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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4/03
    불법 복제 DV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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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5/03/06
    제길! 내가 이걸 왜 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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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5/03/02
    영화 <엄마...>을 보러 가자(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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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02/25
    한대수의 새 앨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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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02/15
    '백수의 하루'와 저작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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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5/01/14
    바비킴- 고래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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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5/01/12
    잔향 - 자각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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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5/01/11
    한대수 - 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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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5/01/09
    운동권 밴드? - 천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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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5/01/09
    한대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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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복제 DVD

서울에 가면 가끔 용산에 들른다.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제맛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형편상 그게 그리 쉽지가 않다.

일단 내가 사는 송탄엔 영화관이 없다.

송탄은 작은 곳이긴 하지만 노는 문화가 나름대로 창궐?해 있는데

대부분이 술집, 노래방, 클럽 등이고 영화관은 없다.

내가 어렸을 때는 영화관이 여러개였고 인기도 꽤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하나둘 문을 닫았고, 가끔씩 새로운 영화관이 개관을 했다가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마지막 영화관이 망한지도 10여년은 되가는 것 같다.

이곳 사람들이 왜 영화를 안보게 됐는지 나도 모르겠다.

비디오 가게도 한참 가야  있고.

 

영화가 두 시간 짜리라고 해서 두 시간만 투자하면 영화를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서울을 간다고 해서 영화볼 시간이 쉽게 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내가 보고싶은 영화들은 대개 금방 막을 내리던가

아니면 겨우 두어개 극장에서만 상영하는 경우도 많다.

하루에 두 번만 상영하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찜찜함을 애써 외면하고 불법 복제 DVD를 가끔 산다.

주말에 용산에 가면 가판에서 이런 것들을 판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거나 상영 예정인 영화들도 나와있다.

(한국영화는 극장상영이 끝나야 나온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고)

 

내 나름대로 기준이 있는데

- 현재 상영중인 영화를 사기도 하지만

- 극장상영은 끝났으나 비디오나 DVD로 나오려면 아직 먼 경우

- 비디오나 DVD로 나올 때가 되긴 했으나 대중성이 없어

  울동네 비됴 가게에서 갖다놓을지가 심히 의심되는 영화

-두 번 이상 볼 것 같거나 남에게 빌려주고 싶은 영화

뭐, 대충 이렇다.

2주전에 갔을 때는 불법2장, 정품 3장을 사왔다.

 

<마이 제너레이션>

사는 일상도 우울한데

굳이 영화보면서까지 우울해지고 싶지 않다면 이영화를 보지말 것.

말로 먹고 사는 평론가들이 많은 얘기를 써 놓았으니 나까지 보텔 생각은 없고

정말 괜찮다.

 

 

<사이드 웨이>

우리말로 하면 '옆길', '샛길' 정도 되겠다.

'어바웃 슈미트'에서 잭니콜슨을 비참한 궁지까지 몰아넣었던 알랙산더 페인이 만든 영화다.

이 영화는 구질구질한 Loser들의 얘기지만 전혀 우울하진 않다.

씨네21 기사를 보니 인디영화 감독인 페인이

헐리우드의 잘나가는 배우 조지클루니를 직접 만나 설득했다고 한다.

영화에 출연해 달라고?

천만에! 제발 이 영화 포기하라고 말이다.

 

한겨레 신문에서 즐겨보는 코너가 '정이현의 해석남녀'이다.

(정이현의 해석남녀 <사이드웨이> 의 '마일즈와 잭'  보러가기)

 

위 두 영화는 모불 불법 복제품이다.

정품을 산 것 3장중 본 것은 아직 공각기동대뿐이다.(네 번째 봤다.)

한 두번 더 보고 이 영화는 나중에 따로 얘기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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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길! 내가 이걸 왜 샀을까?

한 대수의 예전 앨범을 구하려고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

중고 앨범을 사고 파는  먹통레코드란 곳을 알 게 됐다.

한대수 8집만 주문했어야 했다.

중고 CD 목록에 있던

김현식 Sickbed Live 미개봉 9,000원

 

20대 초반에 그를 좋아했지만

들을 수 없게 돼서 이미 버린  LP와 함께 잊고 있었는데.

한 장 사나 두 장 사나 똑같은 배송비 때문인지

그에 대한 옛추억이 생각났는지

어쨌든 그의 앨범도 주문하게 되었다.

 

그의 CD를 틀어놓고 난 곧 후회했다.

아, 그래, 그는 이 세상에 없지.

너무 숨이 가빴나?

안그래도 애절한 노래를 이렇게 힘들어하며 부르고 있는데...

 

나이가 자꾸 들어가서 그런가?

속상한 것을 자꾸 피하고 싶다.

내가 안보고 안듣는다고해서

 그 속상한 일들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그러면서도

내가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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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엄마...>을 보러 가자

* 이 글은 알엠<엄마...> 라는 영화 를 소개 하려는 글인데 내 글이 역효과를 내진 않을지 걱정이다.

