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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이 딱 잘라서 그랬다.
미래에 완성될 어떤 상이 아니라 과거의 억눌린 자들의 이야기 속에서만
우리는 역사의 기관차를 멈추는, 혁명을 사유할 수 있다고.
벤야민은 이 말을 당시 독일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비판하며 던졌다.
파시즘이 승산이 있는 것은 좌파가 역사의 진보라는 사관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87년의 어떤 승리를 저들은 '민주화'라고 불렀다.
그리고 저들은 '민주화의 완성'을 위해 나아가자고 했다.
두 명의 대통령이 배출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민주화라는 진보에 취해 "과거의 억눌린 자들의 이야기"를 잊어버렸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고?
좋다.
그러나 그것은 미래의 이름이 아니라 과거의 억눌린 자들의 이야기를 소환하는 것일 때,
그 때에 진정으로 혁명적인 것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들의 "깨어있는 시민"도, "조직된 힘"도 나는 하나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역사가 진보한다는 환상 속에서 멈추어버린 중간계급의 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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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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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어게인, 1987" 같은 요즘 분위기에선 어떤 정치적 매너리즘이 짙게 풍기져. 그렇다고 이를테면 김원씨가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시도했던 것처럼, "그때 그 순간"에 터져나왔지만, 이내 억눌려버린 이야기와 해방적 시공간대를 좀더 '호방한 스케일'로 지금 여기에다 소환하는 것도 아니고.역사는 어쨌거나 식민지화라는 일탈(?)과 분단-산업화와 민주화-세계화와 선진일류-세계시민국가라는 헤겔 풍의 발전단계론적 역사 도정을 따라 '일단 진보하고 보는' 것이니, 이 '압축적' 진보의 도정에 갇히는 한, 거기에 스스로 배당한 지분만큼이나 이 도정에 의구심이 생긴 이들을 쪽수와 관계 없이 배제할 권능도 있다는 자의식 만땅의 심리가 만들어지는 걸 텐데요.. 바로 그래서 정치적으론 이미 싸늘한 시체이건만 아직도 죽지 않았다며 좀비 행세를 하고 있달까요.. FTA의 열성 지지자였던 주제에 엠비심판, 민생을 들먹이는 송영길이나, 좀비 아닌 척하느라 생피 빠는 데 여념 없는 정치적 드라큐라 유시민이나, 자신이 막상 까볼수록 오세훈과 별차이 없다는 데 스스로 당황하는 한명숙 언니나..; 그래서 전, 아무리 엠비가 반동적인 과두민주주의를 따르는 사회의 기업화 노선에 열폭했기로서니, 이네들한테 표를 던지자는 풍경은 에로틱 스릴러만큼이나 스산하니, 후덜덜한 게 아닌가 싶어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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