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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기사들 대기실이 따로 있고 파견 대기실이 따로 있는데, 정규직 대기실은 개인 탁지라든가 의자, 옷장, TV도 칼라로 세대씩 있었지. 냉장고 공기청정기 에어콘 빵빵하고." \"시골에 보면 그거 벼 날리는 선풍기 있잖어. 이따만한 거. 왱왱 방아찍는 소리나는 그 거\" ⓒ민중의소리 김철수 ⓒ민중의소리 김철수 "우리방은 50평에 54명이 바글바글했는데, 17인치 흑백 로타리 TV에, 시골에 보면 그거 벼 날리는 선풍기 있잖어. 이따만한 거 왱왱 방아찍는 소리나는 그 거 틀어놓고 있고. 의자는 옛날 극장식 의자에 앉아있다가 마이크로 부르면 나가곤 했는데. 우리는 채널도 MBC KBS SBS만 고정돼 있었는데. 한번은 박찬호가 경기를 하는데 못보는 거야. 정규직들 방에 몰래 보다가 걸리면 '야 용역' '야 렌트카' '나가 시키야' 물 먹다 걸려도 '니네 방에서 사먹어 시키야' " 그래서 파견직들은 한달에 2천원씩 돈을 걷어서 물을 사먹었다고 한다. "아까워서, 돈이 없으니까, 파견 노동자들끼리도 물을 먹는 것만 허용하기로 하고, 떠 가지는 못하게 했지" 출장 중에 정규직 노동자를 추월이라도 하면 도착지에서 불려다녀야 했다. 정규직한테 아침에 인사를 안 하고 고개를 돌리거나, 고분고분 하지 않아도 불러다녔다. 이튿날 동료가 보이지 않으면 으례히 교체된 걸로 여겼다. 파견 노동자들이 당시에 제일 무서웠던 건 사용자도 파견업체도 아니라 가까이 있는 정규직이었다. IMF 이후 정규직에 대한 강제 명예퇴직이 실시됐고, 그 자리를 파견 노동자들이 채웠다. 99년 KBS는 정규직 노동자 3백명을 정리해고 했는데, 파견 노동자들의 속이 후련했을 법도 하다. '니들도 비정규직으로 살아봐라' "파견으로 다시 온 사람들이 있었고. 그 당시에 울화통 터지게 얘기했지. 당신들 정규직으로 있을 때 얼마나 설움을 줬냐. 생각나냐." 짝수해, 파견노동자의 시련 지금도 그렇지만, 파견노동자에게 짝수 해는 시련이었다. 파견법이 시행되고 만 2년을 앞둔 2000년 6월, 운전직·카메라 보조·오디오맨·웹디자인 등 방송사 파견노동자들에게도 계약해지가 들이닥쳤다. SBS 437명을 시작으로 MBC 160명, KBS에서도 227명이 해고됐다. 전체적으로는 5천명 가량의 파견노동자가 그 해 계약해지된 걸로 추정된다. 6년 넘게 근무한 주씨를 비롯해, 파견노동자들은 5년에서 길게는 15년까지 KBS에서 일해 왔었다. '이렇게 오래 있었는데, 자르진 않겠지'라는 믿음은 여지없이 깨졌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민중의소리 김철수 " KBS는 '우리는 꼭 쓰고 싶다. 그런데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니 2년 후에 다시 오면 써주겠다. 파견법을 원망해라' 그랬어. 우리는 법을 몰랐는데, 아 파견법이 2년에 한번 쓰고 버리는 건가 보다 그때 알았지." KBS 운전직은 씨랜드 참사 당시, 현장을 촬영한 필름을 입수하고 삼풍백화점 붕괴 때도 인도를 타고 가서 특종을 만드는 등 뉴스보도에 큰 공을 세워왔다 실상 성수대교, 인천호프집 화재, 연천댐 붕괴 등 모든 특종은 운전직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한다. 처음 모인 파견노동자들은 운전직이었다. "그렇게 일했는데도 우리는 칭찬 한번 못받고. 전부 해고된 거지. 처음엔 딱 열명을 만들었어. 그런데 모인 친구들이 안할라 그래. '나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노조를 만들어야 못 받은 연월차라도 받는다고 설득을 했어. 나도 이렇게 까지 올 줄 몰랐지. 골탕이나 먹이고 가자. 10년을 있었는데 KBS가 책임지는 게 뭐냐." 방송사비정규노조, 화장실을 접수하다 '비정규'라는 이름을 넣고 노조를 만든 건 이들이 처음이었다. 난데없이 한글학회에서 전화가 오기도 했단다. '한글을 똑바로 알자. 국어 사전에 비정규 노동자라는 건 없다. 불안정 노동자로 고쳐야 한다' 주봉희 위원장은 '군대도 정규군이 있고, 빨치산 같은 비정규군이 있지 않냐"며 이 이름을 고집했다고 한다. 주봉희 위원장도 처음부터 조합원 없이 싸운 건 아니다. 초기 400가까운 조합원은, 경찰특공대가 롯데호텔노조를 '작살'냈던 6월 29일에 방송사비정규직노조도 야간에 '습격'을 받고 27명으로 줄었다. 남은 이들은 투쟁을 할래도, 사무실도 투쟁기금도 없었다. 해고자들에겐 당장 깃발 하나를 살래도 '돈'이었다. 현장에 있을 때도 기본급 72만 5천원에, 식대 5만원. 시간외 근무만 100시간을 해야 겨우 100만원을 채웠던 인생들이었다. "여의도에서 15일을 보냈지. 회의하러가자 하면 여의도야. 그 땐 나무도 없고 그늘도 없어서. '형님 마포대교 갑시다'하면 거기 가서 회의하고 일정 짜는 거야. 2시에 대학로에 롯데호텔 집회 갔다가, 이랜드 집회 갔다가 저녁엔 다시 서강대교 밑으로 와서 막걸리 한잔 하고." 한번은 비가 '억쑤로' 쏟아진 날, KBS로 들어가려다가 여의치가 않자 여의도 공원 남자 화장실을 접수하게 됐다. "거기서 전략회의 했어. 우리는 아주 판이 이상해.. 조합원 꿔서 집회하고, 화장실에서 생쥐같이 비맞고 냄새나는데 회의하고 그랬어" 조합원도 없는 노조위원장 ⓒ민중의소리 김철수 ⓒ민중의소리 김철수 구차하고 승산없게 보이는, 비정규직의 싸움. 조합원들은 하나둘 떠나게 되고 결국 두달 후엔 주씨와 송진수(가명) 총무국장 이렇게 둘만 남게 된다. "나중엔 미안하더라고. 9월 15일인가 비가 무지 많이 왔는데. 롯데호텔 투쟁에서 '너 들어가라. 벌어야 하지 않냐' 그 놈이 딸만 둘인데 내가 깃대를 뺐었지. '보고 싶으면 핸드폰으로 전화해라' 비 쫄딱 맞고 막걸리 한잔 하고 울고 갔지. 삼각지까지 걸어가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고 거기서 헤어졌어. '형도 좀 있으면 들어갈 거다' " 당시를 떠올리는 듯 주씨의 눈 언저리가 발갛다. "그 동지 가고 나 혼자 딱 남았잔아. 허망하더라구. 아무도 없는거야." 조합원도, 사무실도, 당장의 차비도 없었던 주씨는 굶기를 밥먹듯 했고 잠자리조차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김종철이 당시 부대변인이었어. 그 친구가 파견철폐공대위 집행위장이던 윤애림 동지 선배야. 애림이가 연락을 해서 당 회의실 하나 줄 수 없겠냐고 해서 책상을 들어내고 그렇게 시작했지" 잠자리가 해결되도 배가 고픈 건 여전했다. 한창 더운 여름에 해고된 터라, 먹는 것도 시원찮은데 '꼭 나같은 비정규직의 피를 빨아먹는' 모기가 그는 그렇게 미웠다고 한다. "오늘은 어떻게 밥을 먹나. 집회가서 동지들 따라가는데. 그 동지 못쫓아가면 밥 못먹는 거고. 지하철도 많이 몰래타고. 어떻해. 집회는 가야하고. 