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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기사들 대기실이 따로 있고 파견 대기실이 따로 있는데, 정규직 대기실은 개인 탁지라든가 의자, 옷장, TV도 칼라로 세대씩 있었지. 냉장고 공기청정기 에어콘 빵빵하고." \"시골에 보면 그거 벼 날리는 선풍기 있잖어. 이따만한 거. 왱왱 방아찍는 소리나는 그 거\" ⓒ민중의소리 김철수 ⓒ민중의소리 김철수 "우리방은 50평에 54명이 바글바글했는데, 17인치 흑백 로타리 TV에, 시골에 보면 그거 벼 날리는 선풍기 있잖어. 이따만한 거 왱왱 방아찍는 소리나는 그 거 틀어놓고 있고. 의자는 옛날 극장식 의자에 앉아있다가 마이크로 부르면 나가곤 했는데. 우리는 채널도 MBC KBS SBS만 고정돼 있었는데. 한번은 박찬호가 경기를 하는데 못보는 거야. 정규직들 방에 몰래 보다가 걸리면 '야 용역' '야 렌트카' '나가 시키야' 물 먹다 걸려도 '니네 방에서 사먹어 시키야' " 그래서 파견직들은 한달에 2천원씩 돈을 걷어서 물을 사먹었다고 한다. "아까워서, 돈이 없으니까, 파견 노동자들끼리도 물을 먹는 것만 허용하기로 하고, 떠 가지는 못하게 했지" 출장 중에 정규직 노동자를 추월이라도 하면 도착지에서 불려다녀야 했다. 정규직한테 아침에 인사를 안 하고 고개를 돌리거나, 고분고분 하지 않아도 불러다녔다. 이튿날 동료가 보이지 않으면 으례히 교체된 걸로 여겼다. 파견 노동자들이 당시에 제일 무서웠던 건 사용자도 파견업체도 아니라 가까이 있는 정규직이었다. IMF 이후 정규직에 대한 강제 명예퇴직이 실시됐고, 그 자리를 파견 노동자들이 채웠다. 99년 KBS는 정규직 노동자 3백명을 정리해고 했는데, 파견 노동자들의 속이 후련했을 법도 하다. '니들도 비정규직으로 살아봐라' "파견으로 다시 온 사람들이 있었고. 그 당시에 울화통 터지게 얘기했지. 당신들 정규직으로 있을 때 얼마나 설움을 줬냐. 생각나냐." 짝수해, 파견노동자의 시련 지금도 그렇지만, 파견노동자에게 짝수 해는 시련이었다. 파견법이 시행되고 만 2년을 앞둔 2000년 6월, 운전직·카메라 보조·오디오맨·웹디자인 등 방송사 파견노동자들에게도 계약해지가 들이닥쳤다. SBS 437명을 시작으로 MBC 160명, KBS에서도 227명이 해고됐다. 전체적으로는 5천명 가량의 파견노동자가 그 해 계약해지된 걸로 추정된다. 6년 넘게 근무한 주씨를 비롯해, 파견노동자들은 5년에서 길게는 15년까지 KBS에서 일해 왔었다. '이렇게 오래 있었는데, 자르진 않겠지'라는 믿음은 여지없이 깨졌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민중의소리 김철수 " KBS는 '우리는 꼭 쓰고 싶다. 그런데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니 2년 후에 다시 오면 써주겠다. 파견법을 원망해라' 그랬어. 우리는 법을 몰랐는데, 아 파견법이 2년에 한번 쓰고 버리는 건가 보다 그때 알았지." KBS 운전직은 씨랜드 참사 당시, 현장을 촬영한 필름을 입수하고 삼풍백화점 붕괴 때도 인도를 타고 가서 특종을 만드는 등 뉴스보도에 큰 공을 세워왔다 실상 성수대교, 인천호프집 화재, 연천댐 붕괴 등 모든 특종은 운전직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한다. 처음 모인 파견노동자들은 운전직이었다. "그렇게 일했는데도 우리는 칭찬 한번 못받고. 전부 해고된 거지. 처음엔 딱 열명을 만들었어. 