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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기사들 대기실이 따로 있고 파견 대기실이 따로 있는데, 정규직 대기실은 개인 탁지라든가 의자, 옷장, TV도 칼라로 세대씩 있었지. 냉장고 공기청정기 에어콘 빵빵하고." \"시골에 보면 그거 벼 날리는 선풍기 있잖어. 이따만한 거. 왱왱 방아찍는 소리나는 그 거\" ⓒ민중의소리 김철수 ⓒ민중의소리 김철수 "우리방은 50평에 54명이 바글바글했는데, 17인치 흑백 로타리 TV에, 시골에 보면 그거 벼 날리는 선풍기 있잖어. 이따만한 거 왱왱 방아찍는 소리나는 그 거 틀어놓고 있고. 의자는 옛날 극장식 의자에 앉아있다가 마이크로 부르면 나가곤 했는데. 우리는 채널도 MBC KBS SBS만 고정돼 있었는데. 한번은 박찬호가 경기를 하는데 못보는 거야. 정규직들 방에 몰래 보다가 걸리면 '야 용역' '야 렌트카' '나가 시키야' 물 먹다 걸려도 '니네 방에서 사먹어 시키야' " 그래서 파견직들은 한달에 2천원씩 돈을 걷어서 물을 사먹었다고 한다. "아까워서, 돈이 없으니까, 파견 노동자들끼리도 물을 먹는 것만 허용하기로 하고, 떠 가지는 못하게 했지" 출장 중에 정규직 노동자를 추월이라도 하면 도착지에서 불려다녀야 했다. 정규직한테 아침에 인사를 안 하고 고개를 돌리거나, 고분고분 하지 않아도 불러다녔다. 이튿날 동료가 보이지 않으면 으례히 교체된 걸로 여겼다. 파견 노동자들이 당시에 제일 무서웠던 건 사용자도 파견업체도 아니라 가까이 있는 정규직이었다. IMF 이후 정규직에 대한 강제 명예퇴직이 실시됐고, 그 자리를 파견 노동자들이 채웠다. 99년 KBS는 정규직 노동자 3백명을 정리해고 했는데, 파견 노동자들의 속이 후련했을 법도 하다. '니들도 비정규직으로 살아봐라' "파견으로 다시 온 사람들이 있었고. 그 당시에 울화통 터지게 얘기했지. 당신들 정규직으로 있을 때 얼마나 설움을 줬냐. 생각나냐." 짝수해, 파견노동자의 시련 지금도 그렇지만, 파견노동자에게 짝수 해는 시련이었다. 파견법이 시행되고 만 2년을 앞둔 2000년 6월, 운전직·카메라 보조·오디오맨·웹디자인 등 방송사 파견노동자들에게도 계약해지가 들이닥쳤다. SBS 437명을 시작으로 MBC 160명, KBS에서도 227명이 해고됐다. 전체적으로는 5천명 가량의 파견노동자가 그 해 계약해지된 걸로 추정된다. 6년 넘게 근무한 주씨를 비롯해, 파견노동자들은 5년에서 길게는 15년까지 KBS에서 일해 왔었다. '이렇게 오래 있었는데, 자르진 않겠지'라는 믿음은 여지없이 깨졌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민중의소리 김철수 " KBS는 '우리는 꼭 쓰고 싶다. 그런데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니 2년 후에 다시 오면 써주겠다. 파견법을 원망해라' 그랬어. 우리는 법을 몰랐는데, 아 파견법이 2년에 한번 쓰고 버리는 건가 보다 그때 알았지." KBS 운전직은 씨랜드 참사 당시, 현장을 촬영한 필름을 입수하고 삼풍백화점 붕괴 때도 인도를 타고 가서 특종을 만드는 등 뉴스보도에 큰 공을 세워왔다 실상 성수대교, 인천호프집 화재, 연천댐 붕괴 등 모든 특종은 운전직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한다. 처음 모인 파견노동자들은 운전직이었다. "그렇게 일했는데도 우리는 칭찬 한번 못받고. 전부 해고된 거지. 처음엔 딱 열명을 만들었어. 그런데 모인 친구들이 안할라 그래. '나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노조를 만들어야 못 받은 연월차라도 받는다고 설득을 했어. 나도 이렇게 까지 올 줄 몰랐지. 골탕이나 먹이고 가자. 10년을 있었는데 KBS가 책임지는 게 뭐냐." 방송사비정규노조, 화장실을 접수하다 '비정규'라는 이름을 넣고 노조를 만든 건 이들이 처음이었다. 난데없이 한글학회에서 전화가 오기도 했단다. '한글을 똑바로 알자. 국어 사전에 비정규 노동자라는 건 없다. 불안정 노동자로 고쳐야 한다' 주봉희 위원장은 '군대도 정규군이 있고, 빨치산 같은 비정규군이 있지 않냐"며 이 이름을 고집했다고 한다. 주봉희 위원장도 처음부터 조합원 없이 싸운 건 아니다. 초기 400가까운 조합원은, 경찰특공대가 롯데호텔노조를 '작살'냈던 6월 29일에 방송사비정규직노조도 야간에 '습격'을 받고 27명으로 줄었다. 남은 이들은 투쟁을 할래도, 사무실도 투쟁기금도 없었다. 해고자들에겐 당장 깃발 하나를 살래도 '돈'이었다. 현장에 있을 때도 기본급 72만 5천원에, 식대 5만원. 시간외 근무만 100시간을 해야 겨우 100만원을 채웠던 인생들이었다. "여의도에서 15일을 보냈지. 회의하러가자 하면 여의도야. 그 땐 나무도 없고 그늘도 없어서. '형님 마포대교 갑시다'하면 거기 가서 회의하고 일정 짜는 거야. 2시에 대학로에 롯데호텔 집회 갔다가, 이랜드 집회 갔다가 저녁엔 다시 서강대교 밑으로 와서 막걸리 한잔 하고." 한번은 비가 '억쑤로' 쏟아진 날, KBS로 들어가려다가 여의치가 않자 여의도 공원 남자 화장실을 접수하게 됐다. "거기서 전략회의 했어. 우리는 아주 판이 이상해.. 조합원 꿔서 집회하고, 화장실에서 생쥐같이 비맞고 냄새나는데 회의하고 그랬어" 조합원도 없는 노조위원장 ⓒ민중의소리 김철수 ⓒ민중의소리 김철수 구차하고 승산없게 보이는, 비정규직의 싸움. 조합원들은 하나둘 떠나게 되고 결국 두달 후엔 주씨와 송진수(가명) 총무국장 이렇게 둘만 남게 된다. "나중엔 미안하더라고. 9월 15일인가 비가 무지 많이 왔는데. 롯데호텔 투쟁에서 '너 들어가라. 벌어야 하지 않냐' 그 놈이 딸만 둘인데 내가 깃대를 뺐었지. '보고 싶으면 핸드폰으로 전화해라' 비 쫄딱 맞고 막걸리 한잔 하고 울고 갔지. 삼각지까지 걸어가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고 거기서 헤어졌어. '형도 좀 있으면 들어갈 거다' " 당시를 떠올리는 듯 주씨의 눈 언저리가 발갛다. "그 동지 가고 나 혼자 딱 남았잔아. 허망하더라구. 아무도 없는거야." 조합원도, 사무실도, 당장의 차비도 없었던 주씨는 굶기를 밥먹듯 했고 잠자리조차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김종철이 당시 부대변인이었어. 그 친구가 파견철폐공대위 집행위장이던 윤애림 동지 선배야. 애림이가 연락을 해서 당 회의실 하나 줄 수 없겠냐고 해서 책상을 들어내고 그렇게 시작했지" 잠자리가 해결되도 배가 고픈 건 여전했다. 한창 더운 여름에 해고된 터라, 먹는 것도 시원찮은데 '꼭 나같은 비정규직의 피를 빨아먹는' 모기가 그는 그렇게 미웠다고 한다. "오늘은 어떻게 밥을 먹나. 집회가서 동지들 따라가는데. 그 동지 못쫓아가면 밥 못먹는 거고. 지하철도 많이 몰래타고. 어떻해. 집회는 가야하고. 조끼 입고 쪽팔리기는 하는데" 2000년 12월까지 민주노동당에서 더부살이를 하면서 이랜드, 한통계약직노조와 식구처럼 지내던 주 위원장은 겨울에 용두동에 있던 민주노총 서울본부를 '접수'했다. 2001년에는 굶지 않으려고 50을 바라보는 그가 명동성당 농성장 사수대를 자원했다. 당시 명동성당에는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차봉천 초대 공무원노조 위원장 등이 수배상태로 농성중이었다. '싸워야지, 여기오면 어떻하냐'는 단 위원장의 질문에 주씨는 '여기와서 싸우면 되요'라고 했지만 실은 '밥 세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명동성당에서 자고 새벽같이 마이크 차를 끌고 나와서 혼자 집회를 했다. 레미콘 노조원들을 꿔서 집회를 하다 혼자 남은 주씨에게는 사실상 '연대'가 없는 희망이란 없었을게다. 복직하던 날, 그가 떠올린 얼굴들은 그래서 참으로 많을 수 밖에 없었다. 2001년 여의도를 접수했던 레미콘 노동자들은 기꺼이 주봉희 위원장의 조합원이 되어주었다. 주봉희 위원장의 표현을 빌자면 그는 "사람 참 좋은 장문기 위원장에게 조합원을 꿔서" 집회를 했다. 경찰의 '도끼진압'으로도 유명한 레미콘 노동자들은, 그래서 경찰서에 끌려갈 때면 "왜 KBS 앞에 가서 그러느냐"는 질문을 받게 됐다. "하루도 안빼고 여의도에 갔는데. 내가 특이하잖아. 대가리에 파견철폐를 쓰고 다니니. 금방 알아보는 거야. 나는 돈이 없으니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얻어먹는 거지. 조합원 꿔다가 아침 집회 한 놈은 나밖에 없을 거야. 아침에 방송차 끌고가면 조별로 쭈욱 밥먹고 있어 그럼 '조합원 좀 꿔조' 그러면 KBS까지 쌀자루 뒤집어 쓰고 밥그릇 뚜들기면서 와.. 50명이고 200명이고 거의 한달을 꿔다 썼네." 한국은 월드컵 열풍이 불면서 바디페이팅도 붐이 일었지만, 주 위원장은 이미 바디페인팅엔 전문가였다. 머리에 '파견철폐'라는 붉은 글씨를 쓴 주봉희 위원장이 집회장에 없으면, 사람들이 궁금해 할 정도였다. 주씨는 머리카락은 0.7cm 정도가 가장 글씨가 뚜렷하게 나온다고 설명한다. 더 길어지면 글씨가 드러눕게 되어 '파견'이 '파전'이 된다고. "한달 되면 깎아야 하는데.. 돈이 있어야지. 그래도 돈 생기면 밥은 굶어도 이거부터 했어. 사실 파견법 철폐라는 프랑카드, 구호하나 먼저 걸어주는 데가 없었지. 노동계에서도. 2003년에 경제특구법에 파견이 들어갔을 때 넣기 시작했지.. " 박상윤, 김주익, 배달호, 이용석, 정종태.. 주봉희 위원장은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다. 특히 주씨에겐 고 박상윤 서울본부 사무처장이 가장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아픔일 것이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민중의소리 김철수 "상윤이가 굉장히 애썼지. 상윤이가 살아 있을 때, 서울본부에서 주사모(주봉희를 사랑하는 모임)라는 걸 만들었어. 서울본부 대의원들하고 당시 한 삼심명 모집해서 CMS로 한달에 25만원에서 30만원씩. 집회 나갈 때 차비하고 밥먹으라고." "숙소가 서울본부 였는데, 3층이 내 방이야. 돈이 없어서 아침에 라면 반쪽에 고추장 풀어서 끓여먹고 책상위에 놓으면, 저녁에 와보면 박상윤, 여성호가 다 끓여먹고 없는거야. 어쩔 때 보면 스프 흔들어서 아작아작 먹고 있어. 내가 뭐라 했지." 고 박상윤 사무처장은 노동절은 있어도 생일은 몰랐던 주봉희 위원장에게, 새벽같이 몰래 끓여놓은 미역국과 초코파이를 챙겨 주기도 했다. '아침부터 소주 한잔 했던 생각 나네.' 그는 정말 무지하게 울었다. 주봉희 위원장은 '그래도 민주노조운동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 그런 활동가들, 내 숨을 던진 활동가들'이라고 믿는다. "김주익 동지는 손이 이 만해. 키도 크고. 2002년 8월에 부산에 갔더니 '위원장님 파견철폐 왜 지웠어요' '아. 머리가 빠져서' 다음달에 다시 쓸 거라고. 그게 마지막이었지. 2001년 배달호 열사부터 시작해서 당시엔 참 울다가 지쳤어. 이용석 동지는 하필 내 옆에서 분신했어.. 불이 확 올라오더라구. 몇 십초 순간이야. 내가 멎었어. 심장도 멈추고, 머리도 뭘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나. 피켓을 막 뽑아서 불을 끄고 난 다음에는 화기를 다 먹었어. 그 동지 그렇게 보내고 이듬해 복직되고 나니 이용석 열사가 돌아가셨잖아. 기가 막히더라구. 그렇게 아들 아들 하더니 서른 살 나이에.." 주봉희 위원장은 '이용석 동지는 전태일의 혼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말한다. 주씨가 걸어 온 길에는 그렇게 '힘에 겨워 굴리다 못 다 굴린' 덩이를 맡은 이들이 많았다. "정종태 동지도 잊을 수가 없지. 그 동지한테는 참 미안해. 내가 참 구박 많이 했어. 이문동 옥탑방에 살았는데 여름엔 30도 겨울엔 영하 20도. 요만한 이불 하나에 치약 치솔 밖에 없었다니까. 지가 입던 옷하고. 걔도 나만큼이나 굶었어. 저녁에는 결국 장충단 공원에 올라가서 소주. '너 조직 관리 그렇게 못하냐' 내가 많이 혼내고. 내 생각엔 4천 대오 있을 때를 일깨워 주려고 했는데. 밥이라도 제대로 먹고 건강관리 했다면 더 살았을텐데." 계란으로 바윗돌을 쳐서 이겼지. 다 할 수 있다고 주봉희 위원장은,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한때 '도망'쳤었다. "2002년이 제일 힘들었던 때인데. 한통계약직 깃발 내리고 나서. KBS, MBC 다 무너지고. 나도 이제 여기서 끝내자. 그만 하고 내려가야겠다. 연세대에서 같이 보따리를 쌌어. 한통 동지들이랑 같이 울고 그 길로 온양으로 내려간거야. 농사를 짓든 다른 진로를.." 주씨는 그러나 깃발을 내리지 못했다. 그를 붙잡은 것은 고 박상윤 사무처장과 같은 그런 '동지'들이었다. "누나네서 한달 반 정도 있다가 핸드폰을 꺼놨었는데, 받지 말았어야 하는데, 파견법 시행 5년이라고 철폐연대 서울본부 민변에서 뭘 하는데 발언해 달라고. 그게 계기가 되서 김혜진 동지나 이런 동지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죽기야 하겠냐' 여성호 박상윤도 '아 형님 도망갔다'고 난리를 피워서 2002년 말까지만 간다고 했는데 거기서 붙잡힌 거지." 47살에 해고된 주봉희 위원장은 결국 52살에 복직했다. 다른 게 있다면 그가 운전직이 아닌 사무직으로 배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주씨는 이제 실제 조합원들이 있는 방송사비정규직노조의 위원장이라는 점이다. "당시에 어떤 사람들은 계란으로 바윗돌치기라고 그랬지. 내가 계란으로 바윗돌을 쳐서 이겼지. 다 이길 수 있다고. 당신들 어차피 우리같은 사람 필요한 거 아니냐는 거지." ⓒ민중의소리 김철수 ⓒ민중의소리 김철수"에 해당되는 글 11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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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 브리핑] 천영세 직대, 이랜드, 뉴코아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간담회 내용 요약