조끼 입고 쪽팔리기는 하는데" 2000년 12월까지 민주노동당에서 더부살이를 하면서 이랜드, 한통계약직노조와 식구처럼 지내던 주 위원장은 겨울에 용두동에 있던 민주노총 서울본부를 '접수'했다. 2001년에는 굶지 않으려고 50을 바라보는 그가 명동성당 농성장 사수대를 자원했다. 당시 명동성당에는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차봉천 초대 공무원노조 위원장 등이 수배상태로 농성중이었다. '싸워야지, 여기오면 어떻하냐'는 단 위원장의 질문에 주씨는 '여기와서 싸우면 되요'라고 했지만 실은 '밥 세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명동성당에서 자고 새벽같이 마이크 차를 끌고 나와서 혼자 집회를 했다. 레미콘 노조원들을 꿔서 집회를 하다 혼자 남은 주씨에게는 사실상 '연대'가 없는 희망이란 없었을게다. 복직하던 날, 그가 떠올린 얼굴들은 그래서 참으로 많을 수 밖에 없었다. 2001년 여의도를 접수했던 레미콘 노동자들은 기꺼이 주봉희 위원장의 조합원이 되어주었다. 주봉희 위원장의 표현을 빌자면 그는 "사람 참 좋은 장문기 위원장에게 조합원을 꿔서" 집회를 했다. 경찰의 '도끼진압'으로도 유명한 레미콘 노동자들은, 그래서 경찰서에 끌려갈 때면 "왜 KBS 앞에 가서 그러느냐"는 질문을 받게 됐다. "하루도 안빼고 여의도에 갔는데. 내가 특이하잖아. 대가리에 파견철폐를 쓰고 다니니. 금방 알아보는 거야. 나는 돈이 없으니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얻어먹는 거지. 조합원 꿔다가 아침 집회 한 놈은 나밖에 없을 거야. 아침에 방송차 끌고가면 조별로 쭈욱 밥먹고 있어 그럼 '조합원 좀 꿔조' 그러면 KBS까지 쌀자루 뒤집어 쓰고 밥그릇 뚜들기면서 와.. 50명이고 200명이고 거의 한달을 꿔다 썼네." 한국은 월드컵 열풍이 불면서 바디페이팅도 붐이 일었지만, 주 위원장은 이미 바디페인팅엔 전문가였다. 머리에 '파견철폐'라는 붉은 글씨를 쓴 주봉희 위원장이 집회장에 없으면, 사람들이 궁금해 할 정도였다. 주씨는 머리카락은 0.7cm 정도가 가장 글씨가 뚜렷하게 나온다고 설명한다. 더 길어지면 글씨가 드러눕게 되어 '파견'이 '파전'이 된다고. "한달 되면 깎아야 하는데.. 돈이 있어야지. 그래도 돈 생기면 밥은 굶어도 이거부터 했어. 사실 파견법 철폐라는 프랑카드, 구호하나 먼저 걸어주는 데가 없었지. 노동계에서도. 2003년에 경제특구법에 파견이 들어갔을 때 넣기 시작했지.. " 박상윤, 김주익, 배달호, 이용석, 정종태.. 주봉희 위원장은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다. 특히 주씨에겐 고 박상윤 서울본부 사무처장이 가장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아픔일 것이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민중의소리 김철수 "상윤이가 굉장히 애썼지. 상윤이가 살아 있을 때, 서울본부에서 주사모(주봉희를 사랑하는 모임)라는 걸 만들었어. 서울본부 대의원들하고 당시 한 삼심명 모집해서 CMS로 한달에 25만원에서 30만원씩. 집회 나갈 때 차비하고 밥먹으라고." "숙소가 서울본부 였는데, 3층이 내 방이야. 돈이 없어서 아침에 라면 반쪽에 고추장 풀어서 끓여먹고 책상위에 놓으면, 저녁에 와보면 박상윤, 여성호가 다 끓여먹고 없는거야. 어쩔 때 보면 스프 흔들어서 아작아작 먹고 있어. 내가 뭐라 했지." 고 박상윤 사무처장은 노동절은 있어도 생일은 몰랐던 주봉희 위원장에게, 새벽같이 몰래 끓여놓은 미역국과 초코파이를 챙겨 주기도 했다. '아침부터 소주 한잔 했던 생각 나네.' 그는 정말 무지하게 울었다. 주봉희 위원장은 '그래도 민주노조운동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 그런 활동가들, 내 숨을 던진 활동가들'이라고 믿는다. "김주익 동지는 손이 이 만해. 키도 크고. 2002년 8월에 부산에 갔더니 '위원장님 파견철폐 왜 지웠어요' '아. 머리가 빠져서' 다음달에 다시 쓸 거라고. 그게 마지막이었지. 2001년 배달호 열사부터 시작해서 당시엔 참 울다가 지쳤어. 이용석 동지는 하필 내 옆에서 분신했어.. 불이 확 올라오더라구. 몇 십초 순간이야. 내가 멎었어. 심장도 멈추고, 머리도 뭘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나. 피켓을 막 뽑아서 불을 끄고 난 다음에는 화기를 다 먹었어. 그 동지 그렇게 보내고 이듬해 복직되고 나니 이용석 열사가 돌아가셨잖아. 기가 막히더라구. 그렇게 아들 아들 하더니 서른 살 나이에.." 주봉희 위원장은 '이용석 동지는 전태일의 혼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말한다. 주씨가 걸어 온 길에는 그렇게 '힘에 겨워 굴리다 못 다 굴린' 덩이를 맡은 이들이 많았다. "정종태 동지도 잊을 수가 없지. 그 동지한테는 참 미안해. 내가 참 구박 많이 했어. 이문동 옥탑방에 살았는데 여름엔 30도 겨울엔 영하 20도. 요만한 이불 하나에 치약 치솔 밖에 없었다니까. 지가 입던 옷하고. 걔도 나만큼이나 굶었어. 저녁에는 결국 장충단 공원에 올라가서 소주. '너 조직 관리 그렇게 못하냐' 내가 많이 혼내고. 내 생각엔 4천 대오 있을 때를 일깨워 주려고 했는데. 밥이라도 제대로 먹고 건강관리 했다면 더 살았을텐데." 계란으로 바윗돌을 쳐서 이겼지. 다 할 수 있다고 주봉희 위원장은,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한때 '도망'쳤었다. "2002년이 제일 힘들었던 때인데. 한통계약직 깃발 내리고 나서. KBS, MBC 다 무너지고. 나도 이제 여기서 끝내자. 그만 하고 내려가야겠다. 연세대에서 같이 보따리를 쌌어. 한통 동지들이랑 같이 울고 그 길로 온양으로 내려간거야. 농사를 짓든 다른 진로를.." 주씨는 그러나 깃발을 내리지 못했다. 그를 붙잡은 것은 고 박상윤 사무처장과 같은 그런 '동지'들이었다. "누나네서 한달 반 정도 있다가 핸드폰을 꺼놨었는데, 받지 말았어야 하는데, 파견법 시행 5년이라고 철폐연대 서울본부 민변에서 뭘 하는데 발언해 달라고. 그게 계기가 되서 김혜진 동지나 이런 동지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죽기야 하겠냐' 여성호 박상윤도 '아 형님 도망갔다'고 난리를 피워서 2002년 말까지만 간다고 했는데 거기서 붙잡힌 거지." 47살에 해고된 주봉희 위원장은 결국 52살에 복직했다. 다른 게 있다면 그가 운전직이 아닌 사무직으로 배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주씨는 이제 실제 조합원들이 있는 방송사비정규직노조의 위원장이라는 점이다. "당시에 어떤 사람들은 계란으로 바윗돌치기라고 그랬지. 내가 계란으로 바윗돌을 쳐서 이겼지. 다 이길 수 있다고. 당신들 어차피 우리같은 사람 필요한 거 아니냐는 거지." ⓒ민중의소리 김철수 ⓒ민중의소리 김철수"에 해당되는 글 112건