그런데 모인 친구들이 안할라 그래. '나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노조를 만들어야 못 받은 연월차라도 받는다고 설득을 했어. 나도 이렇게 까지 올 줄 몰랐지. 골탕이나 먹이고 가자. 10년을 있었는데 KBS가 책임지는 게 뭐냐." 방송사비정규노조, 화장실을 접수하다 '비정규'라는 이름을 넣고 노조를 만든 건 이들이 처음이었다. 난데없이 한글학회에서 전화가 오기도 했단다. '한글을 똑바로 알자. 국어 사전에 비정규 노동자라는 건 없다. 불안정 노동자로 고쳐야 한다' 주봉희 위원장은 '군대도 정규군이 있고, 빨치산 같은 비정규군이 있지 않냐"며 이 이름을 고집했다고 한다. 주봉희 위원장도 처음부터 조합원 없이 싸운 건 아니다. 초기 400가까운 조합원은, 경찰특공대가 롯데호텔노조를 '작살'냈던 6월 29일에 방송사비정규직노조도 야간에 '습격'을 받고 27명으로 줄었다. 남은 이들은 투쟁을 할래도, 사무실도 투쟁기금도 없었다. 해고자들에겐 당장 깃발 하나를 살래도 '돈'이었다. 현장에 있을 때도 기본급 72만 5천원에, 식대 5만원. 시간외 근무만 100시간을 해야 겨우 100만원을 채웠던 인생들이었다. "여의도에서 15일을 보냈지. 회의하러가자 하면 여의도야. 그 땐 나무도 없고 그늘도 없어서. '형님 마포대교 갑시다'하면 거기 가서 회의하고 일정 짜는 거야. 2시에 대학로에 롯데호텔 집회 갔다가, 이랜드 집회 갔다가 저녁엔 다시 서강대교 밑으로 와서 막걸리 한잔 하고." 한번은 비가 '억쑤로' 쏟아진 날, KBS로 들어가려다가 여의치가 않자 여의도 공원 남자 화장실을 접수하게 됐다. "거기서 전략회의 했어. 우리는 아주 판이 이상해.. 조합원 꿔서 집회하고, 화장실에서 생쥐같이 비맞고 냄새나는데 회의하고 그랬어" 조합원도 없는 노조위원장 ⓒ민중의소리 김철수 ⓒ민중의소리 김철수 구차하고 승산없게 보이는, 비정규직의 싸움. 조합원들은 하나둘 떠나게 되고 결국 두달 후엔 주씨와 송진수(가명) 총무국장 이렇게 둘만 남게 된다. "나중엔 미안하더라고. 9월 15일인가 비가 무지 많이 왔는데. 롯데호텔 투쟁에서 '너 들어가라. 벌어야 하지 않냐' 그 놈이 딸만 둘인데 내가 깃대를 뺐었지. '보고 싶으면 핸드폰으로 전화해라' 비 쫄딱 맞고 막걸리 한잔 하고 울고 갔지. 삼각지까지 걸어가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고 거기서 헤어졌어. '형도 좀 있으면 들어갈 거다' " 당시를 떠올리는 듯 주씨의 눈 언저리가 발갛다. "그 동지 가고 나 혼자 딱 남았잔아. 허망하더라구. 아무도 없는거야." 조합원도, 사무실도, 당장의 차비도 없었던 주씨는 굶기를 밥먹듯 했고 잠자리조차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김종철이 당시 부대변인이었어. 그 친구가 파견철폐공대위 집행위장이던 윤애림 동지 선배야. 애림이가 연락을 해서 당 회의실 하나 줄 수 없겠냐고 해서 책상을 들어내고 그렇게 시작했지" 잠자리가 해결되도 배가 고픈 건 여전했다. 한창 더운 여름에 해고된 터라, 먹는 것도 시원찮은데 '꼭 나같은 비정규직의 피를 빨아먹는' 모기가 그는 그렇게 미웠다고 한다. "오늘은 어떻게 밥을 먹나. 집회가서 동지들 따라가는데. 그 동지 못쫓아가면 밥 못먹는 거고. 지하철도 많이 몰래타고. 어떻해. 집회는 가야하고. 조끼 입고 쪽팔리기는 하는데" 2000년 12월까지 민주노동당에서 더부살이를 하면서 이랜드, 한통계약직노조와 식구처럼 지내던 주 위원장은 겨울에 용두동에 있던 민주노총 서울본부를 '접수'했다. 2001년에는 굶지 않으려고 50을 바라보는 그가 명동성당 농성장 사수대를 자원했다. 