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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피는 소리, 솔바람 소리, 그리고 무심천의 스피커 (2005.11.04)


                           연꽃피는 소리, 솔바람 소리, 그리고 무심천의 스피커


 

다산 정약용은 연꽃이 필 때가 되면 연꽃이 좋기로 유명했던 서울 서대문밖 서연지에서 동트기 전 이른 새벽에 친구들과 모임을 가졌다. 연꽃이 필 때 나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친구들과 함께 연못에 작은 배를 띄우고 배를 저어가서 연꽃봉오리가 많은 곳에 자리를 잡고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노라면, 연꽃은 먼동이 틀 때 일제히 피어나는데,  필 때의 톡하는 소리가 그렇게 아름다웠다고 한다. 친구들과 함께 눈을 감고 숨죽이면서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연꽃 피는 소리를 듣고 있는 다산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 폭의 그림이다.

성종 때 성현이라는 학자가 있었는데 이 사람 또한 독특한 취향이 있었다. 매화꽃이 필 무렵 눈이 내리면 나무 밑에 앉아 매화꽃 내음을 맡으면서 눈 내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귀가 밝아져서 눈 쌓이는 소리가 들리는데 옛날 사람들은 9가지 눈 내리는 소리를 구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마음이 산란하면 산에 올라가서 소나무숲 한가운데 자리를 깔고 앉았다. 소나무 숲에 이는 바람소리를 듣기 위해서이다. 쏴아하고 소나무숲을 스쳐가는 바람소리는 가슴을 시원하게 만드는데 두보는 이 소리를 이 세상에서 가장 장중한 소리라고 했고, 조선의 선비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연꽃 피는 소리와 함께 이 소나무 바람 소리를 꼽았다. 내 생각에는 활엽수에 비해 소나무잎은 가늘고 일정하게 잎들이 배열되어 있어 풍속과 풍향이 다른 바람이라도 소나무숲을 지나가면 균일하고 정제된 소리로 변하는 게 아닌가 한다.

얼마 전 청주시에서 무심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만들겠다는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최근에 무심천을 산책하다 보니 스피커 시설이 설치되어 있고 거기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순간 당혹스러웠다. 자연형 하천이면 조선의 선비들이 연꽃 피는 소리나 솔바람소리를 들었듯이 새소리, 여울소리, 갈대밭을 스쳐가는 바람소리 등 무심천에서 들을 수 있는 자연의 소리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자연친화형 문화를 되살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확성기를 설치하면 새들이 떠날 것이고 시민들은 자연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힘을 잃어버리게 될 텐데 이는 무심천에서 자연을 추방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쓰레기를 버리고 꽃을 꺽는 것만이 자연훼손이 아니다. 자연 속에 기계음을 옮겨놓는 것도 환경파괴라는 인식이 시민들의 생활문화로 정착할 수 있을 때 무심천은 진정한 의미의 자연형 하천으로 되살아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요즘 자연형 하천을 만든다고 하면서 여기저기 큰 돌덩어리를 캐어다가 쌓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이게 자연형 하천 계획인지 토목공사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내가 알기에는 자연형 하천이라면 가능하면 돈을 덜 들이고 자연적 소재로 하천을 되살리는 것인데 이렇게 다른 지역의 자연을 파괴하면서 가져오는 돌덩어리로 자연형 하천을 만든다는 것이 가능한지 청주시장과 공무원들에게 묻고 싶다. 또한 이러한 문제를 새롭게 만들어진 환경단체에서는 제기하고 있던데, 지역의 상징적인 환경, 문화단체에서 왜 다루지 않는지 의문이 든다.

자연형 하천은 자연친화적 문화가 어울리고, 우리는 전통 속에서 그러한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힘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한 가지 제안을 한다면 무심천의 일부 구간에 하회마을처럼 소나무 숲을 조성하고, 청주시민들로 하여금 솔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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