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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란...

오랜만에 학교다닐때 다녔던 동아리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일본에 있던 한 선배가 나의 결혼을 앞두고 남긴 글을 보았다. 추억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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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준식이 너 마저도???!

   


드뎌 태준식이도 교론를 하는구나... 쉬바 상큼한 우리의 청춘도 어느샌가 다 가고 노총각 소릴 들어가는 나이에 짝을 찾아 가는군. 따지고 보면 졸라 길었던 청춘이고 상큼함과는 담쌓고 살았지만.

 

오늘은 태준식과의 만남에 대해 썰을 풀어볼까. (준식이형이 이 게시판에 들르기는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예정대로 팔자좋은 방위로 끌려가서 예상도 못했던 뺑이를 치던 와중에, 바닥을 기던 햇살은 일대 전기를 맞이하고 있었으니... 성호형과 정훈이형을 투톱으로 내세우고 아무 생각없는 익구가 리베로를 맡아 햇살의 중흥을 기약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하던 축구협회와 서포터들은 몰지각한 일군의 마이너리티가 주사파라고 경멸하던 무리들이였나니... 그리고 역시 별 생각없던 나는 군생활 초기의 정신없던 시기에 그 마이너리티에 물들고 말았다. 당근 우리 집 햇살에의 출입은 점점 더 고역스러운 방문이 되었다. 남의 집 애들이 죽치고 있는 곳에 주인인 내가 눈치밥을 먹어야 하니 이 어찌 비극이 아닌가. (물론 덕분에 좋은 사람도 만나고 사람 공부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퇴근한 방위가 갈 곳이 어디있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그래도 햇살로 나와서 삐대곤 했다.
제대를 앞둔 여름이니 91년 여름방학이였을 거다. 햇살에선 영화핵교란걸 한다고 수선이고, 그 틈에 어영부영 성환이형이나 준식이형, 그리고 장우영(얜 지금 뭐한다냐?) 등이 햇살에 들어왔다.

 

"잠깐 토막상식"-- 조선 후기에 신분제의 몰락과 상업의 발전으로 평민 등이 족보를 사거나 위조해서 대거 양반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가문을 중시하는 명문가에서는 이 수상한 일족들을 '별보'라 해서 본래 족보와는 따로 기록해서 관리를 했는데... 신분제가 유명무실해지고 조선이 멸망하면서 본래 족보와 별보는 섞여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조선 초기엔 인구 3%에 지나지 않았던 양반이 오늘날 한국사람 90%의 조상이 되고 말았다는 전설의 고향~~; 결론. 우리의 태준식이는 햇살 별보 출신이다. 그리고 공고 출신이다.^^;

 

좌우간 그 여름에 햇살이고 찾아오니 늘 그렇듯이 낯선 얼굴이 제 집처럼 햇살에 앉아 궁시렁거리고 있는데, 영화랑도 안어울리고 '학습'과도 거리가 먼 그 투박한 외양을 보고서 '이 넘, 또 축협에서 나온 단무지로군.'하고 졸라 티꺼운 인상을 받았다. 화양리 삐끼들의 오야붕 정도 되는 세숫대야인 주제에 여드름 자국이 수두룩하던 그 티껍던 넘이 우리의 태준식이다. 그 티꺼운 인상을 기초로 '이 넘들에겐 말을 놓지 않겠다'고 맘을 먹었고, 지금도 '넘을 형'이라고 부르는 모순을 반복하고 있다. 내가 아직도 존대말을 쓰는 햇살 후배들은 기본적으로 '별보출신'들이다.(흥미로운 언어적 혼란의 사례가 아닌가?)

 

첫인상과는 다르게 성실하게(또한 단순하게) 햇살 일에 열심이고, 나름대로 재롱부리는 맛도 있고, 무엇보다 그 푸짐한 살집이, 머리를 빡빡 깎며 엽기노선을 추구하다 군대로 끌려간 익구의 '대체재'로서 충분했기에 모든걸 용서하기로 했다. 나도 곧 소집해제를 명 받아 완존 백수가 되어서 시간이 남아돌기에 자주 만나 이야기할 기회도 많아졌다. 언제부터 이 넘과 맘이 통하게 됐는지 기억은 안나지만(그러니깐 별다른 계기는 없다) 좌우간 당시에 다른 어떤 넘들보다 태준식이랑 맘이 제일 맞았고, 제일 많은 시간과 정력(?)과 돈(!)을 때려박았다. 그러니깐 결혼하더라도 그 살의 절반은 내 소유이다~ (참고로 지금 내 위장병은 내 밥도 못먹고 이 넘들 밥과 술을 공양하는라 얻은 병이다. 말그대로 살신성인이다)

