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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10/22
    나라는 사람(1)
    은수
  2. 2006/10/15
    가솔: 1950년대 중국의 가정부녀와 가사노동에 대한 국가 담론(2)
    은수
  3. 2006/10/13
    귀향(9)
    은수
  4. 2006/10/04
    미칠이 어록을 보고,(3)
    은수
  5. 2006/10/03
    너희는 봄을 사지만 우리는 겨울을 판다(2)
    은수
  6. 2006/10/01
    이네사 아르망
    은수

나라는 사람

난 지금까지 내가 꽤나 눈치가 빠르다고 생각해왔는데, 오늘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난 남들이 공공연하게 느껴왔던 것들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라오면서 쭉, 대부분의 시간들 동안 나는 나의 겉모습으로 인해 어디에서나 좀 튀었다.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모르겠지만 (자기 의도와 관계없이) 늘 눈에 띄는 인간으로 산다는 건 피곤하고 힘든 일이다. '평범'하게 다른 사람들 틈 속에서 조용하게 묻어가고 싶을 때가 정말로 많다. 내가 다른 외형적 모습을 가졌다면 내 성격도 지금과는 정말 다르지 않았을까. 해봤자 도움이 안되는 생각을 한다. 좋게 얘기하면 주목을 받는다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쉽게 공격과 표적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받은 상처들이 많다. 그리고 상처들이 사람들에게 자꾸만 거리두기를 하게 만든다. 너무 많은 것을 털어놓고 나를 드러내고 의지한다는 것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겁이 난다. 

 

나라는 인간이 오늘따라 참 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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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솔: 1950년대 중국의 가정부녀와 가사노동에 대한 국가 담론


 

 지난 목요일에 이대 아시아 여성학센터에서 주최하는 국제 컨퍼런스 "신여성/모던걸의 재현과 동아시아의 식민지 근대성"이 있었다. (저 사진은 자료집을 찍은 것이다.) 시간 상 오전에 있었던 젊은 여성학자들의 pre-conference밖에 듣지 못했는데, 모던걸의 프롤레타리아 형태로서 베이핑의 웨이트리스의 문제라던가, 일본의 첩과 관련된 논의들 등의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기록해두고 싶은 발표는 중국 인민대 조교수 송 샤오펑의 <가솔: 1950년대 중국의 가정부녀와 가사노동에 대한 국가 담론>이다.

 

 가정부녀(가정주부)는 '가솔' '가사관리자'라는 신분을 통해 소비에트 정권 하에서 독립적 사회신분이 되게 된다. 가솔은 주로 도시남성노동자의 아내를 가리킨다. 이들은 농촌여성이나 여성노동자와는 달리 직접적으로 생산활동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논의대상이 된적이 거의 없다. 송 샤오펑은 국가와 당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인민일보'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가사노동에 대한 국가담론을 추적한다.

 

 흥미로운 것은 국가에 의한 가사노동 담론이 시기에 따라 '변화과정'을 겪는다는 점이다.

 

 건국 초기에 가사노동은 폄하되고 가정부녀는 '기생충'으로 비난받는다. 왜냐하면 가사노동은 생산적 '노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권은 생산노동에의 참여를 통해 부녀해방을 부르짖는다. 그러나 가사노동이 사회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는 오히려 정권에게 큰 경제적 부담이 되었고, 여성들을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내게 된다. 그리고 국가는 이들 여성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그리하여 50년대 중기에 가사노동은 국가에 의해 사회주의 노동의 일부분으로 인정되고 국가에 의해 장려되는 모범 모델 중의 하나가 된다. 특히 5호라 하여, 이웃단결이 좋고, 자녀교육을 훌륭히 하는 등의 덕목을 따져 표창을 내리기도 한다. 이는 가사노동에 대한 정치적 긍정과 가정주부의 정치적 지위에 대한 긍정이며, 또 한편으로는 가사노동의 성별분업이 국가의 긍정을 받은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1958년부터 국가는 '대약진'을 통해 부녀들을 생산노동에 투입시키기 위하여 가사노동의 역할에 대해 거의 언급을 하지 않는다. 이 시기에 위에서 언급한 '5호' 선정활동도 진행되지 않았다. 대약진이 끝난 난 후, 1960년 국가경제조성시기가 되면 모범가솔은 또 다시 장려의 대상이 되며, 1964년 이후 가사노동은 국가담론 속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시장화 개혁 이후 여성의 가내노동은 '전통미덕'으로 국가에 의해 장려된다. 이런 가사노동에 대한 국가담론의 변화는 내가 보기에 러시아에서의 논의와도 상당한 유사성을 가진다.

