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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새내기가 접한 여름교육활동 <더불어 숲>(유승희/ 서울교대 1학년)

*'2007 더불어 숲' 후기

 

새내기가 접한 여름교육활동 <더불어 숲>

 

유승희(서울교대 1학년)

 

교사의 꿈을 가지고 교대에 와서 한 학기를 보냈지만, 1학년이라 전공 수업도 거의 없고 실습도 없어서 아이들을 만날 기회를 만들기 어려웠다. 그래서 더욱 예비교사라는 타이틀이 나에게는 아직 실감나게 와 닿지 않았었다. 여름교육활동은 그런 내게 교대인 으로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비록 5박6일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 보다 얻어가는 게 더 많은 시간이었고, 내가 교대인 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감사하는 마음도 갖게 되었다. 교육 환경이 열악한 농촌에 사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교육활동의 취지가 마음에 들어서 신청하게 되었지만, 전혀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 앞에 선다는 것에 대한 걱정도 조금 있었다. 교육활동을 가기 약 한 달 전부터 매주 모여서 지도안을 만들고 수업을 계획하는 과정이 조금 힘들었지만, 이러한 구체적인 준비 덕분에 더 즐겁고 보람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일이니 만큼 사전에 꼼꼼한 준비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지도안을 준비하고, 또 직접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은 참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은 내 생각을 능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수업을 준비하면서 아이들이 어떻게 내 수업을 받아들일까..하는 걱정을 참 많이 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수업을 해 보지 않고는, 지도안만 보고 어떤 수업이 이루어질 지는 정말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틀에 짜인 형식대로만 가르치려 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내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독창적인 방법으로 꾸미기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재미 없을까봐 걱정 했었는데 너무 재미있게 잘 따라줘서 안도했던 수업도 있었다.

 또 한 가지 좋았던 점은 수업 후 있었던 교사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진지하게 토론에 임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미래 교육의 희망을 보았고, 깨어있는 의식을 가진 예비교사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들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남겨주었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에 5박 6일을 지내는 동안 나태해지지 않고 진지한 마음으로 수업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기대 반, 두려움 반을 가지고 떠났던 교육활동이었는데, 돌아올 때에는 보람과 만족감만을 가지고 왔다. 아쉬웠던 점은, 5박 6일이라는 시간이 생각보다 짧아서 아이들과 더 깊은 정을 나누지 못했다는 점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에게도, 교사들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건이 된다면 이러한 대학생 교육활동이나 멘토링 제도가 더 활발하게 시행되었으면 좋겠다. 여름교육활동은 방학 중 할 수 있는 가장 보람 있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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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아이들과 함께 더불어 숲이 되고픈 한 예비교사의 '더불어 숲' 참가기(고려대 국어교육과 3학년)

*'2007 더불어 숲' 후기

 

아이들과 함께 더불어 숲이 되고픈 한 예비교사의 '더불어 숲' 참가기

 

김민철(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3학년)

 

나름 3년차여서 이런저런 교육프로그램에도 참가해 보고, 세미나도 많이 해보고 했었다. 그런데 그동안 ‘교육활동’은 참가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이번에 시간을 내어 참가하게 되었다. 중등반도 생긴다고 하여 봉화의 아이들을 만난다는 설렘으로 수업도 준비하고, 회의도 하면서 봉화로 떠날 준비를 했다. 사실 학생들과의 관계, 수업 방법 등은 매년 고려대에서 열리는 ‘지역학교’라는 것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농어촌 지역의 교육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농어촌 지역의 학생들과 또 다른 관계를 맺고, 그들에게서 서울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더불어숲’을 선택하게 되었다.

  더불어숲과 거기서 만난 아이들을 생각해 보면 떠오르는 장면들이 몇 개 있다.