 

반드시 그 때문은 아니지만 넘은 축구협회랑은 거리가 멀었고, 굳이 족보를 따지면 나 같은 마이너리티랑 공통점이 많았고, 그걸 핑게삼아 졸라 많은 고민과 사소한 음모의 공범자가 됐다. 총선이나 대선 때 밤을 새워가며 벌였던 '그들만의 리그'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군. 서태지의 '환상 속의 그대'를 비지엠으로 쓴 총선 홍보 비디오를 학생회관에서 틀었는데(나래이션을 준식이 목소리로 깔았으니 말 다했지), 완성도도 형편없고 축구협회얘들 보기도 그렇고, 좌우간 서로 얼굴 보기도 민망해 하면서 숨어서 지켜보는데 (게다가 웬 단무지가 때려엎기라도 하면 안되잖아~) 건대부고 고삐리들만 모여들는걸 보니 웬지 허탈하면서도 안심이 되더군. 그래도 생각해 보니 이게 넘의 첫 다큐멘타리(풍) 작품이 되는 셈인가?

 

그렇다고 늘 죽이 맞았던 건 아니다. 가장 크게는 내가 정치에 아주 약간의 무게 중심을 두었던데 비해서, 넘은 상당히 영화에 무게 중심을 두고있었다. 물론 상대적인 차이였고, 당시에 유행하던 정치주의자 vs 영화지상주의자의 대립은 아니였다. (준식이형은 기억하고 있쑤? 둘이서 어느 '스탈린주의적 정치주의자'를 낄낄거리며 씹던 일을?)
성향 때문에 나는 요새 말로 잡화섹트들을 기웃거리다가 결국 학교를 나가서 무슨집단이라는 곳에 들어갔는데, 영화 혹은 햇살에 목숨걸고 있던 넘은 그런 나를 졸라 섭섭해했다. 정말이지, 마누라 두고 집나가는 서방 보는듯한 눈으로 흘겨봤다...
그 무슨집단에서 삽질하면서 당시 닥쳐온 대선에 징발되어 나갔는데, 거기는 나같은 행정병은 필요없고 당장 나가서 총 쏠 수 있는 보병이 필요했다. 조직을 위해 목숨은 못바칠 망정 눈물을 머금고(사실은 대의를 위해 사소한~ 의리를 팽개치고) 총알받이로 준식이형을 소개시켰는데, 대선 끝나고 보니깐 넘은 나보다 더 정치적인 노뉴단에 입적을 했더군. 한마디로 바람나서 집나갔다 돌아오니 마누라 배가 불러있더라는 이야그.(참고로 넘도 방위출신이다. 바로 우리 옆 당나라 부대 조교 출신이다)

 

오히려 같은 처지에 있게됐으니 어느때 보다 할 말도 많고 할 일도 많았을듯 한데, 실상은 그 반대였다. 내 멋대로 판단하자면, 비록 내가 '집단'에 속했지만 어느정도 상대적인 객관성을 유지했던 반면에 넘은 노뉴단의 입장에 기울어서 '집단'은 물론 나까지 재단하려들었다. 넘은 그런 외곬수 성향이 있고 지금도 여전한 듯 하더군. 그래서 이번엔 내가 섭했다...
서로가 그렇게 바쁘고 거리가 생기고, 게다가 나는 지금도 정리가 안되는 심각한 상황에 빠진채 '판'을 정리하고 4년 전에 일본에 와서 지금에 이른다. 따지고 보면 넘이랑 동거동락하던 시절은 그리 길지도 않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가장 치열하고 힘겹고 한편으론 '아름다운 청년'이던 시절에 가장 가까이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벌써 5,6년 가까이 예전에 그랬듯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한번 제대로 못했지만(전에도 나만 졸라 떠들고 넘은 건성인채 밥이나 술을 우적우적 홀짝홀짝 먹어댔다), 여전히 넘이 그립다.
학교시절부터 그다지 개인적인 얘기는 못하고 살았는데, 막상 결혼한다니 언뜻언뜻 들었던 연애사건들의 후일담이 새삼 궁금하기도 하고. (흐흐흐, 결혼에 초를 칠까부다)
넘의 소중한 결혼식에도 못가보고, 그보다도 넘과 나의 인생행로가 예전처럼 가깝게 겹쳐질 일 또한 없겠지만, 내 청춘의 가장 중요한 공범자로서 넘에 대한 기억은 잊혀질리 없을 것이다. 멀리서 나마 진심으로 축하하고, 언제나 격려하고 성원하면서 변함없는 애정(음... 결혼한다니깐 우정으로 표현을 바꾸지, 뭐)을 보낸다.