당시 명동성당에는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차봉천 초대 공무원노조 위원장 등이 수배상태로 농성중이었다. '싸워야지, 여기오면 어떻하냐'는 단 위원장의 질문에 주씨는 '여기와서 싸우면 되요'라고 했지만 실은 '밥 세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명동성당에서 자고 새벽같이 마이크 차를 끌고 나와서 혼자 집회를 했다. 레미콘 노조원들을 꿔서 집회를 하다 혼자 남은 주씨에게는 사실상 '연대'가 없는 희망이란 없었을게다. 복직하던 날, 그가 떠올린 얼굴들은 그래서 참으로 많을 수 밖에 없었다. 2001년 여의도를 접수했던 레미콘 노동자들은 기꺼이 주봉희 위원장의 조합원이 되어주었다. 주봉희 위원장의 표현을 빌자면 그는 "사람 참 좋은 장문기 위원장에게 조합원을 꿔서" 집회를 했다. 경찰의 '도끼진압'으로도 유명한 레미콘 노동자들은, 그래서 경찰서에 끌려갈 때면 "왜 KBS 앞에 가서 그러느냐"는 질문을 받게 됐다. "하루도 안빼고 여의도에 갔는데. 내가 특이하잖아. 대가리에 파견철폐를 쓰고 다니니. 금방 알아보는 거야. 나는 돈이 없으니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얻어먹는 거지. 조합원 꿔다가 아침 집회 한 놈은 나밖에 없을 거야. 아침에 방송차 끌고가면 조별로 쭈욱 밥먹고 있어 그럼 '조합원 좀 꿔조' 그러면 KBS까지 쌀자루 뒤집어 쓰고 밥그릇 뚜들기면서 와.. 50명이고 200명이고 거의 한달을 꿔다 썼네." 한국은 월드컵 열풍이 불면서 바디페이팅도 붐이 일었지만, 주 위원장은 이미 바디페인팅엔 전문가였다. 머리에 '파견철폐'라는 붉은 글씨를 쓴 주봉희 위원장이 집회장에 없으면, 사람들이 궁금해 할 정도였다. 주씨는 머리카락은 0.7cm 정도가 가장 글씨가 뚜렷하게 나온다고 설명한다. 더 길어지면 글씨가 드러눕게 되어 '파견'이 '파전'이 된다고. "한달 되면 깎아야 하는데.. 돈이 있어야지. 그래도 돈 생기면 밥은 굶어도 이거부터 했어. 사실 파견법 철폐라는 프랑카드, 구호하나 먼저 걸어주는 데가 없었지. 노동계에서도. 2003년에 경제특구법에 파견이 들어갔을 때 넣기 시작했지.. " 박상윤, 김주익, 배달호, 이용석, 정종태.. 주봉희 위원장은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다. 특히 주씨에겐 고 박상윤 서울본부 사무처장이 가장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아픔일 것이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민중의소리 김철수 "상윤이가 굉장히 애썼지. 상윤이가 살아 있을 때, 서울본부에서 주사모(주봉희를 사랑하는 모임)라는 걸 만들었어. 서울본부 대의원들하고 당시 한 삼심명 모집해서 CMS로 한달에 25만원에서 30만원씩. 집회 나갈 때 차비하고 밥먹으라고." "숙소가 서울본부 였는데, 3층이 내 방이야. 돈이 없어서 아침에 라면 반쪽에 고추장 풀어서 끓여먹고 책상위에 놓으면, 저녁에 와보면 박상윤, 여성호가 다 끓여먹고 없는거야. 어쩔 때 보면 스프 흔들어서 아작아작 먹고 있어. 내가 뭐라 했지." 고 박상윤 사무처장은 노동절은 있어도 생일은 몰랐던 주봉희 위원장에게, 새벽같이 몰래 끓여놓은 미역국과 초코파이를 챙겨 주기도 했다. '아침부터 소주 한잔 했던 생각 나네.' 그는 정말 무지하게 울었다. 주봉희 위원장은 '그래도 민주노조운동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 그런 활동가들, 내 숨을 던진 활동가들'이라고 믿는다. "김주익 동지는 손이 이 만해. 