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6월 15일 | 2002-06-15 오후 8:39:08 |
공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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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저거 그거 ... 뭐가 제일 중요할까 둔하게 적응하며 살아갈까봐 두려워서 온몸의 촉수를 바짝 세우고 살겠다고 다짐해왔지만 결국 나는 둔한 데 대해 둔하고, 예민한데 대해 예민하다. 그리고 아직도 나는 헤매인다. 무엇을 하느냐 마느냐, 얼마나 정성을 쏟느냐 마느냐.. 늘 판단하려 하고 늘 계획하려 하지만 결국은 나도 모르는 우선순위,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우선순위에 따라 행동해왔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양식이 학생때와 달리 지금에 와서는 덜 한만큼 손해를 보는, 정말 지극히 손익계산이 딱딱 들어맞는 상황을 초래한다. 그러니까, 내깐에는 직장일을 하면서 '운동'의 언저리에 속할만한 일을 병행하기 위해 밤을 새워보지만 내 옆에는 '직장일'을 위해 밤을 새우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대개가 그러하기에, 결국 낙오? 소외? 열등? 그런 걸 느끼게 된다. 그런 느낌은 현실화되어 실제 업무상 차별되고(엄밀히 말하면 제대로 구별되는 것임) 이런 것을 견뎌야 하는지 아니면 더욱더 열심히 밤을 새워서 극복해야 하는지 아니면 때려치고 나가서 무시해야 하는지 하는 갈등이 일상화되어버린다.
근근히 버텨왔다. 꼭 무엇 하나를 위해 다른 무엇 하나를 버려야 하는 건 아니라는 오기도 있고 솔직히 어느 것을 버릴 만한 용기도 없고 아주 근본적으로는 무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많은 것들을 향유하고 더욱 많은 일에 개입하면서도 충분히 살아갈 만해야 하는 것이 맞다는 믿음으로 버텼다. 지금도 버티고 있다. 버티고 있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번씩, 깜박 잊고 있는 일들이 떠오르고, 외면하던 문제들에 사로잡힌다. 잊고 지내면 안되는 일들, 그런데 잊고 지내던 일들이 순식간에 머리속에 가득 담겨버린다.
정말 모르겠다. 뭐가 중요할까. 뭐를 버려야 할까. 정말 그런게 있을까. 내 인생에서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그것. |
8 | MYR에 관하여, 나의 진로에 관하여 | 2002-08-06 오후 12:33:58 |
공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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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과 mv의 병행에 관한 생각
- 직장에서 하는 일이 자신이 활동하는 mv의 영역과 무관한 경우 힘들어진다 - 자영자보다 임금을 받고 일하는 경우 더욱 힘들어진다 - 임금을 받는 경우 특히 mv과 무관한 사업주인 경우 더더욱 힘들어진다 - 여기에서 힘들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자타의 요구만큼 활동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차적으로는 직장생활에 충실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mv과 무관한 사업주에게 임금을 받으면서 일하는 사람이 자신의 활동력을 확장시키거나 유지하기 위해 노동조건을 조정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 - 여기에서 특별한 경우란 가령 작년 상반기 나의 조건과 같은 경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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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건강 영향'을 넘어설 수 있도록 | 2002-01-15 오전 8:52:39 |
최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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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이의 공부방 "개방"을 축하합니다.
언젠가 불안정노동에 관한 민중의료연합 월례포럼 시간에 노동이론정책연구소 김혜진 선배가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당시 발표와 자유토론은 불안정노동이 건강에 미친 악영향을 드러냄으로써 불안정노동의 문제점을 공박하는 것을 하나의 줄거리로 삼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런 논리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새로운 논리 구조를 제시했던 것은 아니고 선배가 지적했던 접근 방법 역시 여전히 유효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노동자에게 건강 (아니면) 임금 (아니면) 고용 같은 식의 맞바꾸기 논리와 싸움은 결코 어느 것도 얻을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수긍이 가는 바입니다. 사람과 사회의 건강을 공부하는 보건학도는 이 문제를 어떻게 가늠해야 할까요?