  재밌게 했던 여러 수업들... 과학 수업, 성평등 수업, 전통놀이 수업, 동화 다시 읽기 수업 등등. 물론 수업을 통해서 아이들과 함께 가치나 지식을 같이 나누기도 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수업을 통해서 서로에 대해(학생은 교사에 대해, 교사는 학생에 대해) 알아가고, 친해져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수업을 할 때 보조교사 혹은 대등한 학생의 입장으로 아이들 옆에 앉아서 함께 대답하고 함께 활동하면서 많이 친밀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놀이도 빼놓을 수 없다. 여러 쉬는시간동안 게임도 많이 하고, 얘기도 많이 하고 했지만, 물놀이만큼 서로 재미있게 놀면서 교감을 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약간 서먹서먹하기도 했는데 물놀이를 하면서 서로 장난도 치고 물에도 빠뜨리고 하면서, 아이들도 즐겁고 교사들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졸업식 하던 날... 함께 손에 물감을 묻혀가면서 단체화(협동화)를 그렸다. 그리고 나서 단체 사진도 찍고 돌림종이를 썼다. 날씨가 더워서 오히려 교사들은 돌림종이 쓰기를 꺼려하는 것 하기도 같았는데, 아이들은 군말 않고 교사들에게 정성스럽게 한 마디 한 마디 써 주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역시 아이들은 교사가 조금만 마음문을 열어주면 자기는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아름다운 존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의 소통에 힘들어하고, 아이들과 소통하지 않으려 하는 교사들 중에 종종 아이들 탓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교사가 먼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졸업식이 끝나고 교활이 끝나고 나서도, 학생들과 종종 연락을 하곤한다. 주로 싸이월드 방명록을 통해서기는 하지만, 지속적으로 연락이 닿고 있다. 내가 먼저 방문하지 않아도 먼저 와서 한 마디씩 남겨주고 가는 아이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교활 마지막 평가 회의 때 교활이 끝났다고 해서 아이들과 연락을 끊지 말고 멘토 역할을 하자고 했는데, 잘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교활 첫날에 있었던 봉화지역 선생님들과의 간담회도 기억에 남는다. 사실 진지하게 농어촌 교육에 대해, ‘내가 농어촌 선생님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 간담회를 통해 고민거리를 얻은 것 같아 좋다. 교육환경, 가정환경, 교육과정의 문제들... 등등.

  처음 가 본 ‘더불어숲’! 배운 것도 많고 고민할 거리도 많이 얻어온 것 같아서 뿌듯하다. 이 ‘더불어숲’이 앞으로 더더욱 발전하여 한국 교육의 대안을 제시하고, 농어촌교육을 정상화 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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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무더위 속에 느끼는 따뜻함(서향선/ 부산교대 3학년)

*'2007 더불어 숲' 후기

 

무더위 속에 느끼는 따뜻함

 

서향선(부산교대 3학년)

 

“ 더불어 숲이 되자 , 아싸라비아 아싸 ~ ”

 더불어 숲 참가 선생님들과 학생들이라면 꼭 알아야만 하는 이 노래와 귀여운 율동.

이 노래를 하고 있자면 오히려 학생들보다 더 신나서 율동에 심취해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나를 올려다보면서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표정들도...

 교육대학교를 다니면서 여러 교육활동을 참여해봤지만, 사실상 ‘더불어 숲’ 만큼 교사들이 힘든 교육활동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 직접 참가비를 내면서 출발해서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진행되는 일정, 중간 중간 밥 당번들은 참가 선생님들의 밥이며, 학생들의 밥까지 책임져야하는 5박 6일의 일정. 사실, 이런 일정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쉽게 추천해주기도 힘든 교육활동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만큼 참가하는 교사들이 충분히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자유로운 교육활동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떠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고민해보고, 그 것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어 본다는 것은 참가하는 선생님들에게도 정말 좋은 경험이 될 것이고, 아이들 또한 즐거운 추억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새내기 때 아무런 생각 없이 선배들을 따라 참여하게 된 더불어 숲이 이번이 벌써 참가 3년째를 맞이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는지, 얼마나 좋은 경험을 했는지를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천초등학교에서 이루어진 이번 더불어 숲 첫날, 말도 제대로 못하는 작은 유치원 아이들부터, 나보다 덩치가 더 큰 고학년, 중학생 아이들까지... 정말로 다양한 아이들이 더불어 숲을 찾아와주었다. 아이들을 만난다는 설레임으로 밤잠을 설쳤을 참가 선생님들, 일주일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여기저기에서 모여 준 아이들 모두가 반짝반짝 빛이나 보였다. 덕분에 조용했던 학교는 시끌벅적해지고, 학교 곳곳에서는 다들 즐겁고 재미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작년에 더불어 숲을 참여했던 아이들은 작년에 주었던 더불어 숲 단체 티를 입고 오기도 했고, 새로 나누어준 꽃분홍색 티셔츠를 갈아입고 선생님과 친구들이 모두 똑같은 옷을 입었다고 신기해하고, 즐거워하는 아이들도 보였다.

