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30분 투자로 자격증 물론 대학졸업장까지현금필요없다! 엄친딸 이인혜의 영어비법보험중에 으뜸 실비보험, 늦기 전에 가입하자가입자가 몰린다. 실비보험 인기몰이.. 뉴스홈 > 사회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싸이월드 공감구글파견법보다 독한 파견노동자 '주봉희' [인터뷰] 계란으로 바위 깬 방송비정규노조 위원장 기자 ㅣ 입력 2006-06-30 21:11:17 / 수정 2006-07-01 12:30:01 노동운동판에서 주봉희를 모르면, 그는 '가짜'거나 '초짜'다. 주봉희는 어느 노동운동단체의 명망가나 끝발있는 대공장 노조 위원장의 이름이 아니다. 그는 아마도 머리에 파견철폐라는 붉은 글씨를 새기고 다녔던 파견노동자, 파견법보다 더 독하게 싸워서 결국 현장으로 돌아간 노동자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2000년 6월 해고자가 된 그는 '대가리를 박고 싸워서' 결국 4년 1개월만에 현장을 되찾았다. 알고보면 2차 하청이였지만, 그의 싸움을 지켜 본 이들에게 주씨의 복직은 어느 정규직화 투쟁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니들도 비정규직으로 살아봐라' 파견법이 시행된 98년 이전에도, 파견직이 없었던 건 아니다. 주봉희 위원장은 해고 당시 6년이 넘게 KBS에 근무해 왔는데, 다만 간간히 파견업체만 바뀔 뿐이었다. 98년 7월 1일, 파견제가 합법화됐다. 달라진 점은 파견이 점차 늘어났다는 점이고, 2년마다 해고가 발생한다는 사실 정도다. 연차를 거듭할수록 7-8배까지 차이가 나는 임금에 대해 KBS 파견직 노동자들은 숙명처럼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보다 피부로 느껴지는 차별은 다른데 있었다. "정규직 기사들 대기실이 따로 있고 파견 대기실이 따로 있는데, 정규직 대기실은 개인 탁지라든가 의자, 옷장, TV도 칼라로 세대씩 있었지. 냉장고 공기청정기 에어콘 빵빵하고." \"시골에 보면 그거 벼 날리는 선풍기 있잖어. 이따만한 거. 왱왱 방아찍는 소리나는 그 거\" ⓒ민중의소리 김철수 ⓒ민중의소리 김철수 "우리방은 50평에 54명이 바글바글했는데, 17인치 흑백 로타리 TV에, 시골에 보면 그거 벼 날리는 선풍기 있잖어. 이따만한 거 왱왱 방아찍는 소리나는 그 거 틀어놓고 있고. 의자는 옛날 극장식 의자에 앉아있다가 마이크로 부르면 나가곤 했는데. 우리는 채널도 MBC KBS SBS만 고정돼 있었는데. 한번은 박찬호가 경기를 하는데 못보는 거야. 정규직들 방에 몰래 보다가 걸리면 '야 용역' '야 렌트카' '나가 시키야' 물 먹다 걸려도 '니네 방에서 사먹어 시키야' " 그래서 파견직들은 한달에 2천원씩 돈을 걷어서 물을 사먹었다고 한다. "아까워서, 돈이 없으니까, 파견 노동자들끼리도 물을 먹는 것만 허용하기로 하고, 떠 가지는 못하게 했지" 출장 중에 정규직 노동자를 추월이라도 하면 도착지에서 불려다녀야 했다. 정규직한테 아침에 인사를 안 하고 고개를 돌리거나, 고분고분 하지 않아도 불러다녔다. 이튿날 동료가 보이지 않으면 으례히 교체된 걸로 여겼다. 파견 노동자들이 당시에 제일 무서웠던 건 사용자도 파견업체도 아니라 가까이 있는 정규직이었다. IMF 이후 정규직에 대한 강제 명예퇴직이 실시됐고, 그 자리를 파견 노동자들이 채웠다. 99년 KBS는 정규직 노동자 3백명을 정리해고 했는데, 파견 노동자들의 속이 후련했을 법도 하다. '니들도 비정규직으로 살아봐라' "파견으로 다시 온 사람들이 있었고. 그 당시에 울화통 터지게 얘기했지. 당신들 정규직으로 있을 때 얼마나 설움을 줬냐. 생각나냐." 짝수해, 파견노동자의 시련 지금도 그렇지만, 파견노동자에게 짝수 해는 시련이었다. 파견법이 시행되고 만 2년을 앞둔 2000년 6월, 운전직·카메라 보조·오디오맨·웹디자인 등 방송사 파견노동자들에게도 계약해지가 들이닥쳤다. SBS 437명을 시작으로 MBC 160명, KBS에서도 227명이 해고됐다. 전체적으로는 5천명 가량의 파견노동자가 그 해 계약해지된 걸로 추정된다. 6년 넘게 근무한 주씨를 비롯해, 파견노동자들은 5년에서 길게는 15년까지 KBS에서 일해 왔었다. '이렇게 오래 있었는데, 자르진 않겠지'라는 믿음은 여지없이 깨졌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민중의소리 김철수 " KBS는 '우리는 꼭 쓰고 싶다. 그런데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니 2년 후에 다시 오면 써주겠다. 파견법을 원망해라' 그랬어. 우리는 법을 몰랐는데, 아 파견법이 2년에 한번 쓰고 버리는 건가 보다 그때 알았지." KBS 운전직은 씨랜드 참사 당시, 현장을 촬영한 필름을 입수하고 삼풍백화점 붕괴 때도 인도를 타고 가서 특종을 만드는 등 뉴스보도에 큰 공을 세워왔다 실상 성수대교, 인천호프집 화재, 연천댐 붕괴 등 모든 특종은 운전직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한다. 처음 모인 파견노동자들은 운전직이었다. "그렇게 일했는데도 우리는 칭찬 한번 못받고. 전부 해고된 거지. 처음엔 딱 열명을 만들었어. 그런데 모인 친구들이 안할라 그래. '나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노조를 만들어야 못 받은 연월차라도 받는다고 설득을 했어. 나도 이렇게 까지 올 줄 몰랐지. 골탕이나 먹이고 가자. 10년을 있었는데 KBS가 책임지는 게 뭐냐." 방송사비정규노조, 화장실을 접수하다 '비정규'라는 이름을 넣고 노조를 만든 건 이들이 처음이었다. 난데없이 한글학회에서 전화가 오기도 했단다. '한글을 똑바로 알자. 국어 사전에 비정규 노동자라는 건 없다. 불안정 노동자로 고쳐야 한다' 주봉희 위원장은 '군대도 정규군이 있고, 빨치산 같은 비정규군이 있지 않냐"며 이 이름을 고집했다고 한다. 주봉희 위원장도 처음부터 조합원 없이 싸운 건 아니다. 초기 400가까운 조합원은, 경찰특공대가 롯데호텔노조를 '작살'냈던 6월 29일에 방송사비정규직노조도 야간에 '습격'을 받고 27명으로 줄었다. 남은 이들은 투쟁을 할래도, 사무실도 투쟁기금도 없었다. 해고자들에겐 당장 깃발 하나를 살래도 '돈'이었다. 현장에 있을 때도 기본급 72만 5천원에, 식대 5만원. 시간외 근무만 100시간을 해야 겨우 100만원을 채웠던 인생들이었다. "여의도에서 15일을 보냈지. 회의하러가자 하면 여의도야. 그 땐 나무도 없고 그늘도 없어서. '형님 마포대교 갑시다'하면 거기 가서 회의하고 일정 짜는 거야. 2시에 대학로에 롯데호텔 집회 갔다가, 이랜드 집회 갔다가 저녁엔 다시 서강대교 밑으로 와서 막걸리 한잔 하고." 한번은 비가 '억쑤로' 쏟아진 날, KBS로 들어가려다가 여의치가 않자 여의도 공원 남자 화장실을 접수하게 됐다. "거기서 전략회의 했어. 우리는 아주 판이 이상해.. 조합원 꿔서 집회하고, 화장실에서 생쥐같이 비맞고 냄새나는데 회의하고 그랬어" 조합원도 없는 노조위원장 ⓒ민중의소리 김철수 ⓒ민중의소리 김철수 구차하고 승산없게 보이는, 비정규직의 싸움. 조합원들은 하나둘 떠나게 되고 결국 두달 후엔 주씨와 송진수(가명) 총무국장 이렇게 둘만 남게 된다. "나중엔 미안하더라고. 9월 15일인가 비가 무지 많이 왔는데. 롯데호텔 투쟁에서 '너 들어가라. 벌어야 하지 않냐' 그 놈이 딸만 둘인데 내가 깃대를 뺐었지. '보고 싶으면 핸드폰으로 전화해라' 비 쫄딱 맞고 막걸리 한잔 하고 울고 갔지. 삼각지까지 걸어가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고 거기서 헤어졌어. '형도 좀 있으면 들어갈 거다' " 당시를 떠올리는 듯 주씨의 눈 언저리가 발갛다. "그 동지 가고 나 혼자 딱 남았잔아. 허망하더라구. 