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적 효과> 한번은 과학 포럼에서 저명한 연구자 한 사람이 연단으로 다가가자 활동가들이 쿨에이드가 든 컵을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그의 연구방법이 에이즈 환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가이아나의 존스타운에서 사이비 종교지도자 짐 존스가 추종자들에게 미친 영향에 빗댄 것이다.(쿨에이드는 크래프트 푸즈사가 판매하는 과일맛 음료의 상표로, 보통 분말 형태로 판매되며 물에 타서 마신다. 짐 존스 목사가 이끄는 종교집단 '피플즈 템플'이 남미 가이아나 공화국에서 건설한 종교공동체 존스타운에서 1978면 11월 18일에 909명의 신도들이 집단자살한 사건을 가리킨다. 존스는 신도들에게 청산가리가 섞인 쿨에이드를 주어 자살하게 했다.) 1987년 보스턴에서 열린 공개 포럼에서 식품의약청장이 연단에 올랐을 때는 청중석에 있던 활동가들이 손목시계를 높이 들어올렸다.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에게는 시간이 없음을 말해 주는 암시였다.

p36-37

 

<경계> 한편으로 활동가들은 에이즈에 관한 정보를 유포하는 교육 전략을 추구함으로써 기층 수준에서 폭넓은 기반을 갖춘 지식-권한 강화의 발전을 촉진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치료 활동가 지도자들이 준전문가가 되자 그들은 운동 그 자체의 내부에서 전문가/일반인 분할을 재연하는 경향을 보였다. 소수의 핵심 활동가들은 "그들의 사정을 알고 있는" 내부자가 된 반면, 다른 사람들은 바깥에 남아서 바리케이드를 지키는 역할을 맡았다.

p56

 

시민패널 한 사람은 함께 일하면서 "벽이 허물어졌다"고 했다. "가령 버스를 타고 갈 때와 같은 일상 생활 속에서는 그처럼 다양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 흔치 않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최종 기자회견에서 또 다른 시민패널은 이렇게 결론 내렸다. "우리에게 배울 기회를 주고, 우리가 배운 것을 지역공동체에 다시 돌려줄 기회를 제공한 이번과 같은 패널이 앞으로 더 많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보스턴 합의회의에 참가한 또 다른 패널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 자신의 시민의식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됐습니다 .고대 아테네 사람들과 일체감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 놀라운 소속감이 느껴졌고, 사람들이 모일 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경이로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p83

 

<미국 농업과학에 대한 비판> 농부가 만들어 낸 지식보다 과학지식이 더 우월하다는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져왔다. // 연구주제의 선정이 사회의 특정 성원들의 이해를 반영하며 다른 성원들은 무시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 여성과 유색인종은 농업연구의 방향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p93-94

 

<국지적 지식> 특정한 장소 내지 활동에 고유하면서도 변화무쌍한 사회적, 물질적 특징들을 개인적으로 경험하고 꼼꼼하게 주의를 기울이면서 발달하는 실용적 숙련.

p100

 

<농부 네트워크를 통한 지식 생산과 교류> "네트워크에서 또 하나 핵심적인 것이 있다면 자기 자신의 실수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통해서도 배운다는 겁니다"

p102

 

"어떤 사람이 더 잘 이해하도록 내가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만족스럽답니다. ... 하지만 내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일을 해야할 지 일러주는 그런 상황으로 가고 싶진 않아요." 이러한 접근 방식은 공유와 동등한 참여를 강조함으로써 전문가로부터 비전문가에게로 정보가 일방적으로 흐르는 것을 거부한다. 경험적 지식의 타당성을 옹호하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아는 전문성에 대한 주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p103

 

<통찰> 만약 '지식이 곧 힘'이라면, 일군의 사람들을 지식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비민주적이다.

p113

 

지식의 민주화에는 정보에 대한 동등한 접근권 뿐 아니라 어떤 지식이 누구에 의해, 누구를 위해, 어떤 목표를 향해 생산되는가에 관한 질문에 답할 때의 동등한 참여도 포함되는 것이다.

p116

 

인류문명은 "훌륭한" 사회와 그 시민들을 특징짓는 핵심 덕목들 - 자유, 정의, 평등, 지혜, 자비, 관용, 절제, 공유 등 - 을 둘러싼 현재진행형의 담화로 점철돼 왔지만, 이러한 덕목들간의 완벽한 유토피아적 균형을 묘사하는 평형 방정식 같은 것은 앞으로도 결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 정의는 자비로, 자유는 절제로 누그러뜨려야 한다. // 이러한 합의는 사리에 맞되 엄격한 합리적 잣대를 들이밀지는 않고, 실용적이되 깔끔하지는 않은 과정 속에서 논의를 거쳐 도달해야 한다. // "확실성은 이성의 제단에서 희생된다"

p157-158

(((저자 말에 따르자면, 내 안의 "계몽주의" 발견!!!)))

 

결과적으로 연방 과학이 인간의 복지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최근의 숙고는 대체로 계몽주의 프로그램의 수행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 이 프로그램 자체에 의문을 품는 것이 아니라 - 라는 틀 속에서 이해되었다. 예를 들어 ... // ... 과학자와 대중의 "더 나은 의사소통"의 필요성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 이러한 이상은 분명 칭찬받을 만하지만, 그것이 흔히 표현되는 형태를 보면 과학자 공동체로부터 대중에게 정보가 전달되는 통로를 그냥 넓히기만 하면 된다는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고, 좀더 근본적인 쟁점들 - 정확히 어떤 유형의 정보가 제공되고 있는가, 또 대중이 지혜나 방향 인도의 측면에서 연구 체제에 무엇을 제공해야 하는가 - 은 무시하고 있다. // 정치적 논쟁에 대한 해법으로 "건전과학 sound science"을 들먹이는 일이 잦아졌다. 위험평가 risk assessment 같은 기술관료적 접근이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흔히 처방되고 있다.

p165-166

(((5장 Daniel Sarewitz의 글은 꼼꼼히 읽어보고 토론해볼 만한!!! 그런데 누구와?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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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6 11:16 2013/01/16 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