음에 밖에서 발견되자마자 서울시경찰청에 협조 요청해서 다 수거한 것인데 일반 선거구민들에게 홍보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면 (홍보물이) 이해는 된다"고 말하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뢰해서 조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함께 항의방문을 간 김진억 민주노총 서울본부 정책국장은 "공정택 후보측에서는 교장들을 동원해 교육감 선거 투표 독려 문자나 이메일등을 학부모들에게 보내고 있고 심지어 어떤 학부모는 같은 문자를 다섯통이나 받았다고 했다"며 "공 후보는 교장 100여명과 식사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는데 선관위에서는 특별한 제재가 없었다"고 말했다.

또 김 정책국장은 "주경복 후보를 지지하는 노조는 경찰청에 의뢰까지해서 재갈을 물리면서 공정택 후보의 관건선거 의혹은 제대로 조사하지 않는 선관위의 편파적 입장도 문제다"고 규탄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민주노총의 합법적 정치활동 탄압 중단과 불법유인물 배포 에 대한 정정, 책임자 징계 등을 요구했으나 서울시선관위측은 "중앙선관위에 의뢰하고 답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다.

선관위가 불법이라고 수거해간 포스터와 유인물. 왼쪽 유인물은 모 대학 구내식당에서 발견된 것으로 '조합원용 교육지'라고 명시되어 있다. 오른쪽 포스터는 KT 건물 내부 조합원용 게시판에 게재되어 있던 것.
ⓒ 민중의소리
 
ⓒ민중의소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코스콤 비정규직 투쟁 승리, 언론의 무거운 침묵
[경제뉴스 톺아읽기] 파업 311일째 법원, "전원 정규직으로 고용하라" 판결
 
2008년 07월 19일 (토) 08:46:36 이정환 기자 ( black@mediatoday.co.kr)
 
   
   
 
무려 311일째 장기 파업을 벌이고 있는 코스콤 비정규직 투쟁이 실마리를 찾을 전망이다. 서울남부지법 13민사부는 18일 증전엔지니어링과 에프디엘정보통신 직원 66명이 코스콤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이들 회사의 도급행위는 위장 도급이 분명하다"며 "코스콤은 이들을 전원 정규직으로 고용하라"고 판결했다.

이날 판결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사에 획을 그을만한 의미있는 사건이었지만 한겨레와 일부 지상파 방송과 인터넷 매체를 제외한 대부분 언론이 일제히 침묵했다.

증전엔지니어링과 에프디엘정보통신은 코스콤 사우회가 출자해서 만든 용역하청 중개업체다. 재판의 핵심 쟁점은 이 회사에서 용역을 받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견근로자인지 도급근로자인지였다. 파견근로자는 원청기업이 하청기업으로부터 직원을 선발해 직접 업무지시를 내리지만 도급근로자는 업무지시를 원청회사가 아닌 하청회사로부터 받는다는 차이가 있다.

코스콤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도급근로자라고 주장하는 반면 비정규직원들은 자신들이 코스콤의 직접적인 업무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위장도급이고 불법파견이라는 입장이었다. 주목할 부분은 이 회사의 대표이사와 주요 경영진이 모두 코스콤의 직원들이고 급여와 4대 보험 역시 코스콤에서 지급했다는 것. 파견법의 적용을 피하기 위해 만든 위장 도급회사였던 셈이다.

법원은 "코스콤의 채용과 인사평정, 급여 결정에 대한 관여나 업무 지시, 근태관리, 교육시행 등을 고려할 때 코스콤이 이들의 근로조건 전반을 지휘, 감독한 것으로 인정되므로 이 도급계약은 위장도급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법원은 또 "코스콤 사우회가 출자하고 간부들이 대표이사를 역임한 이들 두 회사는 사업경영의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채 코스콤의 하나의 사업부서로 기능하거나 노무대행기관의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 한겨레 7월19일 8면.  
 
코스콤은 지난해 4월 증전엔지니어링 등 15개 하도급업체와 계약을 해지한 뒤, 대신정보기술 등 새 도급업체 5곳과 계약을 맺었다. 고용이 승계된 305명 가운데 90여명은 지난해 5월 노조를 결성하고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이들은 "도급업체 교체는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불법파견 소지를 없애 직접고용 의무를 회피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해 왔다. 지난해 7월부터 개정 시행된 파견법은 2년을 초과해 파견 노동자를 사용하면 사용사업주, 즉 원청업체가 직접 고용의 의무를 지도록 돼 있다.