  1. 2006/01/12 노동자 대화와 농민대회
  2. 2006/01/11 KBS 노사 파업 직전 협상 타결
  3. 2006/01/10 KBS노조 11일 오전5시 파업 돌입 선언
  4. 2006/01/10 파국을자초하는 정연주 사장의 설 자리는어디인 가?
  5. 2006/01/10 "휴일근무 대신 평일휴식도 법정수당 지급해야"
  6. 2006/01/09 분신장소에서 열리지 못한 고 배달호 추모제
  7. 2006/01/05 제목:KBS본부 성명서
  8. 2005/12/28 노동운동가 박상윤 동지 1주기 추도식
  9. 2005/12/25 비정규직의 삶을 시로 노래하는 노동자 주봉희 씨
  10. 2005/12/24 KBS 비정규노조 생활임금 보장 요구

노동자 대화와 농민대회

2006/01/12 21:53

피눈물을 흘리며 고통받는 비정규 노동자들을 표현한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 집회에 참석한 주봉희 방송사비정규직노조 KBS 지부장

전국노동자대회에 이어 '농민가'를 부르며 시작한 범국민대회는 민주노총 전재환 비대위원장과 전농 문경식 의장, 민주노동당 강병기 비상대책위원이 함께 무대에 올라 노동자, 농민 연대투쟁을 결의했다.