3편의 작품을 냈지만 나에겐  류미례'감독'보다 '미례씨'가 더 익숙하다,

그건 류감독이 자신의 작품을 준비조차 하지 않던 시절에 그를 알 게 됐기 때문일 게다.

이젠 블로그상에서 쓰는 '알엠'이 더 편하게 됐고.

 

내가 예상하기 힘든 것들

-TV에서 하는 다큐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이런 독립다큐가 어떻게 느껴질까?

어느 대목에서 재미있어해야 할 지, 어느 대목에서 감동을 먹어야 할 지까지 친절히 '지시'해주는 듯한 TV다큐들을 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은 "이래도 네가 감동안하고 베겨?"라며 협박하기도 한다.  빈곤한 영상과 주제를 말빨로 때우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TV에서 하는 다큐물들을 모두 싸잡아서 깍아내리는 것은 '독립다큐는 모두 훌륭하다'라는 말만큼이나 말이 안되는 짓이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니 알아서 새겨 듣길!

 

- 류감독을 모르는 사람들(관객의 대부분)이 이 영화를 볼 때의 느낌이 어떨까?

난 원래 류감독을 안다. 물론 그의 가족사에 대해서는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았지만, 어쨌든 자신이 아는 사람의 얘기와 전혀 모르는 사람의 얘기는 느낌이 많이 다를 게다. 그리하여 류감독을 모르는 대부분의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볼 지 예상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류감독을 알고 말고의 문제보다는 '엄마'라는 공통분모가 주는 영향이 더 강할 것이라 추측해 본다.

 

사적 다큐라지만

류감독 개인의 일기를 훔쳐보는 느낌은 안들 것이다.  사회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 일지도 모르는 '무한희생 천사표 엄마'와는 거리가 있는 그의 엄마, 남겨진 가족들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긴 아버지, 이 영화가 유쾌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오빠,  이 영화의 방향을 샛길로 빠지게한^^ 매력적인 러시아 언니 등등 무척 이색적인 상황에 처한 류감독의 특이한 가족사 같지만 사실은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하지만 쉽게 얘기하지 못하는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고백하자면 이 영화를 푸른영상 시사회에서 처음보고 류감독과 비슷한 경험들 때문에 공감을 하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난 그의 경험이 극히 예외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수선한 카리스마

옛날 그를 만났을 때의 느낌은 '산만함'이었다. 그의 글은 정말 인상적인데 비해(오히려 그래서 더) 실제 만났을 때의 모습은 글과 매치가 안되서 당혹스럽기도 했다. 그런 그가 차츰 변해갔다.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점점 훌륭해졌다. '훌륭하다'는 말이 적절해 보이지 않기도 하지만 정말 그는 훌륭해졌다. 아님 원래 훌륭했는데 내가 늦게 깨달은 것일까?

영화상영 후 행해지는 감독과의 대화를 보다보면 이젠 일종의 카리스마까지 느껴진다. 어수선한 카리스마!

어떤 사람의 무게감이 몸무게로 결정나는 것이 아니듯, 그의 카리스마는 외형적인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당장 본인부터 "왠 카리스마?"라고 할 것 같다. 하여튼 내 맘이다.

 

 

류미례 감독 자신의 엄마에서 세상의 모든 엄마로

영화의 시작은 감독의 엄마에서 비롯됐지만 류감독은 그것을 세상의 모든 엄마로 확장시킨다. 물론 러시아 언니(당신도 영화가 끝나고나서 그녀가 머리속에 남게 되지 않을까?)의 영향도 있었고, 다른 여러 가지 상황도 있었을 것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옆길로 샌 것으로 느낄 수도 있다. 진짜 샌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게 걸리적 거리진 않을 게다.

 

능력이 없다보니 글만 길어졌다. 결론적으로 영화관에 가서 볼 것을 추천한다. '독립다큐의 발전'같은 무슨 거창한 이유 때문에 보진 말라. 그런 식으로 발전 될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영화를 보는 당신들의 입장이나 태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정말 재미있다. 그래서 보라는 것이다.

다큐는 살아있는 얘기다. 영화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볼지를 추측해 보는 것도 무척 재미가 있고  당신의 엄마가 이 영화속의 엄마(들)를 어떻게 볼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정작 당신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여성영화제에서 만난 류 감독의 큰 언니(맞나?)가 "언젠가는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라는 말을 울먹이느라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류감독은 언니의 예상처럼 나중에 자신의 시점이 변하게 될까?

그렇게 되는지 꼭 보기 위해서 한 10년 정도는 더 친하게 지내봐야겠다.

 

 

3월 4일(금)부터 상영한다. 상영정보 및 영화 소개를 보려면 '포스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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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의 새 앨범이

내가 누군가의 앨범에 이렇게 집착?하는 것은

십수년 전 한영애 이후 처음인 것 같다.

 

한대수의 새앨범이 나왔다.