- 일시: 2월 16일 (토) 10:00 민주노총 사무실
- 참석: 천영세 직무대행, 최순영 집행위원장, 주봉희 민주노총 부위원장, 박양수 뉴코아노동조합 위원장, 이남신 이랜드 일반노조 수석 부위원장, 이경옥 부위원장, 토로노 이주노동자 대표 대행 등 10여명


오늘 천영세 직무대행과 최순영 집행위원장이 이랜드-뉴코아 비정규직 투쟁 상황실을 방문해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이랜드-뉴코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참석했고, 함께 농성을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도 참석했다.

○ 천영세 직무대행 인사말

연일 투쟁하고 계신데 이제 찾아와서 미안하다.
당이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제대로 지원도 못했는데, 최근 당내 분열로 힘을 싣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앞선다.

여러 가지로 어렵지만 여기 계신 분들이 힘을 내서 비정규직 투쟁이 승리하기를 바란다.
최대한 빨리 당을 수습하여 동지들의 투쟁에 함께 할 것이고, 그 전에라도 가능한 투쟁에 함께 하겠다.


○ 발언 내용 요약

천영세 직무대행: 최근 당내 상황이 부끄럽고 안타까워 얼굴을 못 들고 다닐 정도다.

비정규직노동자: 조합원들이 걱정이다. 우려와 걱정이 많다.
이랜드투쟁 지원 대책위는 민주노동당이 주축이었는데, 최근 분당 상황에서 대단히 취약해 졌다. 빨리 당이 수습되었으면 좋겠다.