전국연합 오종렬 상임대표는 연대사에서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는 비정규 노동자가 850만을 넘어서고 있다"며 "월급을 절반으로 줄이고 아무 때나 자를 수 있는 비정규직을 두고 어느 기업이 정규직을 쓰려고 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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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노사 파업 직전 협상 타결

2006/01/11 11:05
KBS 노사, 파업 직전 협상 타결
- “성과급 반납 대신 비정규직 1인당 100만원 성과급 지급키로    

KBS 노사, 파업 직전 협상 타결

“성과급 반납 대신 비정규직 1인당 100만원 성과급 지급키로”

KBS 노사가 파업 돌입 직전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다.

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진종철)는 임금 인상(총액대비 5.2%), 비정규기금 조성, 시간외수당 및 프로그램 제작비 현실화, 하위직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11일 오전 5시부터 전면 파업에 돌입할 계획이었으나, 10일 자정부터 시작된 밤샘교섭으로 5시20분께 극적인 타결을 이뤘다고 밝혔다.

이날 합의에 따라 KBS 노사 성과급을 반납하고 대신 현재 생활임금 쟁취(한달임금으로 134만원 지급)를 요구하며 파업 중인 언론노조 비정규직지부 KBS분회 조합원들에게 1인당 100만원씩을 지급키로 했으며, 제작비와 출방비를 현실화하기로 했다. 임금은 당초 중앙노동위원회가 조정안으로 제시한 4.5% 인상안을 수용했다.

KBS 노사는 지난 2002년 500억 이상 흑자 시 성과급을 지급키로 합의하고 제작비와 출장비 등을 삭감한 바 있다. KBS는 국세청으로부터 법인세를 돌려받기로 결정됨에 따라 지난해 800억 가량의 흑자가 전망되고 있는 상황이다.


김미영 기자 ming2@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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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노조 11일 오전5시 파업 돌입 선언

2006/01/10 20:16
KBS노조 11일 오전 5시 파업 돌입 선언
임금인상 및 임금피크제 도입 ‘난항’
 
임단협 협상 결렬에 따라 마찰을 빚고 있는 KBS 노사관계가 노조의 ‘11일 파업 돌입’ 선언에 따라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10일 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진종철)가 “11일 오전 5시부터 파업에 돌입할 것”을 명령하는 지침을 전 조합원들에게 내렸다. 이 지침에 따르면 단협에 명시된 협정근로자를 제외한 야근자, 주·부조 근무자, 교대 근무자, 송·중계소 근무자, 교향악단 등 KBS 노동자 전체의 90%가 파업에 동참하게 된다. KBS본부는 “로컬뉴스 및 지역국 프로그램 제작도 파업과 동시에 중단된다”고 밝혀 방송에 상당부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 매일노동뉴스
◇주요 쟁점은? =
KBS 노사는 지난 8월부터 임단협 협상을 벌여 왔으나 노사  입장차가 커 2차례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을 거쳤다. 당초 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진종철)는 총액대비 9.8% 인상, 사쪽은 동결을 각각 주장하며 대립했으나, 중앙노동위원회가 4.5% 인상이라는 중재안을 제시하면서 극적인 타결이 점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노조가 총액대비 5.2% 인상, 사쪽이 4.5% 인상안을 고수함에 따라 결렬됐다. 또한 시간외수당 현실화, 연월차 보전 방식, 하위직(6, 7급) 처우개선, 인사현안 해결 등에 대한 부분적 입장차도 협상결렬에 주요원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사쪽이 노조와 충분한 합의에 이르지 못한 임금피크제(현행 정년 58세 유지, 55세부터 매년 10% 임금 삭감)및 변형근로제, 퇴직금누진제 적용 등을 요구하고 나서 협상 진전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KBS본부는 밝혔다. 또한 비정규직기금 출연, KBS 노사 공동 양극화해소특위 구성 등도 논란이 되고 있다.

KBS본부 최재훈 대변인은 “현재 최대 쟁점이 임금이라는 언론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면서 “오히려 노조는 임금반납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 대변인은 “지난 2002년 노사가 500억원 이상 흑자를 낼 경우, 이에 대한 성과급을 지급키로 합의한 바 있는데 올해 700억 가량의 흑자가 전망됨에 따라 이를 비정규기금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정규기금 조성에 대해서는 노사 간 일정정도 합의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전망은? = KBS본부에 따르면 지난 5일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회의 이후 노사 간 교섭이 단 한차례도 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10일 오후5시 현재 KBS본부의 파업은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KBS본부 한 관계자는 “파업 돌입이 임박했음에도 사쪽이 교섭에 소극적인 이유는 오는 6월 정연주 사장의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차기 집권을 노리는 경영진 일각에서 노사 모두가 파멸의 길을 걷도록 파업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10일 오후 노조의 파업명령지침이 내려지자 사쪽은 즉각 ‘파업관리지침’을 통해 △노조의 질서유지대 명단 파악 후 보고 △주동자 및 업무방해사항 파악 후 보고 △프로그램 진행자(MC)가 파업에 동참할 경우 동일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없다는 등의 내용 등을 공지해 노조로부터 부당노동행위로 고발되기도 했다.

