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남은 자들이 이루겠다"

2005/08/17 10:28
"살아 남은 자들이 이루겠다." | 마이너리티 이야기 2003/12/09 11:33
http://blog.naver.com/kysrcw/40000420223

꽃다운 비정규직노동자의 죽음을 슬퍼하는 하늘의 눈물이 얼어붙은 것이었을까. 비정규직이 차별받는 더러운 세상을 하얗게 뒤덮기 위한 것이었을까. 고 이용석 근로복지공단비정규직노조 광주본부장의 장례식이 열린 지난 8일 오전에는 숨 막히도록 굵은 눈발이 날렸다.

 

비정규직 차별을 외치며 분신으로 항거했던 고 이용석 본부장이 숨진 지 37일 만인 8일, 광주 망월동 5.18 묘역 민주열사들 곁에 묻혔다. ‘고 이용석 노동열사 장례위원회’는 이날 오전8시 발인제, 오전 10시 영결식, 오후 5시 노제를 거치며 전국노동자장으로 고 이용석 본부장의 장례를 치렀다.

사진- 마지막 걸음. 고 이용석 본부장이 자신이 묻힐 땅, 광주 망월동 묘역을 향해 영결식장을 나서고 있다.



이날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서울의 첫 눈이 멈추지 않은 가운데 오전 8시 영등포 서울중앙장례식장에서 발인제가 열렸다. 유족부터 시작해 근로복지공단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차례로 절을 했다. 유족들과 조합원들의 통곡소리가 장례식장을 가득 메웠다.

발인이 끝난 뒤 고인의 영정은 근로복지공단으로 향했고 공단 로비에 잠시 머물렀다. 공단 쪽의 시설보호요청으로 살아남은 자들도 들어가지 못했던 그들의 직장에 고 이용석 본부장은 마지막 가는 길에야 발길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오전 10시 꽃상여가 영결식이 예정된 서울 종묘공원으로 들어왔다. 불길 속에 스러졌던 그 장소에 꽃상여를 타고 44일 만에 다시 온 것이다.

 

“동지 여러분! 하나가 모여 둘이 되고 둘이 모여 넷이 되듯, 모든 것을 한꺼번에 이루려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린 정당하고 새로운 길을 찾았으므로 꼭 승리할 것입니다.” 고인의 유서가 낭독됐다. “참여하지 않은 조합원, 깨어나지 않은 조합원에게 몸으로써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몫을 제가 다하고자 합니다.”

분신 직후 이용석 본부장을 붙들고 절규했던 방송사비정규노조 주봉희 위원장. 젊은 후배를 먼저 보내고 유서를 듣고 있던 늙은 비정규직노동자의 굵은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렸다.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영정 앞에 고개를 숙였다. “비정규직 차별이 없는 세상, 정규직으로 거듭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제대로 싸워오지 못한 민주노총이 당신을 죽였습니다. 저들이 쳐놓은 분할지배의 그물에 갇혀 연대하기를 주저했던 우리 정규직이 당신의 결단을 재촉했습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의 염원을, 당신이 몸 살랐던 그 비장한 결의로 이루어 낼지니 그 무거운 짐 그만 내려놓으시고 이젠 편히 쉬십시오.”

 

공공연맹 이승원 위원장은 무거운 짐을 남겨놓고 먼저 간 동지에게 숨겨놓은 서러움을 토했다. “32살의 족적이 너무나 아름다워 불혹과 지천명의 나이에도 고개 숙이게 한 사람아. 저는 당신이 밉습니다. 미치도록 밉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투쟁의 과제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가버렸기에 (중략) 우리는 작으나마 동지 앞에 단체협약서와 정규직 추서, 고용안정 협약서를 바칩니다.”

고인의 떠나가는 길을 상징하는 검은 색 천이 펼쳐졌고 살아남은 자들의 의지와 신념을 상징하는 수백송이 흰색 국화가 그 위에 던져졌다.

고인의 형 병우 씨는 “동생이 마지막 가는 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용석이는 행복할 것”이라면서 고마움을 표했고,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 자존심을 남겨두고 떠나라”며 울부짖었다. 모친 오강님 여사도 먼저 보내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다.

 

중앙무대 빈소에 있던 영정이 내려와 광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흐리던 하늘은 이미 개였고 영정을 따스하게 비추었다. 광주역 광장에서 노제를 지낸 뒤 고인은 망월동 5.18 묘역에 안장됐다.

김학태 기자(tae@labornews.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Trackback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kmsy1953/trackback/41

Comments

What's on your mind?

댓글 입력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