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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8/30
    어떤 나라 (A State of Mind)(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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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5/08/25
    펭귄 - 위대한 모험(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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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5/08/20
    영화 얘기라기 보다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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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07/08
    나는 얍사하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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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06/30
    DVD와 소유욕(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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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5/06/09
    근래 본 속상한(?) 영화 세편(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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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5/05/27
    음악바톤 부담 받기? 재미받기?(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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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5/05/01
    요 며칠 본 영화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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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5/04/20
    북치고 장구치고(자우림 실리콘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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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5/04/07
    한대수- 물 좀 주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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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라 (A State of Mind)

20년 전쯤이라면 이런 내용의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개봉되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다. 10년 전이라면 가능했을까? 김일성 조문 파동으로 온나라가 쌩쑈했던 영샘이 정부 시절 말이다.

 

북한에 관한 거의 모든 정보를 국가가 쥐고 있던 시절에 이런 영화를 봤다면 대부분의 남한 국민들은 경악하지 않았을까? 내 개인적으로 가장 경악했을 만한 내용은 이거다.

"북한에서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른다는 것" 말이다. 북한엔 홍길동만 사는 것도 아닌데 그게 뭐 이상하냐고?  난 어렸을 때부터 거기(그 당시 '북괴'라고 불리던 곳)서는 아버지, 어머니를 모두 다 '동무'라고 부른다 배웠다.

 

 

어떤 나라

 

지금 현재 하이퍼텍나다에서 하고 있을 게다.

촬영과 편집이 너무 세련되서 다큐라기 보다는 뮤직 비디오를 보는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나중에 써야지.

아버지가 이젠 정말 안좋아져서 할 일이 많아졌고, EBS에서는 하루 종일 다큐를 한다.

제대로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짬짬이 녹화를 하고 있는데...

 

며칠 정도는 불로그에 잘 안들어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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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 위대한 모험

펭귄들 때문에 가슴이 터지는 줄 알았다. 너무 짜~안 해서 말이다. 성우들이 중간 중간 방해하지 않았다면 진짜 터졌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론 펭귄의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을 본다해도 절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펭귄들의 위대한 여정

 

성우들이 동물을 의인화해서 다룬 것들을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무엇보다도 '속상할까봐' 안보려 했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가 시작되고 곧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간 중간 "그래,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이래서 안볼라고 했더니만 결국..."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러다 이내 숙연해지고 말았다.

 

펭귄들은 어쩌다 진화의 방향을 저렇게 잡게 되었을까? 어쩌다가 남극이라는 그 혹독한 곳에 살 게 되었을까?  정말 신이 모든 생명을 창조했다면 정말 고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자고 얘네들을 이런 곳에서 이렇게 살아가도록 했을까? 인간보다 더한 원죄라도 지었단 말인가?

 

그래, 아주 냉정하게 말하자면 간단하다. 펭귄들 나름대로 생존에 적합한 진화의 방향을 잡은 것이고,  관객들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은 그 처절한 장면들도 결국 자신의 종을 보존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행동들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게 아마 정답일 것이다. 성우들의 멘트는 괜히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고자 만들어낸 인간의 신파극이고 말이다.

 

그런데 영화속 장면들은 도-저히 그렇게 생각하도록 내 버려두질 않는다. 다른 새들처럼 쪼그리고 앉을 수도 없는 펭귄이 영하 40도의 추위에서 어떻게 알을 부화시킬 수 있는지, 몇 달을 굶어가며 품어낸 알에서 깨어난 새끼가 결국 얼어죽은 걸 본 어미의 행동을 보면서 진화가 어쩌구 신이 어쩌구 하는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이미지 <씨네21>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영화 장면들이 마구마구 떠올라 가슴 속이 먹먹해지고 뭉클해지고... 아!!!  미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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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달랑 4개 영화관에서 개봉했다가 8주만에 2000개 넘는 영화관으로 확대되며 돌풍을 일으켰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미국 돌풍의 영향인지 다큐영화치고는 파격적인 숫자인 전국 57개 영화관에서 개봉했으나 딱 2주가 지난 오늘 현재 9개에서만 한다.(직접 세어봤다.) 그나마 내일(금)이면 거의 다 바뀔테고, 서울에서는 메가박스(삼성역) 하나만 남는다.