이날 법원 판결은 최근 현대미포조선이 생산공정의 일부를 용인기업에 사내도급한 행위를 직접고용으로 판단한 대법원 판결 취지를 이은 것으로 향후 사내도급 관련 소송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해 원청 사용자성을 부정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착취하는 관행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겨레는 19일 18면 "법원 '코스콤 비정규직', 코스콤 직원 맞다"에서 이 소식을 비중있게 전했다. 한겨레는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코스콤은 이들 노동자와 직접 교섭에 나서야 하고 비정규직 차별 책임 등도 안게 된다"고 전했다. 또 "노동자들이 낸 체불임금 지급소송, 회사쪽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매일경제 7월19일 3면.  
 
다른 모든 신문들이 침묵한 가운데 방송사 가운데서는 MBC와 SBS만 이 소식을 짧게나마 전했다. 같은 날 매일경제는 엉뚱하게도 3면에 "갈 때까지 간 코스콤 노조 비리"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어 눈길을 끌었다. 전직 노조위원장 등이 납품업체들로부터 관행적으로 금품을 요구하다가 줄줄이 구속기소됐다는 소식이다. 코스콤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기는커녕 비정규직 노조의 교섭을 앞두고 사장실을 점거해 교섭 자체를 무산시키는 등 반노동자적 행태로 민주노총에서 제명을 당하기도 했다. 코스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차이는 4배에 이른다.
최초입력 : 2008-07-19 08:46:36   최종수정 : 0000-00-00 00:00:00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현대미포조선 하청노동자 원청 사용자성 인정돼

용인기업 해고자 30명, 대법원 상고심서 승리

울산노동뉴스 www.nodongnews.or.kr / 2008년07월11일 16시03분

지난 10일 대법원 제3부는 사건2005다75088 용인기업 해고자 30명이 제기한 종업원지위확인 상고에 대해 "이유가 있다"고 판단, 부산고법의 판결을 파기하고 다시 부산고법으로 환송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용인기업은 형식적으로는 피고 회사와 도급계약을 체결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업무수행의 독자성이나 사업경영의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채 현대미포조선의 일개 사업부서로서 기능하거나 노무대행기관의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라며 "현대미포조선이 직접 용인기업 30명을 채용한 것과 같은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되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그 근거로 "현대미포조선이 용인기업 소속 근로자들의 채용, 승진, 징계에 관하여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한 점, 직접적으로 용인기업 근로자들에게 지휘감독권을 행사한 점, 임금 등 제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점, 용인기업이 독자적인 장비를 보유하지 않았으며 사업경영상 독립적인 물적 시설을 갖추지 못한 점" 등을 들었다.

 

대법원은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부산고법의 '용인기업 30명과 현대미포조선 사이에 직접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에 대해 "외형상 도급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현대미포조선과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있는 것으로 평가해야 할 근로관계의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원심판결을 파기했다.

 

이로써 용인기업 30명 해고자들은 위장도급과 현대미포조선의 정규직으로서 지위를 인정받은 셈이다.

 

노동계 일제히 판결에 환호 "즉각 원직 복직시켜라"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노동계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일제히 환호하고 나섰다.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11일 성명을 내고 "부산고등법원은 용인기업 노동자들이 정든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신속한 판결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현대미포조선 역시 용인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하루빨리 용인기업 노동자들을 원직 복귀시켜야 한다. 이것만이 오만한 자본의 힘을 앞세워 한 개인을, 한 가정을, 나아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무참히 짓밟은 자신들의 과오를 속죄 받는 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보신당울산추진위원회 역시 11일 성명을 내고 "용인기업 노동자들의 무려 5년 5개월이 넘은 해고기간 동안 그 고통과 억울함이 얼마나 깊었겠느냐"며 부산고법 재판부가 신속히 판결을 내릴 것을 촉구했다.