 다양한 아이들과, 정말로 다양한 빛깔을 가진 선생님들이 함께 이루어간 더불어 숲은 어느덧 훌쩍 지나가 버렸다. 우리가 준비해 간 것들이 과연 아이들에게 어떠한 것을 남겼을까? 아이들은 이 더불어 숲을 어떻게 기억해줄까? 하는 생각과, 조금 더 준비해 올껄,,, 조금 더 고민하고 올껄,,, 하는 후회가 가득한 아쉬운 마지막 날. 떠나는 버스에서 뒷 창문에 매달려서 얼굴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는 아이들. 내년에 다시 꼭 와야 한다고 새끼손가락 약속을 하고 가는 아이들은 나에게 미안함과 아쉬움, 그리고 고마움을 선사해주었다. 아이들과 많은 것을 나눠야지,,, 하는 생각으로 매년 출발했던 더불어 숲은 매년 아이들이 나에게 주는 많은 선물들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 일주일인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미쳐 글로 옮기지 못하는 벅찬 느낌들을 참가자 선생님들께서 모두들 느끼셨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불어 숲에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좋은 점이 있다면 바로 참가자 선생님들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참가하는 선생님들에게 힘든 일정이긴 하지만, 이런 일정을 지내다보면서 자연스럽게 선생님들 간에 느끼게 되는 따뜻한 마음들. 물론 3년 동안 만난 모든 분들을 서로 다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항상 만난 더불어 숲 참가자 분들은 아이들을 좋아하는 마음만큼 다들 따뜻한 분들이셨던 걸로 기억된다. 잠깐 동안 함께 하는 일정이지만, 마치 서로 오래 알고 있었던 사이만큼이나 서로 배려해주고, 도와주는 모습. 사실상, 우리가 있는 다른 곳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일 것이다. 비록, 덥고 힘든 일정이었지만 선생님들 사이의 배려, 아이들의 웃음 때문에 얼굴, 팔이 빨갛게 익은지도 모른 채, 즐겁게 생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이렇게 많은 것을 얻고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신 모든 선생님들, 집행부님들께도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 

 우연치 않게 참가하게 되었던 ‘더불어 숲’ 은 3년 동안 나에게 지칠 때쯤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원동력 같은 작용을 했다. 그래서 어쩌면 매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숲에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힘들고 지친, 까맣게 탄 얼굴이지만, 항상 더불어 숲에서 찍은 사진들에 밝게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절로 행복해지고, 뭔가 빛나는 것이 머리를 깨우고 지나간다. 항상 지칠 때가 되면 더불어 숲을 기억하면서, 그 때의 웃음을 기억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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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새내기 교사의 좌충우돌(김광수/ 서울 창천초 교사)

 

||서울 창천초등학교 교사 김광수



나도 어쩔 수 없는 좌충우돌 새내기 교사


 그 동안 투데이에서 ‘새내기 교사의 좌충우돌’을 읽었을 때, 정말 재미있다고만 생각했다. 좌충우돌하지 않는 새내기답지 않은 신규교사가 되어야겠다는 당돌한 결심을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올해 3월 15일에 신규발령을 받아 3학년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지금 나는 완전 좌충우돌 중인 새내기교사이다.

 새내기교사라서 그런지 왜 이렇게 바쁜지 모르겠다. 수업만 하기에도 벅찬 상황인데, 아이들 생활지도, 담당업무 처리 등을 하다보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쉬는 시간이면 우유먹이기, 줄넘기시키기, 일기·알림장·숙제 검사, 싸우는 얘들 말리기 등을 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 5교시 내내 수업하다가 점심먹이고, 양치질 검사하고, 나머지 공부시키고, 담당업무 처리하고 하다보면 오후가 훌쩍 지나간다.

 우리학교는 전교 12학급 밖에 안 되는 작은 학교다보니 선생님들은 2~3가지 업무를 맡고 있다. 나도 문서상으로는 체육교구관리, 교과서, 아람단 업무, 이렇게 3가지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이외에도 축구부 감독을 맡고 있다. 반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축구부 감독이야.”라고 말했더니, 신기하게도 정말 좋아하며 “정말이요?”하고 묻는다. 난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래도 아이들이 날 좋아해주니 기분이 좋기는 하다.

 전에 있던 선생님의 업무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관계로 아람단 교사를 하고 있긴 한데, 이건 정말 곤욕이다. 개인적으로 아람단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선서식을 하는데 이건 완전 학교가 아니라 군대다. 군대. 줄맞춰 행진을 하고, 거수경례를 하고, 군대식으로 구호를 외치고, 군가 같은 아람단가를 부르는 것을 보면서 정말 슬프고 안타까웠다. 초등학생들은 자신들이 군대식으로 교육받고 있다는 것을 알기는 할까? 내 양심상으로는 도저히 하기 싫은 일이다. “양심상 지금부터 아람단 업무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소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 밉다. 어쨌든 내년부터는 아람단 업무를 절대 맡지 말아야겠다. 단체협약에도 희망교사에 한해서 아람단 교사를 하게 되어있다고 하니 말이다.

