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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1930 ; Oil on canvas, 260 x 325 cm ; Musee du Louvre, Paris

 

 

Eugene Delacroix(1798-1863)의 [Liberty Leading the People]입니다.

 

18세기의 유럽에서는 두 가지 큰 혁명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프랑스혁명이었고, 다른 하나는 산업혁명이었습니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로 상징되는 프랑스혁명은 공포정치를 거쳐서, 나폴레옹이라는 독재자를 만들었습니다. 한편, 산업혁명은 기차와 증기선으로 대표되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가져와서, 인류의 생활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지만, 대도시로 집중되는 인구에 의해서 빈부의 격차가 격심해졌습니다. 급속한 사회적 변화는 다양한 모순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배경으로 회화사에서도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라는 서로 대립되는 유파의 출현으로 나타났습니다.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에 대한 자세한 것은 밑의 링크를 참고하시고, 간단한 차이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신고전주의]는 이상적인 미-균형적인 미와 교훈성과 합리성, 조화 등을 추구했습니다. [낭만주의]는 이러한 경향을 거부하면서, 개성미와 상상력, 비현실성 등을 추구하면서 발전했습니다.

 

                        참고 링크 : 신고전주의미술
                                             낭만주의

 

이와 같은 시기에 들라크루아는 프랑스의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나서, 고전파 화가로서 유명했던 게랭에게 그림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18세가 되었을 때에는 관립미술학교에 입학해서, 루브르미술관을 다니면서 루벤스와 베로네세 등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제리코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제리코의 [The Raft of Medusa]를 통해서 낭만주의를 수립할 수 있는 계기를 가지게 됩니다.

 

위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여신]은 1830년의 7월혁명을 배경으로 한 것입니다. 프랑스의 국기는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혁명군을 이끄는 여신이 들고 있는 것도 혁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프랑스 국기입니다. 그리고, 먹물을 상징하는 모자를 쓴 남자와 권총을 양손에 잡은 노동자풍의 소년과 안정된 삼각형의 구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좀 이상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인간들 사이에 여신이라는 이질적인 존재가 있는 것일까? 그것도 상체를 드러낸 모습으로 ... 그 해답은 들라크루아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사실은 먹물을 상징하는 모자를 쓴 남자는 들라크루아 자신을 상징하고 있다고 합니다.

 

들라크루아는 이 그림을 그리기 전에 [The Massacre at Chios] 등을 그렸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비난뿐이었습니다. [카오섬의 학살]은 그 생생한 묘사와 역동성 등에 의해서 [회화의 학살]이라는 혹평을 들을 만큼, 그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혹독한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평가에 대한 실망만이 가득할 때, 프랑스 7월혁명이라는 역사의 역동성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역동성을 어떻게든지 표현하고 싶었지만, 이전의 경험으로 인해 망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그림이 가지는 생생한 현실미를 중화시키기 위해서 여신을 그렸다는 설과 세상의 모진 평판으로부터 자신과 이 그림을 지켜주는 수호신의 의미로서 그려졌다는 설이 있습니다. 어쨋든 여신의 효력이 있었는지, 이 그림을 통해서 명성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혁명의 역동성과 열기가 가득한 [민중을 이끄는 여신]. 이 혁명을 이끄는 여신이 든 프랑스 국기는 프랑스라는 내셔널리즘을 넘어서 지구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유, 평등, 박애 ... 이 세가지는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네 멋대로 지껄임

 

테러  1. 온갖 폭력을 써서 남을 위협하거나 공포에 빠뜨리게 하는 행위.
          2. 테러리스트(테러리즘을 신봉하는 사람. 폭력주의자.)의 준말.
          3. 테러리즘(어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암살이나 폭행·숙청 따위 직접적인 공포 수단을 이용하는 주의나 정책. 폭력주의.)의 준말.

 

[테러]라는 단어는 국제면에서 빠지지 않는 글자 중의 하나입니다. 특히 이라크 무장저항세력과 [테러리스트]혹은 [테러]는 바늘과 실과 같은 관계처럼 예외없이 따라다닙니다. 알카에다가 직접적으로 한국 등을 목표로 공개 경고가 있어서 지금 한국 정부는 우왕좌왕하면서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 이전에 있었던 故김선일씨의 참수 등도 있어서 이라크 저항세력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면서 그들의 행위를 야만적인 행위라고 규탄하는 목소리들도 있습니다.

 

이라크의 무장저항세력은 테러리스트로서 [악]한 존재인 것일까? 만약 80년대 전두환집단을 미국과 영국이 독재와 있지도 않는 핵무기를 이유로 한국을 침략한다면 ... 당신들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나는 전두환일당에 대해서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나라의 침략적인 행위에 의한 해결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전두환 일당이 반인류적인 행위를 했어도 점령군인 미국과 영국을 향해서 웰컴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침략군인 이상 침략군에 대항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라크의 삶의 질이 떨어진 것에는 후세인정권의 책임도 일부분 있지만, 가장 큰 책임은 미국에게 있습니다. 후세인정권의 과거와 현재를 만들어 준 것이 미국이고, 또한 봉쇄정책에 의해서 기본적인 의료품, 식료품조차 없는 나라로 만든 것도 미국입니다. 그런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했습니다. 단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따라서 미국의 침략 행위에 저항하는 이라크인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닌 무장저항세력입니다. 침략국인 미국과 영국, 그리고 그들의 특별한 용병국들에 대항할 수 있는 권리가 이라크 국민들에게는 있는 것입니다.

 

막강한 군사력을 상대로 이라크 저항세력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전술은 게릴라전 밖에 없습니다. 게릴라전은 역사적으로 베트남에서도 쿠바에서도 힘의 우세가 확실한 상대로 유효한 수단이었습니다. 암살과 자살폭탄 등은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일반 민간인이 무슨 죄가 있길래 그들을 대상으로 폭력적인 행위를 하나?라는 볼멘 목소리도 있을 것입니다.

 

이라크만이 아닌 중동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듯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50여년간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성조차도 없었고, 학살과 구타, 고문이 일상화된 팔레스타인... 그리고 그러한 이스라엘의 야만적인 행위를 뒷받침해 온 미국... 아랍인들의 그들에 대한 적개심은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이번 이라크침략전에서도 그렇지만, 국제사회는 어떠한 제제도 하지 못했고, 반대로 그러한 야만적인 침략행위를 계속하고 있는 악의 축(미국, 영국, 이스라엘)들을 동맹국으로, 혹은 세계의 리더국으로서 인정해왔습니다. 아랍인들에게 악마적인 정책을 일삼는 정치인을 선택한 그 나라의 국민들 또한 슬프게도 그들의 적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라크인들에게 [평화]와 [민주주의], [재건]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지로 몇겹으로 포장해도 중무장한 한국군은 그들을 침략한 미영국군과 별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 한국인들도 이라크 혹은 아랍무장세력의 표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중동에서 멀리 떨어진 한국은 안전할까요? 한국에서 그들의 행위에 의해서 나의 부모, 형제 등이 사고를 당하더라도 나는 그들을 원망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X같은 정부가 내가 선택한, 혹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정부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만 ... 이 세계가 미국과 그들의 특별한 동맹국들만의 것이 아닌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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