 

또 현대미포조선 회사측에 "부당하게 일터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을 하루 속히 복직시킬 것"을 요구했다.(전재민 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우리 모두 배신자'가 됐다

2008/04/18 16:26

우리 모두 '배신자'가 됐다
[월간말] 이랜드 일반노조가 진보신당으로 가기까지

- 박미경 / 전 매일노동뉴스 기자


이것은 ‘전쟁’이다. 2007년 6월 30일 이후, 벌써 9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다. 싸움을 건 쪽은 회사였다. 애당초 노조나 회사나 싸움이 이렇게 길어지리라고는 당시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눈치다. 그러나 ‘장기전’이 됐다. 장기전은 보급과 사기를 요구한다. 회사에게 보급이란 현금유동성이고 사기란 여론의 침묵이다. 반면, 노조에게 보급이란 생계유지이고 사기란 여론의 격려다.

2006년 이랜드가 까르푸를 인수합병하면서 이랜드노조와 까르푸노조는 이랜드 일반노조로 통합됐다. 당시 조합원 수는 1천50여 명. 1천여 명에 달하는 절대다수 조합원이 까르푸 출신이다. 합병 뒤 까르푸 브랜드는 홈에버로 바뀌었다. 홈에버 노동자들의 1/4 가량이 조직됐다. 유통업 노동자의 조직률이 낮은 것에 비하면(전비연의 비공식 추계에 따르면 유통업 노동자의 조직률은 1% 미만이다), 홈에버 노동자들의 조직률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지난해 조합원들이 홈에버 월드컵점을 점거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조직률이 바탕이 됐다.

파업 초기 참가했던 조합원들 가운데 200여 명은 일찍 떠났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 수도 900명 선으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싸움이 해를 넘기면서 ‘똘똘 뭉쳐 투쟁하던’ 300여 명의 핵심 조합원들 가운데에서도 이탈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52명의 조합원 가운데 51명이 파업에 나섰던 홈에버 면목점 분회의 경우, 30명이 파업대오를 지키다가 지난 연말 11명이 파업을 접고 회사에 복귀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의 와중에서 22명의 동지 들이 해고됐다. 노동계에서 엽기적이기로 정평이 나 있는 이랜드의 인사노무정책을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적은 숫자였다. 이 대목과 관련, 이랜드 노조의 한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회사는 일이 이렇게 크게 벌어질 줄 몰랐던 것 같아요. 여론도 노조에 동정적이었구요.” 회사는 장기전을 선택했고, 당연히 조합원 전체를 공격하는 자충수는 피했던 것이다. 회사는 조합원들에게는 복귀를 종용하는 한편, 보수언론에게는 ‘기업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양동작전에 나섰다. 여름에 시작한 싸움이 가을을 지나 겨울에 접어들었다. 기온이 내려가는 만큼 여론도 식어갔다. 보급과 사기의 두 측면에서 노조의 열세는 날이 갈수록 완연해졌다. 그들에게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방법이 없다! 국회의원이라도 해 보자!

2월 28일은 노조 간부들이 참석하는 쟁의대책위원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김경욱 이랜드 노조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총선 비례대표후보 ‘전술’을 제안했다. 그것은 김 위원장의 아이디어였다. 쟁의대책위원회가 열리기 며칠 전, 김 위원장은 이남신 수석부위원장, 홍윤경 사무국장 등 노조 간부들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알리고 의견을 물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이 전술은 ‘기발한 아이디어’ 이상의 대접을 받지 못했다.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은 농담으로 받아들였고, 홍윤경 사무국장은 묵묵부답이었다.” 김 위원장의 전언이다.

과거의 예를 보더라도(멀리는 대우자동차의 송경평, 가깝게는 현대자동차의 정갑득), 단위노조의 총선 후보 전술 구사에는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국회의원 만들려고 투쟁했느냐’는 볼멘소리부터, 정파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정세 인식과 투쟁노선의 차이가 빚어낼 불협화음과 불신의 벽까지. 그러나 김경욱 위원장은 단호했다. 김 위원장은 ‘나는 현장을 맡고, 후보는 다른 사람을 내보내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이란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내심 이 수석부위원장을 점찍고, 그를 설득했다. 김 위원장은 마침내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의 동의를 얻어냈다. “조직이 결정하면 따라야 한다.” 이 수석부위원장은 김경욱 위원장의 고민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날 쟁위대책위원회는 총선 비례대표후보 전술 안건을 조합원 총회에 부치기로 했다.