 요즘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아동인권문제이다. 발령을 받고 한 2주 정도 매를 들었다. 숙제를 안 해오거나, 떠들다가 걸리면 자로 손바닥을 때렸다. 어느 날, 집에 가다 생각해보니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매를 드는 것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 후로 한 1주일간 매를 드는 대신 벌을 세웠다. ‘미친 학교를 혁명하라’라는 집회에 가서 청소년들이 ‘두발자유, 체벌금지’ 등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보았다. ‘난 별로 심하게 하지 않았으니까 괜찮아. 난 그런 나쁜 교사가 아니야.’라고 스스로를 정당화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벌세우는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는 아이들의 인격을 최대한 존중해주지 않고 있는 교사이다. 아이들이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이렇게 말 안 들으면, 체육수업 안 할 거야. 부모님한테 전화해서 오시라고 할 거야.”라는 협박을 한다. 때로는 큰소리로 호통을 치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난 아직 좋은 교사가 아니다.

 지난 17일에 드디어 첫 월급을 탔다. 몇 달이 흐른 것 같은데 겨우 한달이 지난 것이다. 흔히 경력 3년차까지는 생존기라고 한다. 잘하려고 하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애써야 하는 시기라고 말이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 고민 없이 남들이 하는 대로 사는 교사가 되고 싶지는 않다. 생존기는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많이 고민하고 그만큼 더 많이 좌충우돌하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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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부산교대 새내기와 함께한 Say Edu(관수/ 부산교대 04)

 

 

부산교대에 새내기들이 입학한지도 벌써 한달이다. 3월 한 달은 새내기들이 맞이한 여태껏 맞이한 어떤 3월보다 특별하고 다양한 경험들이 있을 한달이라 생각된다. 개강총회, 총 모꼬지, 각종 체육대회, MT등등 선배들과 혹은 동기들과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던 기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신없는 한달을 지내면서 교대에 입학해서 단순한 대학생이 아닌 예비교사라는 직함도 같이 부여받았는데 예비교사로서의 3월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새내기 예비교사들이 생각하는 교육은 어떤 것인지 짧지만 깊은 이야기들을 몇 가지 질문들로 들어보자.


사회자 : 부산교대 페다고지 관수

참가자 : 부산교대 07학번 오양, 요원, 멧(이상 본인들의 요청에 의한 가명)

부산교대 페다고지 병근. 부산교대 유아07 수호.

관수 : 첫 번째 질문은 왜 교대에 왔나요?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요.’라는 재미없는 이야기 말고, 예를 들어, 왜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지, 그 계기가 있었는지? 뭐~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추구한다는 것도 나쁜 건 아니니깐. 솔직하게 말해 봐요.




오양 : 원래 애기들을 좋아해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선생님 하고 싶었는데, 유치원/초등/중등/고등 을 생각해봤는데, 유치원은 안정적이지 못하고.. 직업적 메리트 때문에 교대를 선택했던 것 같아요.

요원 : 일반대학에 가면 한 과목을 심화시켜야 한다는 부담감. 교대는 예체능 이라든지 딴 대학과 달리 여러 방면으로 배울 수 있어서요. 선생님으로서의 메리트는, 자기 시간이 많다는 것. 질리지 않고 꾸준히 자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멧 : 꿈이 참 많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선생님이었어요. 여기가 걸리고, 다른 꿈이었던

신방과에 추가로 합격하게 되었는데 부모님이 돈을 안빼서.... ㅎㅎ

수호 : 중학교 때 누나가 교대에 입학했고, 집에서 교대에 대한 생각이 그랬는데, 고등학교 때는 교대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능을 나름 실패해서 다른 공대에 입학했어요.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가, (어학연수, 유학, 등등..) 고등학교 때 해보고 싶었던 것이 초등학교 선생님인데, 다시 한 번 해보자는 생각에 교대에 오게 되었어요.

관수 : 두 번째 질문은 내가 바라는 선생님의 상(像)은 뭔가요? 12년간 만났던 선생님들에 대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도 괜찮고~뭔가 다른 이야기도 상관없어요. 어떻게 선생님이 될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너무 뻔한데, 다양성이란 것들이 무시되고 있는데, ‘어떤 선생님이 될까?’ 라는 고민에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과정에 대한 대답이 정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은지요?





오양 : 저는 편하게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요. 어릴 때 저는 참 소심했어요. 소심한 애들이 대부분 선생님을 불편해하고 못 다가가고, ‘선생님’에 대한 권위를 많이 느끼는데, 그 중에서도 성격 좋은 애들은 친하게 지내기는 하지만 저는 좀 조용하고 소심해서.. 어릴 때 힘든 일이 있으면 정말 견뎌내기 어렵잖아요. 그런 것 있으면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멧 : 중학교 때는, 선생님이랑 날 잡아서 학교에서 야영도 하고, 그랬는데, 고등학교 때는 공부만 하라고 이야기했어요. 선생님이 되면 여행도 다니고, 야영도 다니고, 지나가면서도 그 선생님 하면 추억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었으면 해요.