키도 크고. 2002년 8월에 부산에 갔더니 '위원장님 파견철폐 왜 지웠어요' '아. 머리가 빠져서' 다음달에 다시 쓸 거라고. 그게 마지막이었지. 2001년 배달호 열사부터 시작해서 당시엔 참 울다가 지쳤어. 이용석 동지는 하필 내 옆에서 분신했어.. 불이 확 올라오더라구. 몇 십초 순간이야. 내가 멎었어. 심장도 멈추고, 머리도 뭘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나. 피켓을 막 뽑아서 불을 끄고 난 다음에는 화기를 다 먹었어. 그 동지 그렇게 보내고 이듬해 복직되고 나니 이용석 열사가 돌아가셨잖아. 기가 막히더라구. 그렇게 아들 아들 하더니 서른 살 나이에.." 주봉희 위원장은 '이용석 동지는 전태일의 혼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말한다. 주씨가 걸어 온 길에는 그렇게 '힘에 겨워 굴리다 못 다 굴린' 덩이를 맡은 이들이 많았다. "정종태 동지도 잊을 수가 없지. 그 동지한테는 참 미안해. 내가 참 구박 많이 했어. 이문동 옥탑방에 살았는데 여름엔 30도 겨울엔 영하 20도. 요만한 이불 하나에 치약 치솔 밖에 없었다니까. 지가 입던 옷하고. 걔도 나만큼이나 굶었어. 저녁에는 결국 장충단 공원에 올라가서 소주. '너 조직 관리 그렇게 못하냐' 내가 많이 혼내고. 내 생각엔 4천 대오 있을 때를 일깨워 주려고 했는데. 밥이라도 제대로 먹고 건강관리 했다면 더 살았을텐데." 계란으로 바윗돌을 쳐서 이겼지. 다 할 수 있다고 주봉희 위원장은,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한때 '도망'쳤었다. "2002년이 제일 힘들었던 때인데. 한통계약직 깃발 내리고 나서. KBS, MBC 다 무너지고. 나도 이제 여기서 끝내자. 그만 하고 내려가야겠다. 연세대에서 같이 보따리를 쌌어. 한통 동지들이랑 같이 울고 그 길로 온양으로 내려간거야. 농사를 짓든 다른 진로를.." 주씨는 그러나 깃발을 내리지 못했다. 그를 붙잡은 것은 고 박상윤 사무처장과 같은 그런 '동지'들이었다. "누나네서 한달 반 정도 있다가 핸드폰을 꺼놨었는데, 받지 말았어야 하는데, 파견법 시행 5년이라고 철폐연대 서울본부 민변에서 뭘 하는데 발언해 달라고. 그게 계기가 되서 김혜진 동지나 이런 동지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죽기야 하겠냐' 여성호 박상윤도 '아 형님 도망갔다'고 난리를 피워서 2002년 말까지만 간다고 했는데 거기서 붙잡힌 거지." 47살에 해고된 주봉희 위원장은 결국 52살에 복직했다. 다른 게 있다면 그가 운전직이 아닌 사무직으로 배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주씨는 이제 실제 조합원들이 있는 방송사비정규직노조의 위원장이라는 점이다. "당시에 어떤 사람들은 계란으로 바윗돌치기라고 그랬지. 내가 계란으로 바윗돌을 쳐서 이겼지. 다 이길 수 있다고. 당신들 어차피 우리같은 사람 필요한 거 아니냐는 거지." ⓒ민중의소리 김철수 ⓒ민중의소리 김철수"에 해당되는 글 11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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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2/05 민주노총 총파업 2일차 2만여명 파업 지속
- 2005/11/30 단병호 한국노총 안 동의 안돼
- 2005/11/30 한국노총 비정규법안 최종승부수 던져
- 2005/11/27 이래고 타살이 아니란 말인가!"