다음날 조합원 총회가 열렸다. 쟁의대책위원회 바로 다음날 총회를 소집한 것은,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 전략공천명부 확정일이 3월 2일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었다. 김경욱 위원장이 제안 취지를 설명했다. “총선 때 이랜드 일반노조가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는 굉장히 민감한 문제입니다. 우려와 비판도 많습니다. 현장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을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가운데 비례대표 높은 순번을 주는 쪽으로 출마시켜 당선 가능성이 확보되면 회사에 압박이 될 것입니다.”

제안 취지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김경욱 위원장의 아이디어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당이 이미 분열된 상황에서, 김 위원장과 이랜드 노조에게는 ‘어느 당이냐’는 물음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총회에서는 ‘어느 당이냐’는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 조합원들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노조 간부가 국회의원이 되는 게 조합원들에게 익숙한 것인가’였을 뿐이다.


민주노동당이든 진보신당이든 상관없다?

사실, 조합원들에게 총선 비례대표후보 전술은 생소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랜드 일반노조는 2월 들어 거의 매일 밤 복귀하려는 조합원들을 설득하는 ‘눈물의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오간 문답은 항상 똑같았다. “대체 끝이 어디냐?”는 복귀 조합원들의 물음과 “총선 때까지 딱 두 달만 버티자!”는 위원장의 대답. ‘총선 때까지 버티자’는 것이, 설마 이랜드 조합원들에게 총선 선거운동 하자는 이야기였을 리는 만무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비례대표 후보 전술이었다.

조합원들의 말문이 열렸다. 한 분회장은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회사가 긴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찬성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또 다른 조합원은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9명이 있어도 비정규법 못 막았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찬반양론이 나오자, 조합원들은 간부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주문했다. 분회장들이 나섰다.

양미경 분회장(일산 홈에버)은 “출마하면 언론이 다시 우리를 주목할 것”이라며, “국회의원이 됐다고 해서 우리 세상이 될 것은 아니지만 우리 문제 해결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찬성 의견을 냈다. 강혜정 분회장(분당 야탑 홈에버)은 고개를 저었다. “언론에 나와도 해결된 건 없었다. 연대를 많이 받기 위해서는 어느 한 쪽에 서면 안 된다.” 장석주 노조 지도위원 역시 “비정규직 투쟁단위들을 모아 연대투쟁을 강화하자”면서 후보 전술을 반대했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정서는 ‘뭔가 돌파구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였다. 황은영 분회장(면목 홈에버)의 “때려 부수는 폭력행위 같은 것 말고는 다 해 봤다”, “이제까지 안 해 본 총선 비례대표후보 전술을 우리 투쟁의 돌파구로 삼자”는 발언이 나오자, 조합원들의 박수소리가 총회장을 흔들었다.

이날 총회는 총선 비례대표후보 전술을 ‘조직적으로 정하기’로 하고, 다음 총회에서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이 안건에 90% 이상의 조합원이 찬성했다. 총선 비례대표 후보 전술은 향후 이랜드 일반노조의 명운을 넘어 어쩌면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는 안건이었다. 김경욱 위원장을 비롯한 노조 지도부는 제안한 그 자리에서 찬반투표로 결정짓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다음 총회에서 찬반투표로 결정하기 전에 만약 ‘민주노동당이 비례대표 2번을 준다’면 그것을 안건으로 찬반투표를 실시한다는 게 지도부의 복안이었다.


