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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15
    [다지원강의안] "대중이 운동권을 구원하리라" 0(2)
    김강
  2. 2008/06/20
    "지나가다"님과의 대화(24)
    김강

[다지원강의안] "대중이 운동권을 구원하리라" 0

0. 두 개의 목표


올해 저에게는 두 개의 커다란 불가사의한 일이 닥쳐왔습니다. 하나는 물론 촛불봉기였습니다. 12월 대선과 4월 총선을 지켜보며 아마도 프랜시스 후쿠야마와는 정반대의 감정을 갖고 “역사의 종말”을 한탄하고 있을 그 때, 갑자기 대중이 광장으로 몰려왔고, 또 이내 광장을 넘쳐흘렀습니다. 누가 그것을 예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다른 하나는 개인적인 것으로서, 이 강의를 맡게 된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유수의 선생님들 사이에서 왜 저 같은 미숙한 학생, 그것도 공부하는 분야도 생경한 “민중신학”도에게 왜 이런 강의를 주셨는지 말입니다.


없는 이유를 굳이 짜내서 생각을 해 보자면 아마 촛불집회 기간에 제가 쓴 몇 편의 글이 작게나마 불러일으키거나 관계했던 몇 가지 논쟁들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를테면 대중의 자발성에 대한 논쟁이나 촛불집회의 목표 혹은 승리에 대한 논쟁, 대중 앞에서 소위 ‘운동권’의 역할에 대한 논쟁들이 그것들인데, 오늘 저의 강의도 이런 내용들이 주를 이루게 될 듯합니다. 다만 정세적인 개입을 위해 썼던 그 때의 글보다는 조금 더 이론적인 살들을 덧붙여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 강의를 맡게 된 덕분에 5월부터 촛불과 함께 한 시간들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었던 건 매우 다행이라 생각합니다.1) 아마 많은 분들이 비슷한 느낌을 갖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저에게 지금 촛불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얼마간의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촛불이 지금 힘을 상당히 잃었고, 어떠한 출구가 보이지 않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촛불봉기의 국면에서 느꼈던 신체의 급격한 변환들과 기쁨과 분노 등의 상이한 정서들이 그 당시의 맥락에서 어느 정도 분리되어 한꺼번에 다가오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고통을 무릅쓰고 다시 촛불을 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말하지 않으면 “저들”이 촛불을 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예수의 운동과 그의 죽음 이후에 그런 일이 벌어졌던 것 처럼 말입니다. 생전의 예수가 오클로스2)들과 함께 벌였던 운동은 그의 사후에 두 방향으로 침묵을 강요당합니다. 제국과 식민지 권력에 의해 은폐되고 축소되거나, 아니면 그리스도교라 자처하는 사람들에 의해 신비화되고 탈정치화된 채로 높여졌지요. 민중신학자들은 예수 사후 40년도 못 되어 교권화/탈정치화 되어가던 교회에 대한 비판으로서 일단의 <복음서>들 - 특히 <마가복음> -  이 기록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즉 이중의 침묵을 강요당한 오클로스들이 이야기와 유언비어의 형태로 자신들과 예수가 벌였던 운동을 전승했고, 그것을 기록함으로써3) “저들”의 죽은 역사와 체제를 뚫고 탈주하는 “사건”로서의 예수 이야기를 남겼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 복음서의 예수 상도 곧 교회의 도그마와 역사 속으로 재영토화 되고 맙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고비마다 이 복음서의 예수에게 영감을 받은 투쟁들이 강렬하게 일어남으로써 그것의 반-체제적 성격을 증명하곤 했습니다.


촛불을 기억하고 그것을 말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앞에 설명한 의미에서의 <복음서>를 쓰는 행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것은 촛불이 “역사”를 밀치며 나온 하나의 “반 역사적 돌발”, 혹은 “구원의 사건”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행위입니다. 물론 2000년 전 <복음서>의 주인공인 예수 대신 “대중”이 그 자리에 있습니다. 이 강의에서 저는 민중신학의 방법론을 따라 두 가지 목표를 세우고 시작하려 합니다. 첫째는 대중을 객관적인 대상, 혹은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운동의 주체로서 그려내는 것이고, 둘째는 그 “대중의 활약”을 운동권의 변화를 촉발한(신학의 용어로 말하면 “구원을 가져온”) “메시야 사건”으로 읽어내려는 것입니다. 물론 강의 자리가 자리인 만큼 최대한 ‘세속의 용어’로 이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물론 여전히 촛불집회는 계속되고 있습니다만, 하나의 '폭풍 같은 상황', 혹은 메시야적 상황은 지나갔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돌아 봄'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2) 마가복음에서 예수와 함께 행동하는 이들을 지칭한 표현으로써, 한글 성서에는 “무리”로 번역되었다. 원래의 뜻은 다수, 수, 낮은 계급, 사람의 무리 등이며, 폭도, 오합지졸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오클로스를 라틴어 성서는 multitudo와 turba로, 영어 KJV 성서는 multitude로 옮기고 있으며 의미는 갖다. 민중신학자 안병무는 오클로스가 마가복음에서 라오스(국민, 라틴어로는 populus, publicus)와 대비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예수 운동의 사회적/정치적 성격을 규명한 바 있다. 그는 오클로스가 “프롤레타리아도 아니며, 민족의 실체로서의 민족이나 민주체제의 일원인 people과 직결시킬 수도 없”는 존재라고 보았으며, 이 오클로스를 “민중” 개념과 연결시켰다. 따라서 민중신학의 “민중”은 하나의 정치적 집합체로서의 “인민/민중”(people)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안병무, <예수와 오클로스>,《민중과 한국신학》NCC신학연구위원회 편, 1982.

 

3) 이에 대해서는 안병무, <예수 사건의 전승모체>,《80년대 한국 민중신학의 전개》, 한국신학연구소 198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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