- 2005/11/26 [고] 전용철 열사의 명복을 빕니다
- 2005/11/24 파워카메라 시인 주봉희
- 2005/11/14 민주노총12월1일 총파업 선언
- 2005/11/01 제발 아주버님 살려주세요
- 2005/11/01 <16신>하이스코 Q동 진압준비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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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병호, "한국노총안 동의 안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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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제 사유제한, 불법파견시 즉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고용 의제 포기 못해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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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은영 기자 hallola@jinbo.net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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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30분 경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은 국회 브리핑 룸에서 "한국노총의 안에 유감스럽게도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단병호 의원은 △기간제 사유제한과 △파견 대상업종 및 기간 현행 유지 △불법파견시 즉시 기간의 정함이 없는 형태로 고용의제는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며, 사유의 범위에 대해서는 유동적으로 논의해 볼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단병호 의원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안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기왕 만들 것이면 실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법안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하며 현재 거론되고 있는 법안이 '보호'의 역할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함을 강조했다. 또한 단병호 의원은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는 비정규 보호 법안이 국회에서 입법화 되는 과정이 단 이틀만에 진행된다는 것, 법안을 만드는 국회 의원들이 충분한 고민과 토론이 되어 합리적인 대안들이 만들어지기 보다 정부나 여당이 판단하는 대로,절차적으로 이어져 갈 가능성이 높아 이에 대한 우려를 표시한다"고 덧 붙였다. 배고프다고 독이 든 빵을 줄 순 없어 단병호 의원은 "현재 한국노총이 발표한 내용으로는 850만이 넘는 비정규직을 축소시키고, 극단적인 차별을 받고 있는 문제를 해소시킬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대단히 부정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며 한국노총의 입장에 대해 2가지 입장에서 반대 의견을 표시했다. 하나는 한국노총이 기간제에 대한 사유제한을 포기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불법파견에 대한 고용의제 규정을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단병호 의원은 "기간제에 대한 사유제한 없이 기간제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간제 문제의 핵심은 오로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함부로 기간을 설정해 근로기준법상의 해고 제한 규정을 회피하고 그 결과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노동기본권은 고사하고 인권조차도 보장 받지 못하는 처지로 내몰리게 된다"고 지적하며 "기간제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어야 하고 다만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 기간제 노동자들을 보호할 법률이라면 이런 원칙을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국노총이 불법파견 및 무허가 파견에 대해 즉시 고용보장 조치를 취하도록 한 것은 현행 파견법 규정 및 정부 개정안에 비춰 진척된 것"이라고 평가하며 "그러나 그 보장의 정도가 고용‘의무’에 그치고 있는 것은 현행 파견법에 비추어서도 후퇴한 것이다. 또한 이처럼 퇴시켜 고용의무 규정으로 변경시긴 정부안을 한국노총이 수용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것은 명백한 개악"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후 계획과 관련해 단병호 의원은 "우선 환노위에서 심의과정에서 최선을 다해 입장을 피력하겠다. 