 

아~ 넘 뿐만 아니라 다들 보고 싶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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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보고 13

요새는 부쩍 자기 표현이 강해졌습니다.

언듯 언듯 이제는 유아기를 벗어나 어린이로 쩜프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앗! 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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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구본주다

 

'우리 모두가 구본주다'(2005년 8월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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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404, 승리

 

'여름, 404, 승리'(2005년 11월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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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보고 12

추운날, 여의도 칼바람 앞에서 그녀는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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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을 앞두고..

결국 '우리 모두가 구본주다'에 어떤 형식이던 손을 델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그동안 KBS와 삼성이라는 거대 권력이 허접한 작품 하나 가지고 쌩쑈를 하는 꼬라석니가 화가나 여태 버텼지만.. 어찌되었든 시청자위원회라는 완충장치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수정을 하여야 한다.

 

수정을 위해 아비드를 열고 캡처창을 띄운 후 앞으로 돌려 플레이 버튼을 누른 다. 이어 빨간 색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화면이 지나갈수록 점점점점... 우울해진다. 어느 부분에 손을 데어야 하나? 여기도 수정할까? 저기는 또 어떻고... 일단 방영을 하여야 하니... 시키는데로 삼성자와 이건희라는 소리가 나오는 부분에는 모두 손을 델까??

 

아무리 허접이라도 지금까지 동의하지 못한 수정은 나의 작업 역사상 없었다. 하지만 고집의 명분보다는 방영으로 얻어질 성과에 주목하여야 하고, 또한 내 자신도 매우 지쳐있는 관계로 어쩔 수 없이 원하지 않는 수정을 목전에 두고 있다.

 

매우 혼랍스럽고, 우울하기 그지없다.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기 위한 주위 독립영화 감독들의 노력에 우를 범하지 않는 것인가... 걱정된다..

 

어떤 작품이 나올 지...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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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산책


 

'걸어요. 발을 움직여요~'

 

할머니가 되어도 별로 충격받지 않고, 호기심과 열정으로 세상을 헤쳐나간다면 하늘을 걷는것처럼 세상은 환희에 차 있을것이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미야자키 할아버지...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_공중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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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위원들의 21일 최종결정을 앞두고..

삼성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시청자위원들에게 각각 멜을 보냈다고 한다. 여튼 방송하면 안된다는 이야기... 설마 시청자위원들까지도 압력으로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동조하는 인간도 있겠지만)하며, 다음과 같이 대응 멜을 보냈다. 제대로 읽어라도 봤으면 하는 맘 간절하다..

 

 

 

안녕하십니까. '우리 모두가 구본주다' 제작자 태준식입니다.


우선 지난 전체 시청자위원 회의석상에 사전 공지 없이 찾아가 당황스러우셨으리라 봅니다. 이 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희들의 진심어린 마음이 시청자위원 여러분들께 전달되기는커녕 제작자와 유족이 방영을 원치 않는다는 거짓 정보를 흘려대는 KBS '열린채널' 실무진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직접 설명 드리고 싶은 생각에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큰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저 또한 한명의 창작자라는 서글픔으로 이 작품을 제작하였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제작하기 전 '저작권'과 관련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예술창작자들의 권리 보장과 대중들과의 자유로운 소통은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고민을 지금의 저작권법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젊은 조각가 故 구본주씨에 대한 논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한명의 창작자로서, 그리고 예술창작자의 권리에 대한 고민을 지속하고 있었던 터라 이 사건은 저에게 아주 특별하게 다가왔었습니다. 특별하게 다가와서였을까요. 저는 무리를 하면서까지 '저작권' 작업을 뒤로 미루고 바로 '우리 모두가 구본주다' 작업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거대 자본의 천박한 인식을 바로잡는 싸움...