아무도 없는거야." 조합원도, 사무실도, 당장의 차비도 없었던 주씨는 굶기를 밥먹듯 했고 잠자리조차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김종철이 당시 부대변인이었어. 그 친구가 파견철폐공대위 집행위장이던 윤애림 동지 선배야. 애림이가 연락을 해서 당 회의실 하나 줄 수 없겠냐고 해서 책상을 들어내고 그렇게 시작했지" 잠자리가 해결되도 배가 고픈 건 여전했다. 한창 더운 여름에 해고된 터라, 먹는 것도 시원찮은데 '꼭 나같은 비정규직의 피를 빨아먹는' 모기가 그는 그렇게 미웠다고 한다. "오늘은 어떻게 밥을 먹나. 집회가서 동지들 따라가는데. 그 동지 못쫓아가면 밥 못먹는 거고. 지하철도 많이 몰래타고. 어떻해. 집회는 가야하고. 조끼 입고 쪽팔리기는 하는데" 2000년 12월까지 민주노동당에서 더부살이를 하면서 이랜드, 한통계약직노조와 식구처럼 지내던 주 위원장은 겨울에 용두동에 있던 민주노총 서울본부를 '접수'했다. 2001년에는 굶지 않으려고 50을 바라보는 그가 명동성당 농성장 사수대를 자원했다. 당시 명동성당에는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차봉천 초대 공무원노조 위원장 등이 수배상태로 농성중이었다. '싸워야지, 여기오면 어떻하냐'는 단 위원장의 질문에 주씨는 '여기와서 싸우면 되요'라고 했지만 실은 '밥 세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명동성당에서 자고 새벽같이 마이크 차를 끌고 나와서 혼자 집회를 했다. 레미콘 노조원들을 꿔서 집회를 하다 혼자 남은 주씨에게는 사실상 '연대'가 없는 희망이란 없었을게다. 복직하던 날, 그가 떠올린 얼굴들은 그래서 참으로 많을 수 밖에 없었다. 2001년 여의도를 접수했던 레미콘 노동자들은 기꺼이 주봉희 위원장의 조합원이 되어주었다. 주봉희 위원장의 표현을 빌자면 그는 "사람 참 좋은 장문기 위원장에게 조합원을 꿔서" 집회를 했다. 경찰의 '도끼진압'으로도 유명한 레미콘 노동자들은, 그래서 경찰서에 끌려갈 때면 "왜 KBS 앞에 가서 그러느냐"는 질문을 받게 됐다. "하루도 안빼고 여의도에 갔는데. 내가 특이하잖아. 대가리에 파견철폐를 쓰고 다니니. 금방 알아보는 거야. 나는 돈이 없으니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얻어먹는 거지. 조합원 꿔다가 아침 집회 한 놈은 나밖에 없을 거야. 아침에 방송차 끌고가면 조별로 쭈욱 밥먹고 있어 그럼 '조합원 좀 꿔조' 그러면 KBS까지 쌀자루 뒤집어 쓰고 밥그릇 뚜들기면서 와.. 50명이고 200명이고 거의 한달을 꿔다 썼네." 한국은 월드컵 열풍이 불면서 바디페이팅도 붐이 일었지만, 주 위원장은 이미 바디페인팅엔 전문가였다. 머리에 '파견철폐'라는 붉은 글씨를 쓴 주봉희 위원장이 집회장에 없으면, 사람들이 궁금해 할 정도였다. 주씨는 머리카락은 0.7cm 정도가 가장 글씨가 뚜렷하게 나온다고 설명한다. 더 길어지면 글씨가 드러눕게 되어 '파견'이 '파전'이 된다고. "한달 되면 깎아야 하는데.. 돈이 있어야지. 그래도 돈 생기면 밥은 굶어도 이거부터 했어. 사실 파견법 철폐라는 프랑카드, 구호하나 먼저 걸어주는 데가 없었지. 노동계에서도. 2003년에 경제특구법에 파견이 들어갔을 때 넣기 시작했지.. " 박상윤, 김주익, 배달호, 이용석, 정종태.. 주봉희 위원장은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다. 특히 주씨에겐 고 박상윤 서울본부 사무처장이 가장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아픔일 것이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민중의소리 김철수 "상윤이가 굉장히 애썼지. 상윤이가 살아 있을 때, 서울본부에서 주사모(주봉희를 사랑하는 모임)라는 걸 만들었어. 서울본부 대의원들하고 당시 한 삼심명 모집해서 CMS로 한달에 25만원에서 30만원씩. 집회 나갈 때 차비하고 밥먹으라고." "숙소가 서울본부 였는데, 3층이 내 방이야. 돈이 없어서 아침에 라면 반쪽에 고추장 풀어서 끓여먹고 책상위에 놓으면, 저녁에 와보면 박상윤, 여성호가 다 끓여먹고 없는거야. 어쩔 때 보면 스프 흔들어서 아작아작 먹고 있어. 내가 뭐라 했지." 고 박상윤 사무처장은 노동절은 있어도 생일은 몰랐던 주봉희 위원장에게, 새벽같이 몰래 끓여놓은 미역국과 초코파이를 챙겨 주기도 했다. '아침부터 소주 한잔 했던 생각 나네.' 그는 정말 무지하게 울었다. 주봉희 위원장은 '그래도 민주노조운동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 그런 활동가들, 내 숨을 던진 활동가들'이라고 믿는다. "김주익 동지는 손이 이 만해. 키도 크고. 2002년 8월에 부산에 갔더니 '위원장님 파견철폐 왜 지웠어요' '아. 머리가 빠져서' 다음달에 다시 쓸 거라고. 그게 마지막이었지. 2001년 배달호 열사부터 시작해서 당시엔 참 울다가 지쳤어. 이용석 동지는 하필 내 옆에서 분신했어.. 불이 확 올라오더라구. 몇 십초 순간이야. 내가 멎었어. 심장도 멈추고, 머리도 뭘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나. 피켓을 막 뽑아서 불을 끄고 난 다음에는 화기를 다 먹었어. 그 동지 그렇게 보내고 이듬해 복직되고 나니 이용석 열사가 돌아가셨잖아. 기가 막히더라구. 그렇게 아들 아들 하더니 서른 살 나이에.." 주봉희 위원장은 '이용석 동지는 전태일의 혼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말한다. 주씨가 걸어 온 길에는 그렇게 '힘에 겨워 굴리다 못 다 굴린' 덩이를 맡은 이들이 많았다. "정종태 동지도 잊을 수가 없지. 그 동지한테는 참 미안해. 내가 참 구박 많이 했어. 이문동 옥탑방에 살았는데 여름엔 30도 겨울엔 영하 20도. 요만한 이불 하나에 치약 치솔 밖에 없었다니까. 지가 입던 옷하고. 걔도 나만큼이나 굶었어. 저녁에는 결국 장충단 공원에 올라가서 소주. '너 조직 관리 그렇게 못하냐' 내가 많이 혼내고. 내 생각엔 4천 대오 있을 때를 일깨워 주려고 했는데. 밥이라도 제대로 먹고 건강관리 했다면 더 살았을텐데." 계란으로 바윗돌을 쳐서 이겼지. 다 할 수 있다고 주봉희 위원장은,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한때 '도망'쳤었다. "2002년이 제일 힘들었던 때인데. 한통계약직 깃발 내리고 나서. KBS, MBC 다 무너지고. 나도 이제 여기서 끝내자. 그만 하고 내려가야겠다. 연세대에서 같이 보따리를 쌌어. 한통 동지들이랑 같이 울고 그 길로 온양으로 내려간거야. 농사를 짓든 다른 진로를.." 주씨는 그러나 깃발을 내리지 못했다. 그를 붙잡은 것은 고 박상윤 사무처장과 같은 그런 '동지'들이었다. "누나네서 한달 반 정도 있다가 핸드폰을 꺼놨었는데, 받지 말았어야 하는데, 파견법 시행 5년이라고 철폐연대 서울본부 민변에서 뭘 하는데 발언해 달라고. 그게 계기가 되서 김혜진 동지나 이런 동지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죽기야 하겠냐' 여성호 박상윤도 '아 형님 도망갔다'고 난리를 피워서 2002년 말까지만 간다고 했는데 거기서 붙잡힌 거지." 47살에 해고된 주봉희 위원장은 결국 52살에 복직했다. 다른 게 있다면 그가 운전직이 아닌 사무직으로 배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주씨는 이제 실제 조합원들이 있는 방송사비정규직노조의 위원장이라는 점이다. "당시에 어떤 사람들은 계란으로 바윗돌치기라고 그랬지. 내가 계란으로 바윗돌을 쳐서 이겼지. 다 이길 수 있다고. 당신들 어차피 우리같은 사람 필요한 거 아니냐는 거지." ⓒ민중의소리 김철수 ⓒ민중의소리 김철수"에 해당되는 글 112건