이랜드, 기륭, KTX, 그리고

이날 총회에 참석한 조합원은 100여 명이었다. 900여 명의 조합원 가운데 100여 명. 이 숫자는 이들이 ‘몰릴 대로 몰려 있다’는 현실을 반영하는 정확한 수치였다. 절차와 형식을 제대로 갖춘 총회가 아니었다. 후보전술을 제안한 김 위원장이 직접 사회를 맡았고, 전술이 결정되기도 전에 위원장의 지명에 의해 후보가 정해졌으며, 조합원들의 대부분은 민주노동당이든 진보신당이든 정보가 없었다. 어쩌면 ‘총회꾼’들이 절차상의 하자를 들어 난리법석을 피울 만했다. 하지만, 조합원들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인데, 위험하지만 비례대표후보 전술이라도 해 보자”는 김 위원장의 제안에, 조합원들은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착했다’. 이날 총회가 끝난 뒤 이남신 수석부워원장은 “국회의원이 되어 우리 문제를 풀려면 정말 어려울 텐데 짐을 지우기 안 됐다”는 조합원들의 따뜻한 위로를 들었다.

한편,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은 29일 총회가 열리기 전 며칠 동안 노조 외부의 비정규 활동가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김주환 한국비정규센터 부소장은 “힘이 들더라도 투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면서, “힘들게 투쟁하는 사업장이 이랜드 일반노조만이 아니다”는 등의 이유로 후보 전술을 반대했다. 전비연 등 다른 비정규 활동가들의 의견도 대동소이했다. 심지어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짓”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이랜드 일반노조의 태도가 확고부동하다는 게 확인되자, 몇몇 비정규 활동가들은 “정 후보전술을 쓰려면 민주노동당이 낫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조언하기도 했다. “진보신당보다는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가 당선 가능성이 높다. 이랜드 일반노조 조합원들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을 상급단체로 하고 있는 데다, 비록 분당 사태가 있었지만 이랜드 투쟁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한 민주노동당에 대한 정치적 도의를 지킬 필요가 있다.”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의 생각도 같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경욱 위원장의 판단도 같았다.

하지만, 상황은 이들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이미 민주노동당 주변에서는 혁신비대위가 발표한 비례대표 전략공천 예비후보에 포함된 이랜드 일반노조, 기륭전자, KTX 등은 ‘들러리’일 뿐이고, 이미 전국민주노조연합의 홍희덕 위원장이 내정됐다는 풍문이 나돌고 있었다. 홍희덕 위원장은 민주노총 내에서 ‘국민파’로 알려져 있다.


“저희를 선택해 주십시오”

3월 1일 저녁 6시, 김경욱 위원장과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이 민주노동당 당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몇 시간 전 그들은 민주노동당 혁신비대위의 연락을 받았다. 비대위원들이 비례대표 전략공천 후보를 면접하는 자리였다. 비대위원들 앞에서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이 입을 열었다. “이랜드 일반노조의 비례대표후보 전술이 기회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 민주노동당이 비정규투쟁의 상징이 된 이랜드 일반노조의 투쟁을 받아 안고 우리를 선택해 주십시오.”

어쩌면 구차한 순간이었다. 지난 4년 동안 민주노동당 의원단 10명 가운데 대중투쟁의 현장에서 대중과 함께 ‘전사’한 이는 없다. 의원직 상실이라고 해봐야, 선거법으로 걸린 조승수 전 의원과, 분당을 주도한 심상정, 노회찬 전 의원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직이 ‘꽃방석’이 됐다는 사실을 뜻했다. 과거 마창노련 때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당시 노동조합 위원장직은 ‘감옥행’을 의미했다. ‘일하는 사람의 정당’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직이 당내에서 시샘과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제 아무리 뻔뻔한 사람이라도 대놓고 ‘내가 비례대표 하겠소’라는 말을 못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을 만든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비대위원들 앞에서 “저를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시켜주십시오”라고 말해야 하다니.
‘월드컵점에서 농성할 때만 하더라도, 저이들은 우리에게 미안해했는데….’ 마치 칼날을 숨긴 듯한 야속한 질문들이 나올 때마다 이 수석부위원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강국면에 접어든 투쟁이라고요?”

민주노동당 혁신비대위는 그들대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비대위에 수혈된 박승흡 비대위원(대변인 겸임)과 박미진 비대위원을 제외하면, 당초 이랜드 일반노조를 전략공천명부에 진지하게 고민한 비대위원은 없었다는 게 비대위 안팎의 증언이다. 면접이 시작되기 전, 비정규직에 할당된 비례대표 2번으로 홍희덕 위원장을 점찍었던 비대위원은 일곱명의 비대위원 가운데 다섯명이었다. 그런데, 면접이 진행되면서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사실, 홍희덕 위원장이든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이든 민주노동당의 ‘싸우는 의원단’으로 부족함이 없다. 한 비대위원이 이 두 후보를 모두 전략공천 하자는 제안까지 했을 정도다. 결국, 선택은 ‘정파적’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를 분식하기 위해서는 ‘로직(논리)’이 필요했다.