천영세 직무대행: 기대와 희망이 있을 때 걱정도 하고 우려도 하는데, 그래도 이때는 낫다.
좀 지나서 상관도 안하게 되면 그것이 큰일이다. 너희들 끼리 잘 먹고 잘 살아라 이게 무서운 것이다. 그 전에 다잡아 수습이 되도록 하겠다.

어제도 이명박 대운하 반대 100일 도보순례에 동참했다가 수경 스님, 도법 스님 등 여러 종교인들을 만났다. 그분들 얘기가 ‘민주노동당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말하기도 싫고 쳐다보기도 싫다’고 하시더라.

밖에서는 ‘이쪽저쪽 욕심 때문에 이렇게 된 게 아니냐’ 하시더라. ‘조금 양보해야지 어느 땐데 내부에서 싸우고 있느냐’고 하시더라. 어려운 상황에 직무대행이 와 줘서 고맙다고 하면서 우리보다 더 걱정하고 있더라.

주봉희 부위원장: 자고 일어나니 갑자기 물고 뜯고 하더라. 무섭구나 생각이 들었다.
저야 이편저편도 아니고, 떠돌이 운동을 한 사람이지만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랜드-뉴코아, 포스콤, KTX 등 비정규직 투쟁이 많은데, 사실 당이 저 정도만 안돼서도 9명 의원이 다시 뭉쳐 싸울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걸음 한걸음 힘들게 싸우고 있는데, 부여 농민회에서 쌀지원을 받아 떡국을 만들어 팔러 다니며 투쟁 자금을 모으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번 일로 우리 같은 비정규직은 안중에도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수배자들, 이주노동자들까지 여기에 와 있는 상황이다.

그 동안 버팀목이 당이었는데, 경찰, 주위 시선도 그 전과 차이가 많다.
당과 민주노총을 똑같은 시선으로 보며 니들도 분열된다는 것이다.

작년 홈에버, 뉴코아 투쟁을 할때는 힘도 받았다. 의원들, 대표와 함께 잠자고 투쟁도 했다.
그때는 정권, 자본이 만만하게 보지 못하고, 교섭이라도 했는데, 지금은 아예 교섭도 없다. 허망한 공전 상황이다.

극단적 생각을 갖는 때도 있다.
비정규직 투쟁이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절망적 생각이 드니...

당이 흔들리니 민주노총이 흔들리고 있다. 전현직 간부들이 탈당 기자회견을 하고, 토론회니, 창당선언이니 등이 나온다. 당을 제대로 하겠다고 하기 보다는 탈당 이야기만 나오니 우리 같은 비정규직은 어디에다 절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조상묘를 어디에 둬야 할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걱정이 앞선다. 탈당이니 이런 일 하는 사람들은 정규직 운동했던 사람들이다. 어떤 때는 한방 질러주고 싶다. 등 따시고 배부른 운동 했던 사람들이 이렇게 하니..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했는데, 비정규직이 배타적으로 죽임을 당하니...

한 사람이라도 빠져나가지 않게 신경 써 달라. 우리는 우리 앞이 급해 당에 대해 신경 쓰지 못한다. 어느 한 곳으로 쏠리거나 편들 그런 편한 상황이 아니다. 이쪽 저쪽 판단하지 않는다.

천영세 직무대행: 마음이 답답하다. 그렇지만 집이 어렵다고 농사 안 지을 수 있냐?
더 어려운 일도 많이 겪었는데... 이런 계제에 얼굴이라도 보고서 이야기도 하고..

창당 이래 최대 위기다. 나가는 쪽, 남는 쪽 어느 한 쪽이라도 잘 되면 대중들은 거기에 기대고 의지하면 된다. 그러나 나가는 쪽, 남는 쪽 다 죽는다. 총선이 코 앞이라 더 그렇다.
수구 한나라당, 사이비 개혁세력과 싸워야 되는데 같은 진보진영 내에서 싸우고 있으니.. 어제 형제였던 사람들과 싸워야 하는 형국이 되니... 외부와 결전을 해야 하는데, 내부의 추잡한 모습을 국민들께 드러내야 한다. 그래서 공멸이다. 다들 절실하게 모르는 것 같다. 감정, 정파 논쟁밖에 안보이는 것 같다. 한발 걸치고 있으니 지금은 덜 하지만...

주봉희 부위원장: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에 많이 싸웠다. 측근들과는 멱살잡이도 해 봤다. 스타일을 안다. 노동자는 안중에도 업는 전형적인 자본가 스타일이다. 종속관계로 확실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당 수습, 봉합이 우선이지만 때때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신경 써 달라. 총선에서 힘을 모으겠다. 이랜드-뉴코아 투쟁에 신경 써 달라. 대화라도 할 수 있게 노력해 달라. 월요일, 비정규직, 장투사업장이 회견을 하는데, 민주노총, 당이 함께 하면서 뒷받침하도록 하자.

비정규직 노동자: 다행스러운 것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투쟁하기로 결의했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 출범과 맞물리며 압박이 될 것이다. 우리는 사심이 없다. 300~500명 정도가 1주일 내내 다니면서 투쟁한다. 민주노총과 당이 함께 했던 투쟁이다. 많이 힘들더라도 함께 하자.

수도권 중심으로 투쟁이 진행되며, 투쟁사업장, 현장을 순회한다. 노동자는 안중에도 없는 이명박, 한나라당을 상대로 투쟁한다.

천영세 직무대행: 당이 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결합해서 함께 하겠다.

비정규 노동자: 뉴코아 강남, 홈에버 상암 투쟁에 함께 해 주신 것에 감사한다. 당이 함께 해 주신 것에 승리로 보답하겠다. 당이 어려운 것에 대해서 작은 노력을 하겠다. 힘내시라.
탈당을 하고 있는 분들도 열심히 함께 했던 분들이다. 갑자기 안보이니 대단히 곤혼스럽다.
우리 심정으로는 투쟁에 도움이 된다면 한나라당이라도 붙잡고 싶다. 헌신적으로 투쟁해 달라. 당내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는데, 비정규직 투쟁이 그런 투쟁이 아닌가. 투쟁사업장 전체가 진보진영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선봉대가 되자는 것이다. 물론 핵심은 현안문제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전체가 어렵다. 역략이 부족하더라도 이명박 정부와 싸워야 하기 때문에 결의하는 것이다. 당이 힘들더라도 힘을 내서 함께 하자.

이주노동자: 3명이 강제 출국 당했다. 라조 등이 당원이었는데 강제 출국 당했다.
이명박이 당선되면서 한기총의 압박이 들어와 갈 데가 없어 민주노총으로 왔다.

요즘 단속할 때 용역을 쓰고 있고, 신고를 하게 해서 잡으면 돈을 준다. 이주노동자 밀집지역에서는 어디든지 신고하고 있다.

주봉희 부위원장: 비정규직은 일회용컵이 되고 있다. 이주노동자 문제도 제도적으로 현재로는 막을 수 없다. 파견법, 기간제법 막으려 했지만 어려웠다. 당이 빨리 수습돼야 한다.
당당히 함께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연대한 유일한 당이었기 때문에 감히 이주노동자가 당원으로 등록할 수 있었다.

어느 집회 현장에서건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 민주노동당’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쏙 들어갔다.

천영세 직무대행: 면목이 없다. 비정규직, 정규직, 이주노동자 구분 없이 노동자는 하나다.
내부 분열을 보이고 있어 입이 10개라도 할 말은 없지만, 통큰 단결로 어려움을 헤쳐나가자. 반듯하게 있어도 역량이 부족해서 제대로 권리를 지키지 못했는데, 역량이 분열되어 미안하다. 그래도 동지들의 투쟁에 함께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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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차별시정 전국 첫 신청자 결국 해직

2007/10/02 07:37


(고령=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전국에서 처음으로 비정규직 차별시정을 신청한 노동자 가운데 1명이 결국 해직됐다.

농협 경북 고령축산물공판장은 근로조건에서 정규직에 비해 차별을 받고 있다며 두 달여전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시정을 신청한 한 노동자의 계약기간이 만료돼 오는 16일자로 고용 계약을 해지한다고 2일 밝혔다.

해직 위기에 처한 이 노동자는 지난 6년간 공판장에서 도축업무를 맡아왔으며 고용계약은 매년 자동 갱신돼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고용계약이 해지될 경우 지난 1일부터 시작된 경북지노위 심문회의에서 공판장의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대우가 인정돼 시정명령을 받아내더라도 정작 본인은 복직이 불가능해진다.

