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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6/01/21

장년층78% 은퇴후 자녀와 별거희망

"장년층 78% 은퇴후 자녀와 별거 희망"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 50대 이상 장년층 10명 중 8명은 현업에서 은퇴한 후 자녀와 따로 살기를 희망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대한은퇴자협회는 창립 4주년을 맞아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8일까지 50대 이상 남녀 231명을 상대로 `장ㆍ노년층 문화의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8%가 사회생활을 중단한 후 자녀와 별거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16일 밝혔다.

연령별로는 50~55세 응답자의 85%가 자녀와 동거를 원치 않는다고 답한 반면에 70세
이상은 65%가 동거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나 고령일수록 자녀와 함께 살기를 바라는 것으로 분석됐다.

`은퇴 후 안정적인 생활에 필요한 자금규모'를 묻는 질문에 `4억~6억원'이란 대답이 27%로 가장 많았고 `3억~4억원' 20%, `1억~2억원' 19%, `6억~7억원' 18%였으며 `10억원 이상'이란 답도 16%나 됐다.

현재 생활비 마련 방법은 50~55세 응답자는 77%가 주로 급여나 사업 수입으로 충당하는 반면 70세 이상은 39%가 자녀에게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달 생활비 규모는 `100만~200만원'(38%)이 가장 많았고 다음이 `200만~300만원'(22%), `300만원 이상'(21%), `100만원 미만'(19%) 순이었다.

생활비를 연령별로 보면 50~55세는 `100만원 미만'이라는 응답자가 8%에 그친 반면 70세 이상은 52%가 `100만원 미만'이라고 밝혀 나이가 많을수록 씀씀이가 크게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을 묻는 질문에 `집ㆍ부동산'(37%)이란 대답이 가장 많았고 다음이 `자립할 수 있는 비용'(33%), `삶의 유산'(20%)이었고 `물려주고 싶은 게 없다'는 대답도 10% 나왔다.

`여생에 꼭 하고 싶은 일'로는 ▲세계여행(36%) ▲자원봉사 등 사회참여활동(28%) ▲재취업(13%) ▲유산 기부(7%) ▲스포츠(7%) ▲학업(6%) 등을 꼽았다.


firstcircle@yna.co.kr
(끝)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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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울란바토르

다시 힘내는거야..

몽골행은 정말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영하 40도의 추위와 힘든 촬영 아르바이트였지만..

몽골의 사막화 방지를 위해 애쓰는 NGO분들을 알게 되어서 행복하다.

평화의 숲은 내 마음속에 이미 생겨버렸다..^^

다시 내일부터 열심히 편집을 할 생각이다.

 

<몽골행의 기록들..바가나루사막을 향하는 길..그리고 초원..잊지못할 석양..친구 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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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정리 하는 법

삶을 정리 하는 법
May 30, 2004
 

자기의 죽음은 자기가준비 해야 한다-유언장은 미리 써 잡음 없애야.

노인이 되면 누구나 자기최 후의 모습에 대하여 자주 생각 하게 됩니다.남겨진 가족들은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남겨준 재산들은 어떻게 될까, 내가 살던 집이며 고향은 어떻게 변해갈까, 내가 떠나고 없을 이세상일들을 생각 해 보게 됩니다.

우리는 잠시 앉았다 떠날때도 앉았던 자리를 정리 하고갑니다. 휴지쪽이며 주위를 정리 합니다. 내가 가고 다시는 이자리에 돌아오지 안는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세상을 떠날때도 우리는깨끗이 정리되기를 바란다면 다음것들을 기억 해두는것이 좋습니다.

▲삶의 마지막을 온화하고 아름답게 보내려 애쓴다-편안한 마음으로 임종을 맞는데 꼭 필요한 생활 태도로는 생애에서 가장 후회스러웠던 부분을 뉘우치고 감정도 정리해야한다. 특히 가족.이웃 등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 평소 가족에게 자신이 불치의 병을 선고 받았을 때, 의식을 잃었을 때의 대처 방안을 이야기해 둔다-말기암 선고를 받았을 때 가족들이 쉬쉬한다면 본인으로서는 여생을 정리할 기회도 갖지 못하는 셈이 된다. 완치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과잉치료를 해서 고생이 심할 수도 있다. 말하기 어렵다면 글로 써두고 가족에게 이의 보관장소를 알려준다.