이날 민주노동당 혁신비대위에서 일부 비대위원들은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이 비례대표 2번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으로 다음의 사항들을 지적했다. △한 단위노조의 투쟁이라는 점 △하강국면에 접어든 투쟁이라는 점 △과도한 투쟁에 대해 국민 정서가 좋지 않다는 점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이 비정규직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 △특히, 이 수석부위원장이 대통령후보 당내 경선 때 심상정 후보를 지지했다는 점 등이다. 이것은 ‘떨어뜨리려는’ 논리였지, ‘붙이기 위한’ 논리는 아니었다.

반박이 이어졌다. △현재 비정규 투쟁의 상징이라는 점 △국민 정서를 염려하지만 대중투쟁 가운데서도 층위를 두어 당이 확실히 나서야 하는 투쟁은 끝까지 지지해야 한다는 점 △이랜드 일반노조만이 아니라 비정규운동 전체를 아우를 수 있다는 점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이 심상정 후보를 지지한 것은 분당 이전의 상황이라는 점 등이 고려돼야 한다는 게 그것이었다. 의견은 모아지지 않았고, 표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한 비대위원은 ‘홍희덕 위원장이 2번이 되지 않으면 사퇴하겠다’는 카드까지 꺼냈다.

다음날인 3월 2일은 일요일이었다. 민주노동당 혁신비대위는 비례대표 2번에 홍희덕 위원장을 ‘전략공천’ 했다. 그러나 이 소식은 당일 저녁 10시까지도 일반 당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당초 혁신비대위는 3월 2일까지 전략명부 공천을 끝내겠다고 말해 왔다).


‘배신’은 꼬리를 물고

3월 3일 오전,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후보 전략공천자 명단이 공개됐다. 하루가 지난 뒤 이랜드 일반노조의 조합원 총회가 열렸다. 총회에 앞서 만난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은 허탈한 표정이었다. “민주노동당이 우리 이랜드 일반노조를 선택해 달라고 확실하게 밝혔고, 만약 되지 않을 경우에 우리 조합원들이 받을 상처까지 헤아려서 판단해 주시라고까지 호소했는데…. 어쨌든 민주노동당에 할 만큼은 했다.” 옆에 있던 한 조합 간부는 얼마나 답답했던지 “비대위가 ‘국민파’ 밀어준 거죠?”라며, 아무런 ‘빽’도 없는 기자에게까지 물었다. 이 하소연에는 ‘우리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이 ‘좌파’라서 안 된 거죠?’라는 물음도 포함돼 있다. 물론 ‘정답’은 없다.

그러나 ‘심증’은 있다. 민주노동당 혁신비대위는 전략공천명부 확정을 위해 진행한 회의의 회의록을 만들지 않았다. 비대위의 다수가 ‘국민파’라서 ‘국민파로 분류되는’ 홍희덕 위원장을 ‘낙점’했다는 당 안팎의 문제제기가 옳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하려면, 비대위는 ‘물증’을 남겨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만 자신들의 ‘정치적 판단’을 믿어달라고 당원들에게 주문했을 뿐이다. 그것에 대한 답이 비례대표 후보 찬반투표의 투표율이다. 그것은 비단 ‘국민파’에 대한 호불호 문제만은 아니었다. 특히 수도권지역 당원들의 반발이 거셌다. 지난 9개월 동안 이랜드 일반노조 조합원들과 ‘함께 싸운’ 사이였던 그들에게, 이남신 예비후보의 탈락은 일종의 ‘배신’이었다.