2001년에 했던 콘서트의 라이브 앨범이 이제야 나왔다.

 

2001년?

그 땐 한대수에 관심도 없었다.

내가 태어난 해에 데뷔를 했으니 당연히 내 세대 가수는 아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두장짜리 앨범을 받았다.

 

한대수에게 중독된 내 또래의 기획자가

엮어낸 콘서트였다.

앨범에 쓰인 그의 글을 읽으면서

아-후-!

난 감탄과 한탄과  그리고...

* 한대수의 노래를 올렸는데 자꾸 에라가 났다. 내 블로그에 접속만하면 Explorer가 먹통이되고 말이다. 할 수 없이 노래를 지웠더니 멀쩡하네. 덕분에 저작권법 위반은 면하게 됐네. 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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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의 하루'와 저작권

* 이 글은 pan님의 [아침에 왜그랬을까?] 에 대한 트랙백이긴 하지만 별 상관은 없다. 백수라는 말 때문에 이 노래가 생각났다. 그리고 "백수의 힘은 뻔뻔함이야!!!!" 라는 말이 너무 절절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자발적 백수가 아닌 이상 백수의 생활이 그리 유쾌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늘상 구질구질한 것만도 아닐 게다.

극소수를 빼고는 사람 사는 게 어디 그렇게 극단 적인 것만으로 이루어져 있겠나.

물론 난 이 노래처럼
'조금만 기다리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이 놈의 세상이 그렇게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좋겠지만 아닌 경우가 훨씬 더 많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뭐 맨날 시쭈구리하게(이런 전문 용어를 써도 되려나) 살 거 있겠나?

 

 

저작권

 

내가 이렇게 노래를 올리는 것이 불법이라고 한다.
그럼 나는 확신범인가?
실정법상 범죄인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저지르니 말이다.
내가 처벌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까부는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난 내가 산 CD에 있는 노래를 MP3로 변환해서 올리고 있다.
내 돈 주고 샀어도 이렇게 올리는 것은 불법이다.
진보넷 블로거쯤 되면 이번에 강화된 저작권법에 반대하는 것이 당연한 듯 보인다.
그런데 내마음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그 때 그 때 이슈가 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
나에겐 무지 귀찮은 일지지만 내가 현재 하고 있는 것이 불법이라니
마냥 무관심하기도 그렇고....

 

이 얘기는 너무 길어질 것 같다.
(난 판도라처럼 간결하게 끝내지 못하고 맨날 주절주절이다.
그래, 안 되는 것 노력하지 말고 하던 대로하자.)
다음 얘기는 아무래도 '라쇼몽' 카테고리에 들어갈 것 같다.

 

럼블 피쉬 - 백수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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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킴- 고래의 꿈

아버지를 모시고 방사선치료 받으러 다닐 때 처음 들었으니까 이 앨범이 나온지는 꽤 됐다.

차 안에서 처음 듣는데 아주 신선한 느낌이었다.

독특한 창법이 아소토유니온을 떠올리게도 했다. (물론 장르부터 다르긴 하지만)

누가 부르는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갔었다.

음악을 찾아들을 상황도 아니었던 때고 말이다.

 

그러다 근래 케이블을 볼 수 있게 되면서 바비킴의 뮤직비디오를 보게 됐다.

전혀 뜻밖의 모습이었다.

아주 다른 경우지만 아소토유니온의 모습도 당혹스러울 정도로 노래와는 너무나 다른 이미지였다.

전혀 음악하게 생기지 않았는데(음악하게 따로 생긴 것은 아니지만) 음악은 훌륭하다.

 

바비킴의 경우는 오히려 너무 잘생겨서 의외였다.

내가 아는 상엽씨를 닮아서 친근해 보이기도 했고 처음 듣는 Let Me Say Goodbye 라는 노래는 고래의 꿈과는 또 느낌이 달랐다.

그의 음악이 궁금해져서 CD를 샀다.

 

고래의 꿈 (Falling In Love Again) (feat. 김영근 [Bobby's Father])

 

파란 바다 저끝 어딘가 사랑을 찾아서 오예~
사랑을 찾아서
양 꼬리 세워 길 떠나는 나는
바다의 큰 고래 오 예~

이렇게 너를 찾아서
계속 헤매고 있나 오예~
저 하얀 파도는 내 마음을
다시 흔들어 너를 사랑하게 해

I'm fall love again 너를 찾아서
나의 지친 몸짓은 파도위를 가르네
I'm fall love again 너 하나만
나를 편히 쉬게 할 꿈인걸 넌 아는지

먼 훗날 어느 외딴 바다에
고래를 본다면 오예~
꼭 한번 쯤 손을 흔들어 줘
혹시 너라면 알지 모르니

I'm fall love again 너는 바다야
나는 그 안에 있는 작은 고래 한마리
I'm fall love again 왜 이렇게
돌고 돌아야하나 내 맘을 왜 몰라