▲ 매장.화장을 선택하고 준비를 해둔다-매장을 선택하면 장지를 미리 마련해두고, 화장을 원하면 화장에 필요한 절차도 살펴본다. 최근에는 건전장묘문화 운동의 하나로 납골당을 이용할 수도 있다. 이때도 미리 시설.관리 여부를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 유언장도 미리 작성한다-고인이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불시에 세상을 등져 재산을 둘러싸고 자식들간에 송사가 벌어지는 일이 흔하다. "본인이 글을 쓰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상태에서 제3자가 유언장을 작성하고 동의를 구해 본인이 고개를 끄덕끄덕 했을 때 이는 유언의 효력이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 "분쟁의 소지를 막기 위해서도 건강할 때 유언장을 작성해야한다.

유언장을 작성할 때는 민법이 정한 유언장 작성 요건에 맞춰 만들고, 공증사무소의 공증을 받아둔다. 그러나 공증을 받았더라도 자필 유언장이 아니고 증인 2명이 참여하지 않았으면 효력이 없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는 점에 유의할 것.

자필로 작성하고 작성 연월일.주소.성명을 쓰고 수정할 때는 도장을 찍으며 증인 2명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 수의 등 용품을 마련하고 장례절차도 이야기해준다-자신이 몸담고 있는 종교단체 등에 장례절차를 미리 귀띔해 놓는 것이 좋다. 자식들은 당황해 우왕좌왕하기 쉬우므로 친구나 친지에게도 자신의 바램을 알려둔다.

 

 

-아름다운 노년생활이란 곳에서 읽은 글인데...읽고 있자니 정말 심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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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는 &quot;여생&quot;이 아니다.

노후는 ‘여생(餘生)’이 아니다.

노후는 다 끝난 인생을 덤으로 살아가는 여생이 아니다. 새롭게 개척할 미래도 있고 즐거움과 보람도 찾아야 한다.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하고 애썼으니 이제 그만 편안히 죽음을 기다리세요 . 그것이 여생의 의미이라면 당신의 인생은 그 대가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새롭게 시작할 준비가 안 돼있다고 한탄만 하지 마라. 있는 대로 현실에서 시작 해야한다. 모든 것을 다 준비 해 가지고 태어나는 인생은 없기 때문이다.

첫째는 시작하려는 용기 가 필요하다. 과거에 연연하고 체면에 얽매이고 하는 걸림돌들을 용기 있게 넘어 서야 한다. 용기와 각오 가 되어있다면

두 번째는 눈 높이를 한 단계 낮추어야 한다. 남에게 보여 서 자랑스럽고 또 실속 있는 그런 일을 찾는 것은 대부분 시간 낭비일 경우가 많다.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얻으려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 만 하려는, 그런 욕심은 이제 노인이면 버렸을 나이이다. 그것은 노인이 되면서 아주 어렵게 얻은 값진 노인의 지혜중 하나이다. 버릴 수 있는 용기이다.

셋째는 없는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마라. 없는 것은 없는 것으로 잊고 초월하라.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하면서 없는 것을 한탄 해봤자 당신은 초라해 질뿐이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발견하라. 몸이 건강하다면 당신은 아주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즐겁게 할 수 있으니까. 이것을 모르고 이미 노인이 되었다면 당신은 철없이 늙은거다.

나이가 몇 살이든 자진해서 은퇴를 했건 세월에 밀려 여기까지 왔건 지금당신이 노인이라면 이제부터의 삶은 나머지 인생을 그럭저럭 살아가는 여생(餘生)이어서는 안 된다. 60을 살고 혹은 70을 살아서 세상물정 다 섭렵했다고 자부할지라도 세상은 아직도 새롭고 흥미진진한 것이 많으며 이사회는 당신을 필요로 하는 곳도 많다.

노인! 노인이란 말 너무 절망적으로 생각지 마라. 청소년시절엔 공부해야 하지 또 젊어서는 가족 먹여 살려야지 언제 나하고 싶은 대로하며 살 수 있었든 시절이 있었는가. 이제 노인이라면 모든 짐 벗었을 테고, 얼마나 홀가분하고 부담 없는 , 해방된 인생인가를 발견한 다면 제2의 인생은 한결 즐거울 수 있다. 노년은 여생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인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노인! 그거 아주 괜찬은 거다 . 당신만의 인생을 위하여 이제 새롭게 살아 갈 수있는 기회이니까.