‘배신’은 꼬리를 물게 되어 있다. 애초부터 이랜드 일반노조는 민주노동당이든 진보신당이든 ‘당선 가능성이 높은 번호를 준다면’ 어느 곳이든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김경욱 위원장은 민주노동당 혁신비대위와 면접 자리에서 3월 4일 조합원 총회에서 찬성이 나올 것을 담보할 수 없다고 밝힌 터였다. 그리고 이것이 혁신비대위측이 밝힌 이남신 예비후보 낙천의 가장 현실적인 이유였다. 과연, 혁신비대위의 예상은 적중했다. 이랜드 일반노조는 진보신당의 문을 두드렸다.


조합원들이 가장 괴롭다

조합원들은 거침이 없었다. 황은영 분회장은 “당연히 민주노동당이 비례대표 2번을 줄 줄 알았다”면서, “민주노동당이든 민주노총이든 그동안 우리더러 비정규운동의 선두주자라고 했고, 또 국민들의 관심도 많이 받았으니까요”라고,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월드컵점의 한 조합원은 “욕심은 없다”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우리(월드컵점) 투쟁지원 해주던 마포구, 서대문구, 은평구 위원장이 다 탈당했고, 우리도 비례대표 떨어지고, 그럼 민주노동당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이 서운한 감정은 아직 상처도 아니다. 민주노동당 비례대표에서 낙천하고, 진보신당으로 가면서 앞으로 발생할 수많은 일들에 비하면….

3월 4일 이랜드 일반노조의 총회가 열렸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의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 찬반투표가 예상됐던 이 총회가, 진보신당을 염두에 둔 비례대표 후보 전술 찬반투표 자리가 됐다. 회사에 파업 조합원을 더 이상 빼앗길 수 없다며 ‘최후의 한 방’으로 총선 비례대표후보 전술을 제안한 김경욱 위원장은 ‘진보신당행’에 거리낌이 없었다. 오히려 노심초사 한 사람은 비례대표후보 당사자인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이었다. “조직의 결정에 따르겠지만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진보신당으로 비례대표 후보를 내는 것은 지도부나 조합원이 예측하는 이상으로 후폭풍이 따를 것”이라며, 조합원들에게 “정말 신중하게 결정해 달라”고 호소하는 그의 얼굴은, 3월 1일 민주노동당 혁신비대위와 면접 자리 때만큼이나 일그러져 있었다.

이날 당산동 소재 영등포 산업선교회에서 열린 총회에 직접 나온 수도권 조합원은 96명. 하루 전날 총회를 각 지역에서 열었던 울산과 순천(발표는 수도권 조합원의 투표가 끝난 뒤)의 조합원은 각각 24명과 19명으로, 모두 139명의 조합원이 투표에 참가했다. 결과는 찬성 83표, 반대 47표, 기권 9표. 지난 29일 총회 때 조합원들은 총선 비례대표후보 전술을 총회 안건으로 올리는데 90% 이상이 찬성했다. 그만큼 조합원들은 괴로웠다. 임희석 조합원(안양 홈에버)은 “29일 총회 때는 찬성했지만 이번에는 기권했다”며, “이후 몰아칠 후폭풍이 걱정이 되어서”라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날 총회에서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삐쳐서 앞으로 도와주지 않을 것 아니냐”는 조합원들의 걱정이 꽤 나왔다. 그때마다 김경욱 위원장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그럴 리 없다”고 조합원들을 다독였다.


너무나 일찍 꺼진 이랜드‘신화’

하지만 상황은 이들의 바람과는 무관하게 움직인다. 민주노총은 분당 사태가 현실화되자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을 더 강화하고 있다. 총연맹과 이랜드 일반노조의 상급단체인 서비스연맹은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이 진보신당의 비례대표후보가 되는 게 “조직적 지침에 맞지 않다”면서 철회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이랜드 일반노조는 3월 9일 일요일, 긴급 조합원총회를 열어 총선 비례대표후보 전술 ‘폐기’ 안건을 놓고 또 다시 찬반투표를 해야 했다. 조합원 74명이 참석한 가운데 ‘폐기’에 찬성하는 조합원은 26명, 반대하는 조합원은 39명, 기권이 9명이었다.