또 농협측이 시정명령에 불복하고 중앙노동위에 재심을 신청할 경우 최종 결론이 나올 때까지 다시 2~3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려 이 노동자와 함께 시정 신청을 낸 10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직업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만일 농협이 차별시정명령을 받아들인 뒤에도 '괘씸죄'를 적용, 남은 노동자들과의 재계약을 거부할 경우 지노위에 구제 신청을 내는 것 이외엔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는 것이 이들 노동자의 주장이다.

노동법률지원센터 '함께'의 이인찬 노무사는 "현행 차별시정 제도는 근로자 개인을 시정의 주체로 못박아 신청자의 신원이 그대로 드러나는 데다 회사측의 보복성 인사를 막을 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아 사실상 신청의 실익이 없는 제도"라고 말했다.

한편 농협 경북 고령축산물공판장에서 도축 업무를 맡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19명은 농협측의 용역 전환 방침에 반발, 지난 7월24일 경북지노위에 차별시정 신청을 냈으며 경북지노위는 지난 1일부터 이 문제에 관한 심문회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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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된 깃발 아래 모여라

2007/07/05 11:33
주봉희] 파견된 깃발 아래 모여라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파견 노동자는 6월30일생/…/ 두 번의 겨울을 지나 여름이 오면/ 축 늘어진 버들가지 하늘거리고/ 살랑대는 바람결에 나를 묻는다/…/ 파견노동자 보호한다더니/…/ 오늘이 2년이니 나가달란다/…/ 반팔 입고 왔다가 반팔 입고 쫓겨가는 나/ 유월 노동자/ 30일이 생일이라네.”(주봉희 시집 <어느 파견 노동자의 편지> 중에서)

지난 1월 말 치러진 제5기 민주노총 임원선거 당선자 중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사람이 있다. 주봉희(55) 부위원장이다. 주씨는 부위원장 당선자 5명 중에서 유일한 비정규직 노동자다.


△ 사진/ 한겨레 박종식 기자

 

 

1994년 한국방송 방송차량 운전기사로 입사한 그는 파견법이 발효된 날인 1998년 6월30일 ‘파견직’ 방송차량 운전기사로 재입사했다. 그러나 2년을 채우기 하루 전날인 2000년 7월1일 해고됐다. 파견법에 따라 2년마다 잘리는 파견노동자였기 때문이다. 그 뒤 5년은 외로운 싸움의 연속이었다. 같이 싸우던 방송사 파견노동자 동료들은 2년마다 해고돼 뿔뿔이 떠났고, 조합원이 없어서 노조를 끌고 가기도 어려웠다. “깃발하고 같이 다니면서” 혼자 싸워야 하는 나날이 계속됐다. “어디 기댈 곳도 없이 혼자 시위하고 싸우면서” 낙서한 70여 편의 시들은 2005년에 시집 <어느…>로 묶여 출간됐다. 혹독한 날들에 끄적거린 시편들은 고독한 내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주씨는 그동안 방송사의 운전직, 작가, 사무보조 등 비정규직을 모아 방송사비정규노조를 만들었다.

2004년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 후보가 민주노총 부위원장 선거에 두 번 출마했으나 번번이 낙선하고 말았다. “이번 민주노총 임원 선거에서도 어느 위원장 후보도 비정규직 후보를 부위원장 러닝메이트로 끌어들이려고 하지 않았어요. 정규직 대의원들의 표가 깎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무튼 저 혼자 독자 후보로 출마했죠. 기대하지 않았던 제가 당선됐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울먹여 가슴이 뭉클하더군요.” 그는 2월23일, 화재 참사가 발생한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에 내려가 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 취약한 주변부 노동자들을 위한 여러 사업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총 안에서 그는 또다시 ‘고독한’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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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노동관계법 실태 심각

2007/05/02 21:09
공공기관 노동관계법 위반 실태 심각
점검대상의 62% 법위반, 지방자치단체 78.1% 위반으로 법의 사각지대
임금체불, 금품체불,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 미지급 등 근로기준법 중대 위반 사례 높아, 최저임금 미지급 사례도 18건
노동부, 국회, 서울고등법원, 헌법재판소도 법위반 사실
노동사회위원회 2007-05-02
 
이 기사에 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위원장: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동부의 공공부문 비정규다수고용 사업장 예방감독 실적(2004년~2006년)을 정보공개 청구ㆍ분석해 오늘(2일) ‘공공부문 사업장 노동관계법 위반 실태보고서를 발간했다. 또한 지난 3년간 공공부문에 대한 노동부의 예방감독이 적절히 수행되었는지에 대해 감사원에 감사 청구했다.

참여연대는 공공부분에 31만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용되어 있는 현실에서 공공기관들이 비정규직 근로조건 보호에 있어 사용자로서 의무와 책임을 준수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고서 발간 취지를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부는 지난 3년간 비정규직을 다수 고용하고 있는 공공기관 1,085개를 대상으로 예방감독을 실시하였으며 그 결과 점검대상의 61.6%인 669개 사업장에서 1,626건의 노동관계법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관별 법위반 실태로는 지방자치단체 78.1%(251개 점검대상 중 196개 위반), 지자체 소속기관 61.6%(133개 중 82개), 공기업ㆍ정부출연(자)ㆍ보조기관 34.9%(166개 중 58개), 교육기관 74.3%(74개 중 55개), 중앙행정기관 및 소속기관 69.7%(231개 중 161개), 정부외청 및 소속기관 51.6%(159 중 82개), 헌법기관 및 소속기관 20.8%(24개 중 5개)로 나타났다. 참여연대는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해소라는 공공기관의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다면 점검대상의 62%가 노동관계법을 위반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비정규직들의 경우 노동관계법의 사각지대인 것으로 지적된다고 밝혔다.

위반내역으로는 70%가 근로기준법 위반이며, 근로기준법 중에서도 벌칙규정이 무거운 금품체불(제36조 위반), 임금체불(제42조 위반), 연장ㆍ야간ㆍ휴일근로수당 미지급(제55조 위반), 휴일 미준수(제54조 위반), 년차유급휴가 미지급(제59조제1항 위반) 등과 같은 위법행위가 높게 나타나 공공기관들이 기본적인 근로조건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대 사범으로 간주되어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는 금품제출, 임금체불, 연장ㆍ야간ㆍ휴일근로수당 미지급이 지난 3년간 지방자치단체 및 소속기관에서 182건, 중앙행정기간 및 소속기관 63건, 교육기관 28건, 정부외청 및 소속기관 26건, 공기업ㆍ정부출연(자)ㆍ보조기관 16건이 행해진 것으로 밝혀졌다.

노동자의 최저생계보호라는 측면에서 근로기준법 위반보다 죄질이 더 나쁘다고 할 수 있는 최저임금 미지급 사례도 지방자치단체 및 소속기관에서 6건, 중앙행정기간 및 소속기관 4건, 공기업ㆍ정부출연(자)ㆍ보조기관 3건, 교육기관 3건, 정부외청 및 소속기관 2건 총 18건이나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에 솔선수범해야 할 기관들에서 조차 위법행위가 나타났다. 노동부의 경우 금품체불, 년/월차유급휴가 미지급, 근로시간 미준수 (근로기준법 제36조, 제57조제1항, 제59조1항, 제52조 위반)한 것으로 나타나 노동관계의 주무부서임을 무색케 했다. 국회는 취업규칙 미작성, 성희롱 예방교육 미실시(근로기준법 제96조, 남녀고용평등법 제25조, 제13조제1항 위반) 등 3건의 위법 행위를 했으며, 서울고등법원은 근로조건 미명시, 퇴직급여보장법 미준수, 년/월차유급휴가 미지급, 생리휴가 미지급(근로기준법제24조, 제34조, 제57조1항, 제59조1항, 제71조 위반) 등 5건이 근로기준법 위반행위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는 헌법재판소마저도 근로조건 미명시(근로기준법제24조 위반)의 위법행위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부는 노동관계법을 위반한 669개 사업장에 대해 근로감독관 직무규정집에 따라 일괄 시정조치 명령을 내린 후 시정완료하면 내사종결하고 시정하지 않을 시에만 사법처리 한 것으로 밝혀졌다.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는 이에 대해 “위반내역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은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한 법이기 때문에 위반 시 벌금 이상의 형벌에 처벌하도록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안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일괄적으로 시정조치만 내린 것은 법과 행정의 심각한 괴리를 보여주는 것이며, 담당공무원에 대한 최소한의 징계조치나 해당 기관장에 대한 제재도 없이 시정조치만 내리는 것은 법위반이 반복되는 주요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성남시청(11건), 부산대학교(12건) 등 6건 이상 법을 위반한 34개 사업장에 대해서는 특별근로감독 또는 감사원 감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노동관계법 위반실태가 전반적으로 심각하며,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이하벌금의 형이 부과되는 중대사범에 해당하는 법 위반 사례도 다수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시정명령에 그친 노동부의 근로감독 조치는 매우 형식적인 것”이라며 공공부문 비정규직 다수 고용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이 적절했는지 여부에 대해 감사원에 감사 청구서를 제출했다.