한잔 두잔 술에 잊혀질 줄 알았어
운명이란 없다고 말해었던 나인데
하지만 난 너를 사랑에 빠져
이제 꿈을 찾아 떠나 바다를 향해

I'm fall love again 너를 찾아서
나의 지친 몸짓은 파도위를 가르네
I'm fall love again 너 하나만
나를 편히 쉬게 할 꿈인걸 넌 아는지~~
 
 
앨범이 아주 마음에 든다.
난 그냥 참신한 신인가수쯤으로 생각했는데 대단한 내공이다.
아직 가사를 신경써서 들은 건 아니기에 가사내용이 얼마나 만족스러운지는 모르겠다.
실력있는 윤미래(T)를 만날 수 있어 즐겁고, 재밌게도 아소토유니온도 featuring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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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향 - 자각몽

잔향殘香의 CD를 산지는 꽤 됐는데 아직도 제대로 들어보질 못했다.

요즘의 내 상황이 조용히 음악을 감상할 만한 사정이 못된다.

그래서 어떤 곡이 좋은지 몰라 선곡을 하지 못하고 그냥 타이틀곡인 자각몽을 올려본다.

자각몽이란 꿈꾸면서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알게되는 때가 있는데 그런 꿈을 가리킨다고 한다.

나도 어렸을 때는 그런 적이 가끔 있었는데 언제부턴가는 전혀 자각몽을 꾼 기억이 없다.

음반 전체 분위기가 적당히 가라앉아 있어서 마음에 든다.

내겐 역시 밴드음악이 맞는 것 같다.

굳이 밴드들의 음악을 찾아듣는 것은 아닌데 어찌하다보면 솔로보다는 밴드를 더 많이 듣고 있다.

자각몽은 어떤 영화의 도입부에 쓰이면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다.

 

전에 가봤을 때는 홈피도 안꾸며져 있더니 이젠 내용이 채워져 있다.

잔향 홈피 가기

 

 

그런데 잔향으로 검색을 하다보니 '음향/진동학'에서 잔향에 대한 이런 설명이 되어 있는데 난 왜 이런게 재미있는 거지?

뭐 그렇다고 이걸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잔향 [ 殘響 reverberation ]

 

넓은 실내에서 음원(音源)의 음이 정지한 다음 잠시 동안 들리는 연속적인 반사음. 이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 도달해 오는데 벽 등의 반사음이 중첩된 것이다. 반사 때 그 에너지의 일부가 흡수되기 때문에 잔향의 크기는 일반적으로 지수함수적으로 줄어들어 마지막에는 소멸한다. 따라서 그 음압 레벨은 〔그림 1〕처럼 시간과 함께 직선적으로 하강한다. 다만 복잡한 음향특성이 있는 방에서는 〔그림 2〕와 같이 이 직선이 굽어질 경우도 있다.


음원이 멈추었을 때부터 시작하여 잔향음의 에너지가 최초의 값의 1/100만이 될 때까지의 시간을 잔향시간이라 한다. 잔향시간 T를 구하는 식은 건축음향학의 창시자 P.E. 새빈에 의해 최초로 실험적으로 정립되어,
=0.161/
라고 표시되었다. 여기에서 V(㎥)는 방의 부피, S(㎡)는 벽의 면적, α는 벽의 평균 흡음률(음 에너지가 흡수되는 비율)이다. 다만 홀 등의 경우 α는 좌석의 재질이나 청중의 수에 따라 달라진다. 최근에는 더 많은 요소를 고려한 잔향시간의 식이 제안되고 있다.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잔향시간은 그 방의 사용목적에 따라 달라지며 음악의 경우 1.5∼2.5초 정도, 강연에는 1.0∼1.5초 정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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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 - 먼지

앨범에 가사가 적혀있지 않기도 하거니와

굳이 여기다 가사를 적어놓는 것이 이 곡을 듣는데 방해가 될 것 같다.

가사를 다 알아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랩도 아니고, 옛날 노래들 처럼 시를 읆는 것도 아니고,

한대수 제멋대로 주절 거린다.

 

운율이 맞는 듯도 하고, 어거지로 대충 갖다 맞추는 듯도 하고,

하여튼 제멋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요즘의 나에게는 정말 절절하게 다가오는 가사다.

이 노래 가사를 듣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한대수! 정말 미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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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밴드? - 천지인

내자신이 운동권도 아니었고, 천지인이란 밴드가 있는지도 몰랐다.

마르크스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슨 좌파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사회에서 자칭 혹은 타칭 좌파라고 하는 이들 중에 진짜 좌파가 몇%나 되는지 의심스럽긴 하지!)

유물론자?

그래 거기엔 좀 해당된다.

 

아, 음악 소개하려다가 얘기가 딴길로 새는 것 같군.

어쨌든 천지인은 내가 10여년째 보고 있는 월간지 <말>에 실린 기사를 보고야 알았다.

아래에 있는 말지 기사만으로도 글이 굉장히 기니까 오늘은 노래 가사나 올리고 그만둬야겠다.