요원 : 나이든 선생님들 보면 세대차를 많이 느끼는데, 그런 것들을 선생님들은 당연시여기고, 생각차를 좁히려고 노력을 많이 안하는데, 교직생활 하면서 세대가 벌어지게 되더라도 아이 또래의 문화를 꾸준히 접해보면서 그 아이의 눈에서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는지 이해하는 선생님이 되었으면 해요.

수호 : 그냥 해도 되지 허허 저 같은 경우는 관수한테 그런 질문을 받았는데, ‘어떤 선생님이 될 것인지를 설정하는 것은 힘들다’ 나름 생각했는데, 구체적으로 설정은 안 된 것 같아. 다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마음에 들고 닮고 싶은 선생님이 한분 있었는데, 고1때 담임선생님. 자기 편한 것을 던지고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상(賞)’이라는 것 자체가 공부 잘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여러 가지 상을 많이 만들었어. 그리고 한번은 주말을 버리고 학교에 승인을 받고 캠프를 갔지. 어린 나이에 생각할 것들이 짧지만, 생각할 것들을 많이 던

져주는 시간이었어. 자기 자신에게 편지쓰기. 캠프파이어,.. 특히 이 캠프의 주제가 ‘젊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당신은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입니다.’였는데 주제가 많이 맘에 들었어. 그 선생님처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분이랑 졸업하고도 연락을 하는데, 암이 걸리셨대요. 투병을 하시다가 회복기에 들어서 다시 교단에 서셨다고 해요. 곧 퇴임하시기는 하셨지만 허허.


관수 : 세 번째 질문은 2월부터 미터(새내기 미리 배움터), 새터(새내기 새로 배움터), 입학하고 각종 과행사, 동아리 행사 등으로 많이들 바빴을 텐데...한동안 정신없는 대학행사의 쓰나미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4월인데, 한 달간 느껴본 대학생활은 어땠나요?




멧 : 3월 벌써 한달이 정신없이 지나간 것 같아요.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는데, 대학가면 항상 꿈꿨던 것이 ‘내 맘대로 시간표 짜기’였는데, 그게 교대에서는 안 된다는 것이 싫어요. 친구들 보면 화, 수, 목 밖에 수업이 없고, 나중에는 계속 노는데, 남들은 그게 무슨 소원이냐 그러는데 저는 진짜 하고 싶었거든요.

요원 : 남들은 교대가 다른 곳보다 빡시다고 하는데, 저는 재수를 했어요. 딱막힌 생활을 하고 있다가, 타지에 와서 생활하고 하니까 좀 자유로운 것도 있고, 대학이라는 것이 처음 접해보는 거니까 탁 트인 느낌도 있지만, 교대는 학점이 아무래도 중요하니까 학점 때문에 스트레스도 있고. 하지만 동아리활동도 하고 선배들과 만나고 뭐 그런 것들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병근 : 과분위기는 어때요?

수호 : 유아과는 애살을 포기헀답니다. 허허 근데 다른과 선배들이 예습복습안하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이야기하고. 컴과 수업을 들어봤는데, 엄청 예민했어요. 서로 문제를 내는 거였는데 책에 줄 그어있다고 책 빌려주지도 않고.. 보너스 점수 1-2점에 연연하는 모습..

관수 : 내신 점수에 연연하고, 그것도 학교 교육과정이 잘 돼있는 것도 아닌데.. 좋은 교사되기 힘든 교육대학...

수호 : 그래도 교대의 장점이라고 하면, 과에서 낙오자라는 것이 없어요. 일반대 같은 경우에는 과에 어울리지 못하면 대학생활을 포기하는 낙오자들이 생기는데, 교대는 두루두루 챙겨주잖아요. 또 두루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인 것 같아요. 근데 그게 또 단점이 될 수 있는 것이, 수업이 너무 빡빡해서 자기 창의성을 키울 시간이 없이 틀에 박힌 시간표에 따라서 흘러가니까..

하지만 시간표를 짜면 자기가 듣고 싶지 않은 수업을 듣거나 해서 오히려 좋지 않을 수도 있어요. 또 점심시간이 없어서 연강을 통해 지칠 수도 있고 해서 시간표를 자유롭게 짜는 곳의 단점인거 같아요. 표를 다 짜놓고, 코드번호를 치는 그런 고생들도....