최대한 내용에 노동계의 희망을 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심의에 충실히 임하고 이후 대응은 그 때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단병호 의원은 "이목희 열린우리당 의원이 오늘 전체회의에서 비정규법안 관련해서 노동계 요구의 90%를 수용했기 때문에 잘 될 거라 했다고 한다. 글쎄 어떻게 될지 최선을 다하고, 지켜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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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11월30일 16시56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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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 http://media.jinbo.net/news/view.php?board=power_news&id=1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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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3만 여 노동자들 모여 ‘전국노동자대회’ 열어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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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꽃맘 기자 iliberty@jinbo.net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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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환 비대위원장, ‘총파업 투쟁지침 1호’ 발표
민주노총이 정부의 비정규 법안을 막아내기 위해 12월 1일 오전 10시를 기해 총파업 투쟁에 돌입할 것을 선언했다.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위한 찬반투표의 성공적인 가결을 위해 오는 25일 자정까지 투표기간 연장을 결의하고, 23일부터 비대위 위원장을 비롯한 18개 연맹 지도부와 단위노조 간부들을 중심으로 국회 앞 농성투쟁에 돌입할 것을 선포했다. 13일, 민주노총은 광화문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하고 ‘총파업 투쟁지침 1호’를 발표했다. 이 날 전국노동자대회에는 4곳에서 사전 결의대회를 마치고 온 3만 명의 노동자들이 함께 했다. 전국노동자대회 곳곳에서는 비정규직 투쟁의 절실함을 알리는 다양한 선전물과 민주노총의 혁신을 바라는 목소리들이 가득했다. 사전행사에서는 61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크레인을 점거하고 10여 일 동안 투쟁을 벌였던 현대하이스코비정규지회 조합원들이 연단에 올랐다. 조합원들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협약서 1장을 받고 크레인에서 내려왔다. 그동안 한 번도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았던 사측과 작성했던 협약서 1장이 너무나 소중했다”며 “아직도 11명의 동지들이 교도소에서 투쟁하고 있다.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며 끝까지 연대할 것을 호소했다.
"비정규직 철폐 투쟁이 전태일 열사의 정신“ 4시 15분, 35년 전 "근로기준법을 지켜라“고 외치며 산화해 간 전태일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전국노동자대회’ 본대회가 시작되었다. 종각을 넘어서까지 늘어선 노동자들은 ”열사정신 계승하여 비정규직 철폐하자“고 목소리를 모았으며 수많은 깃발들이 단상으로 입장했다. 전대환 민주노총 비대위 위원장은 “민주노총 10년의 역사는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이어 받기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의 역사였다. 우리는 민중의 대변인으로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자본가 정권의 탄압에 맞서 힘찬 투쟁을 해왔다”며 “민중들에게 새 희망과 기대를 안겨준 민주노총은 자본가 정권의 탄압으로 흔들리고 있으며, 내부 혁신의 과제를 가지고 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민중의 공장을 넘는 진정한 연대 만이 필요하다. 이제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총파업 투쟁으로 힘차게 나아가자. 정규직, 비정규직 따로 없으며, 사무직 노동자와 공장노동자가 따로 있지 않으며, 영세사업장과 대기업 노동자가 따로 있지 않다. 오직 노동자 계급이라는 이름 하나로 희망을 만들기 위해 총진군 하자”고 목소리 높였다. '전국노동자대회‘에 연대하기 위해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연단에 섰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우리의 방향은 오로지 비정규직 철폐투쟁이다. 이것이 바로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다”며 “현재 노무현 정권은 노동자들을 다 죽이는 선무당 정권이며, 파렴치한 정권이다. 이 정권에 맞서 민주노총과 함께 단결하겠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결이 가장 중요하다”며 연대의 의지를 밝혔다.