[불안정노동과 건강영향]이라는 정옥이의 공부방이 번창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불안정노동과 건강이라는 이 시대의 진보적인 보건학도라면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하여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더 욕심을 부린다면 불안정노동에 대한 연구가 건강에 대한 영향을 실증적으로 논리적으로 입증하는 것에 더하여, 그것이 노동자와 인간의 해방에 기여하는 데 갖는 의미를 늘 새롭게 밝히는 과정에서 이 홈페이지가 제몫을 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옆에서 지켜보았던 정옥이는 두뇌가 명석할 뿐만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견지하려고 노력하는 흔치 않은 보건학도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똑똑하지 않아도 부지런하다면, 부지런하지 않더라도 똑똑하다면, 세상에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텐데, 정옥이는 똑똑한 데다가 비할 바 없는 성실성을 타고 났으니, 이미 남보다 앞서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세요.
새해 복 많이 받기 바랍니다.
최용준 올림 |
15 | 무엇을 위한 사전준비인고 하니 | 2002-01-22 오전 8:52:08 |
공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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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혜화동 로터리에서 열리는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버스타기투쟁, <제10차 장애인도 버스를 탑시다!>에 참석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랜만에 장애인이동권연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글도 읽고 사진도 보면서 각오를 다집니다.
장애인은 불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모든 소외된 이들이 그러하듯,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우애입니다.
방송은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비참함과 가뭄에 콩나듯한 '성공사례'를 보여주며 눈물샘을 자극하지만, 저는 그 눈물이 다름아닌 나 자신과 이 사회를 위해 흘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랑할 것 보다는 감추어야 할 상처가 더 많은 사회를 위해...
대학로에서 일년 가까이 보내면서, 지척에서 있었던 버스타기투쟁에도, 서명운동에도, 단 한번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어차피 지금 해야할 일이 많고 이 일에는 어쩌다 집회에나 나갈 뿐 제대로 하지도 못할 거라면 '내가 해야할 일'이나 성실히 하자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만, 이것은 '내가 해야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저의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오전에 열심히 일해두어야겠지요. 다녀오면 또 소감 올리겠습니다. |
28 | 노동건강연대 월례포럼을 다녀와서 | 2002-02-28 오전 9:31:54 |
공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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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2월 27일)는 서울대 보건대학원 101호 강의실에서 '노동건강연대 월례포럼'이 있었습니다. <인권의 눈으로 본 노동자 건강>이 주제였고, 국가 인권위원회의 김선민 선생님께서 강연을 해주셨지요. (예전에 서울국제민중회의에서 딱 한번 뵌 적이 있었는데, 몇년 만에 다시 만났음에도 저를 알아보시더군요. 워낙 제 미모가 출중해서리.... ^^;)
어제 논의된 내용은 주로 '병력에 의한 차별행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소음성 난청, B형간염이나 결핵, AIDS, 고혈압 등의 병력때문에 부당하게 채용/업무배치 등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여러가지 사례들이 소개되었고, 인권에 관한 국제 선언 및 법령을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내용은 '노동건강연대' homepage에 있다고 합니다.)