 

청계천8가 version2 _ 김성민 작사 작곡_

파란불도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사람들 물샐틈없는 인파로 가득찬 땀냄새 가득한 거리여 어느새 정든 추억의 거리여 어느 핏발 서린 리어카꾼의 험상궂은 욕설도 어느 맹인부부 가수의 노래도 희미한 백열등 밑으로 어느새 물든 노을의 거리여 뿌연 헤드라이트 불빛에 덮쳐오는 가난의 풍경 술렁이던 한낯의 뜨겁던 흔적도 어느새 텅빈 거리여 칠흑 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가를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rap/ 화려한 불빛도 없이 그저 각자의 삶의 길로 수없이 지나치는 사람들 그 사이로 내 의지보다는 타의로 생겨나고 사라지고 현실의 벽 앞에 난 눈물을 떨구고 가난이라는 글자에 포기라는 단어로 끼워맞춰 보기도 했지만, 쓴 가래 뱉어 버리고 도 자식들의 꿈 있는 미래를 위해 내 한 몸이 이 거리 속에 묻혀 이 두 다리로 버텨

 


 

“팔리지 않는 시대정신은 가라.

       이게 우리들의 음악이다.”

 

 

글 이오성 레이버투데이 기자 dodash@labornews.co.kr

사진 허태주 기자 tjheo@digitalmal.com

'"우리 앨범을 두고 이번에 메이저 앨범이라고들 이야길 하는데요, 메이저가 뭔지 알려면 먼저 마이너가 뭔지 알아야 해요. 그럼 마이너란 뭐냐. 내 음악으로 내가 밥 벌어먹고 살지 못하면 그게 마이너예요. 메이저라는 게 방송에 나오고, 기획사에 소속되어야 되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메이저의 지위를 만들어야 되는 거죠. 전문연구직 직장인으로서 우리들의 생계와 미래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천지인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어느덧 데뷔 10년을 넘겨 진보진영 '최장수 밴드'의 반열에 오른 '2004년의 천지인'은 최근 그들을 둘러싼 호사가들의 ?리뷰와 코멘트?에 벌써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진보진영 관계자들’ 특유의 ‘단정과 재단’이 그들을 지치게 한 했다.

"한때 ‘팔뚝질’ 좀 했다던 어느 진보적 인터넷매체 기자는 ‘아직도 천지인이 활동하고 있느냐’고 사람들이 묻는다고 하대요. 그래서 5년 전부터 그런 이야길 쭉 들어왔다고 그랬죠. 그리고 이야기했어요.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 집회에 쉬지 않고 나갔었다고. 어느 일간지 기사제목은 ‘운동권 밴드 천지인 세상 속으로’ 였어요. 세상 속으로라니, 우리가 세상 밖에 있었나요? 그 세상과 이 세상이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죠?"

 그랬다. ‘불행히도’ 천지인은 신화적인 밴드였다. 베이시스트 허훈씨의 표현대로 그들은 ‘공동체의 별’이었고, ‘노래하는 거리의 투사’였다. 그리고 그 신화는 꼭 그만큼의 무게로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어떤 뮤지션보다도 더 현실에 발 딛고 노래하며 싸웠던 그들이 정작 그 현실 밖에 비켜서 있던 이들의 눈에는 ‘신화’처럼 보이고 있었다. 그 ‘신화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그들이 다시 돌아왔다.



우리는 신화가 아니다

천지인(天地人).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신세대, 네 멋대로 해라”고 명명된 ‘신세대 담론’이 열병처럼 세상을 휩쓴 1993년,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을 들고 민중운동판에 벼락처럼 나타난 록밴드. 그들은 록이 어떻게 ‘한국’의 민중운동과 결합할 수 있는지 보여준 최초의 전형이었다. 「청계천 8갯 「열사가 전사에게」 「청소부 김씨 그를 만날 때」 「밤바다」 「어쨌든 우리는 살아가니까」··· 등 한 번에 열거하기도 힘든 숱한 히트곡들이 말해 주듯 그들은 ‘당대 최고의’ 뮤지션이었다.

천지인의 록이 ‘어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철저하게 이 ‘나라의 현실’에 발딛고 있다는 점이었다. 가령 ‘네가 커서 어른 되면 남 다스리는 판사나 정치인이 되어’로 시작하는 「네가 커서 어른 되면」은 1990년대 운동권의 혼란한 정서를 역설적으로 대변했다.

노래패들은 앞다투어 그들의 노래를 따라불렀고, 노래 부를 수 있는 술집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그들의 노래만은 술집의 낮은 창 너머로 이따금씩 흘러나오곤 했다. 그해 출시된 그들의 ‘비합법 음반’은 사회과학 서점에서밖에 구입할 수 없던, 그 ‘열악한 유통구조’에도 불구하고 무려 8만여 장이나 팔려나갔다.