~*·´″```°³о☆아름다운 노년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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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게 재산 물려주고 뒷전에 앉아있지 않는다

자식에게 재산 물려주고 뒷전에 앉아있지 않는다
October10, 2004
 
이 세상을 떠날 때 내 재산을 누구에게 줄까. 재산이 많든 적든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숙제다. 대부분 배우자나 자녀에게 재산을 남기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부모의 재산이 고스란히 자녀에게 간다는 고정관념이 흔들리고 있다.
자녀에게 준 재산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 부모들의 얘기를 가끔 신문에서 읽을 수 있다. 큰 재산을 자녀에게 줬던 부자도 있고, 작은 집 한 칸을 넘겨 준 어려운 부모도 있다. 세금을 피하기 위해 자녀의 이름으로 샀던 부동산을 되돌려 받으려는 부모와 내놓지 않으려는 자녀 사이에 긴 법정 투쟁이 계속되기도 한다.


아들이 부동산을 살 때 자신이 현금 얼마를 주었다는 사실을 세무서에 신고하여 아들로 하여금 증여세를 내게 했다는 ‘심술궂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지만, 자녀에게 재산을 준 것을 후회하는 부모가 꽤 많다.

그 이유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효도를 기대했던 부모가 효도하지 않는 자녀에게 배신감을 느끼면서 갈등이 일어난다. 집을 넘겨주면 부모를 모시겠다던 자녀가 최소한의 부양도 하지 않아 생계조차 어려운 절박한 부모도 있다.

자식이야말로 노년을 보장해 주는 가장 안전한 보험이던 시대가 흘러가면서 일어나는 부작용이다. 자식의 성공이 부모의 안락한 삶을 보장해 주던 시대는 간 것 같다. 이제 부모는 자식이 얼마를 벌고 있는지, 얼마나 부자인지를 알 길이 없다.

“당신 아들 연봉이 엄청나다며?”라는 질문을 받고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네 연봉이 얼마라는데 사실이냐?”라고 물을 수 있는 부모가 많을까. 아들의 연봉을 묻는 것은 ‘사생활 침해’로 간주되는 세상이 됐다.

사정이 이쯤 되니 부모들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절대로 살아 생전에 재산을 물려 줘서는 안된다”는 것이 요즘 부모들의 철칙이다. 자식이 노년보험이라는 공식이 깨지듯이 부모의 재산은 곧 자식의 재산이라는 공식도 깨지고 있다. 내 뜻대로 내 재산을 쓰고 가겠다는 노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유산이나 생명보험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의미 있는 사업에 기증하자는 운동도 일어나고 있다. 지금까지는 주로 장학금에 유산을 내놓는 경우가 많았지만 환경 보호, 문화 진흥, 가정법률 상담, 미혼모 자녀 보호, 의료 지원, 농어촌 돕기, 금주 운동이나 금연 운동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관심을 세계로 돌려 보는 것도 바람직하다. 최근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유니세프에 유산 남기기’ 운동을 시작했는데, 열악한 환경에서 생존을 위협받는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유산을 남김으로써 생명을 나누는 뜻 깊은 일을 하자고 호소하고 있다.

유니세프는 개발도상국의 어린이들을 위해 영양실조 치료센터 운영, 의약품 공급과 보건사업, 오지마을의 식수 개선, 교육 지원, 재해나 전쟁 지역의 어린이 보호 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6ㆍ25 전쟁 이후 40여 년 간 유니세프의 지원을 받았던 고마운 경험을 되살려 1994년부터는 세계 어린이들을 돕는 지원국으로 나서고 있다.

유산 기증을 위해서는 유언장 작성과 보관, 유언 집행인 지정 등 법률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야 한다. 유언장 남기기 운동, 자녀들에게 유산 안 물려주기 운동 등을 벌이는 단체들도 있는데, 모두가 재물을 어떻게 뜻 있게 쓸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재물은 한 가족의 소유가 아니라 사회의 것, 공공의 것이라는 의식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자신이 땀 흘려 이룩한 재산의 일부가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쓰여진다면 사후에라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재물이 부모에게서 자녀로, 또 그 자녀로 이어지지 않는 것을 섭섭해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부모 자식 사이에 재산 싸움이 일어나는 현실을 개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갈등은 한국의 부모 자녀 관계가 지나친 의존에서 벗어나 정상화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