  1. 2006/09/05 CBS FM 뉴스야놀자 인터뷰 기사
  2. 2006/08/01 보직해임 즉각 철회하라
  3. 2006/07/14 오늘의 총파업은 경고 한번 하는것
  4. 2006/07/06 방송사 파견노동자 수천명 우리 어떡해'
  5. 2006/07/03 파견법보다 독한 파견노동자 주봉희
  6. 2006/06/29 파견근로 보호법은 파견해고 위한 법"
  7. 2006/06/28 파견법 시행 8년 무엇을 남겼나
  8. 2006/05/12 KTX.여승무원 전원 연행
  9. 2006/04/13 6가지 거짓말로 보는 비정규법안
  10. 2006/04/12 2003년3월14일 아~~이런날들이 맨날 맨날 있엇으면?

CBS FM 뉴스야놀자 인터뷰 기사

2006/09/05 13:27

인터뷰 기사
 
   
 [제목] : 9/5(화) ‘파파쿼터제’ 비정규직은 제외.. “비정규직은 아빠도 아닌가”
번 호 174 글쓴이 뉴스야놀자(뉴스야) 날 짜 2006-09-05 오후 1: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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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파쿼터제’ 비정규직은 제외.. “비정규직은 아빠도 아닌가”

남성에게 육아휴직 한달을 100% 급여로 의무적으로 보장하는 ‘파파쿼터제’ 입법 추진이 관심을 모으는 가운데, 비정규직은 이 법안에서 제외된 것을 두고 논란이 일 조짐이다.

CBS 라디오 ‘뉴스야 놀자’ 제작진이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 입법을 추진 중인 열린우리당 김형주 의원에게 알아본 결과, 이 법안은 정규직만을 대상으로 한 것임이 확인됐다.

이를 두고, 비정규직 남성 주봉희씨는 9월 5일 CBS 라디오 ‘뉴스야 놀자’(진행 : 개그맨 노정렬, 낮 12시5분-1시30분)와의 인터뷰에서 “비정규직 남성들은 아빠도 아닌가”라며 “남성 육아휴직 한달 보장이 저출산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지만, 그나마도 전체 노동자의 40%에 그치는 정규직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니, 같은 남성으로서 참담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육아와 교육비 고통이 큰 비정규직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텐데, 도리어 비정규직 차별을 늘려가고, 소외감을 키운다면, 이게 대책이 될 수 있는가”라며 “정규직 남성과 여성에게 어느 정도 출산 동기부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비정규직의 출산 동기가 떨어질 것은 분명한 일”이라고 지적한 뒤 “없느니만 못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일단 현실적으로 정규직을 대상으로 입법화한 뒤에, 그 범위를 넓혀가는 것은 장기과제로 추진할 수 있다”는 김형주 의원측 입장에 대해. 주씨는 이라며 “정규직이 받고 있는 4대 보험 혜택도 비정규직 다수에게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 정규직의 ‘파파쿼터제’는 오죽하겠나”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안 그래도 사교육 때문에, 부모의 신분과 소득이 자녀에게 대물림되고 있다는 사실로, 비정규직 남성들이 초조해 하고 있다”며 “그런데 사교육은커녕, 당장 막 태어난 아기에게 쏟아야 할 사랑마저, 육아휴직을 받는 정규직과 그렇지 못한 비정규직 남성 사이에 차이가 난다면, 대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라고 토로했다.

그리고“솔직히 비정규직은 남자 이전에 여자들조차 육아휴직이 제대로 보장이 안 돼 있는 게 현실”이라며“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출산은 곧 퇴직'인 현실부터 고쳐갈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저출산 문제를 정말 해결하기 위해서는, 본령에서 벗어난 반짝 대책이 아니라, 늘어가는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과 육아 부담 문제 해결에 먼저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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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직해임 즉각 철회하라

2006/08/01 18:08

주봉희 위원장 보직해임 즉각 철회하라


(주)방송차량서비스(사장 박성희)가 27일 주봉희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사비정규지부 위원장의 본사 차량관리장 보직을 해임하는 등 노조 탄압이 극에 달하고 있다. 사측은 위원장을 사퇴하지 않으면 보직 해임하겠다는 협박성 공문을 보낸 지 불과 3일만에 합리적인 이유와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보직을 해임했다.


  방송사비정규지부 KBS분회(분회장 박철수)는 노조위원장의 보직 해임은 부당노동행위임을 경고했지만, 사측은 주 위원장에게 ‘보직해임’이라는 칼을 휘둘렀다.


이 같은 만행은 노사가 자율적으로 맺은 단체협약(05.7.27 체결)을 위반하고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단협 제10조 ‘조합원의 노동조합활동을 이유로 불이익 처분 하지 아니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사측은 일방적으로 주 위원장의 노조 활동을 문제 삼아 보직 해임했다. 또 제21조 ‘회사는 조합원 인사에 있어 조합원임을 이유로 차별 대우 하지 않는다’는 규정도 위반한 것으로 누가 보더라도 노조법 제81조 (부당노동행위금지)를 어긴 것이다.


우리는 이번 사태로 회사의 반노동조합적이고 비인간적인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는 방송사비정규지부에 대한 전면적인 전쟁 선포와 같다. 우리는 방송사비정규지부와 KBS분회를 탄압하고 와해하려는 의도에 맞서 전국252명 조합원의 사활을 걸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결사 항전할 것을 선포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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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총파업은 경고 한번 하는것

2006/07/14 15:32
특별취재팀 
한미FTA 저지를 위한 언론노동자 총파업 결의대회가 4시 30분 이후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상징의식과 선언문 낭독으로 언론노조 조합원들의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상징의식은 한미FTA 협상단의 협상테이블을 부수는 동시에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한미FTA를 저지하겠다는 투쟁의지를 담은 종이비행기 날리기로 마무리되었다.

이후 2000여명의 조합원들은 국회까지 행진을 벌였고, 국민은행 앞에서 현덕수 YTN지부 위원장이 ‘국회의원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낭독으로 통상절차법 제정 등을 촉구했다.

안동운 조직쟁의실장은 '참세상'과의 인터뷰에서 “오늘의 총파업은 한 번의 경고에 불과한 것”이라며 “방송과 신문이 멈출 수도 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보여가며 한미FTA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앞으로의 투쟁 방향을 밝혔다.

주봉희 KBS본부 비정규직노조 위원장 인터뷰
오늘 총파업 어떠했나?

한미FTA는 정규직, 비정규직을 막론하고 고용불안과 생존권 박탈을 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초반 언론노동자들은 한미FTA가 언론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랐던 것도 사실이다. 최근 조직적인 교육과 한미FTA에 반대하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언론노동자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비정규직이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의 시각이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노조는 앞으로도 한미FTA 뿐만아니라 근로기준법, 노동조항관계조정법까지 정규직노조와 함께 하며 투쟁을 전개할 것이고, 한미FTA가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KBS 비정규직은 어느 정도 규모이고, 타 사업장 등 상황은 어떤가?

총 1만 여명의 비정규직 언론노동자가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KBS의 경우, 약 2600명 중 360명이 조합원으로 가입되어 있는데, MBC나 SBS의 경우 일괄 도급화가 되면서 조직률이 현저히 감소한 것으로 알고 있다.
KBS의 경우, 지난 2000년, 2002년, 2004년까지 2년마다 해고통지를 받았는데, 올해는 KBS가 자회사를 만들어 파견을 면하고 해고도 면하게 되었다. 그나마 상황이 나은 것이다. 그렇더라도 MBC 400명, SBS 500명 등 지역민방은 여전히 비정규직 언론노동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아직 완전한 산별체제가 갖추어지지 않았는데, 앞으로 산별을 강화하면서 한조직에 모두 모아낼 수 있도록 투쟁해 나갈 것이다.

'죽음의 거래 한미FTA를 막아라' 상징의식이 진행되고 있다.

상징의식 중 미국과 한국의 협상단을 언론노동자가 막아서는 장면

한미FTA 저지를 위한 투쟁의지 희망 날리기-조합원들이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국회로 행진 시작

신학림 위원장 등 선두그룹이 행진을 하고 있다.

이날 조합원들의 분위기는 굿~

국회를 눈에 두고 조합원들은 국민은행 앞에서 경찰이 지정한 폴리스라인에서 멈췄다.

질서유지선 앞 언론노조 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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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파견노동자 수천명 우리 어떡해'

2006/07/06 17:25
방송사 파견노동자 수천명 ‘우리 어떡해’
7월 1일 파견법 시행 8년…“해고만 양산”
2006년 07월 05일 (수) 16:59:44 정은경 기자

지난 1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이 시행된 지 꼭 8년째를 맞았다.
파견법은 지난 98년 7월 1일부터 파견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시행됐으나 ‘파견된 지 2년이 지난 파견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간주한다’는 6조 3항 규정이 악용되면서 오히려 주기적 해고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전국언론노조는 지난달 29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촉구했다. ⓒ정은경 기자  
 
방송사비정규지부 주봉희 위원장은 “파견업체를 통해 사무보조를 비롯 자료조사요원, 카메라 보조, 오디오맨, 편집기사 인력을 파견 받은 방송사들은 이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기 위해 입사 일자를 철저하게 관리해 2년이 되기 전에 해고를 통보한다”고 전했다.