강연 초반에 김선민 선생님께서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몇년전에 민주노총의 모 간부로부터 산재예방과 산재처리의 사회적 비용을 비교하여 산재예방이 비용절감의 효과를 가짐을 증명해보자는 주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 논리전개는 저에게도 익숙한 방식입니다. 교과서에서도 그런 식으로 다루는 것을 읽은 기억이 나지요. 하지만 어젯밤에는 '사전예방'의 비용과 '사후처리'의 비용은 자본가에게 결코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사전예방이 비용효과적이라고 해도, 별로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위의 비교계산에서 표현되는 "사회적 비용"이라는 것은, 자본이 직접 지출하는 비용이 아니라 실상 그 실체가 없는 몰계급적인 표현으로서의 "사회"가 지출하는 것이니까요. "사회"가 지출한다는 것은,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시민"들이 지출하는 것이니까요. 자본은 그 비용의 효과를 고민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 한가지. "B형간염, 결핵, 고혈압 등의 문제들은 지속적인 약물투여, 생활습관의 유지관리 등으로 노동능력을 저하시키지 않을 수 있는 것들로서 이들을 노동에서 배제할 경우 직접적인 차별에 해당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병력이나 질병, 장애를 가진 노동자의 노동능력이 비장애인과 비교하여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노동과정에서의 차별을 반대하는 논리는 지극히 제한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능력이 저하될 수도 있는, 그래서 생산성의 효율을 떨어뜨릴수도 있는 노동자에게도 노동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을 2% 의무고용하도록 규정한 법이 있지만 생산성의 논리, 자본의 논리 아래에서는 유명무실한 실정인데, 그나마 건강/질병/장애에 의한 차별을 반대하는 우리가 그 논리를 고스란히 따르는 것이 과연 현실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요. 물론, 정말 터무니없는 이유로 B형간염 보균자들을 사업장에서 격리시키거나 아예 채용하지 않는 몰지각한 사례들은 극복될 수 있겠지만, 지체장애 등의 보다 가시적인 문제를 가진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은 오히려 공고해질 논리가 아닌가 우려됩니다.
고민이 짧아 무어라고 결론내리기 어렵네요. 장애인 노동권의 문제에 대해 좀더 많이 알아가고 방향타를 세워나갈 계기들을 많이 만들어야겠지요... |
29 | 글쓰다 웃겨서.... | 2002-03-05 오후 10:57:45 |
공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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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있는 글이 하나 있는데요... '자본'의 입장을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는 그들의 말을 직접 인용하는 것이 훨씬 명확하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글을 퍼다 읽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우습군요. 혼자 밤중에 키득거리다가 쓰던 글을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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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럽연합에서 파견노동자들도 정규직노동자와 동등한 수준의 임금, 휴가, 복지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규정한 '파견노동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여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Financial times, 2002/02/18). 불안정노동의 단맛을 일찌감치 맛본 만큼 그로인한 사회적 고통을 오랫동안 경험한 결과이다. 물론 이러한 보호조치들이 노동시장의 유연화 전략에 누를 끼칠까 노심초사하는 자본가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
영국의 재계 지도자들은 지난 토요일 이같은 지침이 비용 및 관리부담을 가중시키고 인력업체를 통한 업무위탁에 대한 유인을 제거함으로써 경제에 해를 끼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재계를 대표하는 영국경제인총연합회(Confederation of British Industry)의 사무총장인 디그비 존스(Digby Jones)는…(중략)… "이 지침은 영국 노동시장에 상당한 손실을 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파견업체총연합회ICTWB) 사무총장인 에바 카사도(Eva Casado)도 법안 내용은 유연성과 노동자 보호의 조화를 꾀해야 한다며 "EU의 지침은 발상의 측면에서 낡은 사고"라고 비난했다. 그는 "파견산업의 경제적 공헌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내각의 장관들도 지침의 명문규정이 지나치게 앞서나갈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영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기간제 계약직 노동자들에 대해 임금과 연금의 균등대우를 보장하는 법안의 통과를 유예한 바 있다. Financial times, 2002/02/18,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박영삼 번역을 재인용
불안정노동으로 인한 사회문제에 대책을 마련하는 정부의 제스추어와 여러 가지 명분으로 이를 점잖게 만류하는 자본의 입장표명. 위와 유사한 그림을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규정 신설을 반대함>
○ 임금은 노동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으로서 개별근로자와 사용자가 근로계약기간 뿐만 아니라 임금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사적 자치에 비추어 당연함. 한국경영자총협회, 2000/09/27,『비정규직 근로에 관한 경영계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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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 [단상] 공부. 학교... | 2002-03-06 오후 9:04:15 |
공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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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한노정연 토론회에서 문득 깨달은 것이 있어서 땀나게 메모해 두었는데, 차분히 그 생각들을 정리할 기회가 없군요. 벌써 일주일이 되어가는데......