참여연대는 노동부의 예방감독이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침해를 막기 위한 사전적 예방의 의미를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 예방감독 중점 점검사항을 근로감독관의 소관 법률 중 최소한의 형벌이 적용되는 중대한 사안까지 확대하고 ▶ 감사원의 정기적 감사를 통해 근로감독이 형식적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 위반사업장 담당자나 해당 기관장에 대한 징계 등 제재를 강화하고 ▶ 다수 법규 위반 사업장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또는 감사원 감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구체적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참여연대는 공공부문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위법적인 비정규직 사용관행이 엄격히 규제되지 못한다면, 그동안 정부가 말해 온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말뿐인 것으로 전락할 수 있다며, 근로감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향후 근로감독 행정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지 지속적인 모니터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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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23일(금) 오전 7시 30분 조선호텔에서 국제노동재단(이사장 박인상)과 인베스트코리아가 주최한 국내 외국투자기업(이하 외투기업) 대표자들을 대상 노동부장관 초청 조찬 강연회에서 나온 말이다. 이 상수 노동부장관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노동법을 개정했으므로 마음 놓고 투자와 경영활동을 하라며 외투기업대표자와 외국대사관 직원, 관계공무원들에게 주문했다.

강연요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의 노사관계는 안정화 추세에 있다. 대기업노조의 파업에 대해서는 부정적 시각이다 민주노총도 파업자제를 선언하였다. 현대중공업노사는 분배보다는 성장중심의 노사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노사패러다임이 과거의 대립적 노사관계에서 협력적 노사관계로 바뀌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노사관계, 취약계층보호(양극화 해소)방향을 가야한다. 이것이 노동정책의 핵심이다. 한국경제를 위해 노동정책도 글로벌 스탠더드로 가야 한다.

작년에 노사관계 로드맵을 개정했다. 고용유연성 문제의 핵심은 해고문제인데 이제 사용자가 노동자를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다. 불법해고까지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형사처벌 조항이 삭제됐다. 단지 복수노조금지가 유예된 것은 한국의 특수한 사정이 반영된 것인데 외투기업에도 좋을 것이다. 노사관계 틀을 새롭게 해야 한다. 과거의 노사정위원회는 비효율적이다. 이제 지역별, 업종별 의제로 나가야 한다. 임금, 산업안전 등에서 서로 윈.윈 해야 한다.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가 원하고 있다. 금년에 지역, 업종별 노사정협의회가 많이 생길 것이다.

이제까지 파업은 통과의례였다. 안 좋은 관행이었다. 대화로 해결하려는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대기업 정규직에서 매우 경직적이다. 그러나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에서는 매우 유연하다. 임금은 성과급과 임금피크제가 필요하다. 우리은행의 경우처럼 정규직화하면서 직군제로 임금을 조정했다. 이제 기능상 유연성이 필요한데 작업변경, 전주공장 2교대, 다기능 노동자 육성 등을 들 수 있다. 양적 경제성장에서 기술집약적 성장으로 가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하여 오해가 많은데 금년 7월 1일부터 바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금년 7.1부터 채용되는 비정규직이 2년 후인 2009.7.1부터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것도 300인 이상에 해당되고 100~300인 사업장은 2008년부터 단계적으로 실시된다. 특수고용자 문제는 근로자와 경영자의 중간개념으로인 ‘준근로자’로 해서 일정부분 보호할 예정이다. 다만 ‘캐디’의 경우는 ‘근로자의제’를 적용하여 노동3권을 부여할 방침이다. 보험설계사는 해당되지 않는다. 노동부는 일자리 창출위해 노력할 것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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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세상의 비정규직 주봉희’

2007/02/07 14:57
블로거가 만든 뉴스 > 시사  
글번호 15306  |  2007-02-05  |  추천 15  |  조회 27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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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비정규직 노동자 주봉희

[블로그1인시위] 66일째

 

[인터뷰]‘세상의 비정규직 주봉희’                    

 

 

민주노총 역사에 ‘파견노동자’주봉희를 올리다.

 

지난 달 26일 민주노총 제5기 임원선거가 마무리되었다. 언론과 세간의 관심은 온통 ‘이석행-이용식’ 제5기 신임 집행부에 쏠렸다. 신임 집행부의 노동운동의 방향이나, 노사정 복원 등을 예측하며 이것저것 주판알 튕기기에 바빴다.

 

그러나 이번 선거결과 가운데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인물, 관심도 없었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민주노총 부위원장에 당선된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노동운동 판에서 이름 꽤나 날리는 대공장 출신의 위원장도 아니었다는 것은 노동운동 역사에 비정규직을 새롭게 각인시킨 사건이다.

 

그는 2000년 6월 KBS 방송사 비정규직에서 해고되어 서럽고 피터지게 4년 1개월을 싸워야 했던 ‘세상의 마이너리티’이기도 했다. 또 인생의 절반을 철저한 비정규직으로 살아온 ‘세상의 비정규직’이라 불리기도 한다. 올해나이 쉰다섯, 민주노총 부위원장에 당선된 주봉희 부위원장을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만났다.

 

 

▲ 민주노총 부위원장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파견노동자' 주봉희

이제는 그를 진정한 '세상의 비정규직'노동자라 불러야 할 것이다.(사진 몽구)

 

희망 없는 비정규직 후보 ... 파견노동자 주봉희

 

그동안 민주노총 선거에서 비정규직 후보는 두 번의 고배를 마셔야했다. 2004년 선거에서  홍준표 한국통신계약직노조 전 위원장이 그랬고, 지난 해 보궐선거에서도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공식후보 이남신도 한계와 역부족을 드러내고 낙선했다.
  
“이번 선거는 2004년, 2006년 비정규직 후보 패배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고 말렸어요. 비정규직 후부들이 연거푸 패배하면서 많은 상처들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거든요. 주변에서 많이들 그런 거예요. ‘형, 이름이야 모르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는 것 아는데, 이름가지고 선거하는 것 아니다. 비정규직 후보 안 된다는 것 빤한 것 아니냐고 했죠.”

 

그랬었다. 노동운동 판에서 ‘파견노동자 주봉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민주노총 선거에서 비정규직 노동자후보가 당선된다는 것은 이름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민주노총 내부의 복잡한 정파적 이해관계로 비정규직 노동자후보가 ‘민주노총 입성’이란 그들만의 희망사항 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민주노총 지도부가 입만 열면 비정규직 문제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번 선거 때도 그랬지만 각 정파후보들 비정규직 문제 말 안하는 사람 없습디다. 그런데 정작 선거에서 비정규직 후보들 줄줄이 떨어지는 거예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어야 하는 마음에 상처와 실망감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

 

그는 두 번의 선거패배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안겨준 마음에 상처와 실망감은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한 서운함으로 이어졌다. “오른손으로는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면서, 왼손으로는 비정규직 해체를 하자는 것입니다. 민주노총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지난 두 번의 선거가 말해준다고 보시면 됩니다.”

 

 

▲ 조끼에서 꺼내어 보여준 파견법철폐 머리띠 

무려 7년간 저 마리띠를 하나만을 머리고 맸다고 한다. (사진 몽구)

 

투쟁조끼, 파견법철폐 머리띠가 나의 전부

 
그는 그야말로 가진 것 하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후보였다. 조직도 없고, 재정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후보들처럼 통일된 유니폼을 입었던 것도 아니다. 심지어는 비정규직 연대회의마저 공식후보로 추천하지 않았던 ‘무당파’로 홀로서기를 했던 것이다. 그는 투쟁조끼와 7년 동안 머리에 동여맸던 ‘파견법철폐’ 머리띠가 이번선거에서 전부였다고 했다.

 

“아마도 제가 불쌍해 보여서 지지해준 것 같아요.(웃음) 제가 가진 것이라곤 뭐가 있겠어요. 이 투쟁조끼하나 걸치고 ‘파견법철폐’ 머리띠가 전부입니다. 제가 7동안 이 머리띠 하나만 두르고 다닙니다. 이거 하나 믿고 끝까지 간다고 생각했는데... 저의 신념을 믿어주고 지지해준 동지들이 너무도 고맙지요.”

 

 

▲ 머리를 처음 물들일 때 무려 세 시간이나 걸렸다고...

머리가 너무 아퍼서, 마치 두개골이 열리는 통증을 참느라 눈물꽤나 흘렸다고 했다.

머리는 현재 정도의 길이가 적당하고 머리가 점점 자라면서 글씨가 더욱 선명해 진다고...  (사진 몽구)

 

파견법철폐 - 파견철폐 - 파전철폐 된 이야기 
  
주봉희 부위원장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의 말처럼 “제가 많이 특이하잖아요.” 집회 현장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얼굴에는 페인팅으로 머리에는 파견철폐 붉은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진 이색적인 사람.

