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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몸살

감기몸살

 

제 몸을 함부러 다룬 탓일까요. 한 몇 일, 제 몸에 바람이 불고 혹독한 불덩어리가 목구멍을 기어올랐습니다. 아프다는 것은 고통입니다. 고통스러운 시간 동안, 제 몸을 비난하고 미워했습니다. 평생동안 몸과 정신은 서로를 길들여가며, 의견을 맞춰가면서 살아갑니다. 아프다는 것은 몸과 정신이 반목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함께한다는 것이 내 몸에서도 이렇게 어려운데 이 사회는 오죽할까요.


문수사리(文殊師利)가 유마거사(維摩居士)에게 그이의 병이 왜 생겼는지 묻습니다. 그러자 유마거사는 ‘세상이 병들어서 나도 병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병이 드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몸이 제 것이 아닌데 어찌 몸에 드는 고통스러운 물건마저 나만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몸의 병이든, 마음의 병이든, 사회의 병이든 모든 이의 아픔이고, 고통일 때 그 병은 완전히 치유될 수 있습니다.

 

37년 전, 철옹성 같이 버티고 서 한 치도 양보하지 않을 듯한 세상 사이로 제 몸을 불살라 인간다운 삶의 길을 낸 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이의 죽음을 모두의 죽음이라고 생각했고, 결국 모두가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몇 일전 제 몸이 불덩어리가 된 날, 한 택시노동자가 온 몸에 불을 당겼습니다. 그 또한 우리 민중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들 ‘한미FTA’를 반대하여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제 몸을 불살라야 사회적 발언권을 획득하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일까요.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 그것도 함께 살아가기 위해 목숨을 던져야 하는 비정상적인 이 나라가 원망스럽습니다. 그이를 설득할 능력도 없이 한미FTA를 과연 했어야 했는지 의문입니다.

 

열사달력의 매일 칸마다 빼곡히 차 있는 열사들의 이름을 보고 있노라면 갑자기 마음 깊은 곳에서 묵직한 뭔가가 올라옵니다. 그 뭔가는 희망도, 절망도 아닌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시대에 대한 분노심과 배반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노심과 배반감은 쇳불로 벌겋게 달아오른 채 좀처럼 삭아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죽음으로 근근히 획득한 ‘사회적 발언권’을 통한 생존의 소리를 현 정부가 듣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감기몸살에는 걸리지 않았는지, 그런 ‘사회적 질환’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말해도 듣지 않아 생기는 ‘속병’은 늘어만 가고, 들어도 모른 척하는 ‘이명증’은 더욱 심해져가고 있습니다. 감기몸살에 합병증까지. 감기몸살도 정복될 수 없는 병이지만, 이 병을 그냥 방치해 두었다가 큰 병이 되면 수술로도 완치될 수 없습니다.

 

제 몸에는 건강이라는 평화가 다시 찾아왔지만 우리 사회의 평화는 언제 찾아올지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 달의 참신나는 소식을 전하는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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