이 세상을 떠날 때 내 재산을 어디에 남길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나의 생을 정리하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굉장한 사람들만 증여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적더라도 증여를 함으로써 누구나 굉장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일보 장명수 칼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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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한 노인문화를 위하여

건전한 노인문화를 위하여
November 22, 2004

 

'노인이 되면 다 저래야 하는 것인가'

노인문화의 특수성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매우 부정적인 형식으로 인지되어 왔다. 고스톱과 술판, 관광버스 춤과 고성방가, 나중에는 길거리 매매춘조차 노인문화의 전형인양 왜곡되어 '노인이 되면 다 저렇게 놀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인문화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일부는 노인들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지만 우리의 노인들이 그런 은밀한 즐거움밖에 가질 수 없었던 사회적 환경을 외면한 채 비난만 한다면 그것은 온당한 처사가 아닐 것이다.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현재 노인문화는 획기적 전기를 맞고 있다. 건강하고 솔직한 노년문화, 손자손녀와도 자랑스럽게 공유할만한 노인문화의 흐름이 생겨나고 있으나 그 문화적 파장의 수혜자가 아직은 너무 한정적이라는 점이 문제이다.

조금만 솔직하게, 조금 더 건강하게..노인문화기획을 통해 노인문화의 정체에 대한 의구심을 출발로 노인문화가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사회적 환경과 경로를 살펴보았다. 현대문명의 총아 TV에 이르렀을 때 노인문화의 열악함과 심각성에 다시 한번 절망을 경험했다. 과연 노인문화에 미래는 있는 것일까. 노인문화가 성인문화와의 합류지점을 찾아가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미래의 문제를 논할 희망을 얻기 위해서이다.

성인문화와의 합류라고 하면 일반 보편문화 속으로 노인문화가 일체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라 착각하기 쉽다. 문화의 한쪽 얼굴은 배타적이다. 또 다른 얼굴은 한없는 포용력과 무한의 상상력을 허용한다. 수백 가지의 얼굴을 지닌 문화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기도 하고 분열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문화에 있어서 분열의 의미가 반드시 분쟁과 연결되지 않는 것처럼 합류의 의미가 반드시 일체화는 아니다.

노인들 스스로 자신들이 선호하는 것, 좋아하는 것에 대해 좀 더 솔직해지고 다른 세대들에게 공식화 할 수 없는 음습하고 은밀한 즐거움은 스스로 버려야 한다는 의미가 바로 성인문화와의 합류를 뜻한다.

최근 노년학회에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건강하고 밝은 노인과 젊은세대 간의 접촉이 끼치는 영향력은 전반적으로 우리사회가 연령분리의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일반적인 노인들만 접해본 청소년집단과 달리 자원봉사 등 건강한 사회활동을 하는 존경할만한 노인을 접촉해본 청소년집단은 노인에 대해 적극적이고 매력적이며 현명하고 진보적인 건강한 사람들로 인식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노인인식이 비생산적이고 보수적이며 쇠약하고 지루한, 더욱이 지저분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노인문화의 작은 변화가 얼마나 대단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지를 알 수 있다.

노인문화는 지금까지 매우 특수한 집단의 한정적 영역으로 치부되어 왔다. 특수성의 이면에는 덜 중요한 것에 대한 투자의 유보라는 의미가 깔려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안일한 생각으로 버려 둘 수 없다. 노인은 조금 거슬리다가 금방 세상을 떠나가 줄 존재가 아니라 10년이고 20년이고 다른 세대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갈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노인들이 건강한 자신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데는 노년층 자신을 위한 이유도 있지만 그들과 함께 섞여 살아가는 2세대와 3세대에 대한 배려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건강한 노인문화 양성의 책임은 노인들만이 아닌 모든 세대, 우리사회도 함께 나눠져야 하는 문제가 된다.