故 구본주씨 사건은 삼성화재의 1심에 대한 불복과 항소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작업은, 예술가의 정년에 대한 1심의 판결이 이전의 판례에 비해 과도하게 판단되었고 그 결과 1심을 받아들일 경우 전체적으로 보험료가 인상되어야 한다는 삼성화재의 항소논리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술가의 정년에 대한 판단과 경력에 대한 판단 등의 이견으로 인해 항소를 했다면, 예술가의 정년과 경력에 대해 자신들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전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삼성화재는 2심에서 예술가였던 구본주씨를 무직자로, 안타깝게 사고를 당한 젊은 예술가를 자살자로 몰고 가는 무리를 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이견이 문제가 아니라 보상해주어야 할 돈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거대 자본은 자신들의 사소한 이윤을 위해서라면 한 젊은 예술가의 안타까운 죽음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당장의 재판과 관련된 법적 논리에 대한 관심보다는 천박한 거대 자본의 논리를 바로잡고자 작지만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거대 자본과 힘겨운 싸움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생각과 의지, 그리고 故 구본주씨에 대한 기억으로 삼성화재의 논리를 차분히 비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열린채널'은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 KBS의 '열린채널' 소개글 중


제가 작업을 마친 후, '열린채널'에 방영하여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 건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한 과정이었습니다.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허울 좋은 '공정'도 벗어던지고, 시민들의 시선과 언어로 직접 이야기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공중파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나마 이 문제를 대 사회적으로 알릴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방영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맘으로 지난 8월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운영협의회를 기다렸고 고맙게도 방영이 결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이 작품은 5번의 심의 아닌 심의를 받았습니다.


' 우리 모두가 구본주다'를 완성하고 KBS '열린채널'에 방영 신청한 다음, 이 작품은 지금까지 총 5번의 심의를 받고 있습니다. 8월 운영협의회, 9월 KBS 심의실, 10월 시청자 소위, 10월 재판 종결 후 다시 KBS 심의실. 그리고 11월 지금, 마지막으로 심의 아닌 심의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많이 모자란 작품이긴 하지만 심의가 끝나고 그 결과를 들을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건 둘째 치고 창작자로서 드는 자괴감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 더 제 스스로가 무서운 건, 이렇게 고생하지 말고 처음부터 방송물에 적합하도록 만들걸 그랬나하는 생각이 들 때입니다. '열린채널'이라는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자기검열을 하여야 한다는 어처구니가 없는 현실이 무서웠던 것입니다.


KBS는 거짓과 왜곡으로 이 문제를 키워 왔습니다.


지난 10월 27일 재판 종료 결정이 난 후, 삼성화재로부터 만나자는 제의가 몇 차례에 걸쳐 왔었습니다. 좋은 분위기에서 방영포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자는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기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작품 속 해당 보험사이니 그럴 수 있다는 관용을 베풀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KBS는 방영과 관련해서 지금까지 제작자나 유족에게 단 한 차례도 직접 연락한 적이 없었고 심지어는 제작자와 유족이 이 작품의 방영을 원하지 않는다는 망발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시민제작자가 상대로부터의 압력 받을 때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거짓말로 방영을 막으려 애쓰는 모습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KBS 심의실은 지난 11월 17일. 재판이 끝나서 방영의 목적과 당위성이 없어졌다는 논리로 이 작품의 방영불가를 최종적으로 결정 내렸습니다. 9월에는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안 되고 11월에는 재판이 끝났기 때문에 안 된다는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방영불가를 내린 의도를 알 수 없습니다. 혹시 재판문제는 핑계일 뿐이고 심의의견 마지막에 있는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할 우려'를 과도하게 염려한 것이 진짜 이유가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 작품은 지켜내져야 합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구본주다'는 꼭 방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작품이지만 우선 제 스스로가 이 작품의 제작자이기에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 작품을 거대 권력의 횡포로부터 지켜내어야 하는 창작자의 자존심과 관련되어 있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또한 '열린채널'이 거대 권력인 KBS와 삼성에 의해서 어떠한 난관에 봉착했었는지를 온전하게 남기기 위해서도 이 작품의 방영은 꼭 필요합니다. 또한 삼성화재라는 거대 자본이 지난 여름 보여줬던 천박한 인식의 결과를 기록하고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도 이 작품의 방영은 꼭 필요합니다. 재판이 삼성화재의 굴복으로 끝났다는 사실 관계와 이 작품이 지금에서야 방영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에 대한 언급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KBS 심의실의 의견처럼 재제작하여 신청하면 방영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또한 유족이나 제가 이 작품의 방영과 관련하여 방영을 원치 않는다는 KBS와 삼성화재의 말은 거짓말입니다. 저번 대책위의 대변인이 항의방문을 통해 위원장님께 밝혔듯이 KBS와 삼성화재는 제작자와 유족에게 방영포기와 관련하여 단 한 번도 의견을 묻지 않았습니다.


'열린채널'의 이중심의는 철폐되어야 합니다.