 

대한민국에서 괜찮은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 않으면 금새 막을 내리고 만다. 그나마도 지방에서는 개봉조차 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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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얘기라기 보다는

<어느 네 팔 소녀의 아주 사소한 이야기 >를 말하려다 샛길에 샛길로 마구 빠질 잡글

 

-샛길 1 : 애꾸 나라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고모네서 살았는데 내가 초딩일 때 사촌형은 고딩이었고, 내게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해주곤 했다.

그중 인상적인 말(이야기는 아니고)은 "애꾸 나라에 가면 두 눈 가진 사람이 병신된다."

형은 그 상황을 상상해 보라며 정말 재미있고  그럴 듯하지 않냐고 흥분에 가까운 상태로 얘기했고, 나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상황이 내 머리속에 각인됐다.

 

-샛길의 샛길 : 병신

'병신'이란 단어를 쓰고 나니 몇 년 전 군가산점 폐지 때 생각이 난다. 공무원 시험에서 군복무한 사람에게 가산점을 주는 것이 평등권에 위배된다는 헌재의 판결에 예비역들이 분노했던 사건이다. 싸움은 '남녀'간의 전쟁처럼 전개되어 나갔고, 여러 가지 논의들이 감정 잔뜩 실려서 오고 갔다. 여성민우회 게시판은 분노한 예비역들에게 점령되서 마비 일보직전이었는데 난 그 곳에 '가산점 폐지는 정당하다'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예상한데로 엄청난 (욕설이 듬뿍 담긴)  댓글이 올라왔고, 또한 예상한데로 상당수 글들에는 "너 여자인데 남자인 척 하는 거지?"란 내용이 들어있었다.

험악한 글 들에 내 글도 분위기는 좀 험악하고 냉소적이었는데,  문제가 된 부분은 내가 말한 이 부분이다.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낸 것이 잘못됐다고 주장하시는 것 맞죠? 그렇다면 헌법재판관들이 왜 그런 말도 안되는 결정을 내렸을까요? 여성들의 힘에 굴복해서? 땡, 틀렸습니다. 이번 헌법소원을 낸 사람은 여성이 아니라 '장애인'입니다. 일단 여성들은 논외로 하고 (군가산점 제도가) 장애인들에게 불평등했다는 것은 인정하십니까? 그들도 군대에서 썩지는 않았으니까 당연한 것이라구요? 아니면 장애인까지는 봐줄 수 있는데, 여자들은 장애인도 아니니 그 꼴은 못보겠습니까? 그 장애인이 원망스럽지는 않습니까? 병신이 지랄해서 괜히 여자좋은 일만 시켜준 것입니까?

그 글 이후 난 졸지에 "장애인=병신'이라고 보는 파렴치한 놈이 됐다. 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무조건 사과했다. 물론 그들의 엄청난 분노 때문에 "병신이 지랄해서 괜히 여자좋은 일만 시켜준 것"이라고 그들이 생각할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 그런 표현을 쓴 것이지만, 이런 저런 변명 안하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했다. 어쨌든 그 단어를 사용한 원죄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은 이런 거였다.

"당신은 장애인을 사랑해 본 적이 있습니까? 난 있습니다.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주위의 반대로 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난 정말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장애인을 사랑해 본 적이 없는 당신 같은사람은 장애인에 관해서 얘기할 자격이 없습니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장애인에 관해 발언할 분들은 참고 하시라. "장애인을 사랑한 적이 없는 분은 입닥치고 계시라. 특히 뭔가 말하고 싶으면 이성 장애인을 사랑하라?"