파견 노동자들이 해고된 자리에는 2년 뒤 해고가 예약된 파견직 노동자들로 또다시 채워지고 있다.
파견 노동자들은 고용불안과 함께 저임금에도 시달리고 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파견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임금의 25~50%를 파견업체에서 ‘수수료’ 명목으로 떼이기 때문에 실제 임금은 더 줄어든다.

전국언론노조 김성근 조직쟁의실장은 “더 큰 문제로 파견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견직의 경우 고용주는 파견업체이지만 사용 사업주는 이들을 파견 받은 방송사이기 때문에 어느 쪽과도 협상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김성근 실장은 “극단적으로 파업이라도 할 경우, 사용사업주가 파견업체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되면 경영상의 위기를 이유로 정리해고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파견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국언론노조(위원장 신학림·언론노조)는 지난달 29일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요구하는 집회에서 “비정규직 중 파견노동자만 KBS 600명, MBC 400명, SBS 400명이 넘은 지 오래”라고 밝혔다. 그나마 이 조차 정확한 집계는 아니다. 언론노조는 “EBS, YTN을 비롯한 대부분의 방송사와 신문 출판 업계도 예외 없이 그 수가 증가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언론노조는 “현재 입법예고돼 있는 ‘기간제등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비정규직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비정규직 확산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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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법보다 독한 파견노동자 주봉희

2006/07/03 09:53
파견법보다 독한 파견노동자 '주봉희'
[인터뷰] 계란으로 바위 깬 방송비정규노조 위원장
문형구 기자    메일보내기

  노동운동판에서 주봉희를 모르면, 그는 '가짜'거나 '초짜'다.
  
  주봉희는 어느 노동운동단체의 명망가나 끝발있는 대공장 노조 위원장의 이름이 아니다. 그는 아마도 머리에 파견철폐라는 붉은 글씨를 새기고 다녔던 파견노동자, 파견법보다 더 독하게 싸워서 결국 현장으로 돌아간 노동자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2000년 6월 해고자가 된 그는 '대가리를 박고 싸워서' 결국 4년 1개월만에 현장을 되찾았다. 알고보면 2차 하청이였지만, 그의 싸움을 지켜 본 이들에게 주씨의 복직은 어느 정규직화 투쟁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니들도 비정규직으로 살아봐라'
  
  파견법이 시행된 98년 이전에도, 파견직이 없었던 건 아니다. 주봉희 위원장은 해고 당시 6년이 넘게 KBS에 근무해 왔는데, 다만 간간히 파견업체만 바뀔 뿐이었다.
  
  98년 7월 1일, 파견제가 합법화됐다. 달라진 점은 파견이 점차 늘어났다는 점이고, 2년마다 해고가 발생한다는 사실 정도다.
  
  연차를 거듭할수록 7-8배까지 차이가 나는 임금에 대해 KBS 파견직 노동자들은 숙명처럼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보다 피부로 느껴지는 차별은 다른데 있었다.
  
  "정규직 기사들 대기실이 따로 있고 파견 대기실이 따로 있는데, 정규직 대기실은 개인 탁지라든가 의자, 옷장, TV도 칼라로 세대씩 있었지. 냉장고 공기청정기 에어콘 빵빵하고."
  
  

△"시골에 보면 그거 벼 날리는 선풍기 있잖어. 이따만한 거. 왱왱 방아찍는 소리나는 그 거" ⓒ민중의소리 김철수

  "우리방은 50평에 54명이 바글바글했는데, 17인치 흑백 로타리 TV에, 시골에 보면 그거 벼 날리는 선풍기 있잖어. 이따만한 거 왱왱 방아찍는 소리나는 그 거 틀어놓고 있고. 의자는 옛날 극장식 의자에 앉아있다가 마이크로 부르면 나가곤 했는데. 우리는 채널도 MBC KBS SBS만 고정돼 있었는데. 한번은 박찬호가 경기를 하는데 못보는 거야. 정규직들 방에 몰래 보다가 걸리면 '야 용역' '야 렌트카' '나가 시키야' 물 먹다 걸려도 '니네 방에서 사먹어 시키야' "
  
  그래서 파견직들은 한달에 2천원씩 돈을 걷어서 물을 사먹었다고 한다. "아까워서, 돈이 없으니까, 파견 노동자들끼리도 물을 먹는 것만 허용하기로 하고, 떠 가지는 못하게 했지"
  
  출장 중에 정규직 노동자를 추월이라도 하면 도착지에서 불려다녀야 했다. 정규직한테 아침에 인사를 안 하고 고개를 돌리거나, 고분고분 하지 않아도 불러다녔다. 이튿날 동료가 보이지 않으면 으례히 교체된 걸로 여겼다. 파견 노동자들이 당시에 제일 무서웠던 건 사용자도 파견업체도 아니라 가까이 있는 정규직이었다.
  
  IMF 이후 정규직에 대한 강제 명예퇴직이 실시됐고, 그 자리를 파견 노동자들이 채웠다. 99년 KBS는 정규직 노동자 3백명을 정리해고 했는데, 파견 노동자들의 속이 후련했을 법도 하다. '니들도 비정규직으로 살아봐라'
  
  "파견으로 다시 온 사람들이 있었고. 그 당시에 울화통 터지게 얘기했지. 당신들 정규직으로 있을 때 얼마나 설움을 줬냐. 생각나냐."
  
  짝수해, 파견노동자의 시련
  
  지금도 그렇지만, 파견노동자에게 짝수 해는 시련이었다.
  
  파견법이 시행되고 만 2년을 앞둔 2000년 6월, 운전직·카메라 보조·오디오맨·웹디자인 등 방송사 파견노동자들에게도 계약해지가 들이닥쳤다. SBS 437명을 시작으로 MBC 160명, KBS에서도 227명이 해고됐다. 전체적으로는 5천명 가량의 파견노동자가 그 해 계약해지된 걸로 추정된다.
  
  6년 넘게 근무한 주씨를 비롯해, 파견노동자들은 5년에서 길게는 15년까지 KBS에서 일해 왔었다. '이렇게 오래 있었는데, 자르진 않겠지'라는 믿음은 여지없이 깨졌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 KBS는 '우리는 꼭 쓰고 싶다. 그런데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니 2년 후에 다시 오면 써주겠다. 파견법을 원망해라' 그랬어. 우리는 법을 몰랐는데, 아 파견법이 2년에 한번 쓰고 버리는 건가 보다 그때 알았지."
  
  KBS 운전직은 씨랜드 참사 당시, 현장을 촬영한 필름을 입수하고 삼풍백화점 붕괴 때도 인도를 타고 가서 특종을 만드는 등 뉴스보도에 큰 공을 세워왔다 실상 성수대교, 인천호프집 화재, 연천댐 붕괴 등 모든 특종은 운전직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한다. 처음 모인 파견노동자들은 운전직이었다.
  
  "그렇게 일했는데도 우리는 칭찬 한번 못받고. 전부 해고된 거지. 처음엔 딱 열명을 만들었어. 그런데 모인 친구들이 안할라 그래. '나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노조를 만들어야 못 받은 연월차라도 받는다고 설득을 했어. 나도 이렇게 까지 올 줄 몰랐지. 골탕이나 먹이고 가자. 10년을 있었는데 KBS가 책임지는 게 뭐냐."
  
  방송사비정규노조, 화장실을 접수하다
  
  '비정규'라는 이름을 넣고 노조를 만든 건 이들이 처음이었다. 난데없이 한글학회에서 전화가 오기도 했단다. '한글을 똑바로 알자. 국어 사전에 비정규 노동자라는 건 없다. 불안정 노동자로 고쳐야 한다' 주봉희 위원장은 '군대도 정규군이 있고, 빨치산 같은 비정규군이 있지 않냐"며 이 이름을 고집했다고 한다.
  
  주봉희 위원장도 처음부터 조합원 없이 싸운 건 아니다. 초기 400가까운 조합원은, 경찰특공대가 롯데호텔노조를 '작살'냈던 6월 29일에 방송사비정규직노조도 야간에 '습격'을 받고 27명으로 줄었다.
  
  남은 이들은 투쟁을 할래도, 사무실도 투쟁기금도 없었다. 해고자들에겐 당장 깃발 하나를 살래도 '돈'이었다. 현장에 있을 때도 기본급 72만 5천원에, 식대 5만원. 시간외 근무만 100시간을 해야 겨우 100만원을 채웠던 인생들이었다.
  
  "여의도에서 15일을 보냈지. 회의하러가자 하면 여의도야. 그 땐 나무도 없고 그늘도 없어서. '형님 마포대교 갑시다'하면 거기 가서 회의하고 일정 짜는 거야. 2시에 대학로에 롯데호텔 집회 갔다가, 이랜드 집회 갔다가 저녁엔 다시 서강대교 밑으로 와서 막걸리 한잔 하고."
  