그러나 노사 모두 파업에 따른 비난여론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어 파업이 장기화 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편, KBS는 지난 1999년과 2000년에도 임단협 결렬에 따라 전면파업을 벌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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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을 자초하는 정연주 사장의 설 자리는 어디인가?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타협을 먹고 사는 조직이다. 다만 노동조합이 회사측에 대해 ‘적대적인 긴장관계’를 갖느냐 혹은 ‘협력적 긴장관계’를 갖느냐는 회사가 노동조합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신학림, 이하 언론노조)의 입장이다.
그런 점에서 언론노조는 국가기간방송인 KBS 노사가 지난해에 이어 병술년 새해 벽두부터 다시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모습과 관련, 정연주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에 깊은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언론노조 KBS본부(위원장 진종철)가 11일(수) 새벽부터 전면 파업에 돌입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과정을 보면서 정연주 사장이 지난 2년여 동안 보여준 경영철학이나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지금 KBS 조합원들이 분노하고 파업 각오를 다지는 이유와 배경이 단순한 임금 문제에 있지 않다는 것을 정 사장을 비롯한 회사측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노사 관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신의, 성실에 입각한 대화가 가능한지 여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 사장은 노동조합의 요구를 묵살하기 일쑤였고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행태로 일관함으로써 오늘의 상황을 자초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임금문제만 해도 그렇다. 지난 해 KBS는 1천억원에 가까운 흑자가 발생한 것으로 조합에서는 관측하고 있다. 이 또한 프로그램 제작비를 비롯한 각종 경비와 인건비를 대폭 삭감하는 등 KBS 조합원들이 허리띠를 졸라맨 결과인 것이다.
이번에 특히 노동조합이 성과급을 양보하는 대신 비정규직 기금을 마련해 우리 사회와 경제 도약의 가장 큰 걸림돌 중의 하나로 작용하고 있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단계적으로 철폐하자고 요구한 것을 회사측이 묵살한 것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KBS본부의 이같은 제의와 요구는 140여개에 달하는 언론노조 산하 지부, 본부에서 유례가 없는 일일뿐만 아니라 오히려 회사측이 더 진지하게, 더 적극적으로 접근할 사안인 것이다. 회사는 KBS본부와 조합원들이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위한 민주노총의 11월 총파업 투쟁 지침에 따라 파업찬반 투표를 실시한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길 바란다. 접근하기 여하에 따라서는 KBS 노사가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위한 소중한 선례와 계기를 제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조합의 임금 관련 요구는 지극히 정당하다. 합리적이고 정당한 노조의 요구를 묵살하고 이미 발생한 흑자 규모와 액수를 애써 줄여가며 임금인상률 낮추기에만 급급한 정 사장의 행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KBS는 국가기간방송이자 공영방송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구조개혁은 해야 한다. 그러나 정 사장은 지금까지 신자유주의식 성과주의에만 집착하려는 경영 행태를 보여 왔다고 우리는 판단한다.

정 사장은 KBS본부의 합리적이고 정당한 요구를 즉각 받아들여야 한다. 아직은 시간이 남아 있다. 그리고 언론노조는 사태해결을 위해 함께 고민할 준비가 되어있다.
조합 대표와 한 구두 약속도 언제든지 편의에 따라 내팽개치는 방식이면 노사간에 대화로 풀 일은 없다. 우리에게 그런 국가기간방송의 수장은 필요 없다. 정 사장은 부디 오판하지 않기 바란다.

2006년 1월 9일

전국언론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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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근무 대신 평일휴식도 법정수당 지급해야”
서울지법 “공휴일 근무 동의는 근로자들의 고통분담”
 
‘연중무휴’ 업소의 노동자들이 공휴일에 일하는 대신 평일에 쉬기로 동의했더라도 공휴일 근무에 대한 법정수당은 지급돼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6단독 홍승구 판사는 서울대 내 예식·연회업소인 호암교수회관 소속 노동자 70명이 “공휴일에 근무하는 만큼 평일에 쉬었어도 휴일수당은 받아야 한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원고들에게 평일 임금의 50%씩을 추가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9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측 업소가 연중무휴로 운영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원고들이 대체휴가원을 제출하고 공휴일 근무에 동의한 것은 고통을 분담 내지 감수한다는 의도지 ‘공휴일을 근로일로, 통상 근무일을 휴일로 바꾸겠다’는 뜻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원고들이 평일에 쉰 것을 단체협약상의 적법한 휴일 대체로 볼 수 없는 만큼 피고는 통상임금의 150%에 해당하는 휴일 임금 중 원고들이 쉬었던 평일 임금을 공제한 액수를 수당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호암교수회관 노동자들은 2001년 8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법정 공휴일에 근무하는 대신 쉬고 싶은 날을 각자 정해 제출하고 이를 토대로 작성된 근무일정표에 따라 공휴일 근무를 했지만, 회관측이 추가수당을 지급하지 않자 소송을 냈다.
 
김소연 기자  dandy@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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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장소에서 열리지 못한 고 배달호 추모제

2006/01/09 23:08
분신장소에서 열리지 못한 고 배달호 추모제
텍스트만보기   윤성효(cjnews) 기자   
▲ 고 배달호씨 분신 3주기 추모제가 9일 오후 창원 두산중 정문 앞에서 열렸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 오마이뉴스 윤성효

2003년 1월 9일 새벽 창원 두산중 노동자광장에서 분신자살해 '손배가압류'를 사회 쟁점화시켰던 고 배달호씨의 3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금속노조 두산중지회와 배달호열사정신계승사업회가 9일 낮 12시 두산중 정문 앞에서 연 추모제에는 300여명이 참석했다.

