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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세계화론 비판 초고

오늘 아침 문득 생각나서, 잊어버리기 전에 정리해 둠.

 

글의 포인트는 약한 고리 이론의 재규정. 원래 모두들 알고 있던 거라면 낭패.

 

1.

 

'금융세계화'를 통한 신자유주의 확산 및 자본주의 레짐 형성이라는 논의의 핵심은, 1970년대 이후 이윤율 저하와 위기에 직면한 세계자본이 실물경제 부문으로부터 탈출하여 금융경제 부문에서 허구적인 이윤을 얻고 있다는 주장에 있다. 금융세계화론자들은 이런 주장을 근거로 현 자본주의 질서의 핵심이 금융부문의 비대화에 있으며, 그를 통한 노동자 민중의 실제 삶으로부터 유리된('고용 없는 성장'으로 대표되는) 자본증식이 현 정세를 규정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반신자유주의 인민전선이 된다. 그들은 현재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것, 또는 자본이 이윤을 찾는 곳이 금융부문이므로 그 방향으로의 확장을 저지하는 것이 현 정세에서 가장 유의미한 저항이며, '가장 약한 고리'라고 주장한다. 헌데 금융부문에 대한 타격이라는 것은 결국 금융부문의 지배력을 보장하는 법적/제도적 장치들에 대한 반대일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타격을 위해 최대한의 인민('이데올로기적 전화'를 거친 인민)이 국가에 대항한 정치투쟁을 벌이는 것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2.

 

그러나 일단 일차적으로, 이러한 논의는 약한 고리 논리를 오독한 것이다. 레닌이 당대에 제국주의를 약한 고리라고 칭한 것이 과연 단순히 세계자본이 제 3세계에 대한 초과착취를 통해서 이윤을 주로 얻게 되었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나?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 체제의 특수한 정세를 자본의 이윤창출 전술로부터 도출하고, 그에 대한 타격으로서 자본주의를 약화시키자는 주장은 사실 파국론이다. 자본의 이윤취득을 막음으로써 자본주의를 파멸로 인도하자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과연 자본주의는 공황 시기에서 붕괴하는가? 자본주의는, 많은 스탈린주의자들이 믿었던 것처럼, 그 자신이 인민을 먹여 살릴 능력이 없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증명되었을 때 쓸려 나가는가?

 

그렇지 않다! 파시즘의 경험을 통해 드러났듯이, 혁명의 가능성과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자본주의를 철폐해 내는 것은 자본주의의 파국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주체적인 계급투쟁이다. 계급투쟁 없는 자본주의의 위기는 파시즘만을 불러올 뿐이다. 이러한 관점을 상실한 파국론은 결국 경제토대의 붕괴가 사회의 변화를 불러온다는 경제주의적 전제로부터 출발하여, 개별 자본이 아닌 국가/총자본에 대항해야 한다는 정치주의적 실천으로 귀결되는 우스운 꼴을 보인다.

 

3.

 

따라서 '약한 고리'는 자본의 잉여가치 창출 전술에서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을 가로막는 현실적 조건들로부터 도출해야 한다. 레닌이 제국주의를 당대의 약한 고리로 주목한 이유는 세계자본이 거기에서 초과이윤을 얻기 때문이 아니라, 그 초과이윤을 통해서 제 1세계의 노동계급을 회유하고 제 3세계의 노동계급은 폭압적으로 파괴하는 과정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즉 노동계급을 제 1세계와 제 3세계로 나누고 전자에겐 회유를, 후자에겐 폭압을 통해 대자적 계급을 해체시켜 나가는 자본의 지배동학에 집중한 것이다.

 

그러므로 현 시대의 약한 고리 역시 같은 맥락에서 도출되어야 한다. 현재 노동계급의 단결과 계급투쟁을 저지하고 분열시키는 가장 큰 요소는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의 불안정화이며 노동의 분할이다. 노골적으로 폭압적인 착취와 통제의 강화를 통한 계급성의 파괴이다. 금융세계화 같은 이윤창출의 논리는 오히려 이러한 총자본의 체계적인 계급투쟁 전략에 종속되어 있다.

 

금융세계화론자들은 금융세계화를 '위로부터의 계급투쟁'이라 칭하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계급투쟁엔 계급이 없다. 자본이라는 하나의 물신화된 '지배자의 이미지'만이 존재하며, 그들이 어떻게 어떤 계급을 타격하는지에 대한 고찰이 전혀 없다. 즉 금융세계화론은 뿌리부터 열매까지 계급적 관점 전체를 사상하고 있다.

 

계급에 대한 공격은 단순히 그 계급을 빈곤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계급이 계급으로서 존립할 수 없도록 하는 것,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계급이 위협이 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개별자본은 구체적인 이윤 수취를 위해 움직이지만, 계급으로서의 총자본에게 중요한 것은 지배계급으로서의 위치 유지이며 사회를 자신의 논리에 따라 통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총자본의 전략이 금융세계화를 통한 허구적 이윤수취라는 것은 국가의 당면정책과 총자본의 전략을 동일시하는 오류이다. 오히려 총자본은 그러한 이윤수취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 위기의 시기에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노동계급이 위협적이지 않게 할까에 더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노동계급이 들고 일어나면 이윤이고 뭐고 없기 때문이다.

 

4.

 

이러한 오류들을 통해 금융세계화론은 필연적으로 몰계급적 반신자유주의 전선, 그리고 역시 몰계급적인 공공성 논리로 나아간다. 이것은 경제주의적 전제가 관념적 이데올로기론과 기묘하게 접합하는 지점이다.

 

금융세계화론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금융부문의 비대화를 막고 자본의 이윤창출 경로를 차단하는 것인데, 이는 상술했듯이 금융부문의 개별자본에 대한 파업을 통해서가 아니라 금융부문의 지배력을 보장하는 법/제도에 대한 타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헌데 이러한 정치투쟁은(여기서 그들은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멋진 스탈린주의적 이분법을 보여준다) 현장에 있는 구체적 노동자들이 아닌, 거리에 나와 정부에 반대하는 이데올로기적 인민만이 수행할 수 있다.

 

헌데 이러한 인민들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 반신자유주의 전선이란 결국 계급투쟁 전선이 아니며, 그 전선의 이쪽 편에 서는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도 계급이 아니기 때문에, 자본에 대한 계급적 적대로서 전선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필요해지는 것이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전화이며, 다른 말로 하면 허구적 주체화의 과정이다. 보편적 권리와 그에 근거한 공공성이라는 개념은 모든 '없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줄 수 있을 것처럼 얘기하여 주체를 규정한다.

 

결국 이들의 논리 전체에서는 계급투쟁이라는 맑스주의의 가장 기본적이고 거대한 원칙이 삭제된다.

 

5.

 

자본주의 체제에서 성립 가능한 정치적 주체는 계급 외에 없다. 모든 이익과 정체성의 근본은 계급전선으로 나뉘며, 이 속에 보편적 권리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부르주아의 권리와 프롤레타리아의 권리만이 덩그러니 나뉘어져 있을 뿐이다.

 

문제는 이러한 즉자적 계급을 어떻게 주체로서의 계급, 대자적 계급으로 전화시킬 것인가에 있으며, 본래 이데올로기론이란 여기에 복무해야 한다. 비계급 집단을 계급인 것처럼 속여내기 위한 이데올로기는 말 그대로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도전을 차단하려는 총자본의 대응전략이며, 이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그 저지 라인을 끊어낼 것인가이다. 그것이 바로 현 시기 자본주의의 약한 고리이며, 유일하게 가능한 정세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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