  한번은 비가 '억쑤로' 쏟아진 날, KBS로 들어가려다가 여의치가 않자 여의도 공원 남자 화장실을 접수하게 됐다.
  
  "거기서 전략회의 했어. 우리는 아주 판이 이상해.. 조합원 꿔서 집회하고, 화장실에서 생쥐같이 비맞고 냄새나는데 회의하고 그랬어"
  
  조합원도 없는 노조위원장
  
  
ⓒ민중의소리 김철수

  구차하고 승산없게 보이는, 비정규직의 싸움. 조합원들은 하나둘 떠나게 되고 결국 두달 후엔 주씨와 송진수(가명) 총무국장 이렇게 둘만 남게 된다.
  
  "나중엔 미안하더라고. 9월 15일인가 비가 무지 많이 왔는데. 롯데호텔 투쟁에서 '너 들어가라. 벌어야 하지 않냐' 그 놈이 딸만 둘인데 내가 깃대를 뺐었지. '보고 싶으면 핸드폰으로 전화해라' 비 쫄딱 맞고 막걸리 한잔 하고 울고 갔지. 삼각지까지 걸어가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고 거기서 헤어졌어. '형도 좀 있으면 들어갈 거다' "
  
  당시를 떠올리는 듯 주씨의 눈 언저리가 발갛다.
  
  "그 동지 가고 나 혼자 딱 남았잔아. 허망하더라구. 아무도 없는거야."
  
  조합원도, 사무실도, 당장의 차비도 없었던 주씨는 굶기를 밥먹듯 했고 잠자리조차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김종철이 당시 부대변인이었어. 그 친구가 파견철폐공대위 집행위장이던 윤애림 동지 선배야. 애림이가 연락을 해서 당 회의실 하나 줄 수 없겠냐고 해서 책상을 들어내고 그렇게 시작했지"
  
  잠자리가 해결되도 배가 고픈 건 여전했다. 한창 더운 여름에 해고된 터라, 먹는 것도 시원찮은데 '꼭 나같은 비정규직의 피를 빨아먹는' 모기가 그는 그렇게 미웠다고 한다.
  
  "오늘은 어떻게 밥을 먹나. 집회가서 동지들 따라가는데. 그 동지 못쫓아가면 밥 못먹는 거고. 지하철도 많이 몰래타고. 어떻해. 집회는 가야하고. 조끼 입고 쪽팔리기는 하는데"
  
  2000년 12월까지 민주노동당에서 더부살이를 하면서 이랜드, 한통계약직노조와 식구처럼 지내던 주 위원장은 겨울에 용두동에 있던 민주노총 서울본부를 '접수'했다.
  
  2001년에는 굶지 않으려고 50을 바라보는 그가 명동성당 농성장 사수대를 자원했다. 당시 명동성당에는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차봉천 초대 공무원노조 위원장 등이 수배상태로 농성중이었다. '싸워야지, 여기오면 어떻하냐'는 단 위원장의 질문에 주씨는 '여기와서 싸우면 되요'라고 했지만 실은 '밥 세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명동성당에서 자고 새벽같이 마이크 차를 끌고 나와서 혼자 집회를 했다.
  
  레미콘 노조원들을 꿔서 집회를 하다
  
  혼자 남은 주씨에게는 사실상 '연대'가 없는 희망이란 없었을게다. 복직하던 날, 그가 떠올린 얼굴들은 그래서 참으로 많을 수 밖에 없었다.
  
  2001년 여의도를 접수했던 레미콘 노동자들은 기꺼이 주봉희 위원장의 조합원이 되어주었다. 주봉희 위원장의 표현을 빌자면 그는 "사람 참 좋은 장문기 위원장에게 조합원을 꿔서" 집회를 했다.
  
  경찰의 '도끼진압'으로도 유명한 레미콘 노동자들은, 그래서 경찰서에 끌려갈 때면 "왜 KBS 앞에 가서 그러느냐"는 질문을 받게 됐다.
  
  "하루도 안빼고 여의도에 갔는데. 내가 특이하잖아. 대가리에 파견철폐를 쓰고 다니니. 금방 알아보는 거야. 나는 돈이 없으니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얻어먹는 거지. 조합원 꿔다가 아침 집회 한 놈은 나밖에 없을 거야. 아침에 방송차 끌고가면 조별로 쭈욱 밥먹고 있어 그럼 '조합원 좀 꿔조' 그러면 KBS까지 쌀자루 뒤집어 쓰고 밥그릇 뚜들기면서 와.. 50명이고 200명이고 거의 한달을 꿔다 썼네."
  
  한국은 월드컵 열풍이 불면서 바디페이팅도 붐이 일었지만, 주 위원장은 이미 바디페인팅엔 전문가였다. 머리에 '파견철폐'라는 붉은 글씨를 쓴 주봉희 위원장이 집회장에 없으면, 사람들이 궁금해 할 정도였다. 주씨는 머리카락은 0.7cm 정도가 가장 글씨가 뚜렷하게 나온다고 설명한다. 더 길어지면 글씨가 드러눕게 되어 '파견'이 '파전'이 된다고.
  
  "한달 되면 깎아야 하는데.. 돈이 있어야지. 그래도 돈 생기면 밥은 굶어도 이거부터 했어. 사실 파견법 철폐라는 프랑카드, 구호하나 먼저 걸어주는 데가 없었지. 노동계에서도. 2003년에 경제특구법에 파견이 들어갔을 때 넣기 시작했지.. "
  
  박상윤, 김주익, 배달호, 이용석, 정종태..
  
  주봉희 위원장은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다. 특히 주씨에겐 고 박상윤 서울본부 사무처장이 가장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아픔일 것이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상윤이가 굉장히 애썼지. 상윤이가 살아 있을 때, 서울본부에서 주사모(주봉희를 사랑하는 모임)라는 걸 만들었어. 서울본부 대의원들하고 당시 한 삼심명 모집해서 CMS로 한달에 25만원에서 30만원씩. 집회 나갈 때 차비하고 밥먹으라고."
  
  "숙소가 서울본부 였는데, 3층이 내 방이야. 돈이 없어서 아침에 라면 반쪽에 고추장 풀어서 끓여먹고 책상위에 놓으면, 저녁에 와보면 박상윤, 여성호가 다 끓여먹고 없는거야. 어쩔 때 보면 스프 흔들어서 아작아작 먹고 있어. 내가 뭐라 했지."
  
  고 박상윤 사무처장은 노동절은 있어도 생일은 몰랐던 주봉희 위원장에게, 새벽같이 몰래 끓여놓은 미역국과 초코파이를 챙겨 주기도 했다.
  
  '아침부터 소주 한잔 했던 생각 나네.' 그는 정말 무지하게 울었다. 주봉희 위원장은 '그래도 민주노조운동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 그런 활동가들, 내 숨을 던진 활동가들'이라고 믿는다.
  
  "김주익 동지는 손이 이 만해. 키도 크고. 2002년 8월에 부산에 갔더니 '위원장님 파견철폐 왜 지웠어요' '아. 머리가 빠져서' 다음달에 다시 쓸 거라고. 그게 마지막이었지. 2001년 배달호 열사부터 시작해서 당시엔 참 울다가 지쳤어. 이용석 동지는 하필 내 옆에서 분신했어.. 불이 확 올라오더라구. 몇 십초 순간이야. 내가 멎었어. 심장도 멈추고, 머리도 뭘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나. 피켓을 막 뽑아서 불을 끄고 난 다음에는 화기를 다 먹었어. 그 동지 그렇게 보내고 이듬해 복직되고 나니 이용석 열사가 돌아가셨잖아. 기가 막히더라구. 그렇게 아들 아들 하더니 서른 살 나이에.."
  
  주봉희 위원장은 '이용석 동지는 전태일의 혼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말한다. 주씨가 걸어 온 길에는 그렇게 '힘에 겨워 굴리다 못 다 굴린' 덩이를 맡은 이들이 많았다.
  
  "정종태 동지도 잊을 수가 없지. 그 동지한테는 참 미안해. 내가 참 구박 많이 했어. 이문동 옥탑방에 살았는데 여름엔 30도 겨울엔 영하 20도. 요만한 이불 하나에 치약 치솔 밖에 없었다니까. 지가 입던 옷하고. 걔도 나만큼이나 굶었어. 저녁에는 결국 장충단 공원에 올라가서 소주. '너 조직 관리 그렇게 못하냐' 내가 많이 혼내고. 내 생각엔 4천 대오 있을 때를 일깨워 주려고 했는데. 밥이라도 제대로 먹고 건강관리 했다면 더 살았을텐데."
  
  계란으로 바윗돌을 쳐서 이겼지. 다 할 수 있다고
  
  주봉희 위원장은,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한때 '도망'쳤었다.
  
