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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여성미술제

"시대의 정의"

이 작품은 4.19 또는 LA폭동을 기념하기 위해서, 사건이 일어난 직후에 제작된 것이다. 이 작품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과의 섬뜩한 연결을 서술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나는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에 태어났다. 나는 어린아이로서 4.19를 목격하였고 나의 가족은 그해에 이민을 떠났다. 나의 생일은 4.19가 일어난 날이다. 이는 바로 미국 페미니스트들의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핵심 구호의 직설적인 동시에 은유적인 예증이라 할 수 있다.

- 민영순 작 -




" 뿌리 Roots "

뿌리의 역사는 생명의 역사이고 여성의 역사이다.
남성들이 기술한 역사에서 인류의 존속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여성의 역사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멋진 나무만 보고 그 뿌리는 보지 않는 것과 닮아있다. 나는 뿌리를 그리면서 생명의 소리를 듣는다. 대지의 거대한 자궁 속에서 뿌리는 수분과 자양분을 찾아 끊임없이 잔뿌리를 늘려간다. 수많은 잔뿌리로 양분을 흡수하여 위로 빨아올리는 힘은 여성이 아기를 낳을 때 배속에서 밀려오는 파도같은 힘과 흡사하다.
뿌리는 나무를 키우고 잎을 티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만들면서도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뿌리가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뿌리가 상처받았을 때이다.

- 김인순 작-


 

 

 

 

" 여사제 Women as High Priestess "

나는 타로카드 유형부터 일정한 규정에 메이지 않는 민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작업해왔다. 타로카드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그것에 연결시킬 수 있음으로해서 대중적 인기를 가지게 된 이미지 형식이다. 이번 전시에서 나는 필리핀 생활 속의 여성의 역사 Herstory에 초점을 맞추어 타로카드의 프레임을 이용한 작업을 보인다. 각각의 작품에서 타로카드의 프레임은 다양한 시, 공간에 놓여있는 필리핀 여성의 이미지들을 틀지우는 정신적인 인도자의 역할을 할 것이다. 인쇄기법에서 기인한 에칭 선들은 나의 작품이 드로잉, 혹은 판화로 읽힐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회화적 이미지의 일부로 작용하는 글자들은 구조적 그리드 위에서 이미지 전체의 부분으로 그 경계를 허물게 된다. 또한 작품에 나타나는 다른 이미지들은 사진이나 시각적 개념의 몽타주 속에 편집된 기록들로부터 차용되었다. 여성에 관한 전시는 모든 여성이 자유로운 본래의 자신이 될 수 없는 모순적인 시대에 환영받는 이벤트다. 이 전시가 여성들에게 자신이 지닌 인간 고유의 가치를 전해주기를 바란다.

- Brenda V. Fajardo 작 -


 

 

 

 

" 여신들 "

이번 전시에 나는 과거 필리핀에서 전시하였던 다른 여러 작품들의 몽타주적 작품을 선보이려한다. 모두 4작품으로 여성들의 역사Herstory에 개입하고 재구술 하기 위해 연설하고 약속하고 재차 언급하기 위해서 이와 같이 구성한 것이다. 우리 여성들은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이라고 주장해왔으며, 나는 나의 작품들이 이천을 짜내는 강력한 실이 되는데 기여 하기를 희망한다. 공식적 학문으로부터의 추방과 "신성한"글들과 증언들 속에서의 여성들의 불가시성을 묵인해주는 것은 이미 보편화된 부당한 처사들이다. 말하자면 나는 이러한 전시회를 개최하려는 노력을 "보상"이나 뽐내는 행동쯤으로 진부하게 생각한다면 적지 않게 실망할 것 같다.
실로, 우리들의 목소리와 작업은 나무작품으로부터 기어 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발견되거나 쓰여질 것이 아니며, 역사적인 문헌의 수사학이 공언하듯이 떠오르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세계의 형성과 한 국가의 기원, 민족의 성장 그리고, 참으로 한 예술가의 투쟁은 여성의 역사이기도 하다. 나의 작업은 항상 말해왔듯이, 내가 이곳에 존재함을 그리고 항상 존재해왔었음을 이야기 한다. 큰 이용가치가 없으면 당신들은 나를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길 것이다. 우주의 명령과 절대적 진리로부터 요구된 것만이 나만의 진실이다. 나의 목소리는 두려움, 웃음 그리고 고통과 면죄되어 깨끗이 닦여 나갈 수 있는 오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나의 조국과 유산인 도상, 문헌들 그리고 상징들을 그려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것이 아닁 개인적 야사이며 나의 이야기이다.