반짝반짝하는 생각들이 머릿속 가득히 차오르는 순간의 기쁨. 그건 물리학, 화학, 생리학 따위의 실험시간에 내손으로 직접 거둔 실험결과를 놓고 왜 이렇게 된 걸까 이리저리 분석하는 즐거움과도 비슷합니다. 대학 1,2학년때 썼던 실험 리포트 공책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Discussion> 칸에 적힌 글자들 하나하나가 완전한 내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실습은 그래서 즐거웠습니다.
즐겁게, 열심히 공부한 결과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주위의 친구들은 저에게 '세시간 들여서 리포트를 쓰는 것보다 삼십분 동안 베끼는 것'이나 '1학점 짜리보다는 3학점짜리에 공을 들이는 것'의 효율성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웃었지만, 생각해보니 '본과'는 그 효율성을 뼛속깊이 각인시키는 과정이었습니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저항할 수도 없었던 '효율성'.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우수한 성적을 받을 수 없었고 저항하지 못했기에 6년만에 잽싸게 졸업할 수 있었던.
지극히 지극히 지극히 XX한(적당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네요) 학교라는 사회에서 하루에도 몇번씩 "그나마 여기가 제일 낫다"는 말로 자위하며 '꿈'을 가슴속 깊이 밀어넣습니다.
이런 생각들이 '배부른 소리'이며 '한가한 소리'라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그에 대한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조금 더 배불러지고 조금 더 한가해지면, 그땐 더이상 이런 고민 안하겠지. 난 그게 더 끔찍해." |
31 | [쓴 글] 소각장의 산업안전관리 | 2002-03-18 오후 10:29:48 |
공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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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쓰시협(쓰레기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단체 협의회)이라는 단체에서 민중의료연합을 통해 청탁받아 "돈받고 쓴" 원고입니다. 애초에 분량이 한정되어 있고 글쓰는데 많은 시간을 쏟지는 못했지만, 온통 유해물질밖에 없는 소각장 이라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새삼스럽게 깨달은 좋은 기회였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환경미화원/쓰레기 선별 및 적환/소각 등 처리업체 등의 노동환경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싶습니다.
소각장 작업장에서의 안전관리
2001년 10월 울산의 한 산업폐기물 중간처리업체에서 일하던 노동자 5명이 급성간염에 걸려 이중 한 명이 사망하였음이 보고되었다. 이에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조사한 결과 2000년 5월 이후 액상폐기물을 효과적으로 고형화시켜 처리하는 공정을 자체개발하여 가동 해왔으며, 이 공정에서 각종 간독성 유해물질들이 발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폐기물 관리법에 따르면 폐기물은 생활폐기물과 사업장폐기물로 분류하며 사업장 폐기물 중 폐유, 폐산 등 주변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는 유해물질은 지정폐기물로 분류된다. 2000년 현재 우리나라 지정폐기물 발생량은 2,757천톤, 감염성 폐기물까지 포함하면 2,779천톤에 달 한다(환경부, 2000 지정폐기물 발생 및 처리현황, 2001). 폐기물을 최종처분하는 방법에는 매 립(landfill), 소각(incineration), 생물학적 처리(biological treatment) 등이 있는데 이 중 소각 으로 처리되는 지정폐기물의 양은 21.7% 이다.
2000년 현재 우리나라의 지정폐기물 2,779천톤 가운데 522천톤은 중간처리업체에 위탁처 리되고 있다. 이러한 지정폐기물 중간처리업체들은 대개 중소규모의 사업장으로서 안전보건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번 독성간염 사건도 2000년부터 업체에서 자체개발한 액상 폐기물 처리기술을 안전보건상의 검토없이 도입하였다가 발생한 비극이었다.
