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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03
    "원로"라면 이 정도는..
    김강

"원로"라면 이 정도는..

그저껜가.. 손봉호를 비롯한 원로 같잖은 원로들의 이상한 시국선언이 있었다만.

익숙한 이만열 선생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다음 날 이런 칼럼을 쓰셨다.

 

원로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이만열칼럼]‘공권력 정상화’

 

며칠 전 어느 신문에서 ‘공권력, 뒤늦게 정상화’란 글을 읽었다. 시위 형태가 점점 과격화되는데도 대처방안이 뒤늦게 마련되는 데 대한 불만이 토로되고 있었다.

촛불문화제로 시작된 시위가 명백하게 ‘불법 폭력화’되고 있는데도 검·경 공권력이 늑장 대처하고 있다는 항의성 기사였다. 이런 요구에 화답하듯, ‘가장 강경한 방식의 진압작전’이 이뤄졌고, 그런 언론들이 주문한 ‘공권력 정상화’는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될 성싶다.

보수언론이 주문한 강경진압

그러나 공권력 정상화는 이른바 촛불시위의 ‘불법성’에 대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공권력 행사 과정 자체에서 그 정상화의 문제를 짚어볼 수 있다. ‘공권력 정상화’를 다른 각도에서 말하려는 것은 몇 주 동안 직접 겪은 경험 때문이다.

경복궁과 사직공원 근처 지역에는 지난달 시위대가 청와대 진출을 시도한 이래 거의 매일 교통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그런 현실을 직면할 때마다 과잉대응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경찰당국에서야 그런 과잉대응이 나름대로 법적 근거를 가졌다고 하겠지만, 시민의 상식적인 삶은 그걸 이해할 수 없다. 광화문의 시위가 격렬한 날에는 근처의 간선도로도 아예 차단된다. 어떤 이웃은 몇 십분이면 되는 귀가에 두세 시간이나 소비했다.

이곳이 왜 통제의 대상이 되는가. 청와대로 통하는 길이 있다는 것 외에는 마땅한 이유를 댈 수 없다. 며칠 전 경복궁역에서 기습시위를 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곳에 시위대가 진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이런 과잉대응이 정상적인 공권력 행사처럼 보이니 이해할 수 없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 같은 조치는 일반 시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모는 데서 정당성을 얻는다. 섬김의 철학을 내세우는 이 정부가 이런 식의 예단을 근거로 섬김받을 국민을 제약하는 것이 공권력의 정상화일까.

집 주변에는 거의 날마다 ‘국민이 힘들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라는 표어를 붙인 경찰 버스와 전경들이 진을 쳤다. 무슨 변란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들의 주둔은 표어와는 달리 시민들에게 위화감을 준다. 골목길에도 방패를 앞세운 전경들이 정렬해 있다. 밤중에도 전경들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킨다. 그들을 볼 때마다 이 젊은이들이 수행하고 있는 임무가 국방의 의무를 대신할 만한 긍지를 주고 있을까 의심한다. 얼마 전 이런 회의를 느낀 한 전경이 차라리 일선에서 군복무를 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가 법적 제재를 받았다. 그런 심정을 가진 전경이 비단 그뿐일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공권력의 정상화는 이런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고민하게 된다.

지난달 29일 새벽 2시, 어느 방송의 속보를 듣고 비를 무릅쓰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시위현장으로 갔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의 증인의식 때문일까. 빗물에 질척거리는 광화문 네거리의 황량한 모습은 마치 전투를 치른 현장 같았고, 태평로 주변의 무수한 경찰 차량들은 공권력의 폭력성을 시사하는 듯했다. 이런 느낌이 지나친 것일까. 이것이 일부 언론들이 주장하는 ‘공권력의 정상화’ 모습일까. 그러면서 저런 공권력 뒤에 안주하며 잠자리에 들어야 할 분들은 어떤 사람들일까를 생각했다.

거리에 주차된 경찰 차량은 대부분 공권력의 정상화에 역행하고 있다. 주차의 준법성 여부는 말할 것도 없고 몇 시간 동안 엔진을 공회전시키는 것도 그렇다. 책임자를 찾아 주변 공기의 오염을 들어 공회전 중지를 요청하지만 마이동풍이다. 높은 분의 결단이나 명령 없이는 불법주차나 공회전 중지는 불가능하다. 시민들에게는 5분 이상의 공회전은 위법이라고 지시하면서도, 그들은 주변의 공기오염과 기름 낭비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잠재적 불법’을 진압하겠다는 명분으로 정당화하는 공권력의 불법주차와 공회전은 중지되어야 한다.

정상화 역행하는 경찰 차량

공권력의 생명은 자기절제와 소통에 있다. ‘불법폭력 세력’에 맞서려면 명령 하나에 나타날 수도 있는 자신의 폭력성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 ‘산성’이 소통을 가로막는 상징이라면, ‘폭력진압’은 추악한 공권력의 대명사다. 그런 중에서도 1980년대식 방법을 선호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강경진압으로 ‘소통을 막은 책임자’(禦聽帥)로 기록될 것이다.

<이만열|전 국사편찬위원장>

 

[이만열칼럼]‘공권력 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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