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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만

                                           5월 21일
입하에서 소만에 이르기까지 우리집 주변은 온통 꽃향기 속에 잠긴다. 집 밖을 나가지 않아도 창문만 열면 여러꽃의 향기가 섞여 코를 찌른다. 집 마당에는 함박꽃과 해당화, 불두화 향기가 그윽하고 집 뒤쪽 산 주변에는 아까시나무와 찔레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향기가 진동을 한다. 이 향기는 마당 어느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면서 내 감각을 일깨운다. 특히 우리집 뒤쪽으로는 야산일대에 찔레꽃이 많아 그 향기가 대단하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한테는 이 찔레꽃과 향기가 보릿고개를 연상시키는 것이었다고 한다. 찔레꽃이 피어있는 입하와 소만절기에는 보릿고개가 있었다. 지난해 농사지었던 곡식이 다 떨어지고 새로운 곡식은 아직 여물지 않은 이 시기는 대다수 가난한사람들이 굶주릴 수 밖에 없었다. 이 때만 넘기면 보리를 수확할수 있기 때문에 배고픔을 면할수 있지만 그 것이 그렇게 어려워서 높디 높은 보릿고개라고 이름 붙였다. 한 시인은 이 보릿고개를 세계에서 제일 높은 에베레스트 산보다 더 높은 고개라고 했다. 이러한 보릿고개가 항상 찔레꽃 피는 시기에 있었으니 찔레꽃과 향기를 즐길만한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소만이 되면 논일은 늦벼를 모두 파종하고 올벼의 모내기를 시작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모내기철에 접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밭일로는 목화밭을 초벌갈이하고 올조와 이른 콩의 김매기를 한다. 작업과정으로는 모판돌보기-모판물관리-새쫓기-피가리기-비료치기와 모내기-물대기-논갈기-논삶기-논고르기-비료치기-모쭈기-모운반-모심기가 있다. 사용하는 농기구로는 살포, 물괭이, 태, 소, 쟁기, 써래, 지게등이 있다. 이 때쯤되면 밭에는 감자꽃이 피기 시작한다.

소만이 모심기가 시작되는 철이므로 속담역시 모심기와 관련된 것이 많다.
“소만 전 모심기다”
“찔레꽃 필 때 모심으면 풍년든다.”
“밤꽃 필 때 심은 모는 풍년 든다.”
지금 우리 집앞에 들을 보면 논마다 물이 가득차있고 본격적으로 기계모를 심고 있다. 그런데 예전에는 소만 절기에 모심기를 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수리안전답이 별로 없어 이 때 가뭄이 들면 모를 낼수가 없었고 비닐하우스를 통해 변덕스러운 날씨도 조절할수 없었다.  게다가 손모는 기계모와 달리 많이 자란 상태에서 심기 때문에 소만에 모를 낸다는 것은 날씨도 따뜻하고 비도 풍족해서 벼농사 짓기에 가장좋은 상태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찔레꽃, 밤꽃피는 소만전의 모심기는 풍년을 보장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고 보니 밤꽃이 이제 막 이삭같은 화서를 내밀고 있다.

이때는 보릿고개와 관련된 속담도 많다.
“태산보다 높은 보릿고개다.”
“나락이삭 끝을 보고는 죽지만 보리이삭 끝을 보고는 죽지 않는다.”
“보릿고개에는 딸네 집도 가지 못했다.”
“사월 없는 곳에 가서 살면 배는 안 곯는다.”
“삼사월 손님엔 반가운 손님 없다.”
“삼사월 손님은 꿈에 볼까 무섭다.”
“소만이 지나면 보리가 익어간다.”
소만은 음력으로는 사월이다. 이때 본격적인 춘궁기 보릿고개이므로 아무리 반가운 손님이라도 달갑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때는 아버지가 딸네 집에 들르는 것도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사월 없는 곳에 가서 산다는 생각을 다 했을까? 이런 시기에 들판에는 보리가 익기 시작한다. 이것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나락이삭 끝을 보고는 죽지만 보리이삭 끝을 보고는 죽지 않는다.”는 속담이 이 것을 잘 말해준다. 왜나 하면 벼이삭은 팬지 사십일이 되야 먹게 되지만 보리는 이십일만 되면 보리죽이나 찐보리밥을 해먹을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틸수 있기 때문이다. 보리이삭이 나면 굶은 사람 잡아가는 염라대왕도 되돌아 간다는 속담까지 있었다.

소만때 초저녁에 하늘 한가운데서 볼수 있는 별자리는 익수이다. 익수를 찾으려면 태미원의 오른쪽 담장 첫째와 둘째별자리를 직선으로 4배정도 연장하면 찾을 수 있는데 서양별자리의  사자의 엉덩이에 있는 두 별자리를 연결하는 방법과 같다.   익수는 주작의 날개에 해당하는데 하늘나라에서 악부 즉 음악과 연극 등 예술을 주관하는 관청이다. 익수가 밝고 커지면 이민족들이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별이 움직이면 사신을 보내오고 이 자리에서 일식이 있으면 신하 중에 임금을 범하는 자가 생기며 여러 가지 재앙이 생긴다고 보았다. 월식이 있으면 날개가 있는 벌레들이 많이 죽게되고 북쪽에서 전쟁이 일어나며 황후가 패악을 저지른다고 보았다.

서양에서는 익수를 컵자리라고 보았다. 자세히 관찰하면 포도주를 담는 유리잔을 닮았다. 그래서 이 컵자리를 디오니소스 혹은 아폴로의 술잔이라고도 한다. 유태인들은 노아의 포도주잔이라고도 하는데  지중해일대의 신화나 전설에 나오는 술잔은 이 컵자리와 연결된다.
이컵자리와 까마귀자리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음악의신 아폴로에게는 애완새가 있었는데 그 애완새는 까마귀였다. 그 때는 까마귀는 새까맣지 않고  하안색이었는데 인간의 말을 할줄아는 영리한 새였다. 하지만 대단히 수다쟁이였고 거짓말쟁이였다. 어느날 아폴로의 연인 코로니스가 바람을 피운다는 까마귀의 거짓보고를 받고 마중나온 코로니스를 죽였는데 코로니스가 죽은후에 아폴로는 까마귀의 거짓보고 였다는 것을 알게됬다. 아폴로는 까마귀를 새까맣게 태워버리고 인간의 말도 못쓰게 해버렸다 .그래도 화가안풀린 아폴로는 더 이상 나쁜 짓을 못하게 하늘에 매달아버렸는데 그게 까마귀자리이다. 까마귀자리에는 또다른 이야기가 있다. 아폴로신이 목이말라 멀리있는 샘물을 마시기 위해 자신이 키우던 까마귀의 다리에 컵을 매달아 날려보낸 적이 있었다. 까마귀는 도중에 탐스러운 열매가 달리기 시작한 무화과나무를 보고 아폴로신의 명령도 잊은채 무화과가 익기를 기다렸다. 며칠 뒤 다익은 무화과를 따먹은 까마귀는 아폴로신의 명령을 기억하고 어떻게 변명할까 궁리했다. 그래서 까마귀는 샘 근처에서 물뱀을 잡아 물컵과 함께 가져갔는데 까마귀가 자기가 늦게온 것을 물뱀에게 돌리려 하자 이미 사실을 알고있던 아폴로신은 화가 나서 컵과 물뱀 까마귀를 모두 하늘로 던져버렸다. 그렇게 되어 물뱀은 하늘에서  물컵을 보호하게 되고 까마귀는 컵을 옆에 두고도 갈증을 해소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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