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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전국노동자대회에 다녀와서(성준/ 고려대 역사교육과 06)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6가에서 재단사였던 20대 초반의 청년 노동자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로 외치며 근로기준법과 자신의 몸에 신나를 끼얹고 분신 항거하였다. 그러나 30년이 넘게 지난 현재에도 노동 3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많은 노동자들이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특수고용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등이 바로 그들이다. 하청으로 고용된 노동자들은 정규직과의 차별, 상대적 박탈감을 몸소 느끼며 일하고 있고, 골프캐디, 학습지교사들은 노동자임에도 사장으로 등록된,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 심지어 하중근 열사는 경찰 폭력에 의해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전국 노동자 대회에서는 바로 이러한 현실의 정세를 파악하고 그에 저항할 수 있는 노동자 대회여야 했다.


2006년 11월 12일, 서울시청 광장으로 향했다. 3시 좀 넘어서 도착했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사람은 적었다. 수많은 조직들에서 유인물을 뿌리고 있었다. 노동자 대회에 대해 각 단위들의 생각들이 적혀있었다. 그러나 노동자 대회의 현장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결의를 다지기 위해 동지들의 발언도 있었고 몸짓패의 공연, 노래패의 공연도 있었지만 노동자들은 형식적인, 그저 연중행사 정도의 하나로 노동자 대회를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동자 대회의 분위기는 이상했다. 거기에 민주노총의 총파업 연기는 사회적 합의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많은 이야기 속에서 2006년 현실에 대한 투쟁 의지는 거의 담지 못한 것 같았다. 노동자대회가 끝난 이후 노동자 들은 바로 퇴장했다. 서울시청 광장에 남은 사람들은 몇몇 학생 단위들과 청소하시는 분들이 전부였다. 이것이 노동자 대회인가 라는 회의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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