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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욕망은,

며칠 전 <여성의 근대, 근대의 여성>을 텍스트로 이야기가 오고갔다.

 

나혜석, 윤심덕과 같은 신여성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그동안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냥 이름만, 그리고 그 유명한 동반자살설 정도는 어디서인가 본 정도.

책을 보고

그녀들을 자아분열로 몰고 가게했던 고통과, 사회적 비난들은

단순히 그녀들에게 '부르주아'의 계급적 특권 딱지를 붙이기 전에

다시금 신여성과 근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근대성 규정에 대한 페미니즘적 제기에 대해선 좀 더 고민해봐야겠지만.

 

문제는 '된장녀'와 관련된 것이었다.

지난 시간, 나는 된장녀 논란에 대해 여성에 대한 비난이라는 측면이 강하지만

요즘 20대가(남/여 할것없이) 미국의 중산층을 모델로 삼고 일종의 신분상승을 꿈꾸며

그들의 옷, 그들의 가방, 그들의 커피까지도 동경하는 현실에 대해 비판적이라고 말했다.

그들 개인에 대한 비난보단, 그렇게 만드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어쨌든.

 

그런데 한 친구는 지난 시간 내 말이 '불편했다'고 털어놓았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난 내가 된장녀라고 생각해."

그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이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된장녀'논란을 이야기하면서도

내가 아닌 '타자', '사회적 현상'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친구의 말을 간단하게 요약해보자면, 이러했다.

"난 명품 보면 예쁘고 갖고 싶고, 나중에 돈벌면 갖고 싶은거 다 살꺼야.

예뻐지고 싶어 성형수술 할까도 생각했어. 그런데 그게 왜 잘못됐지?

여성주의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면 안되는거야?

넌 욕망이 없니? 그걸 억누르면서 살아야한다면 고통스럽지 않니?

난 자기 욕망을 긍정하고 실현하는 여성주의자가 되고 싶다"

 

 

자기 욕망이라. 자기 욕망이라.

그 문제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실은 하루에도 몇번씩 생각하고 있는지도.

운동을 하면서는 일종의 '윤리의식'과 '자기검열'로 억눌렀던 부분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만나면 부담스런 친구들을 끊어가면서, 나 자신을 통제했던 적도 있었다.

견물생심이라고 안보면 욕망도 안생기는게 사람 마음이니까.

나한테는 그게 차라리 맘 편한것이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개인들의 욕망을 집단적으로 획일적으로 생산하고 부추기는 건

자본주의의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나의 욕망'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다.

정이현의 소설을 가장 좋아하는 그녀와 나의 '차이'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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