하루아침에, 밥은 굶을지언정 한 달에 한번은 발레와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다니는 동유럽 노인들처럼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풍족해서 장기불황으로 젊은이들이야 자살을 하건 말건 전세계로 두루 여행 다니는 서유럽 노인들처럼 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우리사회의 건강한 노인문화란 과연 어떤 것인가. 적합한 해답은 해답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가 함께 고민을 공유해 가는 과정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

 
 
- Senior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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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끼리 즐길테니 너희들이나 잘 살아라

신세대 노인들의 생활 목표
February 16, 2004

우리끼리 즐길테니 너희들이나 잘 살아라


이제 효도는 필요 없다

효도의 개념도 바뀌고 있습니다.
노후의 생계를 전적으로 자식에 의존 하던
이전 세대의 가족관계에서는
자식들이 얼마나 부모를 잘 떠받드느냐가 효도의 척도이고 미덕 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족관계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효도개념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끼리 즐길 테니 너희들이나 잘살아라”

이것이 요즘 노인들의 이상적인 생활 목표입니다.

요즘의 효도는
장성한 자식이 부모 속 썩히지 안고 잘살면 그만이고
때맞춰 인사치레로 찾아 뵈면 되고,
자주 방문이나, 전화라도 주고 받으면 더 없는 효도다.

전통적인 효도의 강요로는 노인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
자식의 효도로 역어저온 우리들의 가족제도는 변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효의 강요는 개인과 가족 모두의
행복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역작용을 순화 하기 위한 사회적 조치가 필요 하다.
현시점에서 사회는 불가피하게 효의 일정부분을 부담 해야 한다.

결국 노인문제의 사회적 책임임을 말 하게 된다


     
   
-~*·´″```°³о☆아름다운 노년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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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노년의 적 치매

행복한 노년의 적 치매
November 22, 2004
 

노년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가난도 아니요 외로움도 아니다. 그것은 모든 노인들에게서 오래 살고 싶은 희망을 앗아 가는 치매의 공포이다. 가끔 오래 사는 것이 무섭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 이유를 물어보면 한결같이 치매에 대한두려움을 첫 손가락에 꼽는다.

치매가 그렇게도 무서운 것은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 황폐하게 만들어 스스로 최소한의 존엄성마저 지킬 수 없고, 또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말할 수 없는 부담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오래 살면서 치매에 걸리느니 차라리 장수를 포기 하겠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특히 100세 이상의 초 고령이 되면 치매는 당연히 맞을 수 밖에 없는 것 일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65세 노인들이 치매에 걸릴 확률은 약 1%이고 85세에 이르면 급격히 증가 하여 24~27%의 노인들이 치매에 걸린다.또 85세가 넘으면 60대보다 치매 환자가 14배나 더 된다고 알려 저 있다 .이 같은 추세로 나간다면 100세 노인들은 모두 치매에 걸릴 것으로 예측 할 수 있다. 학자들도 노화에 따른 뇌의 기능 저하는 불가 항력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100세인들의 경우는 의외로 치매의 덫에 걸리지 않고 정신능력을 유지하고 있는 노인들이 적지 않았다. 최근 젊은이의 경우에도 치매가 걸리는가 하면 85세 이상 노인의 약 40%가 치매에 걸린 것으로 추정 되는 상황에서 100세인들이 이 같은 인지 능력을 보인 다는 것은 이례적이며 이들이 일상생활을 불편 없이 수행 할 수 있음을 보여 주고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에서도 100세가 넘은 노인이 치매에 걸리지 않고 건강한 정신을 유지 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특히 스웨덴의 100세 노인들의 치매 비율이 27%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같이 100세 까지 사는 사람이 치매에 걸리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일단 치매에 걸리면 100세에 도달 하기 전에 대부분 사망 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 하고 있다.

노인치매의 절반 정도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알츠하이머 형 치매이고 10~20%는 뇌줄중 후에 생기는 혈관성 치매라고 한다. 알츠하이머 형 치매는 그 원인과 치료법이 아직 밝혀진 것이 별로 없지만 비교적 학력이 높은 사람에게는 덜 발생한다고 알려저 있다. 또 20대 초반의 언어 능력이 80대의 치매와 인지능력 저하에 영향을 준다는 보고도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 한다면 젊은 시절부터 꾸준히 지적 능력을 개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또 혈관성 치매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같은 성인병과 관련이 있으므로 평소 건강한 생활 습관을 실천하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한다면 예방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상철 장수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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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이나 인생은 살만하다.

 
-어느 나이나 인생은 살만하다-
 

60 이든 70 이든 어느 나이나 인생은 살만 하다. 노인으로서 살아 감도 그리 나뿐 것만은 아니다. “ 좋은 것을 좋은 줄 모르고 기대하는 내일이 없는데 무엇이 살만 하단 말인가? 더 살아 봤자 그저 생존 하는 것일 뿐이지 안는가 “이렇게 말 한다면 그것은 늙어 보지 않은 사람의 우려일 뿐이다.