  "2002년이 제일 힘들었던 때인데. 한통계약직 깃발 내리고 나서. KBS, MBC 다 무너지고. 나도 이제 여기서 끝내자. 그만 하고 내려가야겠다. 연세대에서 같이 보따리를 쌌어. 한통 동지들이랑 같이 울고 그 길로 온양으로 내려간거야. 농사를 짓든 다른 진로를.."
  
  주씨는 그러나 깃발을 내리지 못했다. 그를 붙잡은 것은 고 박상윤 사무처장과 같은 그런 '동지'들이었다.
  
  "누나네서 한달 반 정도 있다가 핸드폰을 꺼놨었는데, 받지 말았어야 하는데, 파견법 시행 5년이라고 철폐연대 서울본부 민변에서 뭘 하는데 발언해 달라고. 그게 계기가 되서 김혜진 동지나 이런 동지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죽기야 하겠냐' 여성호 박상윤도 '아 형님 도망갔다'고 난리를 피워서 2002년 말까지만 간다고 했는데 거기서 붙잡힌 거지."
  
  47살에 해고된 주봉희 위원장은 결국 52살에 복직했다. 다른 게 있다면 그가 운전직이 아닌 사무직으로 배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주씨는 이제 실제 조합원들이 있는 방송사비정규직노조의 위원장이라는 점이다.
  
  "당시에 어떤 사람들은 계란으로 바윗돌치기라고 그랬지. 내가 계란으로 바윗돌을 쳐서 이겼지. 다 이길 수 있다고. 당신들 어차피 우리같은 사람 필요한 거 아니냐는 거지."
  
  
ⓒ민중의소리 김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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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근로 보호법은 파견해고 위한 법&quot;

2006/06/29 15:03
"파견근로 보호법은 '파견해고' 위한 법"
7월1일 '파견법' 시행 8년…언론노조, 비정규직 차별철폐 기자회견
2006년 06월 29일 (목) 13:32:56 정은경 기자

오는 7월 1일 '파견근로자보호등에 관한 법률' 시행 8년을 앞두고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신학림)이 다시 한번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촉구했다.

언론노조는 29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법예고돼 있는 '기간제등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비정규직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 전국언론노조는 29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촉구했다. 왼쪽부터 언론노조 신학림 위원장,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 언론노조 방송사비정규지부 주봉희 위원장, 민주노총 최은민 부위원장,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지현 사무처장. ⓒ정은경 기자  
 
방송 비정규직, 동일노동에 임금은 절반도 안돼

언론노조는 "지난 2004년 3만5000명의 파견노동자가 해고된 데 이어 2년이 지난 오늘 또다시 6만 명의 파견노동자가 해고를 기다리고 있다"며 "비정규직의 문제는 언론사도 예외가 아니어서 제작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하는 일이 다르지 않음에도 정규직의 반에 반도 안 되는 저임금 속에 살고 있다"고 고발했다.

이어 언론노조는 "비정규직 중 파견노동자만 KBS 600명, MBC 400명, SBS 400명이 넘은 지 오래이며 EBS, YTN을 비롯한 대부분의 방송사와 신문 출판 업계도 예외 없이 그 수가 증가되고 있는 추세"라며 "언론사에서 무차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상정하고,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한 투쟁의 대오를 정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방송사비정규지부 주봉희 위원장은 "지방사를 포함해 수 천 명의 파견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그 자리는 2년  뒤 해고가 예약된 파견직 노동자들로 또다시 채워지고 있다"며 방송사의 직접 고용을 요구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지현 사무처장도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피해사례를 발표하며 "파견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법이 오히려 주기적인 해고의 빌미를 주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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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법 시행 8년 무엇을 남겼나

2006/06/28 13:50
우리가 매일 보며 즐기는 TV 프로그램은 수천 수만의 비정규직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진다.
이미 프로그램 제작현장에는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많아진지가 오래다. 그들은
자료조사요원 카메라 보조, 오디오맨, 편집기사, 사무보조라는 이름으로 일하고
있으며, 이들이 하는 일은 정규직이 하는 일과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규직의 반에 반도 되지 않는 저임금속에 살고 있다. 그들은 항상
해고(계약해지)에 노출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신문 출판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04년 8월 이미 전체노동자의 55.9%를 넘어, 천만 비정규직 노동자가 시대가
다가오는 가운데 가장 공영적이고 공익적이어야 할 방송사에서조차 비정규직중
파견노동자만 KBS-600명 MBC-400명 SBS에도 400명이 넘은지 오래다. 방송의
공공성 공익성, 언론보도의 공정성의 기치아래 인간이하의 삶을 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더 이상 놓아둘 수 없다.

   파견법 시행 8년, 또 다시 6만명의 파견노동자가 계약해지 통지서를 기다리고
있다. 
언론노조는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한 기자회견   을 통해 국회에 계류중인 비정규직 법안을 저지하고 더
이상의 개악입법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투쟁   할 것이다. 
                             
                                             - 다    음 - 

  o 기자회견 : ‘파견법 시행 8년 ,비정규직 차별철폐 언론노조 기자회견’
  o 주요 참석자: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
                신학림 언론노조 위원장
                이태형 민주노총 비정규직 투쟁위원회 위원장
                정지현 불안정 노동철폐연대 사무처장
                주봉희 방송사 비정규직 위원장
  o 일시 및 장소 : 2006. 6. 29(목) 오전 11시 국회의사당앞(국민은행 앞)
  o 관련문의 : 언론노조 조직쟁의실(정영홍 017-522-9685)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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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여승무원 전원 연행

2006/05/12 12:39

  <

  <2신 밤 10시 50분>경찰 "퇴거명령 불응 현행범으로 연행한다"..60명 강제연행
  
  '비정규직이라도 좋으니 철도공사가 직접 고용하라'는 KTX 여승무원들의 요구를 철도공사는 끝끝내 외면하고, 공권력을 동원해 짓밟았다.
  
  경찰은 11일 저녁 KTX 여승무원 60여 명이 점거 농성중인 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에 경찰병력을 투입해, 이들을 모두 강제연행했다.
  
  경찰이 여승무원들을 강제연행할 것이라고 알려진 후, 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에 오후 4시반경부터 경찰병력이 배치되며 현장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민중의소리 맹철영 기자

  
ⓒ민중의소리 맹철영 기자

  경찰은 저녁 6시 50분 사복형사들과 전투경찰을 전격 투입해 여승무원 강제연행을 시작했다. 경찰병력이 투입되자 여승무원들은 정문을 걸어 잠그고 서울지역본부 건물 2층 회의실로 몸을 피했다.
  
  그러나 경찰은 노루발못뽑이(일명 빠루)로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앞서 현장을 지휘한 용산경찰서 수사과장은 KTX 여승무원 지도부에 발부된 체포영장을 제시하며 "여러분은 (법원의) 퇴거명령에 불응해 현행범으로 연행한다."라고 밝혔다.
  
  이와관련 철도공사는 파업중인 철도노조 관계자와 KTX 여승무원 300여 명을 대상으로 법원에 업무방해가처분신청을 낸 바 있고, 이를 받아들여 법원은 최근 퇴거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병력이 건물안으로 진입하자 회의실 앞에서 철도노조 관계자, 학생 등 10여 명이 "왜 연행하려 하냐?"라며 막아 섰으나 이들은 곧 모두 연행됐다.
  
  이어 경찰은 여경들을 동원, 회의실 안에서 스크럼을 짜고 강제연행에 격렬히 저항하는 여승무원들을 하나씩 뜯어내 연행했다.
  
  여승무원들은 "KTX 여승무원 파업 정당하다. 강제연행 웬말이냐?"라고 구호를 외치며 강력히 저항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민중의소리 맹철영 기자

  오랜 농성으로 지친 여승무원들은 강제연행에 저항하다 거의 실신할 지경이었다. 일부 여승무원들은 들것에 실려나가거나 여경 등에 업혀 나가기도 했다. 대부분의 여승무원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연행하냐?"라고 항변했다.
  
  오후 8시 20분경, 60여 명의 여승무원들은 결국 모두 연행돼 경찰버스에 태워졌다. 그러나 강제연행 소식을 듣고 서울지역본부 앞으로 달려온 노동자들과 학생 50여 명이 정문을 막아서며 여승무원들을 태운 경찰버스는 빠져나가지 못했다.
  
  강제연행에 항의하기 위해 달려온 대오는 100여 명으로 늘어났고, 여승무원들의 어머니들도 달려왔다. 이들이 버스 앞을 온 몸으로 막아서며 저항했지만, 경찰병력은 이들을 방패로 밀어부치며 버스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들이 주먹으로 시위대의 머리를 가격하기도 했다.
  
