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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14
    조정환과 이택광(4)
    김강

조정환과 이택광

아. 재미있다. 논쟁에 참여하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하다... 만 논문마감임박.ㅜㅜ

 

 

내가 보기엔 둘 사이에는 "사상가의 자리"에 대한 근본적인 견해차가 전제로서 자리잡고 있다.

 

중간에 개입...은 아니고 글을 남기신 마리신 님의 언급속에서,

마리신님은 자신의 글의 오독의 이유 중 하나로 현장과 거리가 없는 이들의 오독을 들고 있다.

나는 이것이 조정환과 이택광, 두 사람의 논쟁 속의 숨겨진 쟁점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의 글이 공히 매우 어렵긴 하지만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논지에 사용되는 개념들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만...

 

조정환 선생이 말하는 바, "느껴지는 정동"의 차는 확실하다.

이것은 개념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리'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정환이 이택광의 글의 사실관계를 비판하는 것은 이택광에겐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또한 이택광 선생이 조정환의 글을 촛불에 대한 감정적 찬사로만 읽는 것 역시 당연하다.

거리를 두지 않는 것은 사상가에게 있어 하나의 죄악이라고 이택광은 생각할 것이다.

어느 것이 맞고 틀리고를 젤 척도는 없다. 그 자리에 따라서 나름의 윤리적 / 정치적 실천이 나오게 되는 셈이다.

 

나로선, 통상적으로 조정환의 '자리'에 대한 입장을 지지하는 편이다.

 

 

 

가장 지지하는 입장은 아래 인용문에 나타난 '푸코'의 '지식인의 자리'이다.

 

하지만 저는, 자명성과 보편성을 파괴하는 지식인을 꿈꾸는 것입니다. 현재의 무기력과 속박의 한가운데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슨한 지점, 균열, 여러 힘의 선을 가려내어 이윽고 그것을 지적하는 자. 쉼 없이 자기 위치를 틀어, 현재에 너무나 주의를 기울인 탓에 내일 자기가 어디에서 무엇을 생각할지도 정확히 알 지 못하는 자. 이동할 때마다 그 곳에서 혁명을 위해 생명을 위험에 처하게 할 각오가 있는 자들만이 응할 수 있다고 이해하면서, 희생을 감수하며 혁명을 일으킬 만큼의 가치가 있나, 어떤 혁명인지(그것은 어떤 혁명인지, 어떤 희생이 나는지를 저는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라는 물음을 던짐으로써 협력하는 자. 저는 그런 지식인을 꿈꾸는 것입니다(1977a pp.268~269).

 

 

 

 

아, 이 논쟁을 바라보는 가장 나쁜 태도는 "아 씨발 지들끼리 어려운 이야기 하고 있어."다. 아 씨발, 그럼 읽지말고 가서 투쟁 열심히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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