 



 

 

영화속의 배경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또는 우리주위에 널려있는) 삭막한 도시의 한 건물이다. 네팔을 가진 소녀가 아파트로 보이는 곳에 살고 있다. (그 '네 팔 소녀'가 그 '네팔 소녀'가 아니라는 것을 관객중의 상당수는 소녀가 기지개 펴는 장면을 보고서야 알았다. 당연히 약간의 웃음이...)

그 모습으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는 얘기를 듣고...  그 네팔소녀는...    자신의 두 팔을 자른다.

 

 

-샛길 2 : 조카

고등학생 조카가 있다. 큰 누나의 아들. 누나는 아주 아주 예전엔 염세주의자처럼 보였지만, 이젠 그 모습은 아니다.  전교조 교사이고, 민노당 당원이다.  내가 갖다 준 '주민등록증을 찢어라'란 다큐를 본 적이 있고, 꼭 그것 때문인지는 모르나 주민등록증이 나올 때가 된 자신의 아들(내 조카)에게 주민등록증을 만들지 말라고 했다.

내 조카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엔 두가지 종류의 인간이 있다. 자기 엄마와 삼촌(나)같은 부류의 인간그렇지 않은 인간 두 종류 말이다. 지 엄마와 삼촌은 그 이외의 인간들이 하는 말과는 차이가 많이 나는 말들을 자주도 한다. 자신의 학교선생도, 친구들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이모도 그리고 삼촌과 유전자가 같은 큰삼촌마저도 세상은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데 엄마와 삼촌은 다른 소리만 떠든다.

친구들은 "울 아빠가 그러는데 조선일보가 제일 좋데"라고 그러고, 선생은 모든 학부형에게  반 모든 애들의 성적이 나온 성적표를  발송했다. 자극 받아서 열심히 하라는 고전적인 레파토리가 아니다. 선생 왈 " 그 성적표만 보면 누가 수학을 잘하는지, 누가 영어를 잘하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잖아? 너희들이 영어가 부족하다 싶으면 영어를 잘하는 친구와 친하게 지내보란 말야. 수학에 자신이 없으면 수학 1등하는 친구와 친해지도록 노력해 보고 말이야. 그런 친구를 집에 초대해서 더 친해질 기회를 만들 수도 있겠지"  
여러 가지 사건으로 담임에 대해선 포기한 지 오래된 조카를 실망시키는 것은 담임선생이 아니다. 자기반 애들 중의 절반 정도가 그런 담임을 존경한다는 것이고, 존경까지는 안하는 애들이라 하더라도 담임의 말을 타당성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삼촌! 그냥 모두 잊고 다른 애들처럼 생각하면서 살면 안될까?"

"음..... 될 것 같으면, 해 봐!  세상엔 비가역반응이라는 게 있는데 말이야..."

 

 

-네팔소녀 얘기 2

 

흑백톤이고 (덩야의 지식을 빌자면) 스톱모션으로 언뜻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

영어단어들로 되어있지만 영어는 아닌, 말도 아닌 해설. 말도 안되는 영어를 반복하지만, 마치 그 때 그 때 상황을 적절하게 설명해주는 양 느껴지는 설명들.

감독은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는데...

영화속의 네팔소녀는 네팔 때문에 신체적 불편을 느낀 것은 아니라는 게 기본 설정이다. 오히려 두 개에 비해 네 개만큼 쓸모 있는 것 같은데, 세상에 섞이고 싶어서 소녀는 팔을 잘라내고...

소녀는 행복해졌을까?

 

 

-샛길 3 : 매트릭스

"젠장, 내가 그 때 왜 파란약을 먹었을까?"

매트릭스에서 싸이퍼의 대사다.

죽음과 싸움에 늘 직면해야하는 '현실'(그리고 진실)보다는 차라리 가짜 현실인 매트릭스를 선택하기로 한 싸이퍼. 물론 그걸 위해서 동료들을 죽이기까지 한 것을지지할 순 없지만 내겐 가장 설득력 있는 인물로 느껴진다. 어차피 기억을 지우고 나면 뭐가 진실인지도 모를텐데.

 

 

-네팔소녀 얘기 3

 

영화 마직막에  '소녀는 아직도 거기 살고 있다'라고 나온다.