독성간염 사건에 대한 노동부의 대책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정폐기물 중간처리업체에 대한 특별지도·점검을 통하여 유해성이 입증된 작업을 하면서도 보건상의 조치를 소홀히 하는 경우 작업중지명령을 내리고 중대 법 위반사실이 적발되는 경우는 사법처리한다. 둘째, 지정폐기물 배출·처리업체에 대하여 직업병 역학조사를 실시하여 폐기물 처리업체 노동자 의 건강보호대책을 마련하고 관련 법규 및 제도를 정비한다.(노동부, 지정폐기물에 의한 독 성간염 역학조사결과 설명회, 2002)
이러한 조치들은 산업안전보건법 상 다음의 조항들을 근거로 한다. 사업주의 유해·위험 예방조치를 규정한 보건상의 조치(법 24조), 제조 등의 허가(법 38조), 유해물질의 표시(법 39조) 등과 노동자의 보건관리를 위한 작업환경측정(법 42조), 건강진단(법 43조) 등이 그것 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치들은 과연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 실제의 소각장을 상상해보자.
소각장의 공정은 폐기물 전처리, 소각로에 공급, 소각공정, 대기오염 방지공정, 소각 잔여 물 처리공정 등으로 구분된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자면 일단 이 사업장에서 다루는 유해 물질들과 그 위험에 대한 물질안전보건자료를 마련하고, 특정 물질들에 대해서는 정부의 허 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물질들이 처리를 위해 반입되고 있는지 조사를 해 야 한다. 그러나 폐기물은 그 특성상 정확한 성분이나 함량이 기록되지 않는다. '원료'가 아 니라 '폐기물'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 복잡한 폐기물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 는 가스나 소각재등의 성분 역시 복잡하기 그지없다. 유해물질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다 는 것. 바로 이것이 폐기물처리업체의 독특한 특징이다. 이것이 바로 특정 유해물질에 대한 작업환경 측정이나 건강진단 등의 조치만으로는 폐기물 소각장 노동자의 건강을 제대로 보 호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각장 노동자는 각종 유해화학물질 뿐만 아니라 화재 및 폭발, 산소결핍, 전리방사선, 생물학적 유해인자, 안전사고, 전기사고, 열탈진 및 열사병, 소음 등의 수많은 위험들에 노출 된다. 이들은 다른 사업장과 달리 극도로 치명적인 경우가 많고, 그 종류와 양을 정확히 규 명하기 어려우며, 동일 사업장 내에서도 일하는 장소나 업무내용, 그리고 매일매일의 환경조 건에 따라 폭로정도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통제하기가 무척 어렵다. 또한 공정을 어떻게 변환하는가에 따라 위험의 크기가 상당히 가변적이다(NIOSH,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guidance manual for hazardous waste site activities, 1985).
결국 각 소각장에는 유해인자를 파악, 관리하고 안전보건조치를 재빠르게 조정할 수 있 는 전문적인 책임인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이렇게 포괄적 인 권한을 지닌 안전보건담당자를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특히 특정 유해물질을 열거할 수 없는 소각장 등의 특수 사업장에 대한 별도의 조치가 전혀 취해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 상에서 작업장의 안전보건을 관리할 수 있는 담당자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 관리감독자, 안전관리자, 보건관리자, 산업보건의, 안전보건총괄책임자,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등이 있다. 그러나 모든 사업장에서 반드시 이러한 안전보건 담당자를 두어야 하는 것은 아 니며, 일정 규모이상의 사업장이나 특정 유해업종에만 의무조항일 뿐이다. 따라서 소규모 사 업장이거나 특정 유해업종으로 지정되지 않은 사업장의 경우에는 굳이 담당자를 선임할 필 요가 없다. 위의 여러 담당자들 가운데 지정폐기물 소각장에 반드시 두어야 하는 것은 안전 관리자로서 그것조차도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제 15조에 열거된 39종류의 작업에 해당되는 공정(가령 소각로 청소작업의 경우에는 "산소결핍장소에서의 작업"에 해당됨)에 관해서만 의무적인 것이다.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에서 1993년 환경보호기금 소각장 5개소의 안전보건프로그 램을 평가한 결과 열가지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는데, 그 중에 가장 첫 번째 지적사항이 바로 "소각장의 안전보건담당자는 노동자의 안전보건에 관한 자신의 판단을 실행할 권한을 가져 야 하며, 경영상의 결정에 이들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OSHA, Summary report on OSHA inspections conducted at superfund incinerator sites, 1993). 