노동자들 아펙 막으러 부산으로 이 날 집회에서 노동자들은 12일부터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아펙에 반대하는 투쟁을 함께 할 것을 결의했다. 민주노총은 오는 17일, 18일 부산에서 조합원 2만 명 이상이 참가하는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하고 투쟁할 것을 밝히기도 했다. 정광훈 전국민중연대 상임의장은 “한국의 노동자 농민을 다 죽이고 있는 부시가 부산에 온다. 부시는 쌀을 개방하라고, 노동자들을 해고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노동자 민중 농민을 다 죽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선봉자 아펙이 부산에서 열린다. 신자유주의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부산에서 힘찬 싸움을 벌이자”고 주장했다. 집회는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담은 수많은 만장들이 광화문 거리를 가득 채우고, 국회를 넘어 비정규보호입법 쟁취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힘찬 투쟁을 의미하는 상징의식으로 마무리되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더 이상 죽을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만들어 가자”고 목소리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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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늦게 도착해 친정에는 얼굴을 보이는 둥 마는 둥 하고 딸아이를 데리고 형님댁으로 향했습니다. 도착한 형님 댁에는 10년은 더 늙어버리신 것 같은 시어머니가 서계셨습니다.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도대체 왜 모든 가족들이 이렇게 애를 태우고 피를 말려야하는지 말입니다. 작은 엄마 왔다고, 예쁜 동생 왔다고 반기는 조카들의 모습이 눈물에 가려 어른거렸습니다. 밤 10시가 넘자 대문 밖에서 희미하게 조카들 이름을 부르는 형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한 여성이 들어오는데 저는 저희 형님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가뜩이나 몸이 약한 형님이신데…. 얼마나 애를 태우고 얼마나 울부짖었는지 이게 사람인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아니, 그런 몸으로 어떻게 그 농성장에서 음식물 좀 넣어 달라, 내 남편 좀 살려달라고 몇 시간을 울부짖고 매달릴 수 있는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힘들게 아주버님을 위해 애원하고 사정하던 내 형님은 자신의 안식처로 들어와서도 편히 쉴 수가 없었습니다. "동서, 오늘은 왼쪽 팔에 마비가 오더라. 밥 좀 넣어달라고, 사람이 좀 살게 밥 만 좀 넣어달라고 그렇게 붙잡고 애원하는데… 같은 사람들인데 어찌 그리도 매몰찰 수가 있을까? 우리가 꺼내달라는 것도 아니고 제발 사람 좀 살게 밥만 좀 넣어달라는 건데…."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밥만 좀 먹게 해달라고 온종일 애원하고 울부짖고 온 형님 앞에서 위로랍시고 하는 제 말이 큰 죄인 것 같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당신 남편은 저렇게 가족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데, 당신 입으로 들어가는 밥알 한 톨이 그렇게 죄스러울 수가 없어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는 내 형님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내 형님은 새벽 내내 자기 가슴을 치고, 혼자 베갯잇만 적시더니 아린 가슴을 안고 그렇게 또 남편을 위해, 남편을 살리기 위해 동도 터오지 않는 이른 아침에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하셨습니다.
그나마 저녁쯤 국가인권위에서 음식물 반입을 강요해 음식물을 넣어줄 수 있게 되었다던 형님의 목소리가 며칠 만에 처음 들어보던 밝은 목소리였는데 이도 구사대의 저지로 무산되어버렸다는 울부짖다 못해 원망의 목소리로 바뀌어 들려왔습니다. "동서, 오늘 나 저 사람 밥 넣어줄 때까지 못 들어가. 아니 안 들어가. 저렇게 며칠째 위에서는 사람들이 굶고 있는데, 자기네들은 수출해야 한다고, 수출품 싣고가는 차 길을 막는다는 이유로 우리들을 들어서 내팽개치더라. 위에서는 저렇게 사람들이 며칠째 굶고 있는데 말이야. 억울해서 못 들어가. 동서, 그래도 여기서는 애기아빠 얼굴은 못 봐도 우리 애기아빠 있는 곳은 보여. 얼굴은 못 봐도 있는 곳이라도 쳐다볼 수 있으니까 마음은 좀 편해. 애기들한테는 잘 좀 말해서 동서가 잘 좀 재워줘." 얼굴은 못 봐도 내 남편 있는 곳이라도 쳐다볼 수 있으니 그나마 마음이 편하다고 하십니다. 크레인 안에 들어가 계신 분들 중에 이제는 탈진해 쓰러지신 분들이 몇몇 속출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밤이 된 지금은 뚫린 지붕 위로 경찰들이 전등을 껐다 켰다 하면서 안을 비추고 있다고 합니다. 저들은 지금 감옥 안에 갇힌 악질죄수들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 천지에 어디에 있습니까? 해고당했다는 이유로 이제는 자회사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말의 대화의 기회도 주지 않고 지금의 상황을 수수방관하는 하이스코 높으신 분들. 제발, 저희 아주버님 좀 살려주세요.