관수 : 4학년이 되면 당연히 금요일에 서울에서 임용강의가 내려오는데, 그 수업 들어야 되는데 왜 수업이 있냐.  교대에서 임용 책임지지 못하면서 왜 그러냐. 뭐 이런 문제들도 있는데, 시간표 정해주는 것도 장단점이 다 있는 것 같아요.

수호 : 일반대 다닐 때 우리 과가 12~13명 정도로 많지 않았는데  그 중에서도 낙오자들이 있었어요. 얼굴도 이름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생기고. 수업도 다 같지 않으니까. 자기들끼리 놀러 다니고.

멧 : 그런 점도 있었네요. 꼭 좋은 것만은 아니네요.

관수 :이제 네 번째 질문!! 작년, 새내기분들이 수능시험으로 정신없을 때 우리들은 정부의 교육정책에 항의하는 투쟁을 진행하고 있었는데요. 자세히는 모르더라도 신문, TV, 주변 사람들, 그리고 입학해서 선배들로부터 어느 정도는 이야기 들었을 거라 생각해요. 이에 대해 새내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했나요?




요원 : 그냥 저는, 특히 부산교대가 심하다는 말은 들었어요. 그래서 남자 같은 경우에는 2명 되었다는 소리도 들었고, 그것 때문에 사실 부산교대 임용 때문에 많이 고민하기도 했었는데, 그때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이유 때문에 오면 무조건 붙으면 되지 뭐 이런 식으로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선생님 되고 싶은 소망도 되게 크고, 좋은 선생님 될 수 있을 것 같고, 그러니까. 교사가 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다면 모두 선생님이 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교대문제가 빨리 해결되어서 다들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관수 : 임용걱정 안하고 다들 선생님이 되면 좋을 텐데, 재정의 문제도 있고, 졸업평점 C+이상이 안 되면 교사자격증이 안나온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정부에서는 임용안하면 공부 안한다고 생각하니까.

수호 : 사관학교자체는 군인을 양성하는 곳이고, 교대는 교사를 양성하는 곳인데, 차이가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관수 : 법적으로 차이가 있는 듯해요. 특수목적대학이라는 게 있는데, 교대는 100%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특수목적대학설립법에 따라서 사관학교, 카이스트, 한예종등등의 학교들이 설립되어있어요. 교사대 같은 경우에는 그런 경우는 아니에요. 교원대학은 예외적인 성격이고요. 어쨌든 교대나 사대를 졸업하면 교원자격증이 나온다는 측면에서는 특

수목적대학이라는 말이 맞기도 하고요.

수호 : 아! 제주대/제주교대 통폐합 문제도 있던데?

관수 : 구체적인 합의가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내년 3월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작년에 제주교대 독자적으로 투쟁했는데 대응이 작을 수밖에 없죠. 교대협에서도 이렇다할 대응도 없고. 경인교대도 마찬가지. 통폐합 이야기가 나와서 말도 많고요. 제주대/제주교대가 되고 나면 아마 통합이 계속 진행될 것 같아요.

멧 : 솔직하게, 근데 저는 수능 칠 때까지 선생님 그냥 하고 싶다 생각했는데, 카피라이터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관심 없었어요.

수호 : 교직을 생각하고 2년 동안 수능 공부를 했는데, 관심 있게 보기는 했는데, 정확하게 무슨 내용으로 투쟁했는지를 알 수는 없으니까... 거기까지 제가 신경 쓸 여력은 없었어요. 그때 생각 했던 것이, TV에서는 너무 투쟁하는 것만 보여주고, 교대에서도 투쟁만 하는 것 같다. 왜 투쟁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나서 투쟁을 시작했다면 더욱 반응이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뉴스에 보니까 밥그릇싸움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근데 누나가 교사니까 아니라는 걸 아는데, 투쟁순서를 잘못했다고 생각했다고 생각해요. 왜 투쟁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관수 : 작년 여름에 교활을 갔다가 하종강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은 것인데 한 여학생의 이야기였어요. 자기 언니가 운동권 학생이라서, 언니가 집회가길래 따라가 봤는데, ‘아., 이렇게 세상에는 정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집회를 마치고 TV를 보니까 언론이 많이 매도를 하더라는 걸 알게 됐다 더라구요.

결국에는 알고 보면 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언론을 통해서 왜곡된 이야기를 듣다보니까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겠죠?!

관수 : 오늘 인터뷰는 여기서 정리 해야겠네요. 남은 이야기들은 뒷풀이를 하면서 해보아요. 인터뷰에 응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한 시간 정도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지난번 호에 적었던 글에서처럼 초등학교 선생님이 하기 싫었던 나로서는 새내기 일 때 이 후배들 같은 생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다. 나로써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내가 새내기 일 때 이런 질문을 해주던 선배가 없었다는 점.