그러나 이날 추모제는 고 배달호씨 분신장소인 노동자광장에서 열리지 못했다. 노조 지회는 사측과 교섭을 통해 공장 안에서 집회를 허용할 것을 요구했지만 사측에서 불허했던 것. 두산중 사측은 이날 추모제 자체를 불허해 상당수 조합원들이 참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날 추모제에는 윤영규 민주노총 비대위원과 우병국 금속연맹 부위원장, 오상룡 금속연맹 경남본부장, 김창한 금속노조 위원장, 이종엽 창원시의원, 이흥석 민주노총 경남본부장, 허재우 금속노조 경남지부장, 고 배달호씨 부인인 황귀연씨 등이 참석했다.

전대동 배달호열사정신계승사업회은 추모사를 통해 "사측에서 추모제를 허용하지 않아 공장 바깥에서 열게 되었는데, 사측의 반대를 뚫고 들어갈 힘도 부족한 실정이 안타깝다"면서 "사측은 지난 해 노사합의에서 집회를 약속해놓고는 말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강대균 금속노조 두산중지회장은 "고인은 3년 전 노조탄압에 못이겨 분신자살했고, 63일만에 장례를 치루었다"면서 "달호형을 생각하면 노동자의 생명은 단결이라는 사실을 한번 더 실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큰들문화예술센터에서 만든 마당극 '배달호 열사의 노래'가 공연되었으며, 두산중 정문 앞에 있는 '추모비'에 헌화한 뒤 마쳤다.

고 배달호씨는 1981년 두산중의 전신인 한국중공업에 입사한 뒤, 노동조합 대의원 등을 거쳐 2003년 1월 9일 분신했다. 고인의 무덤은 양산 솥발산에 묻혀 있다. 배달호열사정신계승사업회는 고 배달호씨 분신 3주기를 맞아 강연회 등 다양한 추모행사를 벌였다.

▲ 고 배달호씨의 부인 황귀연씨가 추모제에 참석해 앉아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 두산중 앞 도로 옆에 있는 '노동열사 배달호 추모비'.
ⓒ 오마이뉴스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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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KBS본부 성명서

2006/01/05 14:16
제목: KBS본부 성명서

성명서) 

악덕 경영자의 말로는 반드시 처참하다는 것을 명심하라!!! 

노조는 이번 임금협상 과정에서 골수까지 파고드는 처절한 배신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정연주씨가 KBS 사장이라는 것이 한없이 부끄러워 얼굴을 땅에 박고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다. 

대외적인 시선을 우려해 임금을 절대 올려 줄 수 없다는 정연주씨의 논리는 그
현란한 세 치 혀를 아무리 놀려도 상식을 가진 중앙노동위원들에게는 전혀
먹히지가 않았다. 두 차례에 걸친 마라톤 조정 끝에 중노위는 이례적으로 총액
4.5% 인상이라는 조정안을 내놓았다. 중노위원들은 적자예상이라는 열악한
조건에서도 노동자들이 훌륭한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경영수지를 개선하는데
일조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물가상승률과 사측의 지불능력을
고려해 봐도 최소한 4.5% 정도는 인상해야 한다는 게 중노위원들의 결정
내용이었다. 

그러나 정연주씨는 중노위원들의 이 같은 최소한의 제안마저도 거부했다. 임금
인상폭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 마치 경영자의 전리품인양 착각하는 정씨를 보며
공영방송 철학이 없는 자가 사장 자리에 앉는 것이 얼마나 해롭고 위험한 일인지
다시 한번 뼈저리게 각인하게 됐다. 

정연주씨의 뻔뻔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정씨는 지난달 28일 중노위에서
위원장에게 분명 연차수당과 시간외 수당, 비정규직 지원, 인사 현안 등 몇 가지
과제를 같이 해결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정씨는 임금 인상이 국고보조금 예산안
통과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국회 본회의가 있는 30일자 이후에 합의하자고 제안해
노조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국고보조금이 확정되고 난 뒤 지난 3일
중노위에서 만난 정씨는 태도를 180도 바꿔 내가 언제 그랬냐며 안면을 완전
몰수했다. 노조는 중노위에서 당초 약속대로 사장과 위원장과의 협상을 통해
풀자고 제안했지만 정씨는 만남 자리마저 거부했다. 

정연주씨의 그간 행태를 봤을 때 치졸한 뒤통수 치기가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설마 공영방송 사장이 노동자의 생존수단인 임금을
논하는 자리에서 사기를 치겠냐는 생각에 정씨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노조의
순진함과 안일함을 통감하면서도 이런 수준 이하의 사람이 어떻게 KBS 사장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지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역대 어느 사장도 임금 협상 자리에서 이런 사기를 친 적은 없었다. 임금 1%보다
더 중요한 것이 노사신뢰다. 노조와의 약속을 자신의 이해에 따라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이런 저질 경영 행태가 더 이상 KBS에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노조는
노동자의 강철같은 투쟁의 힘을 보여줄 것이다. 노조는 저질 경영을 하는
악덕사장이 얼마나 처참한 말로를 맞이하게 되는지를 기필코 보여 줄 것이고 천
배 만 배 후회하게 만들 것임을 분명히 천명한다. 