안정적으로 주어진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안전보건담당자를 배치하고 그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충분히 부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소각장 안전보건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 요한 조치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비단 미국의 소각장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소각장 건설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의 주장은 생태주의적 환경보호론에서부터 단 순한 님비(NIMBY)주의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소각장에 대하여 가 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사실은 다이옥신 등 지역사회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유해물질 배 출의 위험이다. 이것은 각 소각장의 대주민 홍보가 대기오염 방지시설에 대한 소개 위주로 편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 이런 현실에서 이번 독성간염 사건은 소각장 근무 노동자들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제기하는 계기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아무리 대기 오염 방지시설을 철저히 갖추어 지역사회의 청정한 대기를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더 나아가 아무리 폐기물의 발생량을 줄여나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결코 폐기물 처리업체 노동자들 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생각케 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이번 사 건의 해결과정이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 제도의 근본적인 한계를 되풀이하는 미봉책들로 끝 나지 않기를 바란다. |
32 | 병원파견근무를 시작하며 | 2002-04-02 오후 7:58:29 |
공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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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부터 병원파견을 시작했습니다. 파견 나가기 직전, 3월 31일까지 '차라리 전공의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병원에 나가기가 싫었습니다. 그건 제가 병원이니, 임상이니 하는 것들에 알레르기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껏 만들어놓은 일상의 균형이 깨어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파견 이틀째였답니다.
파견근무를 나가면서 가장 치명타를 받는 것이 아무래도 여기, 이 커뮤니티에서 풀어내려 했던 이야기들인 것 같습니다.
이 커뮤니티에 들르는 사람이 누구누구인지 저는 모르지만, 저의 느릿느릿한 이야기들을 잊지 않고 가끔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 역시 계속 나아갈 겁니다. 불안정 노동의 철폐를 위해. |
34 | [쓴 글] 건강검진제도의 활용방안 - 철도노조 교육안 | 2002-04-09 오후 7:41:26 |
공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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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4월 8일 철도노동조합 서울지방본부, 서울철도차량 정비창 지방본부 임원/지부간부 실무교육에서 발표한 내용입니다.
건강검진제도의 활용방안
공유정옥 kong@jinbo.net
건강진단의 의미와 한계
현재 우리나라의 제도적 산업안전보건체계는 건강진단사업, 작업환경측정사업, 보건관리대행사업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런데 이들은 단순히 법에 보장되어 있는 안전보건사업의 방법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와 다른 여러 나라들의 경험 속에서 이러한 제도를 국가 및 사업주가 노동자를 통제하는 도구로 이용해 온 면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장 노동안전보건사업의 도구로 건강검진제도를 백분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 의미를 다각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1) 1950년대 ; 근로기준법은 1953년에 만들어졌다. 전쟁으로 국회가 부산에 피난해있던 와중에 이 법을 제정한 이유는 당시 방직공장 파업을 무마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비록 이 법으로 16인 이상 사업장에 정기적인 건강진단 실시가 의무화되었으나 세부 시행규칙이 마련된 것은 1961년이었으며, 그 전까지는 거의 유명무실한 형편이었다.
(2) 1960-70년대 ; 1963년 산재보상보험법과 근로자 집단검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군사정부의 개발독재정책에 의하여 선진국으로부터 각종 고위험산업, 공해산업 및 노동집약적 산업 등이 전격적으로 도입되면서 노동자의 건강상태가 극도로 열악해졌기 때문에 건강한 노동력을 확보·유지하기 위하여 건강검진제도가 필요했다. 또한 각종 질병과 재해에 희생된 노동자들의 불만을 무마하는 한편 정권유지의 명분을 위한 개혁정책의 일환으로 산재보상보험법이 도입되었다.