 

“젊은 사람들처럼 저도 머리에 글자를 쓰면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대 앞에 있는 미용실을 여섯 곳이나 찾아가서 머리에 ‘파견법철폐’ 글자를 물들여달라고 했는데 다 못하겠다고 퇴짜를 놓는 거예요. 그러다가 우연찮게 광화문 뒤쪽에 있는 미용실에 갔다가 그곳에서 세 시간 동안 삼만원주고 했어요.”

 

처음엔 그곳도 승낙을 했다가 주인 마음이 바뀌어서 못하겠다고 또 퇴짜를 놓더란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그 글자 물들여 줬다가 국가보안법이나 경찰 조사 받는 것 아니냐’고 해서 제가 파견법 책을 들고 와서 그분한테 설명했어요. 국가에서 파견근로자 보호하겠다고 법을 통과 시켰는데, 지금 수천 명의 사람들이 계약해지 당해서 쫓겨났다. 그래서 이 파견법 철폐를 알리려고 하는데 이 방법뿐이라고 말했더니 해주더라구요.”

 

“그런데 자로 이리저리 재보더니 네 글자 밖에 안 나온다고 하는 거예요. ‘파견법철폐’라고 다섯 글자를 넣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뒤통수에다 쑬 수도 없고, 이마에도 쓸 수 없고 해서 고민하다 ‘파견철폐’ 로 물들인 겁니다.”

 

그는 ‘파견철폐’에서 ‘파전철폐’가 된 사연도 소개해 주었다.
“한번은 종각부근에서 집회를 한참 하고 있는데 할아버지 한분이 어깨를 툭 치면서 ‘너희 조상은 파전하고 무슨 원수가 졌기에 파전을 철폐하자고 하는 것이냐’면서 따지는 겁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거울을 보았더니 진짜 머리가 드러누워서 ‘파견’이 아니고 ‘파전’이 되어있지 뭡니까.”

 

 

▲ 파견법을 알리기 위해 민주노총 지도부와 조합 위원장들에게 수없이 설명을 했지만 관심조차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심지어는 민주노총 집회가 열리면 연단에 올라 마이크 한번 잡고서 파견법을 알리고 싶었지만 모두가 허사였다고... (사진 몽구)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았던 파견노동자

 

주봉희 부위원장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자주 우시냐고... 보도사진을 보면 우는 모습이 많다’고 했더니 “감정이 복받쳐 울 때가 많지요. 우울증으로 고생도 많이 했구요.”

 

그는 비정규직의 서러움으로 울어야 했었다. 98년 7월 1일, 파견제가 합법화됐고, 파견법 시행 만 2년을 앞둔 2000년 6월 방송사 파견노동자들에게도 계약해지가 통보되었다. SBS 437명을 시작으로 MBC, KBS에서도 해고의 바람이 거셌다. 그 해 계약 해지된 걸로 추정되는 파견노동자는 약 5천여명 정도라고 했다.   

 

“SBS는 민간 기업이고  KBS 공영방송이라 설마 자르겠어? 생각했지요. 제가 6년을 넘게 근무했거든요.”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얼마가지 못하고 여지없이 깨졌다.

 

그때부터 그는 거대한 공영방송 KBS와 싸움을 시작했다고 한다. 또 투쟁 사업장이나 집회현장은 단골처럼 안 가본 곳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처음 시작했던 노동조합원들은 하나 둘씩 떠나고 결국 두 달 후엔 자신과 조합 총무국장이 전부였다고 했다.

 

 

▲ 가족 이야기를 하면서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사진 몽구)

 

“롯데호텔 투쟁이 있던 날이었는데, 그날 무지하게 비가 많이 왔어요. 제가 총무국장에게 그랬죠. ‘딸린 식구들도 있는데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하지 않냐’ 그리고는 깃발을 빼었고 가라고 그랬죠. 나도 조합 정리하고 그만 둘 테니 집으로 들어가라고요. 그날 막걸리 한잔 하고, 비 쫄딱 맞으면서 삼각지까지 울면서 걸어가는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스무 번은 더 불렀을 거예요.” 

 

그는 돈이 없어 잠자리며 배고픔도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갈 곳이 없어서 용두동에 있던 민주노총 서울본부에 살림을 차렸다고 말했다. 또 2001년에는 명동성당에서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차봉천 초대 공무원노조 위원장 등이 수배상태로 농성을 하고 있었는데 세끼 밥을 얻어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사수대를 자원하기도 했단다.

 

또 그에게 가슴에 한처럼 남겨진 사람들도 많았다. 그는 고 박상윤 서울본부 사무처장이 가장 오랫동안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상윤이가 살아 있을 때, 서울본부에서 주사모[주봉희를 사랑하는 모임]라는 걸 만들어서 CMS로 한 달에 30만원씩. 집회 나갈 때 차비하고 밥 먹으라고 주곤 그랬는데...."

 

그에게 죽음을 알리는 노동자들의 슬픔은 가슴에 송곳처럼 꽂혀 있었다. 배달호, 이용석, 김주익, 정종태... “35년 전에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불살라 죽었다면 이용석은 ‘비정규직 철폐’하라며 죽은 것입니다. 세월이 이렇게 흘렀어도 변한 것이 없어요.”  그들을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맺히기 일쑤라고 했다.

 

 

▲ 세끼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명동성당 '사수대를' 자청했다는 주봉희 부위원장(사진 몽구)

 

 

비정규직은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없는 유산.


이처럼 질곡과도 같은 인생의 절반을 비정규직으로 살아온 주봉희 부위원장, 당선이후는 더 많은 일들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봉희 부위원장에게 비정규직 사업으로 선결해야 할 과제들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현안과제로 장기투쟁 사업장과 특수고용직 문제 그리고 노동악법 철폐를 꼽았으며, 민주노총 내 비정규직실 독립채산제 운영을 피력하기도 했다.


“기륭전자, KTX 여승무원. 하이닉스 매그나칩 등 오랫동안 현장에서 싸우고 있는 장기투쟁 사업장을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들 문제도 있습니다. 학습지노조, 덤프연대, 경기보조원 등 이들의 노동3권 또한 쟁취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주봉희 부위원장은 비정규직실 독립채산제 운영에 대해서도 말했다.


“민주노총의 비정규센터를 비정규실로 복원해야 합니다. 현재 비정규사업이 각기 분산되어 있거든요. 한마디로 ‘자기 성과를 내기 위한 사업’에 급급합니다. 이것을 각 지역별로 일원화시키고 중앙에서 집행력을 발휘할 수 조직개편과 민주노총 예산의 일부를 비정규사업에 배치하고 독립채산제로 체계적인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죠
.”

 

그는 마지막 말로 ‘비정규직만큼은 물려주어서는 안 되는 유산’이라고 했다.
“우리시대에 비정규직은 끝내야 합니다.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차별과 고통으로부터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자식에게 아름다운 노동은 물려주어도 비정규직만큼은 자식에게 물려주어서는 안 되는 유산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근변에 있는 자그마한 칼국수집으로 이끌었다. 배고픔과 서러움이 한움큼 올라올 것 같은 그곳에서 따뜻한 인간의 사랑이 오르는 칼국수로 늦은 점심을 떼웠다. 그리고 따듯한 미소와 웃음 가득한 '세상의 비정규직 주봉희'를 잠시 볼 수 있었다.

 

▲ 7년동안 저 머리띠를 하나만을 했다고...

머리에 '파견철폐'글씨로 물들인 사진이 명함에도 그대로 있었다.

(사진 몽구)

○ 인터뷰에 응해주신 민주노총 주봉희 부위원장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비정규직 근무 체험담, 그리고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비정규직 차별 사례를 댓글과 트랙백으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온라인에서 힘을 모아 봅시다.

 

 

★ 블로그 1인시위에 동참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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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직을 보호 못하는 엉터리 보호법(?) 무효화 하라.”
     아고라 네티즌 청원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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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우선...정파는 '선택'보다는 '배제'의 기준된 듯  
 






지난 5일부터 시작된 민주노총 제5기 임원선출 선거에서 민주노총 대의원들은 기호 2번 이석행-이용식 후보조를 신임 지도부로 최종 선택했다. 이석행-이용식 후보조를 당선시킨 대의원들의 선택은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까.

일각에서는 이번 민주노총 선거를 철저한 조직선거와 정파(노선 구분) 선거로 치러질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날 투표로 나타난 대의원들의 선택에는 단순히 조직표로 이해될 수 없는 대목이 발견된다.