2006년 1월 5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비상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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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가 박상윤 동지 1주기 추도식

2005/12/28 17:14
노동운동가 박상윤 동지 1주기 추도식
    
제작: 김미례

37살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고 박상윤 민주노총 서울본부 전 사무처장은 지난해 12월30일 건강악화와 노동운동, 개인 신상 문제로 받은 심리적 갈등과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을 매 숨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박 처장은 학습지교사노조, 보험모집인노조, 서울대시설관리노조, 방송사비정규직노조, 덤프연대 등 수많은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과 투쟁에 헌신했으며 며칠씩 밤을 새우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자신의 일을 수행해온 활동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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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의 삶을 시로 노래하는 노동자 주봉희 씨
[데일리 서프라이즈 2005-12-24 17:05]    
주봉희 방송사비정규지부 KBS 분회 위원장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김유정 기자

소외계층에게 12월은 춥다. 계절상 추운 달이기도 하지만 끝내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한 채 한해의 마지막을 맞는 이들에게 12월 찬바람은 유독 시리다.

‘파견 노동자의 상징’ 주봉희 씨도 혹독한 겨울을 나고 있다. 그는 방송사비정규지부 KBS 분회 위원장으로, 열악한 임금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준비 중이다.


칼바람이 부는 21일 저녁 비정규지부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삭발한 머리에 모자를 아무렇게나 쓰고 연신 담배를 태워댔다. 파업을 하루 앞두고 까칠해 보이는 얼굴에서 서정적인 시구를 적는 모습을 떠올리기란 솔직히 힘들었다. 주 위원장은 올해 7월 ‘어느 파견노동자의 편지’라는 시집을 낸 어엿한 시인이다.

그는 94년 KBS에 파견직 방송차량 운전기사로 입사했다. 그러나 4년 뒤인 98년 ‘사용사업주가 파견 노동자를 2년 이상 사용하면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 한다’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제정됐고 사용주는 이를 악용해 2년 단위로 파견 노동자들을 ‘자르기’ 시작했다.

“98년 IMF가 터지면서 공기업이 구조조정에 나서기 시작해 KBS도 운전직 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에 들어갔죠. 그 뒤 98년 파견법이 생겼고 2000년 6월 30일, 법이 시행된 지 딱 2년 되던 해 15년씩 일했던 운전직 노동자들이 해고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주 위원장 역시 그 때 해고됐다. 그는 “2000년 5월 26일 노동조합을 결성했는데 4일뒤 바로 해고됐다”며 “당시 KBS 앞에서 출근집회 등을 진행하며 3개월간 투쟁했지만 생계가 걸린 이들은 하나둘씩 조합을 떠나기 시작했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결국 그는 혼자 남았고 그때부터 쓰기 시작한 글이 제법 모여 시집 한 권으로 탄생했다.

“다른 단체 집회도 참석했다가 일정이 끝나고 다들 집으로 돌아가면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았었죠. 그 땐 어딘가에 기대고 싶은 심정과 패배의식, 고독감이 한꺼번에 밀려와요. 처음엔 그냥 매일 술만 마시다 어느날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 때 순간의 기록들을 남겨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간 날 때마다 국회 앞에서 전경들과 싸웠던 기억, 비정규직 동지들이 하나둘씩 해고당했던 일을 떠올리며 글을 써 나가기 시작했죠.”

이후 2002년 5월 한 잡지사에 기고한 글이 독자의 호응을 얻게 됐고 시집을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주 위원장은 “새로운 박노해 시인이 나타났다는 농담도 들었다”며 호쾌하게 웃었다.

“투쟁의 깃발을 내리면서도 날 위해 돈을 모아준 그들의 정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부름에 우리는 순응하였습니다
하지만
죽음 뒤에 화려한 국화꽃으로 장식된 관도
길게 늘어선 조문객도,
선정적인 장면만 잡던 방송 카메라도,
광고만 가득한 신문의 한 줄도,
우리를 외면하였습니다.

-‘아주 편한 곳에서 노동이 없는’(2003년 2.18 대구지하철 화재사고시 사망한 용역업체 청소노동자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부분)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출간된 시집의 수익금 전액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기금으로 쓰인다. 이에 대해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김유정 기자

묻자 그의 표정엔 만감이 교차했고 눈엔 어느덧 이슬이 맺혔다.

“이 책 속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쓰러져갔고 결국은 깃발을 내려야했고 극한의 노숙투쟁을 하다 반신불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투쟁과정 속에서도 그들은 한두 푼 모아 홀로 투쟁하는 나를 위해 돈을 마련해줬죠. 그 때 이들에게 받았던 마음을 잊을 수 없어 언젠가 나도 꼭 도와야겠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주 위원장은 지금도 계속 시를 쓴다. “시집에 실린 시 대부분은 술 한 잔 먹은 상태에서 쓴 것”이라는 그는 최근엔 농민대회 당시 경찰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고 전용철 농민을 추모하는 시를 짓기도 했다.

농약을마시고 죽어도
목을매고 죽어도
불길속에 뛰어들어 죽어도

성냥갑 속 미국놈 햄버거 국회의원들은 농민들 죽으라고
손을 들어 버렸오.

방패로 곤봉으로 찍어
용철이를 죽여버렸다오.

아버지
어머니

이눔의..나라.종이처럼 접을수만 있다면

확.접어서 날여버리고 싶습니다.

-‘이삭을 줍는 촌로’(고 전용철 농민 추모시, 부분)

“한 달에 100만원도 안 되는 월급…적다, 너무 적다”

그를 비롯해 다시 뭉친 조합원들이 5년간 싸운 결과 KBS 측은 작년 6월 취재와 제작 차량을 운행하는 방송차량서비스(주)를 자회사로 설립했다. 이에 268명이 파견 노동자 신분을 벗어났고 주 위원장도 회사에 복직됐다.

