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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드무비]를 보고 ...


 

 

1893; Casein/waxed crayon and tempera on paper (cardboard), 91 x 73.5 cm (35 7/8 x 29"); Nasjonalgalleriet (National Gallery), Oslo

 

 

초등학교 교재 등에서 자주 접했던 Edvard Munch의 [The Scream (or The Cry)]입니다.

 

뭉크는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불안, 죽음에 대한 공포, 사랑에 대한 고뇌 등을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막연한 느낌들을 테머로 회화로 표현했습니다. 한마디로 유럽의 세기말을 대표하는 한 사람입니다.

 

고독, 병과 죽음, egoism, 性에 대한 고민 등, 누구나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회피하고 싶어 하는 문제들을 뭉크는 어떤 의미에서 노골적으로 회피나 애매함 없이 정면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민족과 시대를 넘어서 존재하는 보편적인 인간의 정서를 주제로 표현한 것에 뭉크가 가지는 의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을 자신의 침실이나 거실 등에 장식해 두고 싶은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왠지 모르게 보고 있으면 가슴 답답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 답답함은 불안때문인지 공포때문일지 모르겠지만 ... .. .

 

바다위에 설치된 다리 위에 귀를 막고 절규하고 있는 사람과 그 뒤의 뒷모습만 보이는 두 사람. 요동치듯이 묘사된 노을진 하늘, 강 위의 배 두척, 현기증을 일으킬 것 같은 피요르도...

 

이 작품을 그리기 1년전에 작품에 뭉크 본인의 말이 남아 있습니다.

 

해가 저물고 있던 거리를 나는 친구들과 걷고 있었다. 하늘이 갑자기 붉게 물들어 갔다. 나는 멈춰서서, 피곤한 몸을 난간에 기대었다. 검푸른 피요르도, 거리 위의 구름이 피나 불꽃처럼 옆으로 퍼져 있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고, 나는 강렬한 불안에 몸을 떨면서 남겨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자연을 관통하는 크고 강혈한 영원한 소리를 들었다.

 

즉, 이 그림에서의 절규는 그의 절규가 아닌 것입니다. 자연의 절규를 그가 들었던 것입니다.

 

공포를 느낄만큼 조용함에 따른 불안. 아마도 뭉크는 이 조용한 풍경 속에서 요동치고 있는 자연의 절규를 들었는 지도 모릅니다. 귀를 막고 모든 소리를 밀폐하고 자연을 바라보세요. 그러면, 당신의 귀에도 처음으로 자연의 절규가 들릴지도 모릅니다.

 

 



 

네 멋대로 지껄임

 

김인식감독의 [로드무비]를 봤다. 기대밖의 진정으로 찬사를 보낼 만큼의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괜찮은 영화였다. 분명히 이 영화도 상업성을 목표로 만들어 졌지만, 그 완성도의 놀라움은 상업성이란 딱지를 떼기에 충분했다.

 

일반적으로 [로드 무비]라는 말은 영화의 장르를 의미한다. 길에 관한 영화가 [로드무비]인 것이다. 여기에서의 길이란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Thelma & Louise]에서는 자아의 발견으로, [Simple Men]에서는 가족제도의 허상을, [Drugstore Cowboy]에서는 한 인간의 성장을 의미한다.

 

영화 [로드무비]에서는 길이 소통을 의미한다.

 

무엇에 대한 소통인가? 바로 사랑에 대한 또 다른 형식에 대한 것이다. 우리들은 사랑이라고 하면 이성간의 그것도 남자가 연상이고 여자가 연하인 언제나 정형화된 형상을 쉽게 떠 올린다. 하지만 주위를 곰곰히 살펴 보면 의외로 소수의 형태이지만 다양한 사랑의 방식이 존재하는 것을 느낀다.

 

연상녀와 연하남의 사랑, 미성년자와의 사랑, 혹은 해외 토픽으로 자주 나오는 사제간의 사랑 등등 ... .. . 이 영화는 그러한 이성간의 사랑이라는 경계에서 한 발 더 나아가서 동성간의 사랑을 주제로 내세운다.

 

동성애라는 말을 들으면 보통의 반응은 어떤 혐오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아마도 동성애에 대한 선입관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이 사회의 절대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이성애자들에 의해서 만들어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동성애문제도 결국에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차별에 관한 것이다.

 

UN의 인권위원회의 선언과 남아프카공화국의 헌법 등에는, 인간이 이성 혹은 동성의 어느 쪽을 연애의 대상으로 하는가에 의해서(성적 지향의 차이에 의해서) 차별받지 않는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서구의 동성애자들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동성애자들이 이성애자들의 사회에 스스로 맞춰서 자신의 감정과 자신의 권리 등을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특히, 성에 눈 뜨는 10대의 경우에는 자신이 일반적으로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지는 동성애자임을 알게 될 경우, 강한 거부감과 심한 고독감을 느낀다고 한다. 일전에 있었던 10대 동성애자의 자살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 주는 것이다.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는 사회의 빈곤함이, 또는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일방적인 편가르기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억제하거나, 혹은 숨기고 살아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또 한, 영화 [로드무비]는 동성애 외에도 우리 사회의 경직성이 가지는 소통의 부재들을 보여 주고 있다. 일주로 대표되는 몸을 파는 여자들, 거리의 부랑자 등과의 사회적 소통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민석(정형기)이 자살하기 전에 말들은 음미해 볼 가치가 있을 것 같다.

 

결혼하고 나서부터 계속 나는 길 위에서 생활했다. 이 길 위를 달리다 보면 언젠가는 희망이 보일 줄 알았다.

 

하지만,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살뿐이었다. 영화에선 자살 장면이 자주 나온다. 사회와의 소통의 부재에 따른 일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자살인 것이다. 그들이 참을 수 없는 것은 가난도 육체적 힘겨움도 아니다. 사회와의 단절에 따른 불안과 절망을 이기지 못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로드무비]는 개인과 개인간, 개인과 사회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지금 이 시간에도 어느 국도를 방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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