 

 송 샤오펑은 여성의 생산노동에의 참여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여전히 가사노동에 대한 부담을 지고 있었던 것에 주목하며, 맑스주의 이론이 '성별분업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한 데서 근거를 찾는다. (맑스주의에서 초기 성별분업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된다. 내가 봤을 때는 성별분업을 '초기'에 국한되어 '불가피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여성억압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철저하게 '역사적' 관점에서 보아야 할 주장이, 어처구니 없게도 '몰역사적'으로 맑스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이들에게서 반복되는 것은 참으로 모순적인 대목이다.) 대부분의 공산당 간부들과 모택동 역시 '가사노동의 사회화'가 문제의 해결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실제로 사회가 공적양육을 제공할 수 없는 단계이자 이에 대한 의무를 모두 '여성'에게 부과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중국은 더이상 사회주의라 할수도 없지만, 어쨌든 전통적 성별규범은 중화민족의 전통적 미덕으로서 여전히 국가의 찬양을 받고 있다.

 

 <만약 우리가 여성노동과 여성의 가정 내에서의 성역할의 변화를 더 큰 거시적인 노동질서와 성별질서에 놓고 보면, 우리는 건국 이래로 한 번도 남성들을 향해 성별질서영역에서의 변혁과 요구를 제기한 바 없고 남성의 가정내 가정외 성역할에 대해 질문을 제기한 적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성별질서의 변화요구는 모두 부녀를 향해 제기되었던 것이다.>

 

 성별분업과 그것의 여성억압적 성격에 대한 분석/비판, 그리고 이에 대한 대중적 인식의 변화 없이 하나의 '당위'로서 주장되는 생산노동에의 참여와 가사노동의 사회화는 반쪽에 불과한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나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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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귀향(volver)


 

 드디어 여러 사람의 추천으로 '귀향'을 봤다. 황금 시간대에도 여유있는 좌석 덕에.

 

 영화는 '모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감독도 그렇게 말했다니. 3대에 걸쳐 중요한 컨셉이 어머니의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영화의 여러 부분에서 '여성들의 연대'를 느끼고, 그것을 강조하고 싶다.

 

 주인공 페넬로페 크루즈(라이문다)의 딸은 부계혈통적 의미에서는 그의 자매이기도 하다. 라이문다의 아버지와 바람을 핀 아구스티나의 관계에선 누가 피해자라고 가해자라고 할 수도 없다. (아마도 이게 한국 드라마였다면 머리를 쥐어뜯고 한바탕 난리법석이 났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여성들은 어려울 때 나타나 서로를 도와준다. 아구스티나는 라이문다의 이모를 돕고, 또 라이문다의 어머니는 아픈 아구스티나를 돌본다. 라이문다는 남편을 죽인 딸을 끌어안지만, 딸은 라이문다의 눈물을 다시 닦아주고 그녀를 어머니에게 다시 돌려보낼 수 있는 매개가 된다. 라이문다의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런 친밀하고 따뜻한 여성들의 '관계'들로 영화는 엮여져있다. 이 영화의 여성들은 일방적 희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감독(알모도바르)이 갖고 있는 퀴어 감수성은 확실히 영화를 만드는데 엄청난 역할을 미치는 것 같다. 게다가 코믹 감각도 있다. 아무튼 이 영화가 남성 판타지 속의 '위대한 모성'으로만 읽힌다면 그건 참 아쉬운 일이다. 확실히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게 읽힐 가능성이 많겠지만.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의 스토리 구조가 내 느낌엔 통속적일 정도로 단순하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여성성과는 대립적으로, 이 영화의 남성들은 무능력하고 성욕에 눈이 멀었으며 관계를 파괴하는 폭력성을 드러낸다. 감독은 여성성과 남성성을 대립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폭력적 남성성을 대비시킴으로서 반대로 그 속에서 여성성을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일까 궁금하다. 

 그리고 마지막에서야 어머니(유령이든 아니든)와 라이문다가 털어놓는 이야기는 충분히 예상가능한 이야기였지 않았나? 아구스티나 어머니의 실종과 관련된 미스테리도. (나만 그랬나?) 그래서 이야기가 마치 저 포옹장면을 위한 것처럼 짜여져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만 아니었다면 딸과 어머니가 그렇게 오해 속에서 떨어져있을 일은 없었을텐데. 이런 느낌을 주고자 하는 것 같다. (내가 너무 삐딱한가?)

 

 마지막으로 이 감독이 여성과 모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과는 별개로 그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 그가 귀환하고자 하는 곳 그 곳이 어머니의 품이라면 그도 남성 판타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아닐런지? (정말 내가 삐딱한가??) 영화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보는 관객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볼때 정치적일 수도 있다. 이런 삐딱함은 내가 이 감독의 전작 '그녀에게'를 보고 느낀 남성의 시선, 그 불편함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 감독과 그가 만들었던 영화가 궁금하다. 시간 날 때 좀 봐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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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칠이 어록을 보고,

염둥이님의 [미칠이 어록] 에 관련된 글.

