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창세기

창세기

 

우리『참신나는 소식』이 횟수를 거듭하면서, 창신동 이야기들은 저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오도엽 선생이 만나는 ‘아줌마’들의 ‘가슴앓이’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점점 불편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가슴앓이가 그이들의 인생에 성장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랜 ‘지병’이자, 삶의 ‘관절염’같은 존재로 늘 자신들을 눌러왔습니다. 그래서 그이들의 삶을 읽으면 읽을수록 답답하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머리 속에 먹물이 끼어 이제는 씻어도 잘 탈색되지 않는 저 같은 사람은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시다의 고통도, 남편의 폭력도, 외환위기의 충격에도 그이들은 몸부림쳤지만 그런 가시덩쿨을 빠져나오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이들은 오늘 우리와 함께 살아있고, 함께 웃고 있습니다.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 것 중 하나는 삶이 자신을 지치게 할 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그 정신 때문이었습니다. 그 ‘정신’은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잘’ 살기 위해 번지르르한 지식으로 칠갑한 가식덩어리가 아니었습니다. 금방금방 포기하고, 새로운 것에 쉽게 현혹되는 저와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매일매일 ‘나는 살아야 한다’, ‘나는 살아내야 한다’고 주문을 외치며 수많은 절망의 손목을 끊어내면서 시퍼렇게 멍든 손발로 미싱을 돌려야 했던 우리 언니, 누이, 형님, 오빠들.
 70년대 혼돈과 폭압의 역사를 뒤집으면서, ‘나’라는 존재는 ‘우리’의 또 다른 표현이 되었고, 그이들의 몸은 ‘한 몸’이 되고 ‘한 정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이들이 창신동의 ‘창세기’’를 연 주인공이며, 우리 봉제의류 산업의 알파요, 오메가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창신동의 역사는 ‘하얀 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싱바늘에 손가락을 찔려 새 살이 차오르는 고통을 이겨낸 손들이 만든 역사입니다. 그 손으로 조막만한 엷은 가슴이 찢어질 때마다 짜깁고, 또 이어붙이며 이윽고 너덜해졌다고 하지만 이제는 그 마음의 색깔은 오색의 찬란한 모양으로 다가옵니다.

오늘 밤에도 창신동, 아니 미싱 아래 가느다란 바늘에 초점을 모아 한 올 한 올 수를 짓는 이 땅의 모든 창세기 주인공들이 있습니다. 단박에 세상을 열어내진 못하지만 열 번 스무 번 절망을 이겨내며 엮어낸 희망이 비단융단처럼 세상을 빛나게 만듭니다. 그 비단융단같은 세상을 꼼꼼히 지어내는 사람들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