어떤 이는 “서태지류에 잠식당하기 시작했던 민중가요판에서 음악의 질로 맞장 뜰 수 있었던 유일한 밴드”라고 그들을 평가한다. 당대를 풍미했던 꽃다지, 혹은 희망새의 인기가 서서히 하향세를 그려가는 과정에서도 록밴드의 정체성을 지닌 천지인의 생명력은 남달랐다. 한때 융성했던 ‘록 담론’-록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던-이 자취만 남기고 사라져갔음에도 그들은 1997년 2집 음반, 2001년 3집 음반을 발표하며 자신들의 이름을 꿋꿋이 지켜왔다. 이제 천지인은 데뷔 이래 10년을 넘긴 몇 안 되는 ‘노래집단’이 되었다.

그런 그들이 지난 7월 ‘새음반’을 발표했다. 2년의 준비 과정 끝에 천지인의 지난 히트곡들을 베스트앨범 형식으로 다시 묶었다. 비록 ‘베스트’라곤 하지만, 이번 음반은 과거의 천지인과 확연히 달라졌다. 리듬앤블루스 풍의 랩이 가미된 「청계천 8갯와 세련된 전자음으로 업그레이드된, 그러나 그 ‘슬픔의 정서’는 한층 깊어진 「열사가 전사에게」등 모든 곡들이 좀더 깊어지고 세련돼졌다.



3.5집은 어떤 결별이자 시작

천지인은 “할 수 있는 모든 표현을 다 해봤다”고 자부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번 앨범을 ‘3.5집’이라고 부른다. 4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낸 ‘베스트’이자, 3집 이전의 천지인과 ‘일정한 결별’을 했음을 의미한다. 그 ‘결별’의 단초는 무엇보다 이번 음반이 메이저 음반사인 신나라뮤직을 통해 유통된다는 점이다. 더욱이 천지인은 이번 앨범을 내며 ‘공격적인 방송활동’을 펼치겠다고도 선언했다. ‘복수의 빛나는 총탄으로 이제 고인 눈물을 닦아다오’라던 그 노래, 「열사가 전사에게」가 방송사의 심의를 통과한 ‘사건’도 기폭제가 됐다.

그래서일까. 천지인의 이번 앨범은 ‘기성언론’으로부터 유례없는 조명을 받았다. 거의 대부분의 일간지에 그들의 음반소개와 함께, 인터뷰가 비중 있게 실렸다. 10년을 언더그라운드로만 ‘암약’해 온 록밴드에 대한 기성언론의 관심이야말로 천지인의 생명력과 가치를 웅변하는 것이었다.

그런 천지인도 한때 민중운동진영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들의 음악을 듣던 근엄한 ‘선배’들이 “양키의 음악이 민중가요의 순결을 유린한다”며 술상을 뒤엎었던 것이다. 불과 10년 전의 이야기다. ‘원년 멤버’로 아직까지 활동하고 있는 김정은씨(34 · 키보드)는 지금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옛날 이야기’를 꺼낸다.

“정말로 공연하다가 돌을 맞은 적도 있어요. 1994년에 광주 조선대에서였는데, 아마 한총련 출범식이었을 거예요. 사상적으로 조금 다른 학생들이 모여서 함께 집회를 하고 있던 자리에 초대받아서 공연을 하게 됐는데, 우리 공연을 제지하기 위해서 주최측 학생들이 몰려왔었어요. 결국 사수대들의 보호까지 받으며 노래를 불러야 했죠. 하~ 참.”

 



 

우리는 너희들의 안줏거리 밴드가 아니다

그리고 강산이 변했다. 그런데 10년 전의 천지인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은 ‘또다른 낯섬’이거나 ‘과거에 대한 집착’이 주류다. 그들의 방송활동 선언이나, 메이저 음반유통사와의 계약에 대해 삐딱한 시선으로 흘겨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어느 영화주간지에 실린 음반평은 ‘사운드와 편곡은 비할 바 없이 세련돼졌지만···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청계천 8가의 벼룩시장처럼 10년 전의 투박했던 감동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김정은씨는 차라리 “옛날처럼 반발이라도 하면, 보다 건강한 논의를 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고 말한다. 록밴드 ‘메이데이’ 출신의 베이스 연주자 허훈씨(34)도 이렇게 항변한다.

"아니, 떡볶이도 맛있어야 팔리는 거 아닙니까. 떡볶이가 맛있으려면 떡도 좋아야 하지만, 양념도 좋아야 하고, 그릇도 맛있어 보이는 놈으로 갖춰야죠. 그런데 뭐라고요? 변했다니요? 맛도 보기 전에 함부로 이야기하고. 그런 사람이 평생 가봐야 떡볶이 맛을 알겠어요? 전노협 진군가를 밤에 홀로 들었던 사람은 거의 없겠죠? 그런데 저흰 천지인 노래를 잠자리에서도 듣고 싶은 ‘맛있는 노러로 만들고 싶어요."