며칠전 인터넷에서 '미칠이 대사 또 논란' ,,,뭐 그런 기사를 봤드랬다.

 

참 열받는 건,

미칠이라는 캐릭터에

된장녀의 요소라고 일컬어질만한 것들을 죄다 쏟아붓고는

자기 언니 애인 빼앗고 히스테리에 가까울 정도의 성격 파탄자로 그려놓고는

'할 말은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 시청자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역시 저런 기집애들은.....쯧쯧..."

 

기사에서 대사를 낱낱이 보면 어느 하나 틀린 말이 없는데도,

나 역시 드라마 상에서 미칠이를 보고 있자면 짜증부터 치밀어 오른다.

 


자기 주장이 강한 여성은

자기 잘난 맛에 산다

가족은 내팽겨친다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돈돈돈 한다

자기 마음대로 안되면 히스테리를 부린다

도대체 대화와 소통이란 걸 모르는 아집덩어리이다

라고 사람들 머릿속에 집어넣는 이 드라마 작가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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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봄을 사지만 우리는 겨울을 판다

 

 

 

 누군가 내가 갖고 다니던 이 책을 보고 '제목이 마음에 닿는다'라고 했는데. 나도 그랬다. 이 책은 탈성매매를 지원하는 부산의 '살림'이라는 곳을 거쳐간, 성매매 여성들의 수기집이다.

 

 그녀들의 아픈 지난 이야기들을 듣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땅을 살아가는 또 한 명의 여성으로서 나는, 그 글들을 그저 담담하게 객관적으로 내려 읽을 순 없었다. 몇번이나 책을 덮었다 다시 또 열면서 그렇게 한 자, 한 자 읽었다.

 

 성매매를 경험했던(또는 하고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너무도 다양하다. 성매매 자체도 단일한 형태가 아니기도 하고. 어떤 이는 감옥과도 같았던 그 곳을 탈출하고 싶어하고, 지난 과거를 지옥처럼 기억한다. 또 어떤 이는 내가 하고 있는 노동을 긍정하며, 그 곳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구제'를 거부한다. 그들이 이렇게 다르게 성매매를 경험, 기억하는 것은 당연하다. 성노동이냐 성매매냐, 합법이냐 불법이냐, 자발이냐 강제냐 이런 이분법 속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비난받는 것이 정말로 안타깝다. 민성노련의 한 성노동자는 이 책을 여성부의 홍보책자쯤으로 비난하지만, 그런 방식이 난 참 맘에 안든다. 그 일을 '타락한 것' '더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 잘못된 사회적 편견이지만,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성매매를 아픈 기억으로 갖고 있는 여성들도 분명히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다른 목소리와 차이들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양한 목소리들 중, 어느 하나만이 진짜라고, 다른 쪽은 진실이 아닐거라고 한다. 설문조사라는 것도 그들이 가진 '입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정부의 정책은 그들 중 어느 하나만을 듣고 있으니, 다른 한 쪽의 여성들이 반발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성매매 집결지 이외에도 음성적으로 존재하는 성매매여성들의 다양한 경험이 가시화되어야 하다. 더 많은 목소리들이, 더 다양한 목소리들이 밖으로 드러나고 표출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녀들의 생존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도 고민 될 수 있지 않을까.

 

 

 

[관련된 글]

 

한국인권뉴스에 기고된 성노동자의 글(민성노련)

http://go.jinbo.net/commune/view.php?board=cool&id=26329&page=1&s2=subject&s_arg=너희는

 

일다에 실린 ‘살림’의 활동가의 글

http://www.ildaro.com/Scripts/news/index.php?menu=ART&sub=View&idx=2006092600004&art_menu=1&art_sub=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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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사 아르망



 

드디어 '읽어야하는' 책을 내팽겨쳐두고 '읽고싶은' 책을 읽고 있다.

 

이네사 아르망.

러시아의 여성혁명가가 아닌, '레닌의 연인'으로 기억되는 그녀.

저 대문짝만한 빨간 글씨가 거슬리는 표지.

누군가의 부인, 연인, 엄마가 아닌 여성의 이름은 없는걸까.

 

 

이네사는 부르주아 출신의 계급적 배경을 갖고 있었다. 실은 첫번째 결혼했던 알렉상드르가 공장을 갖고 있는 자본가였다. 둘 사이엔 네 아이가 있었다. 참 신기했던 것은 이네사가 11살이나 어린 알렉상드르의 동생(시동생)과 연인이 되어 함께 살고 애까지 하나 낳았는데, 그 남편이 이를 이해한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 이네사가 곤경에 빠질때마다 알렉상드르가 도와준 걸 보면, 지금 우리네 시각에서 봐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알렉상드르의 동생, 볼로댜가 병으로 죽고 난 후, 이네사는 레닌을 만난다. 레닌은 이네사를 신뢰했고 그녀에게 많은 중요 업무들을 부탁했다. 이네사와 레닌은 서로를 사랑했고, 나디야(그룹스카야)도 이 관계를 받아들였다한다. 근데, 정말 받아들인걸까? 받아들일수밖에 없었던 걸까.