시청자위원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어설프지만 시민들이 직접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열린채널'은 KBS의 말마따나 그 누구의 간섭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합니다. 민주적이며 합리적인 심의체계를 만들어 거대 권력으로부터 이 프로그램을 보호해야 합니다. 하지만 KBS는 자사를 홍보할 때는 '열린채널'에 대해 열을 내면서 심의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방송법 핑계를 대며서 소극적인 모습만 보여 왔습니다. 이에 시청자위원 여러분들께서 이 작품의 가치 여하를 떠나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의 이중심의에 대한 원칙적인 모습을 보여주십시요. 이는 앞으로의 '열린채널'이 진정한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으로 거듭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기에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저희들의 의견을 들어주시고 끝까지 합리적인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써주시는데 진심으로 감사 말씀드립니다. 또한 볼품없는 작품으로 여러 시청자위원 여러분들께 심려 끼쳐드린 점 심심한 사과의 말씀드립니다. 시청자위원 여러분들의 원칙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부탁드리며...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우리 모두가 구본주다' 제작자 태 준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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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자해지

열린채널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너무나도 분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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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7일부터 KBS IBC 정문에서 '우리 모두가 구본주다' 관련 1인 시위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어제 KBS 시청자위원회 회의에 이 사태를 알리기 위한 시청자미디어 운동 단체들의 방문이 있었습니다. 결국 KBS 직원의 제지로 인해 전체 설명을 하지 못했고 쉬는 시간 시청자위원회 위원장님과의 짧은 면담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결정된 KBS 심의실의 최종 결과를 통보 받았습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심의 의견 : 프로그램 내용의 동기 및 당위성이 소송조정으로 인해 소멸되었음으로,현 상태의 내용을 그대로 방송하면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서 오도할 수 있고,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할 우려가 있음.

방영여부 : 방영불가

어처구니가 없는 결과입니다. 참으로 자의적이며 제작자의 의견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권위적이며 일방적인 결과가 아니랄 수 없습니다. 도대체 작품의 동기및 당위성이 소송조정으로 소멸되었다는 근거가 어디서 나왔는지요. 제가 이 작품의 기획의도를 혹시 그렇게 적어서 방송신청했나요? 삼성화재의 항소를 포기시키는 것이 이 작품의 유일한 목적이었다고? 그리고 특정인의 명예까지 걱정하시는데 아마도 삼성의 이건희 회장일듯 싶습니다. TV에는 수도없이 이건희나 부시, 노무현이라는 대중적인 인물의 인형과 이를 조롱 또는 학대(?)하는 화면이 나오는데 이 작품 속에 나온것은 왜 문제가 됩니까? 게다가 '재벌과 예술가'라는 퍼포먼스의 형태로 나온 것이 무엇이 문제가 됩니까? 이건희라는 재벌의 명예만 생각하지 마시고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인 '열린채널'의 의미를 심의라는 이름으로 훼손하지 마십시요. 또 하나.. 백보양보를 해서.. 시간이 흘러 동기 및 당위성이 소멸되었다 하더라도 이렇게 소멸된 이유가 무엇때문입니까. 제가 그랬습니까? 바로 지난 9월 KBS 심의실의 방영보류 결정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때는 재판이 진행중이니까 안되고 지금은 재판이 끝났으니 안되고.. 도대체 방영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영방송인 KBS가 결자해지의 정신도 없이 일방적으로 제작자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자세는 속좁은 자세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제 시청자위원회 위원장님과의 면담을 통해 그 결과를 겸허하게 기다리려 했으나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혼자 알고 있기에는 분하고 억울하기에 이렇게라도 항의합니다.

그리고 어제의 시청자위원회 회의에 대한 저희들의 행동을 절차를 지키지 않은 행동이라 비판하지 마시고 어제부터 시작된 1인시위에 한번이라도 얼굴을 보여주십시요. 햇빛 잘드는 사무실에 앉아 찾아 오는 의견만이 절차라 여기지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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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분위기에서??

오늘 삼성화재 고문변호사라는 분에게 전화가 왔었습니다. 재판도 좋게(?) 끝났고 하니 열린채널 관련해서 한번 회사사람들과 자신을 만나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습다. 아니, 나중에 가서는 만나달라는 하소연에 가까웠습니다. 당근 만날 필요가 없기에 안 만나겠다고 했구요. 쨋든..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기름기 넘치는 목소리중에(공중파 PD와 변호사의 목소리는 왜 다 똑같을까? 김도0 변호사 빼고)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좋은 분위기에서 화해할 수 있는 방안들을 이야기 나눌 수 있지 않은가..' 캬~ 좋은 분위기.. 교양 넘치는 목소리에 저 완곡한 표현이라니.. 유혹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했습니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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