이처럼 ‘좋았던 옛날’만 기억하려는 ‘무심한’ 진보진영의 팬들에게 천지인이 가진 서운함은 결국 지금 민중가요판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대중음악판이 휘청거리는 지금, 민중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이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민중가요판은 이제 정말 삭막합니다. 후배들이 없어요. 문화공연의 경우에도, 보세요. 지금 ‘자 우리 손을 잡자’라든지, ‘자유’, 라든지 그래도 우리 민중음악판에 숨통을 틔워주던 공연들이 최근 5년 동안 완전히 사라져버렸어요. 이를테면 모두 열린음악회 같은 것들에 뺏긴 거지요. 그 많던 공연 기획자들, 음반 기획자들은 또 모두 다 어디로 갔습니까? 게다가 진보진영의 음악하는 단체들은 어떻습니까. 채 10개도 안 돼요. 한번 꼽아볼까요? 꽃다지, 희망새, 소리타래, 우리나라, 젠···”

결국 채 여섯 개도 꼽지 못한 채 말을 잇지 못하던 그가 한참 뜸을 들인 뒤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천지인이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욕을 먹더라도 악착같이, 아니 번듯하게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후일담이라도 나올 것 아닙니까?”

그랬다. 어쩌면 천지인이 10년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우리마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절박함과 자존심일지도 몰랐다. ‘자존을 건 생존’을 부르짖는 이들에게 그들을 알고 있다던 이들은 변절, 혹은 타협이란 단어를 들고 나와 싸움을 거는 셈이다. 김정은씨가 말을 잇는다.

“최근 천지인의 오버 진출에 대해서 자본주의화니 하는 소리들을 들으며 그런 생각까지 들더군요. 아니, 대체 유물론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돈에 대해 초연하다는 게 말이 되는 것인가. 유물론자가 돈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건 기본 중의 기본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에요.”

그래서 기자가 다시 물었다.

- 이분법적으로 물어보죠. 그와 같은 이들의 반응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건가요? 그런 게 아니라고, 맞서 싸울 겁니까? 아니면 초연해질 겁니까?.

“사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그냥 ‘무시’하고 싶어요. 이 말은 초연하다는 것과는 좀 다른 건데요. 말하자면 우리는 술자리의 오징어 안주처럼 추억거리 밴드로 남고 싶지 않다는 강렬한 의지가 있어요. 아주 사적인 경험이지만, 옛날 선배들, 특히 일상적으론 진보진영이나 또는 음악과 아무 관계없이 살던 사람들이 어느 날 만나면, 니네 이래서 되겠냐, 아직도 이런 정도밖에 안 되냐며 냉소적으로 훈계를 하죠. 그래 놓곤, 돌아서면 또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우리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이 추억처럼 씹다가 마는 거예요. 정말이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런 충고나 늘어놓는 그런 사람들은 무시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천지인은 왜 MR 테이프 안 풀어요?”

‘후일담이나 늘어놓는 선배’들 뿐만이 아니었다. 진보진영에 대해 가지는 천지인의 ‘문제의식’은 더욱 심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10년의 깊이가 담긴 문제의식이었다. 보컬 엄광현씨(29)가 정색을 했다.

“노래운동 진영의 선배들, 혹은 공연 관계자들을 만나면 이런 소리를 들어요. 왜 천지인은 MR(반주테이프)을 풀지 않느냐는 거죠. 답답해요. 우리는 멤버가 모두 모여 장단을 맞춰야 음악이 나오는 밴드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반주테이프를 달라는 것처럼 치욕스러운 게 없어요. 물론 우리 문화판의 여러 조건들이 밴드가 공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안 되는 건 압니다. 그래도 하나씩 바꿔 나가야죠. 결국 이런 식으로 우리 같은 밴드들이 집회의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겁니다. 정말 화가 나요.”

엄광현씨는 “그나마 밴드가 공연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큰 집회에선 우리를 부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3월 10만 명이 모인 탄핵반대 집회에 서문탁과 조PD의 모습은 보였어도 천지인은 보이지 않았다. 천지인이 걸어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어 보인다.

“3.5집을 내고, 오버에서 활동하기로 하면서 꽃다지의 이은진 선배를 찾아가 물었더니 그러시더군요. 민중가요의 틀을 깰 수 있는 건 지금 너희밖에 없는데 왜 이제서야 내기로 했느냐고. 천지인은 이미 외연의 확장을 해낸 밴드고, 그래서 오버에서 승부할 수 있다는 말씀이었죠. 그리곤 그러시대요. ‘가라, 가서 열심히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지만 말라’고.”

지난 8월 3일은 천지인에게 뜻 깊은 날이었다. 이날 처음으로 「열사가 전사에게」가 공중파를 타고 울려퍼졌다. 대구 MBC에서 방영하는 ‘텔레 콘서트’가 그 자리였다. 말하자면 제도권에서의 ‘첫 경험’에서 느낀 그들의 ‘감개무량의 소감’은 이런 것이었다.