 이 후배들은 적어도 나보다 빨리 이런 생각들을 해보았으니 나보다 더 나은 선배 그리고 더 좋은 선생님이 될 것 이라 믿는다. 그리고 이 후배들이 그 생각들을 계속하고, 그 생각들을 많은 실천들로 이어나가서 다음 후배들에게도 전해주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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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1학년이 본 투쟁(한국화/ 경인교대 06)

 


  현재 우리학교는 동맹휴업 투쟁중이다. 11월 9일 동맹휴업과 관련하여 투표를 하였고 78.4%로 동맹휴업은 가결되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이 모든 것이 정말 빠르게 진행된 것 같다. 나는 이번 동맹휴업과 관련하여 찬성하였다. 단지 지금의 상황이 부당하다고 느꼈고 우리가 저항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동맹휴업이 결정되고 다음날인 투쟁 첫날 강의실에 있는 의자를 다 꺼냈다. 의자를 꺼낼 때 우리가 진짜 수업거부 투쟁을 한다는 것이 실감났다.


 투쟁은 과별로 진행되었다. 같은 과 선배인 2,3학년 모두 모여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있게 되었다. 투쟁 첫날은 슬프게도 불참비와 관련된 토론으로 시작되었다. 불참비를 걷어야 한다는 의견과 불참비 없이 개인의 자발적 양심을 믿어보자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물론 대다수가 불참비를 걷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으므로 불참비를 걷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사실 이번 투쟁의 명분도 확실히 세우지 않은 채 투쟁에 앞서 불참비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남의 일도 아니고 자신의 일인데 자발적 참여가 아닌 돈의 논리로 해결하려 하다니 말이다. 첫날의 오전시간은 불참비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 것으로  끝이 났다.


 이번 투쟁과 관련하여 과 자체적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었고 참여하게 되었다. 비상대책위원회 회의를 하면서 느낀 점은 우리가 아직 많은 것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우선 선배들도 이런 투쟁은 처음이어서 경험이 없었고, 심각한 것은 투쟁의 정당성을 모른 채 자신이 집행부라서 찬성했다는 사람도 있는 것이었다. 투쟁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 순간이었다. 다행히도 총운영회에서는 우리의 사정을 알고 교양단을 만들고, 강연을 열었다. 강연과 교육, 학내집회를 하다가 11월 15일 상경투쟁이 있었다. 전국 교대생들이 모여 학급 총량제 폐지와 교육재정 확보, 중장기 교원수급 대책 마련에 관해 한 목소리를 내는 자리였다. 교육부 앞에서의 투쟁은 개인적으로 정말 힘든 투쟁이었다. 우선 감기에 걸려 몸 상태가 안 좋았을 뿐만 아니라 날씨가 너무너무 추웠다. 이런 투쟁을 하게 만든 교육부가 밉다는 생각밖에는 나지 않았다. 상경투쟁을 무사히 마치고 난 다음날 신문을 보았다. 우리 투쟁에 관련된 기사가 나왔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보았는데 신문에는 투쟁에 관련된 내용이 하나도 없었다.(우리집은 조선일보를 구독한다.)정말 실망했다. 나에게는 정말 심각한 일이고, 중요한 일인데 다른 사람들은 관심도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번 투쟁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투쟁이 장기화 될 것 같다는 사람들의 예측이 돌고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투쟁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교육부에서 우리가 지칠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19일에 교대 운동의 전략과 전술에 관련한 강연을 들었다. 강연을 들으면서 우리가 이번 투쟁을 하면서 준비를 철저하게 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잘못된 것은 임용TO가 발표된 뒤에 부랴부랴 동맹휴업에 관련된 투표를 하고 투쟁을 한 것이었다. 그래서 여론이 “집단이기주의다,  자기 밥그릇 챙기는 행동이다.”라는 비난을 하는 것이다.


 이번 동맹휴업 투쟁이 허무하게 마무리되지 않고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었으면 좋겠고, 내년에는 참교육을 위해서 싸울 무기를 미리 만들어 놓고 대비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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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서평 - 지하생활자의 수기(김정훈/ 고려대 국어교육과 06)

[서평] 지하생활자의 수기

 

김정훈/ 고려대 국어교육과 06, 독자

 

 


내가 어느 정도로 도스도예프스키에 미쳐 있는지 이쯤되면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많은 책을 읽은 것은 아니라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소설'에 있어서 이 작가보다 나에게 더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아직 없었고 이후로도 없을 것 같다.