결국 그녀는 타인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는 말이겠지?

타인들에게 받아들여졌다면 비로소 소녀는 행복해졌을까?

받아들여지지도 못하면서 두팔까지 잃었으니 소녀는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일까? 정말?

시도해볼만 가치는 조금도 없었을까?

(그럼 그렇게라도 해봐야 한단 말이야? 빌어먹을!)

 

 

샛길 4 : 오아시스의 공주

정말 말많았던 영화 오아시스.  

영화속 공주가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났을 때 '장애코드로 문화읽기'모임에 오셨던 한 장애인 분은 그제서야 문소리가 진짜 장애인이 아님을 깨달았고,

영화보면서 원래 몰입 같은 걸 잘 안하는(못하는) 나는 그 때 '제기랄'을 외쳤다. "그래, 알았어. 알았다구. 이거 영화인 거 나도 아니까 그렇게 홀랑 깨면서까지 알려줄 거 없거든"

장애인이라고 해서 강간하려했던 사람에게 연락하려 했다는 것이 말도 안된다는 비판과 함께 '벌떡 일어나는 공주' 장면은 장애인이 마치 '비장애인을 꿈꾸며 살아가는 존재로 묘사했다'는 욕을 먹었다. 이에 대한 나의 판단은 아직 없다. 앞으로 있게 될지도 알 수 없다. 오아시스 얘긴 또 하게 되겠지.

 

마지막 샛길

드렁큰타이거의 최근에 낸 앨범에 "소외된 모두, 왼발을 한 보 앞으로"라는 긴 제목의 노래가 있다. 뮤직비디오를 잠깐 봤는데 '네 팔'을 휘젓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뭔 의미로 만들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전체를 본 것도 아니고 말이다.

 

애꾸 나라에 가게 되면 나도 한 쪽 눈을 빼겠다는 결정을 하게 될까?  우리 나비는 꼭 데려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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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얍사하다.

알엠님의 [장애인의 성 문제 다룬 '핑크 팰리스' 유감] 에 관련된 글.

원래 제목을 '말많은 핑크팰리스를 나도 봤다' 뭐 이딴 식으로 할 까 했다.

그러다 확인 사살하는 맘으로 기사검색을 했더니 이미 알엠이 위드뉴스에 글을 썼더만.

그 글을 읽고 나니 내가 할 말이 별로 없어졌다.

내가 할 말을 알엠이 많이 하기도 했고, 내가 오해했던 부분을 해명해 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럼 알엠의 글에 다 동의하나???)

물론 오해인지 사실인지는 감독만이 알고 있는 것들도 있기는 할 게다.

 

영화는 이틀 전에 봤다.

(대한민국에서 연줄은 역시 좋은 것이여?

지방에 사는 주제에 상영장을 가지 않고도 이 영화를 봤으니.)

어쨌든 이것저것 할 얘기가 무지하게 많았다.

영화 자체에 관해서도 그랬고, 요즘 찬반논란에 대해서도 그렇고 말이다.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다 빼고 결론만 말하자면

"난 이 영화가 문제 있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한다"

이 영화의 어떤 것이 문제인지 같이 고민해 보자는 것이 아니다.

감독이 '장애인의 성'이나 '다큐멘타리'에 대한 고민이 치열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좀 들기도 하는데, (게다가 요즘 그의 대응은 미숙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옳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는 그 이상의 미덕이 있다.

물론 이건 비장애인 남성인 나의 시각일 수도 있겠지.

그럼 보고 나서 나까지 욕하던가.

 

나중에 제대로 한 번 정리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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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와 소유욕

벌써 7~8년 전쯤의 일이다.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이사 갈 집이 좁기도 하거니와 이사짐 많은 것이 끔찍하기도 해서 과감하게 버릴 건 버리기로 했다. (그땐 정혜랑 같이 살던 때다.)