“음··· 모두들 우리를 신인 록밴드 정도로 생각하더군요. 겉늙어 보이긴 하지만(웃음). 그런데 굉장히 특이했던 것은 ‘열전’(열사가 전사에게)을 부르고 났더니, 처음 들어본 이들이 이 노래를 아주 독특한 발라드쯤으로 받아들이더군요. 어떤 이들은 '열전'을 듣고 6·25 전쟁 때 사망하신 순국선열들을 떠올리며 가슴이 뭉클했다고도 하고, '청계천 8가'를 듣고 어머니 아버지의 삶을 떠올렸다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반응들이 우리를 설레게 합니다.”

이제 오버그라운드로 첫발을 ‘오래된 밴드’는 스스로 자신들의 장점을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데뷔 10년만에 가장 튼튼한 라인업이 구성된 거죠. 사실 1집 때만 해도 모두들 군대 문제조차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들 군대 갔다 휴가 나와서 가발 쓰고 공연하기도 했거든요. 1999년에 이 멤버가 짜여졌으니 벌써 5년 동안 호흡을 맞춰 왔어요. 매니지먼트 역시 과거의 아마추어적 분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적 이미지메이킹’이 필요하고, 거기에 충실해질 생각입니다. 3집 앨범 낸 뒤에 대중음악계의 한 홍보담당자를 만났어요. 그랬더니 혹시 니네 멤버 중에 의사나 변호사가 있냐고 묻더군요. 없다고 했더니 아니 그러면서 어떻게 ‘홍보’를 하느냐고 반문하대요. 음악하는 사람이 음반 낸 게 무슨 기삿거리냐는 거죠. 우리는 이런 현실에 맞설 겁니다.”

 

‘팔리지 않는 시대정신’은 가라

천지인은 단단히 ‘작심’한 듯 보였다. 그것은 냉혹한 자본주의의 ‘게임의 법칙’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겠다는 각오였다.

“우리는 자부합니다. 지금 이 세상의 어떤 밴드가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전략과 전술을 고민하겠습니까. 우리가 아직 테크니션이라고 불릴 만큼의 실력은 아니지만, 더 이상 ‘팔리지 않는 시대정신’에 집착해 자멸하진 않을 겁니다. 지켜봐 주세요.”

9월 10일, 엄광현씨는 빈민대책 집회에 예의 ‘밴드도 없이’ 혼자 노래하고 돌아왔다. 그날 밤 늦은 시각, 그는 천지인 팬 카페(http://cafe.daum.net/bandchunjyin)에 이런 글을 올렸다. 취기 어린 그의 글엔 천지인의 진심어린 고민이 담겨 있었다. 그들의 음악이 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파는 날', 천지인은 비로소 ‘살아 있는 신화’로 거듭날 것이다.

‘내 노래의 파장이 좀더 컸으면 좋겠습니다..
내 노래가 내 가사가.. 좀더 많은 사람들 가슴을 후벼팠으면 좋겠습니다..
내 노랫말이 사람들 가슴을 후벼파는 대신..
머리랑.. 가슴만 아픈 하룹니다..
여기 들어오시는 모든 분들..
내게 힘을 좀 주세요..
무거운 납덩이 같은 힘을.’

 


기사를 링크시키려고 했는데 잘 안돼서 그냥 퍼왔다.

기사는 월간<말>의 인터넷판인 디지털말(http://www.digitalmal.com)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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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 상처

음악에 대해 뭐 아는 게 있어서 이 카테고리를 만든 것은 아니다.그냥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간혹 올려보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한다.

가끔 영화에 대한 얘기도 올릴까 한다. 원래는 다큐영화를 좀 올려볼까 했는데 지금의 내 상황을 봐서는 꽤 오랫동안 그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처음으로 올리는 곡은 한대수의 '상처' 라는 노래다.

 

    아 그대여  왜그래 왜그래

    상처만 주나, 상처만 주나

    아 그대여  아무리 아무리 아무리

    아픔만 주나  아픔만 주나

    아--무리 말하여도

    아--무리 탓 하여도

    그대는 그만  그대는 그만

    -----------------------

    우 --------------------

    -----------------------

    아 --------------------

 

* 한대수의 앨범에는 그가 직접 갈겨쓴 가사가 실려 있다.

이 곡에 대한 짧은 멘트도 있지만 너무 많은 것을 여기다 올리는 것이 예의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이유도 있어서...

내 나이가 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한대수 세대까지는 아니다.

어렸을때부터 한대수를 알기는 했지만 내가 한대수를 좋아하게 된 것은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무척 힘들었던 때가 있었는데, 우연히 벅스에서 그의 음악을 듣게 되었고 그 당시 나에게 많은 힘이 됐다.

"희망의 나라로" 같은 노래로 힘을 줬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슬픈 노래가 내 슬픔을 달래 줬다는 말이다.

"슬플 때는 오히려 슬픈 노래를 들으라"는 말이 있다.

역시, 인간의 경험에서 나온 말들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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