예상외의 결선투표 결과

△결선투표로 갈 경우 불리해 질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1차보다도 더 많은 득표를 한 이석행 당선자. 이번 민주노총 임원선거는 인물투표가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우선 1차투표와 결선투표의 결과가 예상과는 달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대의원들은 1차 투표에서 재적대의원 1,088명 가운데 951명이 투표에 참여해 87.4%의 투표율을 보였으며, 기호 1번 양경규-김창근 후보조가 272표, 기호 2번 이석행-이용식 후보조가 469표, 기호 3번 조희주-임두혁 후보조가 204표를 얻는 결과를 보였다. 과반인 476표 이상을 획득한 후보조가 없어 선거는 결선투표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1차 선거결과가 나온 뒤 각 선거대책본부 관계자는 물론 일부 대의원들은 이른바 '계산'으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결선투표로 이어지는 것이 1,2번 후보 중 누구에게 더 유리한 지를 두고 분석들이 치열하게 오간 것이다.

대체로 현장에서는 결선투표가 치러지면 2번 후보는 표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소폭 이상 하락할 것으로, 1번 후보는 3번 후보가 받은 표를 이어 받아 과반 이상의 득표를 할 것으로 점치는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는 결선투표에 나선 대의원 수가 919명으로, 1차 투표에 비해 32명이 감소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더욱 기정사실화됐다. 상대적으로 결속력이 약한 2번 지지자들이 귀가하면서 투표에 불참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선투표의 최종 결과는 482표를 얻은 2번 후보가 431표를 얻은 1번 후보를 누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번 이석행-이용식 후보가 결선에서 1차 투표에서보다 오히려 더 많은 대의원들의 지지를 받은 것이다.

이런 이번 투표결과는 '인물투표'란 말 이외에는 좀처럼 해석되기 어려워 보인다.

민주노총 5기 임원선출 선거에서 위원장-사무총장 선거에 나선 세 후보조는 다들 '민주노총의 위기'를 거론하면서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

1번 양경규-김창근 후보조는 민주노총 내부의 민주성 회복을, 3번 조희주-임두혁 후보조는 노동해방 기본노선의 정립을 가장 우선 사업으로 꼽았었다. 약간의 표현은 틀리지만 1번과 3번 후보조는 전임 지도부가 취한 민주노총 운영 노선이 위기를 불러왔다는 것에 인식을 같이 하고 있었으며, 일관되게 전 지도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었다. 이로 인해 각 후보 진영에서는 "둘 중에 한 후보조가 결선에 오를 경우 손을 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공공연히 오갔다.
간략하게 말하면 1번과 3번은 '전임지도부 심판론'을 이번 선거의 쟁점으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선 투표에서 3번 지지 대의원들은 1번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지 않았다. 결국 이번 임원선거에서 민주노총 대의원들은 '이석행'이란 이름이 노동운동 내에서 가지는 위치를 고려하면서, 민주노총의 위기가 특정 정파(전임 지도부)의 '노선'에 있다기 보다는 '취약한 지도력'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일반명부 부위원장 선거의 '이변'

민주노총 5기 임원선출선거의 가장 큰 특징은 일반명부 부위원장 선거에서 나타났다.

8명의 후보가 4명을 뽑는 일반명부 선거에 나섰는데, 이 중 최종 당선자는 2명에 불과했다. 민주노총은 일반명부 선거의 당선자를 '과반이상 득표자 중 다득표 순'에 의해 4명을 선출하는데, 951명의 투표수 중 과반 이상 득표를 한 이는 기호 7번 주봉희(522표) 당선자와 기호 8번 허영구(531표) 당선자에 그치고 말았다.

기호 1번 양동규 후보는 338표, 기호 2번 배강욱 후보는 426표, 기호 3번 문영만 후보는 391표, 기호 4번 진경호 후보는 427표, 기호 5번 노명우 후보는 248표, 기호 6번 김영길 후보는 454표를 받았다.

눈 여겨 볼 것은 낙선된 이들 일반명부 후보들이 전부 특정 정파의 후보였다는 점이다. 3년 전 선거에서는 특정 정파의 '싹쓸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위력을 발휘했던 정파가 완전히 몰락한 셈이다.

애초 정파는 특정한 운동노선에 대한 선택에서 비롯되었다. 활동가들은 민주노조운동의 대의를 존중하는 위에서 '어떻게 하면 더 노동운동을 잘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끝에 나온 것이 정파였다.



△당선인사하는 당선자들. 일반명부 선거에서는 당선자가 미달되는 이변을 낳기도 했는데 당선된 두 후보는 정파와 연관이 없는 이들로, 정파가 '선택'의 기준이 아니라 '배제'의 기준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대의원들은 정파를 '선택의 기준점'이라기보다는 '배제의 기준점'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1인당 4표를 던질 수 있는 선거에서 대의원들은 자신과 다른 정파의 후보를 철저히 배제시킨 투표를 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아무런 정파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했던 두 후보가 오히려 공동의 지지를 받아 당선이 된 셈이다.

5기 임원선거는 대선-총선이 이어지는 정치적 격변기에 노동계를 대표하는 지도부를 뽑는 선거였다. 또 노동운동 내적으로는 이미 과반수가 넘은 비정규직을 어떻게 포괄하고, 사회적으로 비난받고 있는 노동운동의 자존심을 어떻게 회복할 것이냐는 무거운 짐을 진 지도부가 된다.

민주노총 5기 임원선거에 나타난 대의원들의 '민심'은 무엇이었을까? 대의원들은 '정파'가 아닌 '인물'을 선택했고, 자신이 속한 정파에 대해서도 과거와 같은 전적인 믿음을 보내지 않았다. 대의원들이 보여준 '의미심장한 메시지'는 새 지도부와 주요 정파의 지도자들에게 만만치 않은 숙제를 던져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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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비정규직 철폐투쟁, 말이 아닌 실천으로"
[인터뷰] 민주노총 주봉희 부위원장 후보
 
윤보중 기자    메일보내기  
 
 
 

  주봉희 후보는 십수년의 노동운동을 비정규직 문제에 헌신해왔다. 이미 그 자신이 비정규직 노동자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이 바로 노동 3권을 옥죄어오는 자본과 노동계급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전쟁이기 때문이었다.
  
  70년대 전태일 열사가 외쳤던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외침은 단 한번도 두다리 펼 수 없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돌이켜볼때, 이미 전체 노동자의 위기로 확산되고 있다고 목이 터져라 외쳐도 늦은 감이 있어보인다.
  
  

 
△주봉희 민주노총 부위원장 후보 ⓒ민중의소리 김철수기자

  
  "2004년과 2006년,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는 공식 추천 후보를 내고 민주노총 상층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을 확산하기 위한 방책을 모색했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노력은 번번히 좌절되면서 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주봉희 후보는 2006년 선거에서 전비연 공식후보였던 이남신 후보가 낙선되자 "되지도 않는 억지"를 써가며 재검표를 요구하기도 했다. 물론 재검표 결과가 현실을 뒤바꿔주지는 않았다.
  
  "정파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민주노조 운동은 심각한 불균형 상태에 와 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가 전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지금에 와서도, 민주노총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부위원장 자격을 얻는 것은 거대한 벽과 마주하는 문제였습니다. 올해 전비연은 공식적인 후보를 추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욕심으로 출마한 것은 아닙니다. 오직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마음을 민주노총 내에서 풀어보고자 하는 결심으로 이번 선거에 뛰어든 것입니다"
  
  주봉희 후보가 선거에 참여하자 반신반의 하던 전비연 소속 동지들도 "다소 놀랐던지" 지난 5일 이후 주봉희 후보는 그들을 만나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한번 해보겠다"는 그를 만류하는 사람은 없지만 늦게나마 "그를 공식후보로 추천하자"는 목소리도 후일담 쯤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비정규직 투쟁 현안은 특수고용노동자와 노동악법 폐기 투쟁"
  
  "2007년도에 민주노총에 어떤 집행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싸울 것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결심하고 지켜내려 했던 현안들을 2006년에 모두 빼앗겨 버렸기 때문입니다"
  
  "다리에도 매달리고 노동청도 점거하고 강에 뛰어들고 탑에 올라가고 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몰상식한 자본과 정권, 이에 야합한 일부 노동운동가들에 의해서 정말 허망하게 노동악법들이 통과되고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겼지만 말입니다"
  
  주봉희 후보는 2007년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현안에 대해 단연코 특수고용노동자의 문제와 노동악법 폐기 투쟁을 전면에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 노조 대표자들은 개악된 노동악법들의 가장 주된 피해자입니다. 이들이 민주노총과 싸우든, 정부를 상대로 싸우든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파견법, 노사관계법, 무엇이 됐건 그들을 벼랑끝으로 몰아부치고 노조를 와해시키려는 제도에 대해 폐기 처분 투쟁으로 강력히 맞서야 합니다. 법개정이라는 것은 애초에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투쟁의 몫이 아닙니다"
  