  경찰병력이 길을 터주자 여승무원들을 태운 버스는 재빨리 현장을 빠져나갔다. 자신의 딸이 연행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한 어머니는 "어떻게 이렇게 처참히 짓밟을 수 있냐? 국민이 과연 누굴 믿고 살아야 하냐?"라며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민중의소리 맹철영 기자

  이날 연행된 여승무원들은 용산경찰서 등 9군데의 경찰서로 분산연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날 연행된 사람은 여승무원 60명을 포함 모두 85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낮 서울 중구 금세기빌딩 4층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본부 사무실을 점거한 60여 명과 같은 건물 10층 인권위원회를 점거한 30여 명의 여승무원들은 계속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앞서 40여 명의 여승무원들은 6일부터 서울 종로구 경운동 강금실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본부에서 농성을 진행중이다.
  
  <1신 저녁 8시>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 농성중인 KTX 여승무원 연행
  
  철도공사가 공권력을 동원 파업중인 KTX여승무원에 대한 강제진압에 나섰다.
  
  경찰은 시위대를 저녁 6시 50분경 여승무원들이 농성중인 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 문을 뜯고 들어가 50명의 여승무원들을 전원 연행중이다.
  
  KTX 여승무원들은 서울지역지역본부 2층 회의실에서 스크럼을 짜고 "KTX투쟁 정당하다. 끝까지 투쟁해서 현장으로 돌아가자"라고 외치며 연행에 강력히 저항하고 있다.
  
  
△강제연행 소식을 듣고 달려온 노동자와 학생들이 연행된 여승무원들이 타고 있는 버스 앞을 가로막고 있다.ⓒ민중의소리 맹철영 기자

  이날 강제진압은 법원의 '퇴거 명령'에 따른 것이다. 철도공사는 농성중인 여승무원을 상대로 '업무방해 가처분 신청'을 낸 바 있다. 경찰은 여승무원을 향해 "퇴거 명령 불응한 현행범"이라고 밝혔다.
  
  여경들이 달려들어 한명씩 끌어서 연행하고 있어서 조만간 전원 연행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50여명의 노동자들이 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 사옥 앞에서 항의시위를 진행 중이다. 
   

   
  '비정규직이라도 좋으니 철도공사가 직접 고용하라'는 KTX 여승무원들의 요구를 철도공사는 끝끝내 외면하고, 공권력을 동원해 짓밟았다.
  
  경찰은 11일 저녁 KTX 여승무원 60여 명이 점거 농성중인 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에 경찰병력을 투입해, 이들을 모두 강제연행했다.
  
  경찰이 여승무원들을 강제연행할 것이라고 알려진 후, 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에 오후 4시반경부터 경찰병력이 배치되며 현장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민중의소리 맹철영 기자

  
ⓒ민중의소리 맹철영 기자

  경찰은 저녁 6시 50분 사복형사들과 전투경찰을 전격 투입해 여승무원 강제연행을 시작했다. 경찰병력이 투입되자 여승무원들은 정문을 걸어 잠그고 서울지역본부 건물 2층 회의실로 몸을 피했다.
  
  그러나 경찰은 노루발못뽑이(일명 빠루)로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앞서 현장을 지휘한 용산경찰서 수사과장은 KTX 여승무원 지도부에 발부된 체포영장을 제시하며 "여러분은 (법원의) 퇴거명령에 불응해 현행범으로 연행한다."라고 밝혔다.
  
  이와관련 철도공사는 파업중인 철도노조 관계자와 KTX 여승무원 300여 명을 대상으로 법원에 업무방해가처분신청을 낸 바 있고, 이를 받아들여 법원은 최근 퇴거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병력이 건물안으로 진입하자 회의실 앞에서 철도노조 관계자, 학생 등 10여 명이 "왜 연행하려 하냐?"라며 막아 섰으나 이들은 곧 모두 연행됐다.
  
  이어 경찰은 여경들을 동원, 회의실 안에서 스크럼을 짜고 강제연행에 격렬히 저항하는 여승무원들을 하나씩 뜯어내 연행했다.
  
  여승무원들은 "KTX 여승무원 파업 정당하다. 강제연행 웬말이냐?"라고 구호를 외치며 강력히 저항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민중의소리 맹철영 기자

  오랜 농성으로 지친 여승무원들은 강제연행에 저항하다 거의 실신할 지경이었다. 일부 여승무원들은 들것에 실려나가거나 여경 등에 업혀 나가기도 했다. 대부분의 여승무원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연행하냐?"라고 항변했다.
  
  오후 8시 20분경, 60여 명의 여승무원들은 결국 모두 연행돼 경찰버스에 태워졌다. 그러나 강제연행 소식을 듣고 서울지역본부 앞으로 달려온 노동자들과 학생 50여 명이 정문을 막아서며 여승무원들을 태운 경찰버스는 빠져나가지 못했다.
  
  강제연행에 항의하기 위해 달려온 대오는 100여 명으로 늘어났고, 여승무원들의 어머니들도 달려왔다. 이들이 버스 앞을 온 몸으로 막아서며 저항했지만, 경찰병력은 이들을 방패로 밀어부치며 버스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들이 주먹으로 시위대의 머리를 가격하기도 했다.
  
  경찰병력이 길을 터주자 여승무원들을 태운 버스는 재빨리 현장을 빠져나갔다. 자신의 딸이 연행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한 어머니는 "어떻게 이렇게 처참히 짓밟을 수 있냐? 국민이 과연 누굴 믿고 살아야 하냐?"라며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민중의소리 맹철영 기자

  이날 연행된 여승무원들은 용산경찰서 등 9군데의 경찰서로 분산연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날 연행된 사람은 여승무원 60명을 포함 모두 85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낮 서울 중구 금세기빌딩 4층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본부 사무실을 점거한 60여 명과 같은 건물 10층 인권위원회를 점거한 30여 명의 여승무원들은 계속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앞서 40여 명의 여승무원들은 6일부터 서울 종로구 경운동 강금실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본부에서 농성을 진행중이다.
  
  <1신 저녁 8시>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 농성중인 KTX 여승무원 연행
  
  철도공사가 공권력을 동원 파업중인 KTX여승무원에 대한 강제진압에 나섰다.
  
  경찰은 시위대를 저녁 6시 50분경 여승무원들이 농성중인 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 문을 뜯고 들어가 50명의 여승무원들을 전원 연행중이다.
  
  KTX 여승무원들은 서울지역지역본부 2층 회의실에서 스크럼을 짜고 "KTX투쟁 정당하다. 끝까지 투쟁해서 현장으로 돌아가자"라고 외치며 연행에 강력히 저항하고 있다.
  
  
△강제연행 소식을 듣고 달려온 노동자와 학생들이 연행된 여승무원들이 타고 있는 버스 앞을 가로막고 있다.ⓒ민중의소리 맹철영 기자

  이날 강제진압은 법원의 '퇴거 명령'에 따른 것이다. 철도공사는 농성중인 여승무원을 상대로 '업무방해 가처분 신청'을 낸 바 있다. 경찰은 여승무원을 향해 "퇴거 명령 불응한 현행범"이라고 밝혔다.
  
  여경들이 달려들어 한명씩 끌어서 연행하고 있어서 조만간 전원 연행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50여명의 노동자들이 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 사옥 앞에서 항의시위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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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가지 거짓말로 보는 비정규법안

2006/04/13 15:29
'6가지 거짓말'로 보는 비정규법안
보고서 은폐 조작에 엉터리 여론조사까지
문형구 기자    메일보내기

  


 노동부가 한국노동연구원에 의뢰한 연구보고서 <비정규직 보호입법의 시행효과>를 지난해 12월에 돌려받고도, 꼭꼭 숨겨둔 사실이 드러나면서 민주노동당과 노동계가 잔뜩 벼르고 있다.
  
  국회 환노위에서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1년 넘게 실갱이를 벌여 온 이목희 의원은 틈날때마다, "(비정규법안이 시행되면)비정규직의 임금이 정규직의 80% 수준까지 올라갈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노동계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상대임금은 최소 80%로 인상된다?
  
  이 법안의 시행효과에 대한 구체적 자료가 없었던 민주노동당 의원들이나 노동계는 그저 가슴앓이만 해 왔는데, 위 보고서는 "비정규직의 상대임금이 현재 50.8%(111.7만원)에서 54.0%(118.8만원)로 3.2%(7.1만원) 조정"되는데 그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애초 비정규법안을 입안했던 노동부가 2천만원이나 들여서 만든 것이다.
  
  어쨌거나 3.2%를 최소 30%라고 부풀려서 얘기했으니, 노동부나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실로 황당한 거짓말을 한 셈이다.
  
  사라진 보고서와 관련해, 민주노동당은 물론이고 지난해 노동부에 구체적인 수치를 요구했던 우원식 열린우리당 의원조차 '보고서를 받은 바 없다'며 이에 대한 책임을 노동부에 묻겠다고 한다. 우원식 의원은 "미흡한 정부 법안을 많이 고쳤다. 이렇게 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급을 최소한 80% 이상 올릴 수 있는 절차 마련에 주력했다"고 말한 바 있다.
  
  환노위 법안소위장로 비정규법 처리를 주도했던 우원식 의원은 어떤 근거로 80%라는 수치를 제시했던 걸까? 돌아보면 비정규법안과 관련한 열린우리당의 거짓말은 한두번이 아니다. 그 중 6가지만 추려본다.
  