그전 같으면 '이걸 어떻게 버려'라고 할 만한 것들이었는데, 일단 한 번 마음먹고나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가장 덩치가 큰 것은 장롱이었다. 서랍장만 남기고 다 버렸다. 조립식 봉으로된 옷걸이로 대체했다.

그 다음 부피가 큰 것은 책

책은 꽃아두면 왠지 폼도나고, 옛날에 읽을 때의 추억도 담겨있고 해서 미련이 남았는데

- 다시 꺼내 볼 책인가?

- 꺼내 보지는 않더라도 어떤 깊은 기억이 남아있어 계속 소장할만한 책인가?

이 단순한 두가지 기준만 세웠는데도 살아남는 책이 별로 없었다.

 

턴테이블도 망가졌고, 턴테이블 있을 때도 귀찮아서 더 이상 듣지 않던 LP 50~60장도 버렸다. 한 장, 한 장 살 때마다 뿌듯했던 녀석들인데... (책도 마찬가지다. 적지 않은 돈을들여 사고, 또한 적지 않은 시간을 써서 한권 읽고나면 겨우 몇센티의 책장을 채울 뿐이다. 장식용으로는 디지게 비싼 녀석이다.)

 

한 때는 책장 가득 꽃힌 책들을 보며 뿌듯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조금만 생각을 바꿔보면 사실 아무것도 아닌 거다.

물론 내가 이렇게 바뀐데는 그 무렵 알게된 푸른영상의 영향도 꽤 있었을 것이다.

푸른영상 사람들(특히 김동원 감독)을 보면서

'가난'이란 녀석이 그렇게 두렵지는 않게 됐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두렵지 않다'가 아니라 '그렇게'라는 말이다. ^^)

원래도 돈이나 물건에 큰 욕심 부리던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2년 전 한 친구녀석의 이사짐을 날랐다.

다른 짐은 별로 없는데 책이 좀 많다. 2천여권!

둘이 나르느라 무지하게 힘들었다.

그런데 1년도 채 안되서 다시 이사하게 됐다.

내가 "왜 이리 미련하게 이 많은 책들을 다 가지려고 하느냐?"고 타박을 했더니

친구녀석이

"미련한 건 아는데 내게 남은 것은 책밖에 없다.

얘네들 마저 없애고 나면 난 아무것도 없는게 되는 것 같아서..."

결혼을 무척 하고 싶어하는데도 못하고, 박사과정까지 마쳤지만(그래서 더) 취직도 안되고...

다음에 또 이사하면 군소리 없이 날라줘야겠다.

 

아버지 때문에 송탄으로 짐을 옮기면서도 꽤 많이 버렸다.

꽤 많이 버렸다기 보다는, 조금만 가져 오고 나머지는 다 버리거나 줬버렸다.(나비는 안 버렸다 ^^)

그런데 요즘 다시 모이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DVD

1년넘게 아버지 때문에 묶여 살다보니 뭔가 해소책이 필요했다.

내 마음대로 나다니지 못하다 보니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못만나고, 보고싶은 영화도 못보게 됐다.

그래서 DVD를 많이 빌려다가도 보고 사서 보기도 한다.

빌리는 것에 비해 사는 것이 당연히 비싸기 때문에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면서 사다보니 그것도 재미가 있다.

그런데 소유욕은 역시 자가발전을 하는가 보다.

DVD 욕심도 나지만 좀 더 큰 TV, 좀 더 화질 좋은 TV, 좀 더 좋은 Sound를 바라게 된다.

사실 천만원 짜리 홈씨어터라 할지라도 어지간한 영화관을 못따라 가는데...

 

미갱<비디오&DVD 미갱소장> 소개한 것을 나도 한 번 흉내 내본다.