세 번에 걸친 총회. 90% 찬성에서 간신히 과반을 넘기는 상황까지 왔다. 총회를 거듭할수록 참석 조합원들의 수는 줄어들고, 반대와 기권 표가 늘어났다. 그런데 오히려 찬성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더 거세지고 높아진다. “우리가 한다는 데 왜 말리는 거야?” 3월 4일 총회 때만 해도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우리를 배신자로 보지 않을까”라며 걱정하던 조합원들이 9일 긴급총회에서는 “(우리가 조직적 지침을 어겼다고 하더라도)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우리를 도와주어야 한다”로 바뀌었다. 분당으로 민주노동당의 총선 지지율이 떨어질까 염려하던 조합원들이 “우리가 분당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분당은 자기네들이 해놓고…”라는 정도로 격해졌다.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이 민주노동당 비대위원들에게 언급했던 “우리 조합원들이 받을 상처”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역경으로 세상에 대한 동정심과 연대가 깊어지는 게 아니라, 거꾸로 복수심으로 상처가 패이고 감정의 골이 갈라지는….

이랜드 일반노조의 비례대표후보 전술은 과연 무엇을 남긴 것일까. 결과적으로 볼 때, 이랜드 일반노조의 선택은 민주노동당의 어떤 측면(성향)을 폭로한 셈이 됐다. 마찬가지로 이 선택은 이랜드 일반노조 지도부의 어떤 측면(성향)을 드러낸 꼴이 됐다. 진보신당은 이 와중에서 이삭을 주웠을 뿐이다(진보신당은 이랜드 일반노조의 ‘민주노동당행’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한 바 없다). 이 과정에서 지난 9개월에 걸쳐 힘없는 노동자들의 말없는 성원을 받았던 헌신적인 대중투쟁의 좌표는 사라져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하나. 김경욱 위원장의 ‘당선 가능성이 있는 국회의원 후보를 냈으니 딱 두 달만 기다려 보자’는 공언대로 총선 기간 동안 회사에 조합원을 더 이상 빼앗기지 않는 일이다. 다행히 이남신 후보가 당선이 된다면 ‘총선 기간’은 ‘임기 동안’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이남신 후보가 당선이 되지 않는다면? 그렇더라도 ‘총선 기간’ 동안 조합원들이 노조를 떠나지 않으면 이 전술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을까.

어찌 됐든 확실한 것은 이것이다. 이랜드 일반노조의 선택은 절박했지만 (진보신당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후폭풍’을 예상치 못했다. 민주노동당의 선택은 (이랜드 일반노조가 진보신당으로 갈 수도 있다는) ‘후폭풍’은 예상했지만, 절박하지는 않았다. 이랜드 일반노조의 ‘신화’, 그것은 너무나 빨리 꺼져버렸다.(끝)

///////////////////////////////////////////////////////////////


이번 주 토요일, 4월 19일은 이랜드 투쟁 300일이다.

집중 투쟁, 문화제가 상암에서 열린다. 하지만 비대위 지도부는 일요일 놔두고서 굳이 이 날로 중앙위를 잡았다. 덕분에 '진보'신당 깃발과 발언자를 보며 지도부도 없이, 당선자도 없이 당원들만 민망하게 자리를 지켜야 하게 생겼다.

총선 후 일주일이 지났다.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당선자, 비대위 지도부 누구 한 사람도 이랜드 조합원의 투쟁 현장에 얼굴을 보이지 않고 있다. 코스콤도 가고 전북AI 현장에도 달려갔는데 말이다.

괘씸해서 안가는가, 쪽팔려서 못가는가.

전략공천 과정에 대한 제대로된 평가 한 줄 없이 혁신재창당을 말하는 것은 기만이다.

분파주의 청산이요 패권주의 일소요, 앞에서는 공자님 말씀하면서
당원들 안보는 데에서는 호박씨까는 것이 혁신재창당인가.

진보정당다운 운영원리로 끌고 가는게 혁신이다.
당원이 당의 주체로 되는 과정이 재창당이다.

중앙위에서 혁신재창당 활동보고하려거든
비대위는 전략공천 과정에 대한 자기 평가부터
당원 앞에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사퇴 협박을 불사한 익명의 비대위원.
당시 얼마나 정치적 고뇌가 크셨겠는가.
오죽하면 살신성인의 사퇴카드를 던지셨겠나.
대체 어떠한 총선전략에 입각한 어떠한 후보전술이셨는지
꼭 알려달라. 정말 궁금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