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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늦게 도착해 친정에는 얼굴을 보이는 둥 마는 둥 하고 딸아이를 데리고 형님댁으로 향했습니다. 도착한 형님 댁에는 10년은 더 늙어버리신 것 같은 시어머니가 서계셨습니다.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도대체 왜 모든 가족들이 이렇게 애를 태우고 피를 말려야하는지 말입니다. 작은 엄마 왔다고, 예쁜 동생 왔다고 반기는 조카들의 모습이 눈물에 가려 어른거렸습니다. 밤 10시가 넘자 대문 밖에서 희미하게 조카들 이름을 부르는 형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한 여성이 들어오는데 저는 저희 형님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가뜩이나 몸이 약한 형님이신데…. 얼마나 애를 태우고 얼마나 울부짖었는지 이게 사람인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아니, 그런 몸으로 어떻게 그 농성장에서 음식물 좀 넣어 달라, 내 남편 좀 살려달라고 몇 시간을 울부짖고 매달릴 수 있는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힘들게 아주버님을 위해 애원하고 사정하던 내 형님은 자신의 안식처로 들어와서도 편히 쉴 수가 없었습니다. "동서, 오늘은 왼쪽 팔에 마비가 오더라. 밥 좀 넣어달라고, 사람이 좀 살게 밥 만 좀 넣어달라고 그렇게 붙잡고 애원하는데… 같은 사람들인데 어찌 그리도 매몰찰 수가 있을까? 우리가 꺼내달라는 것도 아니고 제발 사람 좀 살게 밥만 좀 넣어달라는 건데…."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밥만 좀 먹게 해달라고 온종일 애원하고 울부짖고 온 형님 앞에서 위로랍시고 하는 제 말이 큰 죄인 것 같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당신 남편은 저렇게 가족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데, 당신 입으로 들어가는 밥알 한 톨이 그렇게 죄스러울 수가 없어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는 내 형님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내 형님은 새벽 내내 자기 가슴을 치고, 혼자 베갯잇만 적시더니 아린 가슴을 안고 그렇게 또 남편을 위해, 남편을 살리기 위해 동도 터오지 않는 이른 아침에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하셨습니다.
그나마 저녁쯤 국가인권위에서 음식물 반입을 강요해 음식물을 넣어줄 수 있게 되었다던 형님의 목소리가 며칠 만에 처음 들어보던 밝은 목소리였는데 이도 구사대의 저지로 무산되어버렸다는 울부짖다 못해 원망의 목소리로 바뀌어 들려왔습니다. "동서, 오늘 나 저 사람 밥 넣어줄 때까지 못 들어가. 아니 안 들어가. 저렇게 며칠째 위에서는 사람들이 굶고 있는데, 자기네들은 수출해야 한다고, 수출품 싣고가는 차 길을 막는다는 이유로 우리들을 들어서 내팽개치더라. 위에서는 저렇게 사람들이 며칠째 굶고 있는데 말이야. 억울해서 못 들어가. 동서, 그래도 여기서는 애기아빠 얼굴은 못 봐도 우리 애기아빠 있는 곳은 보여. 얼굴은 못 봐도 있는 곳이라도 쳐다볼 수 있으니까 마음은 좀 편해. 애기들한테는 잘 좀 말해서 동서가 잘 좀 재워줘." 얼굴은 못 봐도 내 남편 있는 곳이라도 쳐다볼 수 있으니 그나마 마음이 편하다고 하십니다. 크레인 안에 들어가 계신 분들 중에 이제는 탈진해 쓰러지신 분들이 몇몇 속출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밤이 된 지금은 뚫린 지붕 위로 경찰들이 전등을 껐다 켰다 하면서 안을 비추고 있다고 합니다. 저들은 지금 감옥 안에 갇힌 악질죄수들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 천지에 어디에 있습니까? 해고당했다는 이유로 이제는 자회사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말의 대화의 기회도 주지 않고 지금의 상황을 수수방관하는 하이스코 높으신 분들. 제발, 저희 아주버님 좀 살려주세요.
엄마가 있어야지만 아빠를 구할 수 있다는 말에 이제까지 엄마와 한 번도 떨어져본 적이 없던 조카들도 제 앞에서 엄마보고 싶다 내색을 안 합니다. 혹여 자기들이 보고 싶다고 해서 엄마가 와 버리면 아빠를 구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입니다. 아이들을 안심시키고자 "저녁에 아빠 밥, 엄마가 넣어줬대"하는 저의 거짓말에 그 어린 놈들이 뭘 아는지 만세를 외치고 "작은 엄마, 그럼 이제 안심이네. 휴. 오늘은 맘 편히 자겠다"고 하더군요. 이젠 제발 어린 가슴에, 이 어린 내 조카들 가슴에 피멍들게 하는 일을 멈추어 주세요. 경찰은 현대의 경찰이지 국민의 경찰이 아니라는 말에 경찰들도 못 믿겠다는 내형님을, 내 아주버님을 제발 가정으로 보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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