- Karen Irene Ocampo Flores 작 -


 

 

 

 

 

" 적과의 동침 Sleeping with Your Enemy "

나는 미국인과 결혼한 일본여성과의 인터뷰를 통해, 공식적인 역사가 아닌 개인적이고 성적인 것을 통해 이루어진 역사를 재고하고자 한다.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 가운데 절반은 내 어머니의 사촌처럼 전쟁 직후에 미국인과 결혼한 전쟁신부이고 나머지 절반은 더 나은 기회를 위해 미국인과 결혼한 경제성장기의 세대이다.
아직까지 일본에서는 어려운 '자신만의 삶'을 위해 미국으로 온 이들은 미국에서 살기 시작하였을 때 다른 종류의 힘의 구조와 싸워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간직하기 위해 베타적인 민족주의에 자신들을 굴복시키지 않기 위해서 투쟁해야만 했다. 특히, 전쟁 이전 일본의 전통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전쟁신부들보다 어린 세대들은 일본과 미국의 혼성물에 가까운 문화적 정체성으로 인해 혼란을 느끼고 있다.
나는 하나의 순전한 국가적 정체성이나 문화적 정체성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에, 일본 정계에서는 "순수한 일본적"국가주의에 대한 부활의 조짐이 엿보인다. 이것은 담혼들은 '동양 대 서양'식의 단순한 이원론으로 환원시킨다. 우리 실존의 현실은 다민족, 다인종 정체성처럼 훨씬 복잡하고 혼성적이다. 나는 다양한 국가에 살고 있는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작가들과 지식인들이 서로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만남과 대화를 통해, 문화적 유산과 정체성에 대한 복합성과 다양성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 바란다.

(1999년, 뉴욕 주립 대학 아시아/ 태평양학 기관에서의 강연으로부터 발췌)

- Yoshiko Shimada 작 -


 

 

 

 

 

" 둥근 마음, 한마음, 여자들 마음 - 흐름을 역행하는 힘 Women's Power : Going Against the Current "
이 작품은 1991년 우리나라에서 열린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이라는 포럼을 도큐멘테이션한 것이다. 이 포럼은 1990년 일본에서 1차로 열렸는데, 일본과 남, 북한의 진보적인 여성계 인사들이 여성과 관련된 이슈들을 주제로 만나 연대하는 자리였고, 이 포럼에서 당시에는 수면위로 떠오르지 않았던 정신대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었다. 제2회 포럼에는 여운형의 딸 여연구가 북한대표로 참석하였고, 일본에서는 진보진영의 참의원과 전 수상 부인이 참석하였다. 1992년도 제3회 포럼은 북한에서 진행되었다. 남북이 만나는 일이 흔하지 않은 당시의 상황에서 이 포럼은 매우 긴장되고 긴박하게 준비되었으며 그마큼 만남과 연대의 기쁨이 컸다. 이 사진들은 그 긴장과 감동의 순간들을 담아낸 것이다.


우리들은 원이었다.
원인 여자들의 이야기는 둥글다.
둥근 그 이야기는 슬프다.
그 슬픈 이야기가 이제 시작되었다.

갈라진 이 땅에 여자들이 만났다.
동그랗게 둘러앉아
둥그렇게 나누었다.
하나의 마음으로, 큰마음으로...
하나가 되었다. 한 마음이 되었다.
그 한 마음이 오랜 흐름을 따라 흐르지 않고
그 흐름을 역행하기 시작했다.

둥근 마음, 한마음, 여자들 마음이 무엇인가를 해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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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업은 1991년 11월 25일부터 30일까지 가졌었던 첫 남북여성대회로서 "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서울 토론회는 "가부장제 문화와 여성" "평화와 여성", 그리고 "통일과 여성"이 그 주제였다.
사실 그 이후 "정신대 문제"는 물밑에서 올라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90년 일본 토론에 이어 이루어진 91년 서울대회는 바로 다음해인 92년 평양 대회로 이어 졌었지만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 없이 11년이 흘렀다.
그러나 그 토론대회는 여성 특유의 토론방식으로 남성문화의 방식과는 달랐었다.

나는 그 기억을, 그 느낌을, 그 감동을 전하려고 한다.

- 2002년 6월 박영숙 -


 

 

 

 

 

" 강요된 유전 Forced Dislocation "

1937년 17만명의 연해주 고려인들이 모스코바의 대시베리아 통치 구상에 따라 중앙 아시아로 강제이주되었다. 그곳에 유기된 이들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소련 연방 해체 후 중앙아시아 지역이 독립하면서 회교민족 중심의 구조적 불평등으로 또 한번의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다. '유전의 역동성 Dynamics of Dislocation'을 삶과 그림의 화두로 삼고 있는 나는 몇년 전 이들의 통한의 길이었던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그 유전의 기억을 체험했다. 종착역이었던 우즈베키스탄의 타쉬켄트에서 북조선과 중앙아시아적 영향을 융합한 의상을 입은 3세대 고려인 무희들을 만나게 되었다. 정체성의 무중력 상태에 놓인 이들을 신화적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뮤즈로 환치transfigure 시켰다. 신화는 과거에 있었던 일정한 사건이 내면화하면서 과학 이상으로 직관이 확대되어 감정의 원천이 풍부해지고 상상력이 유발된 결과이다.
시베리아 자작나무 숲을 지나와 신라인이 된 스키타이Scythian, Proto 몽골족의 이동로, 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복, 또 65년전 고려인의 통한의 길이었던 이 길, 그 철로변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침묵이 이어진다.
"내 이름은 네 어머니의 이름과 같으니 어서 그 이름을 불러다오. 네가그렇게 해야지만 나는 존재할 수 있다."

- 김명희 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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