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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페미니스트

慢愚님의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 에 관련된 글.

 

오랜만에 여유가 생겨 메인에 있는 글들을 읽어보던중,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글을 읽게 되었다. 성폭력 사건과 관련하여 어디서 많이 본 논리들이 등장하기 시작, 대충 감을 잡았다. 계속해서 댓글을 보다보니 좌파와 페미니스트에 관련된 이야기도 나온다. 상호 소통 불가능성에 대한-.

 

갑자기 글을 끄적대고 싶어졌다. 어찌 보면 현재의 내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이기도 하기 때문에.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좌파와 페미니스트란 '양극단'의 어떤 것이라는 분열적 상황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렇다. 김규항, 손석춘의 글로 일어난 이른바 '중산층 페미니즘' '부르주아 여성운동' 논란, 그리고 참세상 조주은의 ING 칼럼에서 "나는 좌파 페미니스트이다"라고 했을 때 달렸던 폭력적인 댓글들-(페미니스트가 언제 좌파였냐?)

 

아주 단순한 논리다.

페미니스트=부르주아, 중산층, 자유주의/급진주의 페미니즘, 좌파와 관계없음, 오히려 적대적

좌파=운동권, 마초 남성들, 맑스주의, 혁명되면 다 된다-일상적 실천을 아주 깔봄. 페미니스트와 관계없음, 오히려 적대적

 

나는 영원히 적대적일 것만 같은 이 두 정체성을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마치 내 신체가 절반으로 갈라져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종종 받는다. 절반은 좌파? 절반은 페미니스트? 물론 나는 이 두가지 정체성이 겹칠 수 없다거나-이미 진보넷 블로그에서만 봐도 수많은 정체성이 겹쳐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좌파 페미니스트'라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지금은 보이는 '현상'에 대한 내 '감상'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더욱이 나는 '운동권'과 '페미니스트' 진영을 조금씩은 경험했기 때문에 양쪽의 사람들과 얘기를 할 때마다 갑갑함을 느낀다. 

 

딱 까놓고 서로는 서로를 싫어한다. 하지만 내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운동권들이 페미니스트들을 싫어하는 거하고, 페미니스트들이 운동권들을 싫어하는거 하고 동급으로 놓을 순 없어." 그래, 그건 사실이다. 여성운동의 역사를 보더라도, 여성운동가들이 독자적인 조직과 여성주의라는 사상을 필요로 했던 건, 좌파 운동 조직 내의 극심한 성차별주의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래놓고도 나가는 이들의 뒷통수에 '분리주의자' '계급의식이 없는' 이런 수식어들이 붙었던 역사가 있다. 지.금.도.

 

 

결국 이 모든 건 개념정의의 문제일텐데 좌파가 사회변화라는 '큰' 범주에서 논의될 수 있다면  당연히 페미니스트도 좌파고, 좌파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현실적으로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두가지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있을까?

 

난 솔직히 먼저 변화해야 하는 건 '운동권' /'좌파'라고 본다. (이렇게 말하면 역시 별수 없는 꼴통페미라고 할건가?) 케케묵은 이론을 들고 2007년 한국 여성운동(도대체 실체가 뭔가?민족주의자를 같은 좌파로 묶으면 너네는 분명 화를 낼 것이다.) 을 bg니 어쩌고 하면서 비난하는 짓 따위는 그만두어야 한다. 엥겔스의 <기원>하나 딸랑 읽고 여성억압에 대한 해답지를 찾은 것만 같은 자만감은 버려야 한다. 성폭력 사건 앞에서 자본주의 근본모순 어쩌고 하는 짓 따위는 정말 그.만.두.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다면 marishin님의 말처럼 둘은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내 생각엔 운동권 남성들이 여성주의를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내세우듯이 사상적/철학적 기반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실은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투쟁의 역사를 부끄럽게 만들고, 그들 자신이 변화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많은 학생출신들이 노동계급의 삶으로 채 들어가기도 전에 튕겨져나온 경험들이, 머리로는 받아들여도 삶으로 받아들이기는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것처럼. 여성주의 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자신의 삶 구석구석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못 견디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착취를 이야기하면서도 부인에게 '기생'해서 살아가는 자신을 직면하기가, 직면하면 더이상 '좌파' 혹은 '진보적이지 않을까봐' 두려운 것이다. 마치 어떤 이들이 "이제 혁명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이들은  "여성주의는 우리와 사상적 기반이 달라, 페미니스트들은 사회의식이 없어." 라고 너무나도 당당하게 여성주의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한다.

 

 

이렇게 냉소적으로 글을 써내려가고 있지만, 아직은 인간은 끊임없이 이동하고 변화한다고 믿고 싶고, 서로의 변화 '가능성'과 소통 '가능성'을 기대하고 싶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노력하고 있는 이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어디쯤엔가에 내가 위치하고 있다고 다시 한 번 내 스스로를 확인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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