  "특히 지난 국회에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문제가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2000년부터 줄곧 제기되어 왔던 특수고용노동자의 요구에 대해 자본과 정권은 유사근로성이라는 말도 안되는 개념을 앞세워 탄압으로 일관해 왔습니다. 학습지노조, 덤프연대, 경기보조원 등 특수고용노동자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계층은 다양하지만 국회에서 아직 논의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이제 이것이 2007년 비정규직 노동자는 물론이고 노동계의 중요한 싸움이 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주봉희 후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돕겠다던 민주노총의 '말로만 투쟁'"을 비판하면서 "민주노총 상층부가 얼마나 이 싸움을 전면에 부각시킬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 노동문제, 민주노총이 전면에서 고민해야 한다"
  
  
 
   
ⓒ민중의소리 김철수기자  
   

 주봉희 후보는 "3년간 준비하고 한순간 허망하게 무너져버린" 노동계의 현안 투쟁을 두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노동자는 하나다'며 구호는 외치지만, 민주노총 선거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언제나 따돌림을 당해왔습니다. 자본한테 짓밟히고 민주노총 조합원한테도 따돌림을 당했던 우리의 현실을 돌이켜 볼때 그 실망감은 정말 너무 깊은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 민주노총의 고민은 정말 현장에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현장을 향한 것이어야 합니다"
  
  주봉희 후보는 "부위원장이 된다면 2003년도에 한국통신 계약직 노조 출신이었던 홍준표 부위원장이 보궐선거로 당선되어 1년 남짓한 기간동안 세워놓은 비정규직 투쟁의 기틀을 확고히 하는 것을 주된 역할이 될것"이라고 밝혔다.
  
  "모든 연맹마다 비정규 특위가 있고, 지역본부마다 조직담당자들이 있으며 민주노동당조차도 비정규직 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개별적으로 분화되어 있는 이런 방식으로는 비정규직 문제가 소속단체의 정치적 성과나 가늠하는 수준 이상을 넘기 어렵습니다"
  
  " 2003년도 홍준표 부위원장이 비정규직 투쟁을 민주노총 차원의 독립적인 투쟁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습니다. 재임기간이 워낙 짧았기때문에 그 사업들을 제대로 해내기는 힘들었지만, 비정규실을 만들고 비정규기금의 틀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업이 완성되지 못했고, 2004년과 2006년에 전비연 공식후보가 낙선되면서 그간 민주노총 차원의 비정규직 투쟁은 정체 혹은 후퇴 국면에 있었습니다."
  
  "각 연맹과 지역본부 등에서 중구난방식으로 진행되는 비정규직 사업으로는 현시기 강위력한 자본의 공세에 맞설 수 없습니다. 개별 현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말 끈질기게 싸웠지만, 그 결과는 손배가압류와 투옥 등으로 활동가는 물론이고 노조를 와해 국면까지 내몰았습니다. 노동계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이만큼 버텨온 것도 사실 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민주노총은 말로만 '투쟁'을 외쳤을 뿐 이 문제를 전면에 걸고 싸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봉희 후보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이 집회 구호로 전락해버린" 민주노총 상층의 안일한 태도를 비판하면서 "민주노총이 이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야 승산이 있다"는 희망도 제시했다.
  
  "저는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단일한 지휘 체계 하에서 일사분란하게 투쟁하기를 기대합니다. 전비연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입니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를 고민한다면 이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의 고민이 아닙니다. 사실 그동안 전비연 차원에서 무엇을 하자고 해도, 소속 연맹 단위의 눈치를 보아야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비정규직 노조들이 지역, 연맹 소속인데 상층의 지침이 아닌 전비연 지침에 의해 무언가를 하려한다며 이를 좋게 봐주지 않았던 것이죠. 총연맹 차원에서 규모있는 연대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사실상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큰 연대라는 것은 무산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재정자립도가 낮고, 조직력이 미비한 상태에서 활동하는 비정규직노조의 열악한 현실을 감안할 때 주봉희 후보의 지적은 "민주노총 내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야 하는" 비정규직 노조 활동가들의 당위가 무엇인지 짐작케 한다.
  
  민주노총이 나아갈 길, 민주노총이 지나온 길
  
  "개인적으로 조준호 집행부는 이수호 집행부의 연속선 상에 있었다고 봅니다. 전 집행부의 사회적 교섭을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조준호 집행부는 2006년에 타협과 교섭과 투쟁을 병행하고자 했습니다. 이수호 집행부가 들어섰을 때 총파업을 난발했는데, 조준호 집행부는 2년이고 3년이고 한번에 모아서 사회적 교섭을 병행하는 투쟁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8차례나 총파업을 선언했고, 그것은 무늬만 총파업이었을 뿐 현장에서 동력이 발동되지 못했습니다. 역시 2006년의 쟁점은 비정규악법이었는데 민주노총은 무기력하게도 투쟁다운 투쟁 한번 못해 보고 이것이 자본과 정권의 의도대로 통과되는 것을 망연자실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 대우건설 비정규노동자 투쟁선포식 포스터 ⓒ민중의소리 전문수기자
   

 주봉희 후보는 투쟁을 조직화하지 못한 원인에 대해서는 "현장의 투쟁력 때문이든, 총연맹의 지도력이 부족해서이든 각자의 몫으로 남겨졌다"며 말을 맺었다.
  
  주봉희 후보는 "혁신이라는 말은 자본가들의 말이다"면서 "혁신을 이야기 할려면 자기자신부터 돌아보라"며 선거과정에 개입될지도 모를 정치적 이해와 거리를 두었다.
  
  "민주노총의 바꿔 보자는 이야기는 오히려 뻔뻔하게 들릴 정도입니다. 이미 노동 운동내의 불균형은 심각한 상황에 이르어 있습니다. 어느 정파에 속해 있든 민주노조 운동 다운 운동의 모습을 잃어가고 점차 정치적이고 자기 집단의 이기적 이해만이 깔려있는 운동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유일한 해결책은 민주노총 상층에서부터 현장의 노동자들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것이며, 현안사업장에서만 마이크를 잡고 책임지는 투쟁하겠다고 구호를 외칠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의 냉소적인 이야기를 들을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봉희 후보는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꽃이고 생명이고 마지막 보루"라고 전하면서 "더이상 노동운동이 정치인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으로 치닫지 않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순수한 노동자, 서민과 대중, 맨 밑바닥에서부터 그들의 대변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계파간의 갈등이니, 좌파니 우파니 하는 갈등이 아닌, 노동자는 진정 하나다라는 우리의 확신을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정파의 갈등을 묻어버리고 민주노조 운동으로 다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07년 대선 국면에서 그 입지가 더욱 좁아진 노동계의 현실을 걱정하는 주봉희 후보는 민주노총의 고립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운동도 정치와 연관을 안지을래야 안 지을 수 없죠. 각 정당들이 대선을 앞두고 정말 끝장나는 싸움을 벌일 것이고, 그만큼 노동운동의 목소리를 내기는 힘들 것입니다. 거기다 자본과 정권은 자신들의 골칫거리들을 모두 해결한 상태이며 오히려 느긋한 심정일 것입니다. 이는 한국노총도 마찬가지입니다"
  
  "운동은 싸워야 하는 것이고 세상을 깨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남은 싸움이 있습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이지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문제는 바로 노동 3권의 문제입니다. 노동자성마저 인정을 받지 못하는 그들은 우리들의 가장 첨예한 현실의 화두입니다. 2007년에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 3권을 보장받기 위한 싸움에서 우리는 반드시 승리해야합니다"


2007년01월11일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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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5기집행부 부위원장 후보기호7번

2007/01/08 15:02
기호 7번 주봉희 후보  
     
 
주봉희 (언론노조)
1987년 통인익스프레스노조 창립준비위원장
2000년 파견법으로 해고
2000년~ 방송사비정규노조 위원장
2004년~ 서울비정규연대회의 지도위원
* 자작시집 「어느 파견노동자의 편지」, * 인물 다큐「필승 주봉희」

 

폐허 속에서도 꽃은 피어난다! 질기고 질긴 질경이처럼!

 

- 유통서비스비정규노동자, 하청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건설일용노동자, 공공서비스노동자 5대 핵심부문 조직화에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 기륭전자, KTX승무원, 새마을호승무원, 하이닉스, 일성콘도, 대우센터 등을 더 이상 외로운 투쟁으로 방치하지 않겠습니다.
- 기간제 계약해지, 파견확대 등 물밀듯 밀려올 비정규직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민주노총의 온 힘을 집중하겠습니다.
- 특수고용노동자 노동자성 쟁취를 위해 화물, 덤프, 레미콘, 학습지, 골프장경기보조원 등 모든 특수고용노동자들이 한날 한시에 들고 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 정규직과 비정규직 연대를 강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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