엄마가 있어야지만 아빠를 구할 수 있다는 말에 이제까지 엄마와 한 번도 떨어져본 적이 없던 조카들도 제 앞에서 엄마보고 싶다 내색을 안 합니다. 혹여 자기들이 보고 싶다고 해서 엄마가 와 버리면 아빠를 구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입니다. 아이들을 안심시키고자 "저녁에 아빠 밥, 엄마가 넣어줬대"하는 저의 거짓말에 그 어린 놈들이 뭘 아는지 만세를 외치고 "작은 엄마, 그럼 이제 안심이네. 휴. 오늘은 맘 편히 자겠다"고 하더군요. 이젠 제발 어린 가슴에, 이 어린 내 조카들 가슴에 피멍들게 하는 일을 멈추어 주세요. 경찰은 현대의 경찰이지 국민의 경찰이 아니라는 말에 경찰들도 못 믿겠다는 내형님을, 내 아주버님을 제발 가정으로 보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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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신> 하이스코 Q동 진압준비 마무리 | |||
국가인권위 오후 1시30분께 현장방문 예정 | |||
[11월1일 오후 1:30] 오후 1시께 경찰은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 Q동 진압준비를 중단했다. 경찰은 공장 천장을 거의 뜯어놓은 상태이며 Q동 벽면 20m 높이에 위치한 벽면 입구를 쇠파이프 등을 이용해 완전 봉쇄했다. Q동의 경우 B동과 달리 처음 진압이 시도돼 농성자들이 크게 반발, 크레인 위에서 내려와 쇠파이프를 들고 출입문 쪽으로 내려오자 경찰은 소방호스를 이용, 물을 뿌리며 방패로 농성자들을 강제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공장 천정에서 경찰특공대들이 최루가스까지 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Q동의 경우도 매트리스 설치 등 안전장비를 설치하지 않아 경찰의 강제진압은 농성자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지난 10월31일 현장방문을 하기 위해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을 찾은 국가인권위가 재차 방문해, 농성자들의 상황을 살필 예정이다. 이정강 국가인권위 광주지역사무소장이 31일 방문했으나 경찰과 현대하이스코쪽의 반대해 출입을 저지당했다. 한편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투쟁 승리를 위한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새벽께 Q동과 B동 농성자들에게 물과 음식물이 반입된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또 대책위는 이날 충주에서 열리는 민주노총 대표자 수련회에 가족과 조합원들이 참석해 각 단위 노조 대표자들에게 연대투쟁을 호소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며 서울에 상경중인 가족대책위 회원들이 열린우리당 면담과 현대하이스코 본사에서 피켓시위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5신> 경찰, 창문 통해 농성자들과 대치 중 경찰 “진압 아닌 진압 준비일 뿐” [11월1일 오후 12:10] 12시 현재 경찰이 Q동 진압에 나선 가운데 Q동 벽면 중간에 위치한 문을 봉쇄하고 지붕 한 가운데를 철거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경찰은 Q동 출입구 앞을 지키고 있으며 11시30분께 Q동 출입문 왼쪽 창문 안으로 물대포를 쏘며 농성자들과 대치하고 있다. 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에 따르면 Q동의 경우 9일간의 농성 기간 동안 단 한차례 진압 시도도 없었는데 갑자기 진압을 시도해 농성자들이 극도의 흥분상태에 있는 상태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이날 새벽 경찰은 음식물을 반입해서 농성자들이 안심을 했던 상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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