지하 생활자의 수기는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서는 지하 생활자의 사상이 나오고, 2부에서는 그런 사상이 확립되기 전까지의 그의 비참한 생애가 나온다. 2부를 통해서 1부를 돌아보며, 1부를 통해 2부를 해석하는 이중의 재미가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문학 분석의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1부만 보아도 충분하지 않나 싶다.


여기서 '지하'란 '궁전'과 대비되는 의미다. 궁전이 인간의 이성의 발전의 산물이며 절대선으로서 아름다움을 지닌, 진=선=미가 결합된 근대의 이성과 그에 따른 정상성을 상징한다면, 지하란 비이성적인 제반 모든 것으로서의 비정상성을 상징한다. 즉, 지하 생활자는 이성이 진리이며 법칙이므로 인간이 이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정언적 명제를 과감히 거부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매우 복잡한 존재이므로 이성이 인간에게서 차지하는 것은 지극히 미미한 부분이며 그것만으로 인간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성에 따른 객관적 법칙 - 책에는 2X2=4로 예시가 되어 있다. - 따위는 모조리 무시되며,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주관적인 느낌과 감정이다. 그래서 지하 생활자는 인간의 삶을 규정화하고 이성의 법칙에 따라 발전시키려는 모든 시도들 - 대표적으로는 과학,사회주의 등등 - 을 부정한다. 지하 생활자에 눈에는, 사회주의란 이성에 의존한 절대적 법칙성에 따라 사회가 발전한다는 가정 하에 인간을 몰개성적이고 기계적인, 자유가 없는 노예적 존재로 만드는 '개미집' 따위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비판은 확실히 이성 절대주의라는 근대 철학의 장벽을 뛰어넘지 못한 맑스에게는 유효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놓여진 객관적 조건 하에서 주체적으로 상황을 인식하여 그를 자신의 필요에 맞게 변화시키려 한다. 이를 간단히 말하면 '자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자유를 추구하려 하므로, 모든 인간이 자유를 누림에 있어서 가능한 한 덜 제한이 가해지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 법칙과 신의 대변인으로서의 이성에 근거한 '절대적 발전'은 없을지 몰라도, 인간의 필요에 근거한 '존재적 발전'은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바로 절대적 발전이 아니라 존재적 발전을 추구하는 운동이며, 이 필요성엔 도스도예프스키가 말한 인간의 여러 다양한 욕망들과 비이성적인 것들도 포함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필요에 의한 자유는 아직 불완전하다. 여기에는 객관적 조건에 의한 자유의 제약 외에도,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점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적 제약 또한 있다. 모든 이는 경험해 온 물적 토대가 다르며, 이에 따라 물적 토대를 인식하는 방식 또한 다르다. 게다가 인간은 자신의 인식을 타인과 공유할 수 없다. 따라서 개인 간의 필요의 자유가, 다른 말로 '이해관계'가 충돌하게 된다. 인식 공유의 불가능성은 인간이 타인에 의존할 수 없이 독립적으로만 세계를 인식하게 만드는 자유의 토대이기도 하지만, 모든 이에게 해당하는 보편적 의미의 자유를 이룰 수 없게 만드는 규제이기도 한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대' 혹은 '협력'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모든 이의 자유를 최대한도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자유의 실현을 위해 공동체로서 협력해 나가는 방식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물론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는 과도기적으로 '계약'이라는 체제를 사용하여 이것이 유일한 해결책인양 선전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사회 주체 간의 권력 관계가 불평등하며 자유 경쟁이 불가능한 조건이라면,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계약 따윈 존재할 수 없다. 계약이란 계약 당사자들의 입장이 동등할 때나 가능한 것인데, 사실상 자유 경쟁 상태는 절대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대와 협력을 통해서 이러한 권력 관계를 무효하고 모든 이가 실질적으로 평등한 지위를 획득한 가운데, 최대한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게 해야한다. 사회주의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것이다.


만인이 행복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인간의 비합리성, 다른 말로는 인간에 대한 합리적 이해에 대한 어려움은 분명 고려되어야 하며, 개개인의 행복에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사회주의는 이런 것을 도외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파편화 되어 있었던 개인 간의 연대를 통해 가능한 한 많은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을 꿈꾸는 것이다. 공동체를 통해서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함으로써, 그리고 집단적 발전을 이룸으로써 인간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범위가 확대되는 것. 또한 그리하면서 개인에 대한 공동체에 의한 규제도 점점 소멸해 가는 것, 즉 개인의 복락을 추구하기 위한 공동의 규범을 점차적으로 최소화 해가는 것. 그것이 사회주의로 딱지 붙여진 사회 변혁 이론의 골자다. 이것은 도스도예프스키가 생각하는 개미집이 아니라 수정궁이다.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주체적 인간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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