 사실은 그전에 레닌에게 떠나겠다했지만, 레닌이 붙잡았고 나디야는 이를 받아들였다. 레닌과 나디야의 관계는 사랑하는 부부의 관계라기보단 신뢰하는 동지 사이 정도로 보인다. 사랑이 혁명의 대의에 장애요인이 된다고 생각한 레닌은, 결국 이네사에게도 결별을 선언하고, 이 일로 이네사는 매우 힘들어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도 둘은 계속 동지적 관계를 유지했고, 파니 카플란이 레닌을 저격했을때 다시 둘은 연인이 된다.

  10월 혁명 이후 이네사는 모스크바 소비에트 인민위원으로, 중앙위원회 여성분과 위원장으로서 많은 활동을 벌였다. 제 1회 국제여성공산주의자대회를 개최한 것도 대표적인 활동이다. 이런 부분에서 이네사와 콜론타이는 '라이벌'이기도 했다. 성격도 많이 달랐던 것 같고. 1920년 일에 지친 그녀가 요양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 콜레라로 세상을 떠난다. 이네사는 레닌을 울게 한 유일한 여성으로 기억된다.

 

 

물론 책을 읽어보면 그녀의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 레닌 얘기가 많긴 하다.

(저자는 <봉인열차>라는 책을 쓰다가 이네사에 대해 알게된 마이클 피어슨이란 사람인데.

혁명가들과 혁명을 이상적인 혹은 실패한 것으로 보는 '관점'과 '편견'을 감안하더라도

레닌이 정말 성격이 안좋았던 인간이라는 건 진실인 듯하다. 하하.)

하지만 레닌이 없다면 그녀는 기억될 가치가 없는 혁명가였을까. 결코 그렇진 않을텐데.

 

 

콜론타이도 마찬가지이지만. 러시아의 많은 여성혁명가들은 레닌을 비롯한 남성혁명가들의 여성문제에 대한 '무관심'과 '무시'에 대해 외롭게 분투했다. (6호가 나올때까지 여성노동자 신문인 '라보트니차'에 글 한편 안 실었던 레닌에게 어찌 분노하지 않으리오!)

여성주의나 여성문제에 대한 관심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다시 그와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여성들이 더 많이 문제제기 하고, 그들의 '편견'과 맞서싸워야 할 것 같다.

 

 

책을 덮고 나니, 왠지 그녀의 일생이 서글프게 느껴진다. 늘 사랑에 목말랐고 외로워했던 아픔 때문일까. 아니면 평생을 그렇게 치열하게 살고도 잊혀진 안타까움 때문일까.

 

 

 

몇가지 기록해두고 싶은 구절들.

 

<이네사는 레닌이 어떤 남성 동지에게도 하지 못하는 말을 자신에게는 털어놓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개인적 신뢰와는 달리 혁명 과업에서 자신이 수행하는 일들이 과소평가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느낌은 그녀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로자 룩셈부르크,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등과 같이 일생을 혁명에 바친 여성들도 그녀와 같은 견해와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여성문제에 관한 모든 논쟁과 연설들이 시사하는 교훈은 법은 바꿀 수 있지만 오랜 세월 자리잡아 온 관습은 쉽게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1926년 이후 이네사는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이제 신 같은 이미지로 묘사되는 레닌과 그녀와의 의심스러운 관계 때문이기도 했지만, 젊고 부유한 여성이라는 그녀의 배경 때문이기도 했다. 이런 이력은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미지와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네사가 개선하려고 그처럼 열심히 일했던 여성주의적 진보들은 여전히 가부장제 사회였던 러시아에서 가부장제의 반동으로 이내 사라져버렸다. 엘우드는 "이네사는 '생각으로 들끓는'-스탈린에게는 조금도 필요하지 않았던 지적인 여성 공산주의자-사람 중 한 명이었다."고 썼다. 1930년에는 탁아소와 공공 식당과 세탁소가 사라졌다. 자유이혼법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은 한때 사라져야 할 부르주아 결혼이라고 조롱당하던 기존의 결혼제도로 되돌아가길 강요당했다. 콜론타이의 전기 작가인 베아트리체 판스워스가 논평했듯이 "가족의 소멸은 그저 또 다른 사회주의의 신화가 되어버렸다.">

 

 


 

Inessa Armand

이네사 아르망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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