(3) 1980년대 ; 80년 군사정권이 들어선 직후 노동청이 노동부로 승격되고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되었다(81년). 이는 당시 군사정권의 과시행정용 수단인 동시에 YH사건, 사북사태 등 노동자의 집단적 힘에 대한 효과적 대응기구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80년대 말 문송면 수은중독사건, 원진레이온 사건 등을 거치면서 기존의 법과 제도가 노동자 건강을 실질적으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음이 폭로되었다.
(4) 1990년대 이후 ;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산업안전보건법의 개정 등 노동안전보건에 일련의 개혁조치들이 뒤따랐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들은 YS정권에서 시동이 걸린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이 뒤이은 DJ정권에 의해 본격화되면서 많은 한계점을 내보였다. 특히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과로사, 근골격계질환 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으나 기존의 법·제도 안에서는 아무런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이다.
(1) 산업안전보건법 상의 의미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건강진단이란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사업주가 실시해야 하는 의무로 규정되어 있다.
(2) 검진기관의 판매상품이라는 의미
산안법 상에서 건강검진실시가 의무화되어있고 검진항목이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검진기관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곧 수요가 정해져있는 시장인 셈이다. 따라서 시장의 원리에 따라 검진이라는 상품을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보다 많은 구매자에게 판매하려는 동기가 발생하여 검진의 질이 낮아져왔다. 또한 검진을 '구입'하는 것은 사업주이기 때문에 지난 1월 LG칼텍스의 검진 축소은폐 사건과 같이 사업주가 검진결과를 좌지우지하는 등 검진기관과 사업주 사이의 야합이 이루어지기 쉽다.
(3) 자본의 입장에서 - 노동력 통제수단의 의미
사업주의 입장에서 건강진단을 비롯한 안전보건의무들은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문제가 생길 만한' 사람을 일찌감치 가려내고, 보다 '일 잘하는' 사람을 골라서 채용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또한 일단 채용이 끝난 상태에서도 직업병 발생률을 낮추기 위해 건강진단 결과를 악용할 수 있다.
그러나 건강진단은 "의학적 치료를 필요로 하기 이전 또는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한 시기에 건강장해나 질병을 발견할 목적으로 실시하는 의학적 검사"이며 결코 고용이나 작업배치에 대한 차별을 목적으로 악용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건강검진은 "위험한 작업을 견뎌낼 수 있는 튼튼한 노동력을 골라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취약한 노동자도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을 목적으로 이용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건강진단제도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1. 건강검진에 대해 최대한 개입한다
검진이 실시되기 이전에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등의 기구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검진기관 선정부터 검진 실시시기 및 내용을 결정하는데에 노동자의 참여권을 최대한 획득해야 한다. 또한 검진 과정 및 검진결과 통보방식에 대한 결정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노동조합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단협에 명시하는 것이 좋다. 2. 건강검진 결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검진의 결과는 각 개인별로 판정된다(부록 2 참조). 이 결과들을 노동조합에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직업병 유소견자 및 요관찰자로 판정된 개별 노동자에 대한 적절한 대책마련과 아울러 부당한 인사조치나 해고가 자행되지 않도록 감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고위험 업무를 선정하여 이에 대한 역학조사 혹은 노동조건 개선 등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
건강검진은 직업성 질환을 최대한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실시되는 것이다. 그런데 다음 그림을 보면 전체 노동자 가운데 직업병에 걸리거나 직업관련성 증상이 나타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그림은 생략)
건강검진은 여러 가지 노동안전보건활동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며, 이보다 중요한 것은 사전에 노동현장의 위험요인들을 밝히고 없애는 작업이다. 따라서 건강검진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이를 백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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