앙상한 가지 속에
꽃보다 아름다운 낙 옆이 있으며
불타는 정열도 있다.

늙음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부정적이다.
상실과 외로움, 질병과 고통, 추함 같은 것들……
더욱이 죽음의 연상을 지우지 못한다.
이와 같은 단상의 바탕에는 삶에 대한 애정과 이 세상에 대한 연민이 깔려있다.

늙어 가는 사람만큼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 서서 보아야 삶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깨닫고 그 깊은 의미를 사랑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칠순에 바버라 월터스 쇼에 출연해 그 동안의 삶 중 최고였던 때가 언제 였는가 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인 것 같군요. "

젊었던 그 어느 때도 아니요 더욱 화려했던 대통령 재직 시도 아니라고 햇다. 그는 많은 인생을 살아 노인이 되어 보았기에 할 수 있는 대답이다.

중년이 지나면서 인생의 내리막 길이요 인생의 오후가 시작 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노인에게도 미지의 세계는 있다. 그 세계는 당사자의 노력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때문에 '늙어 간다는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를 탐험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 간다면 그 어느 때 보다 도 오늘이 가장 소중하고 최고의 날이 될 수 있는 것 이다.

노인대학에 가면 노이들이 모여 부르는 노래가 있다.

"인생은 60 부터 아니 아니
인생은 70 부터 라고 손벽 치며 노래 한다."

그러나 인생은 60부터도 아니요 인생은 70부터도 아니다. 인생은 바로 지금부터이다.

지난 1세기 동안 인류문명의 변화는 과거 천 년의 변화에 버금 갈 만치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물질 문명의 발전과 정신문화의 변화는 물론이고 세계인구의 증가와 평균수명의 연장은 인류사회의 전에 없던 경험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노후의 삶에 대한 인식도 전과 다르다. 노인이라는 사회적 지위나 세대 개념이 변하고 있다. 노인은 이제 더 이상 사회와 가정에서 그 책임을 다 하고 편안히 쉬고 있는 세대가 아니다.
인생에서 성장기와 노동기를 지난 제 3세대일 뿐이다.

노인도 새로운 삶을 시작할 희망과 꿈도 있으며 매래도 있다. 노인의 삶의 패턴이 새로운 조류를 이루게 될 것이다. 개인은 물론 국가와 사회도 노후의 삶이나 여생을 재조명 해보는 계기가 있어야 하겠다.

- ~*·´″```°³о☆아름다운 노년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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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춘

청춘
    靑    春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한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장미 빛 뺨, 앵두 간은 붉은 입술, 그리고 유연한 무릎이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말하는 것이며,

인생의 깊은 샘의 신선함을 말하는 것이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좋아하는 마음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20세의 청년보다도

60세가 된 사람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우리가 늙는 것이 아니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


 세월은 우리의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

열정을 잃으면 마음을 시들게 한다. 근심•걱정, 두려움,

자기 불신은 의지를 꺾이게 하고 기개를 땅에 떨어뜨리게 한다.

 60세이든, 16세이든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는 놀라움에

 이끌리는 마음, 아직 자기 손에 없는 것을 얻고자 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무한한 욕구, 삶이라는 행위의 즐거움이 있다.

그대 마음의 중심에도 나의 마음 중심에도,

어떤 무선전신국이 있는데, 그것이 사람들과

무한자 하나님으로부터 들려오는 아름다움과 소망과

격려와 용기와 능력의 전갈을 받는 한, 그만큼 동안 그대는 젊다.

 안테나가 낮아서 그대의 정신이 냉소주의라는

눈(雪)과 비관주의라는 얼음으로 덮여 있을 때,

그대는 비록 나이가 20세라 할지라도 이미 늙은이와 다름없다.

하지만 그대 마음속의 안테나가 높아서 낙관주의의 주파수를

붙잡는다면, 그대는 80세 일지라도 영원한 청춘의 소유자일 것이다..

                       

                       독일 태생의 미국 시인

                         사무엘 울만(Samuel Ullman)의 시 中에서

                   실버넷 뉴스 권오갑 기자 역  kok25naver.com

 

2005-12-05 15:13:47
권오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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