이젠 파견 노동자도 아닌데 왜 파업을 하냐고 물었다. “열악한 임금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현재 조합원이 받는 임금이 월 93만 2500원입니다. 여기서 세금 떼면, 고작 85만원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해요. 사측은 기본급 5만 5000원 이상은 못 올려주겠다며 버티고 있고요. 결국 고용안정만 됐다 뿐이지 임금 면에선 파견 노동자 때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이 엄동설한에 파업까지 하겠습니까.”

주 위원장은 “파견법은 당연히 없어져야 한다”고 단호히 말하며 파견법 현행 제5조에서 ‘업무의 성질, 직종별 인력수급 상황 등을 고려하여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업무’ 규정이 추가돼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인 정부의 비정규직 법안을 강하게 비판했다.

황우석 서울대 교수에 휩쓸려 비정규직 실태를 자세히 보도하지 않는 언론을 바라보는 느낌은 어떨까. 주 위원장은 “황 교수 사태 때문에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모든 법안들, 심지어 농민 대투쟁까지 묻혔다”고 지적했다.

“두 명의 농민이 국회, 언론사, 증권사가 다 모여 있는 여의도 한 복판에서 경찰 칼방패에 찍혀 죽은 기막힌 현실조차 황 교수 사태에 다 묻혔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도 이맘때쯤이면 계속 언론에 의해 부각돼야 하는데 조용해요.

가장 우려스러운 건 이 틈을 타서 열린우리당이 비정규직 법안을 단숨에 통과시키진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향후 황 교수와 관련해 더 큰 일이 터졌을 때 그 틈에 비정규직 법안을 슬그머니 통과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추운 겨울에 언론의 여론몰이에 또 한 번 목을 베이고 있습니다.”

김유정 (actionyj@dailyseop.com)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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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비정규노조 생활임금 보장 요구

2005/12/24 09:49
  KBS 비정규노조 "생활임금 보장" 요구
  "동종 업종의 타사보다 임금수준 턱없이 낮아"
  2005-12-23 오후 3:39:58
  KBS 차량 운전사들로 구성된 'KBS 비정규직 노동조합'과 사측인 (주)KBS방송차량서비스 간에 진행되고 있는 임금협상이 4개월 째 난항이다. 노조 측은 사태 해결을 위해 예산권을 갖고 있는 KBS가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KBS 비정규직 노조 "생활임금 보장하라"
  
  KBS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지난 15일부터 잔업거부 투쟁을 진행하며 (주)KBS 방송차량서비스 측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 22일에는 9개의 지역총국과 9개 지국에서 일하는 지역 조합원들이 모두 참여한 가운데 하루 총파업을 진행하는 등 사측에 대한 압박강도를 높였다.
  
  이 노조는 KBS의 취재차량 등을 운전하는 노동자들로 구성돼 있다. KBS 운전기사 263명 중 240여 명이 이 노조에 가입된 상태다.
  
  이번 임금협상에서 노조의 요구사항은 '생활임금 보장'으로 요약된다.
  
  노조측은 기본급의 경우 현행 65만원에서 10만2000원이 인상된 75만2000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5만 원이 인상된 70만 원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상여금에 대해서도 노조측은 현행 16만2500원에서 11만9500원 인상된 28만2000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1만2500원 인상안을 내놓고 있다.
  
  주봉희 언론노조 비정규직 지부 위원장은 "KBS 차량 운전기사들은 시간외 수당까지 합쳐서 매월 평균 122만 원을 받고 있고, 이는 MBC, SBS, YTN 등 다른 방송사들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라며 노조 요구안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차량 운전기사의 월 통상임금(시간외 수당 제외)은 현재 KBS의 경우 93만2500원인 데 비해 MBC는 약 120만 원, SBS는 110만 원 정도 된다.
  
  주 위원장은 "다른 방송사는 차량 운전기사가 적기 때문에 KBS보다 더 많은 임금을 줄 여력이 있다는 것을 안다"며 "그러나 동종 업종 간 임금차가 너무 크고, 한 달에 100만 원도 안 되는 임금으로는 가정을 꾸려가기도 힘에 벅찬 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예산권 쥐고 있는 KBS가 직접 나서야"
  
  한편 노조측은 이번 임금협상에서 KBS가 직접 교섭주체로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주)KBS방송차량서비스가 사용자이긴 하지만 KBS가 예산을 늘려주지 않으면 (주)KBS방송차량서비스도 어쩔 수 없다는 사정을 알기 때문이다. (주)KBS방송차량서비스는 KBS 자회사인 (주)KBS 비즈니스의 자회사로 설립됐다.
  
  주봉희 위원장은 "(주)KBS방송차량서비스와 교섭을 하고 있지만, 임금협상 타결 여부는 결국 예산권을 쥐고 있는 KBS에 달렸다"며 "실제로 (주)KBS방송차량서비스도 KBS의 입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KBS를 직접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KBS 노조의 활동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KBS 노사도 현재 임금협상이 진통을 겪으면서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절차를 밟고 있는 중인데 이 과정에서 노조측이 KBS 비정규직 노조의 요구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있다.
  
  최재훈 KBS 노조 대외협력국장은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차량 운전기사들의 사정이 워낙 열악하기 때문에 현재 임금협상에서 차량 운전기사의 임금에 대해서도 논의를 하고 있다"며 "(주)KBS방송차량서비스의 예산권을 쥐고 있는 KBS를 압박하지 않으면 비정규직 노조의 임금 협상은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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