(비디오는 모두 다큐인데 다음에 기회되면 하던가 말던가/ 트랙백은 안보냈다. 민망해서)



북극의 나누크

로저와 나

쇼아

7인의 사무라이

라쇼몽

이키루

아무도 모른다

러브레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마이 제너레이션

오발탄

오픈 유어 아이즈

열혈남아 (몽콕하문)

베티블루 37.2

내 어머니의 모든 것

사이드웨이

모던타임즈

황금광 시대

매트릭스

아이다호

예수의 마지막 유혹

이레이져 헤드

공각기동대

이노센스

반딧불의 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추억은 방울방울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

바람을 본 소년

구름처럼 바람처럼

스팀보이

바람의 검심 (성상편)

캐산

 

* 대충 세어보니 30% 정도가 불법 복제품이다. 이젠 별로 안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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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본 속상한(?) 영화 세편

꼭 속상하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슬프다고 하기만도 뭣한 그런 영화들

 

아무도 모른다

연기 경험이 전혀 없다는데 아이들의 연기가 정말 기가 막히다.

눈물샘 자극하는, 어른 연기 뺨칠 정도여서 영악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런 아역 연기가 아니다.

아마 감독의 능력이겠지.

비디오나 DVD로 나왔는지 모르겠다.

정말 왕!왕! 왕추천이다.

(영화속 내용은 실제 있었던 일이었다고 한다.)

 

 

반딧불의 묘

일본 애니매이션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미 다 본 영화인가 본데, 난 이제야 봤다.

이렇게 설득력을 가진 반전영화 흔치 않을 것 같다.

아직 못 본 이들에게 '반전영화'라는 단어가 선입견을 주진 않기를...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지금 검색을 해보니 반딧불의묘를 만든 감독이 이 영화도 만들었다.

세 편 중 가장 속상한 영화다.

물론 전반적으로(마지막까지도) 유쾌하게 간다.

반딧불의 묘를 보고 엄청 운 사람들도 많았다는데 난 오히려 그 영화에선 덤덤한 편이었고,

명랑 발랄한 이 영화 보고 디지게 속상했다.

맞다. 내 감정 오버다.

 

*이미지는 씨네21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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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바톤 부담 받기? 재미받기?

* 알엠님의 [음악 바톤 이어받기] 에 관련된 글.

1.컴퓨터에 있는 음악파일의 크기:
546메가
예전엔 다운도 많이 받았는데 이젠 쉽지도 않고 귀찮기도 해서 렛츠뮤직에 월 3천원 내고 듣는다. 현재 있는 음악파일은 내가 산 CD를 MP3로 변환해 놓은 것들.
다운 받은 건 김윤아꺼 4곡, 3호선버터플라이꺼 2곡


2.최근에 산 음악 CD:
BMK 2집 (사고 나서 별로 흐믓하지 못함.- 별 생각없이 샀더니 내취향이 아니다.)
이거 바로 전에 산 건 한 대수, 그 전에 것도 한 대수, 그 전 것도 한 대수.
며칠 사이에 한 대수 것만 3개 샀는데, 구하기가 쉽지 않아 3개 모두 다른 곳에서 구입했다.


3.지금 듣고있는 노래는?:
가재발- 박하사탕 / Soundship

4.즐겨듣는 노래 혹은 사연이 얽힌 노래 5곡은?:

난 대부분 한 앨범을 통째로 듣는 걸 좋아하는데

 

* 한 대수 9집 고민(2002)

정혜와 헤어지고난 후였다.
밤에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와(해피는 있었구나!) 벅스뮤직을 연결하고 늘 한 대수의 이 앨범을 틀고 잤다.
제목이 뭔지도 안보고 그냥 듣다 잠들기도 하고, 앨범 끝날 때까지 잠이 안와 처음부터 다시 틀고 자기도 했다.
그 중 특히 한 곡(연주곡)이 유난히 묘하게 사람 기분 꿀꿀하게 만든 매력적인 곡이있었는데 한 참 후에 곡 제목을 보니 "상사병"이었다. 제길!

