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직업성 암 노동자, 그 고통과 저항의 시간들

 

 

 

2007년 11월.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최소한 여섯 명이 백혈병에 걸리고 다섯 명이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그때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이러했다.

• 반도체 산업 노동자들이 자연유산과 암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사실

• 일터에서 건강을 잃은 노동자는 치료와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

• 그 원인을 찾아 밝히고 예방할 책임은 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주에게 있다는 사실

 

• 그러나 반도체 자본들은 제대로 원인을 밝히려는 노력은 커녕, 더 값싼 노동력과 더 느슨한 규제 지역으로 옮길 뿐이라는 사실

• 삼성 역시 피해 규모를 숨기고, 병든 노동자에게 퇴사를 종용하며, 유족들을 협박해왔다는 사실

• 그리고 그 어떤 피해 노동자도 자신의 작업환경에 대해 정확한 정보와 교육을 받은 권리를 누린 적이 없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주장했다.

• 삼성은 진실을 은폐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포함하여 일체의 노동기본권을 짓밟아 온 경영 행태를 바꾸어야 한다고

• 노동부는 백혈병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하루 빨리 역학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상을 통해 피해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고통을 하루 빨리 덜어주어야 한다고

 

우리는 피해 노동자와 가족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싸울 때 이런 변화들이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그리고 실제로 직업병에 고통받아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하나 둘 씩 ‘우리’가 되어, 희망을 품고 함께 해왔다.

 

 

 


그런 노력을 통해 우리는 삼성반도체에서 여섯 명보다 훨씬 많은 노동자들이 백혈병에 걸렸다는 사실, 삼성반도체에서 림프조혈기계 암 피해자 규모가 최소한 22명에 달하며 백혈병 뿐 아니라 여러 종류의 직업병이 존재해왔다는 사실,  반도체 이외의 전기, 전자 분야에서도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2008년 초에는 드디어 노동부의 일제조사와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역학조사도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 조사들을 통해 은폐되어온 진실들을 드러낼 수 있으리라 기대를 품었고, 역학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실과 정보를 제공했다.

 

그러나 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조사 과정과 결과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또다른 고통스러운 사실들에 직면해야 했다.

 

• 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은 기업주들이 ‘영업 비밀’이라고 주장하기만 하면,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진실을 은폐하려는 기업주들의 의도에 편승했다. 피해 노동자와 가족들이 당사자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참여의 권리와 알 권리는 무참히 짓밟혔다.

 
• 우리는 조사 결과를 꼼꼼히 검토해볼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노동부의 일제조사 결과는 전혀 공개되지 않았고,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역학조사는 발표회 당일이 되어서야 몇쪽짜리 요약본으로 제공되었을 뿐이었다. 심지어 산재보상 여부를 심의받았던 다섯 명의 백혈병 피해 노동자와 가족들은, 자신에 대해 어떤 자료를 가지고 심의가 이루어지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역학조사에서 발견된 진실조차 축소하고 감추기에 급급했다. 자료를 분석할 때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건강 노동자 효과’를 배제했고, 고위험 집단의 문제를 희석하여 분석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게 나타난 유병률과 사망률조차 일반인들이 제대로 뜻을 이해할 수 없는 문구로 덧칠하였다.

 

 


지금 삼성반도체에서 백혈병과 림프종, 뇌종양에 걸린 일곱 명의 노동자들이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상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고 황유미씨의 가족은 햇수로 3년째 산재보상 판정을 기다려야 했고, 고 이숙영씨의 가족은 근로복지공단 평택지사의 담당조사관으로부터 인격적인 모독을 받아야 했다. 만 1년째 판정이 지연되는 동안 박지연씨의 가족은 치료와 간병을 위한 비용 때문에 엄청난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다.

 

그리고 일곱 명의 피해 노동자와 가족들 모두가, 이처럼 오랜 기다림과 힘겨운 싸움을 견뎌왔는데도 행여 산업재해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왜 일터에서 병들고 목숨을 잃어야 했던 노동자들이 이런 고통까지 겪어야 하는가.


작년 6월, 세계산업안전보건대회를 성대하게 개최하면서 “안전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에서 일할 권리는 근로자의 기본적인 인권이다”라는 <산업안전보건 서울선언서>에 호기롭게 서명하던 정부는, 기본적인 인권을 짓밟혀 고통받아온 이들에게 답해야 한다.  말하라, 이들의 고통이 무엇 때문인지를.  행하라, 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해야할 의무를.

 

 

 

- 2009.4.21. '삼성전자 노동자 직업성 암 피해자 증언대회'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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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4 13:18 2009/04/24 1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