  ◇사유제한은 프랑스가 유일하다?
  
  가장 대표적인 거짓말은 사유제한과 관련 "사유제한 도입한 나라는 프랑스가 유일(MBC 100분토론)" "(사전 사유제한은)전 지구상에 프랑스 하나 밖에 없다"는 이목희 의원의 발언이다.
  
  사유제한은 OECD 국가만 보더라도 현재 10개국에서 도입되어 있고, 이들 대다수는 기간제 노동자들의 정규직 대비 상대임금이 한국처럼 낮지도 않다.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 된다?
  
  기간제 파견제 공히 2년 초과 사용시 정규직이 된다는 발언도 거짓말이다. '고용의무'가 아닌 '고용의제'를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무기근로계약일 뿐이지 사실상은 정규직이 아니다. "사실상 정규직에 해당"된다는 것은 노동부의 '홍보계획'이면서 정부여당의 주장일 뿐, 임금 등에서 "당해 사업장내 기존 정규직과 동일한 처우를 강제하는 것은 아니"(노동부 내부자료 '비정규법안 홍보계획')기 때문이다.
  
  이같은 사실은 이미 2004년 12월의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단병호 의원이 밝혀낸 바 있다. (참조:기간제 해고제한 규정은 '평생 기간제' 합법화용?, 민중의소리 2004년12월08일)
  
  ◇비정규법안 시행되면 비정규직 축소된다?
  
  심지어 비정규법안을 시행하면 비정규직이 축소된다는 거짓말도 있다.
  
  "우리당은 비정규직을 줄이고 그 차별을 축소, 해소해 가되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직을 최소화해야한다는 원칙에 입각해서 안을 정리했다." 이목희 의원의 2005년 12월 1일 브리핑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지만, 이목희 의원은 이같은 주장을 꾸준히 해왔다. "여당의 당론은 비정규직을 축소하고, 존재하는 차별도 해소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겨레21 2005-04-29 인터뷰)
  
  ◇비정규법안 시행되면 고용이 늘어난다?
  
  다음으로는 비정규법안이 시행되면 고용이 늘어날 것이라는 거짓말인데, 열린우리당은 이를 비정규법 제정의 원칙으로 꼽고 있다. 이른바 △한국경제와 기업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 내 비정규직 차별 축소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및 사회안전망 확충 △고용의 확대와 고용창출 기여다.
  
  그러나 이번 한국노동연구원의 용역 보고서는 기간제 사용기간을 3년으로 할 경우엔 전체 임금 근로자 1.05%의 고용감소가, 사용기간을 2년으로 할 경우엔 0.66%의 고용감소가 뒤따를 것이라고 밝혔다.(파견제와 단시간근로의 제개정이 고용에 미치는 효과까지 포함)
  
  전체 임금근로자가 1540만명(통계청 2005년)이라고 한다면, 이는 임금근로자 16만(3년일때) 또는 10만명(2년일때)의 실업을 의미한다.
  
  ◇국민다수가 조속한 비정규입법을 원한다?
  
  여론조사를 통한 거짓말도 있었는데, 국민의 73.5%가 '비정규법안을 빨리 입법, 시행'해야 한다고 답변했다는 것이었다. 바로 지난해 6월 29일 열린우리당이 (주)폴앤폴에 의뢰했던 여론조사 결과다.
  
  재미있는 사실은 답변자들이 골라야했던 선택문항이 '1)비정규직 고통을 덜기 위해 가능한 빨리 입법, 시행'과 '2)법안 통과 늦추고 계속 논의'로서 여론조사의 금기를 과감히 깨뜨렸다는 점이다.
  
  이는 같은달 23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1.8%가 '노동계 및 경영계와 먼저 합의를 이끌어낸 다음에 법을 통과시켜야한다'고 답변한 것과 정반대의 결과였다.
  
  최근 전교조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2006년 학생의식 설문조사'에서도 고등학생의 57%가 비정규법안의 국회통과를 반대하는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2006년04월13일 ⓒ민중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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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코리아 이겼답니다!"  

  "불법파견 시 직접고용해야" 법원 판결을 기쁘게 맞으며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직차장 여성오
  
  
   참세상뉴스  



  *인사이트 판결 승리 소식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방송사 비정규직 주봉희 위원장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인사이트코리아노조 지무영 위원장님이 "3월14일 고법판결이 나올 것 같다"며 집회를 제안했다. 화학섬유연맹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에서 3월12일과 13일 집회를 갖고,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당일인 14일에 집회를 주관하기로 했다. 내심, "에고, 판결 전에야 힘차게 촉구투쟁하면 되지만, 당일날 만약 판결이 안좋게 나온다면 힘 빠져서 집회 어떻게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랴! 안좋은 분위기에서 다른 동지에게 부탁하지 말고 차라리 사회는 어찌되었건 간접고용 쪽을 담당하고 있는 필자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제 열 두 시가 넘어 집에 들어가면서 화이트데이랍시고 임신 7개월의 배나온 각시에게 줄 사탕을 샀다. 자다깨서, 늦게 들어온 걸 탓하지는 않고, 사탕 몇 알에 감동하여 입이 벌어진 각시는 "꿈에 팬더곰이 나와서 같이 놀았다"며 싱글벙글이다. 그래, 팬더곰이라, 뭔가 좋은 일이 있으려나? 아침에 출근해서 방송사비정규노조 주봉희 위원장님과 분식집에서 라면을 먹으러 갔다. 팬더곰 얘기는 혹시나 하여 하지않고, 어제 집회에 사람들 많이 왔냐고 여쭸더니 열 몇 명이 왔더라고 얘기해 주신다. 힘들구나.

이름과 정반대의 역할을 하고 있는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2년의 파견기간이 종료되는 2000년 6월 30일은 전국적인 파견노동자 대학살의 날이었다. 파견법 제정 이전에도 수년에서 수 십년에 걸쳐 소위 불법적으로 근무해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견법의 보호를 받기는 커명, 주봉희 위원장님처럼 해고당해야 했던 것이다.

뒤를 이어, SK의 지휘 감독하에 SK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하면서도 소속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극심한 차별대우를 받아온 노동자들이 인사이트 코리아노조를 결성하고 노동부에 불법파견 진정을 제기하여 시정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SK측은 사직서 제출과 계약직 전환을 강요하였고, 이를 거부하고 정규직을 요구하는 4명의 조합원들을 2000년 11월 1일자로 해고해, 현재까지 조합원들은 햇수로 4년째 정규직화 및 복직 투쟁을 진행해왔다.

한라중공업사내하청 투쟁과 재능교육교사노조 결성, 호텔롯데와 이랜드노조의 투쟁으로 불붙은 비정규직 철폐투쟁은 한국통신계약직노조의 517일 간에 걸친 투쟁과 전국건설운송노조의 여의도 투쟁에서 정점에 달했다. 하지만, 자본은 법원과 검찰, 경찰 및 총자본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여 개별 비정규직 노조에 대한 탄압 뿐만 아니라 각종 법제도의 개악을 시도했고, 이는 지난 1월 전국건설운송노조에 대한 노동자성 부인 대법원 판결에 이르도록 계속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벼랑으로 몰아왔다. 이 과정에서 많은 비정규직 독자노조들은 뜻한 바대로 정규직화를 쟁취하지 못한채,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다. 더러는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을 저버리며 보수정치권에 이름을 걸기도 하고, 안타깝게도 금전적으로 합의하고 마는 역부족을 절감하기도 했다.

라면을 먹고 있는데, 한혁 조직부장님이 분식점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며 외친다. "인사이트코리아 이겼답니다!" 주봉희 위원장과 나는 벌떡 일어섰고, 힘차게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그래,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어야지, 주봉희 위원장님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허허, 집회는 마치 예전 이랜드투쟁이나 비정규 집회 때를 연상케 하며, 올드멤버들이 서로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힘든 투쟁 과정에서도 함께 해주신 방지거병원 동지들, 재능교육교사노조, 전국학습지노조웅진지부, 이랜드노조, 방송사비정규노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사회진보연대, 노동자뉴스제작단, 참세상방송국과 워킹보이스 동지들 모두 간만의 웃음띤 집회를 진행했다.

민주노총에서 기동적으로 성명서가 나왔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이러한 불법파견이 근절되고, 불법파견으로 일하는 노동자가 사용업체에 직접 고용되어 고용의 안정성이 보장되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동안 함께 투쟁한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승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아직 한계는 분명하다. 2년 이상된 불법파견노동자뿐만 아니라 불법파견업체의 노동자의 경우 바로 사용업체에 직접고용된 것으로 간주하는 방향으로 법개정이 이루어져야 함이 마땅하다. 나아가 불안정한 고용을 낳고, 중간착취를 합법화하는 현대판 노예제도 파견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주체들이 있는 한, 할 수 있다! 해야만 한다!
  

  2003년03월14일 18:25:02  
  참세상뉴스(chamnews@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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