 

*타카피 3집 Superstar(2004)

"MBC청룡"이란 노래도 있는데 그 즈음 장명부의 죽음 소식을 접했다. "나도 나이 되게 많이 먹었네"란 생각이 들었다.
좋다 나쁘다가 아니고 그냥 그랬다는 거다. 노브레인과 함께 요즘 펑크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서태지와 아이들 3집(1994)

"널 지우려해"라는 곡을 얼마전 몇 년만에 다시 들어봤는데 '명곡'은 아니지만 정말 그럴싸한 곡이다. 처음엔 좀 애절하다 중간엔 처절해지고 마지막은 장난이다. 이 앨범이 나왔을 때 난 제법 괜찮은 오디오를 갖고 있었다. '소리가 다르면 감동이 다르다'라는 광고카피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때 서태지를 무지 좋아하던 중3 여학생에게 이 노래를 빵빵한 사운드로 들려줬더니 감동해서 정신을 못차렸다.

 

*레드 제플린 3집(1971)

레드제플린의 대표곡은 "Stairway To Heaven"이지만 괜히 뭔가 있어 보이고 싶어서 "Since I've Been Loving You"를 좋아한다고 했었다. 20대 초반의 일이다.

 

*전인권과 안싸우는 사람들(2004)

기억하는지...(눈이 내리네 그때처럼)
전에 말지에 옛날 가수들(?)을 소개하는데 들국화가 있었다.
"그 시절 들국화가 있어 행복했다."라고 했는데 난 그 때 고딩이었고 나역시 들국화와 산울림을 무지 좋아했다. 그땐 주로 팝송을 듣던 때였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고 "들국화가 있어 그나마 덜 불행했다."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사실 난 즐겨듣는 노래나 사연이 있는 노래 같은 게 별로 없다. 좋아하는 노래라도 한 때가 지나면 잘 찾아듣게 되질 않는다. 새로 나온 노래들도 많은데 예전 곡까지 들을 여유는 별로 없다. 물론 꼭 새로운 노래를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5.바톤을 이어받을 다섯 분은...:

내가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는 부분인데... 할 수 없이 내 블로그에 덧글을 남긴 적이 있는 이들로 채우긴 하겠지만 요즘 들어오기나 하는지 모르겠고, 5명 안채우면 알엠이 뭐라 할 것 같고, 에고고

 

pan

덩야

Dreamer

미류

파란물고기 (두달 가까이 자신의 블로그조차 안보는 것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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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본 영화들

까먹기 전에 몇자씩이라도 적어놔야겠다.

 

<소금>

다큐/ 여성 철도노동자 이야기

분위기는 많이 다르지만 몇년 전에 봤던 '밥.꽃.양'이 떠올랐다.

그땐 정말 너무너무 화가 났었는데.

 

어린이집에서 하루 자고난 딸과 엄마의  대화

"엄마, 나 너무 힘들었어"

왜?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행진>

다큐/ 유럽 실업자들의 발랄한 행진

8~9년 전에 신자유주의를 반대, 유럽각국의 실업자들이 일자리 보장을 외치며 각기 행진하여 한 곳으로 모인다. 대단히 획기적인 이벤트였고 신자유주의에 브레이크를 걸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2005년 현재의 모습은?

우리나라엔 실업자 모임이 있기는 하나?

 

 

<나는 다큐멘타리 감독이 되고 싶었다>

방송에서도 노숙자 얘기를 많이 다루긴 하지만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식으로 다룰 수는 없을 것이다. 너무 너무 재미있고 나중에 꼭 따로 소개하고픈 영화

 

 

<그때 그 사람들>

임상수, 정말 재미있는 감독이다.

 

 

<래더 49>

소방대원에게 바치는 헌사? 그래도 너무 심한 거 아냐?

 

 

<여자, 정혜>

정혜란 이름과 고양이 때문에 정혜를 생각하지 않을 순 없었지.

조금 특이하기도 하고, 이런 영화가 가끔씩 나와주는 것에 감사?

영화 보고나서 검색해보니 황진미가 페미니즘으로 오독할까 걱정을 했던데

페미니즘과는 관련이 없는 영화. 근데 페미니즘이 몬데?

 

 

요 며칠 동안은 제법 영화를 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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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치고 장구치고(자우림 실리콘벨리)

Silicon belly is silicon valley?

 

자우림 5집 실리콘벨리 (작사 작곡 김윤아)

 

솔로 앨범의 김윤아가 더 좋긴 하지만 자우림의 김윤아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김윤아가 직접 쓴 '실리콘벨리'는 아마도 가슴성형을 위해 실리콘을 넣어

가슴에 계곡(valley)을 만든다는 뜻인 것 같다.(아님 말구)

표현도 재미있다.

"그녀는 뇌의 일부분을 가슴에 가득 채워 넣고"

뇌의 일부분이 아니라 전부를 다 집어넣는다고 해도

그녀가 원하는 풍만함을 만족시킬 수 있겠나?

그러니 실리콘으로라도 마저 채워야지.

"그녀는 좀 더 높은 값에 자신을 사줄 이를 찾기 위해 태어나 존재하고 있네"

몸뚱아리마저 상품화된, 그리고 스스로 상품화되려고 발악을 하는 듯한

silicon brainsilicon breast를 가진 silly girl.

이 정도면 김윤아의 말장난 솜씨도 수준급 아닌가?

 

 



김윤아는 화장품 광고를 찍었을만큼 예쁘게 생겼잖아?

지는 안고쳐도 그렇게 이쁘니까 저러고 있지.

그 얼굴 좀 더 손보느니

그냥 냅두고, 뜯어고치는 인간들 비웃어주는게 더 폼나서 저러는 거 아냐?

거기다 노래는 좀 잘해?

지가 외모때문에 차별받아 보기나 했겠어? 오히려 덕을 봤음 봤지.

 

물론 성형수술이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니지.

세상이 미쳐 돌아가니 거기서 살아남으려면 같이 미쳐야지 어쩌겠어?

그래도 너무 심한 경우가 많은 건 사실이잖아?

성형중독도 분명 문제고 말이야.

 

무슨 중독은 좋은 중독있니?

그런 하나마나한 소리를...

그리고 심하고 안심하고의 기준을 누가 정할건데?

 

그런데 예쁘지 않은 가수가 불렀다면 설득력이 있었을까?

 

'못생긴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 어쩌구 저쩌구 하면 되지.

니가 뭐라고 하던 날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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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 물 좀 주소

물 좀 달라는데?

 

한대수의 곡 중 '행복의 나라' 다음쯤으로 가장 알려진 노래 아닐까 싶다.

현재도 곡을 만들고 노래하는 '현역 가수'  한대수를 자꾸 옛가수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아

가급적 그의 옛노래는 안올리려고 했는데

얼마전 나온 라이브 앨범의 '물 좀 주소'는 느낌이 또 달라서...

 

'물좀주소'는 곡 자체보다는 박정희 시절 금지된 것 때문에 더 알려진 것 같다.

하지만 노래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곡 자체도 만만치 않다.

이곡의 특이한 점은 전주 없이 곧바로 한대수의 걸쭉한 목소리로 "물~ 쫌 주소"라며 시작한다는 것이다.

요즘도 이런 방식은 흔치 않은데 이 노래가 나올 당시에는 아예 상상도 하기 힘들었던 시도였다고 한다..

 

한대수에게 '물'은 자유이며 사랑이었는데 독재자 박정희에겐 참을 수 없는 것이었겠지.

박정희때는(이승만때부턴가?) 자본주의 체제를 자본주의라 하지않고 

'자유민주주의'라 자꾸 우겨쌌는데 (아직도 그런 인간들 많다.)

박정희는 결코 '자유'를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민주'도 좋아했을리가 없고. 

 

투사보다는 히피의 피가 흐르는 자유주의자 한대수는

이 끔찍한 상황을 참지못하고 미국으로 가버렸다.

 

이 노래를 금지한 것만으로도 나는 박정희를 용서할 수가 없는데

(사실 이건 그가 저지른 다른 악행들에 비교하면 얘깃거리도 안되는 가장 순한? 악행에 속하는데)

아직도 죽은 박정희가 지배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참 엿같다.

 

 

카태고리 이름을 아예 한대수로 바꿀가? ^^

이 노래의 코러스는 강산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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