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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 최옥란님과 광화문추모식, 그리고 2007년

[3년전] 최옥란님과 광화문추모식, 그리고 2007년

 

 


(아마, 최옥란님이 아래 결의문을 쓰신 게 2001년 12월 3일 명동성당 천막농성을 시작하던 겨울이고, 이듬해 봄이 오던 3월 26일 숨지셨을 겁니다. 다시는 나같은 사람이 없어야 한다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혁'을 외치던 장애해방운동가 최옥란님의 당시 장례식은 생전에 故人이 투쟁하던 명동성당에서 노제를 지내려 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끝내 치루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노제를 '사이버 분향소'로 대신하던 그해 봄을 아프게 기억하며, 민주노동당 서울당원대회에서 다시금 열사의 노제를 추진하겠다는 박경석님의 결의를 떠올려 봅니다. 3월 26일 금요일 광화문에서 최옥란님을 추모하며 '차별철폐'의 촛불들과 '기초생활제도 개선'의 함성들로 함께 했으면 합니다.)


<故 최옥란님의 2001년 명동성당 농성 결의문>

명동성당 농성을 결의하며...

어느새 추운 겨울이 벌써 성큼 다가왔습니다. 안녕하십니까? 12월 3일부터 명동성당에서 "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하여 텐트를 치고 농성을 계획하고 있는 최옥란입니다. 저는 1급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최근에는 목 디스크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제가 추운 겨울에 텐트농성을 결심한 것은 일도 하지 못하게 하면서 최저생계비 아니 생존자체도 보장하지 않고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때문입니다.

저는 청계천 도깨비 시장에서 노점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런데 기초법이 시행되면서 정부는 저에게 노점과 수급권 둘 중에 한가지를 선택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저는 의료비 때문에 수급권을 선택하고 노점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노점조차도 포기한 저에게 정부는 월 26만원을 지급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시청과 구청 그리고 동사무소를 찾아다녔습니다.

제가 지불해야 하는 약값만 해도 26만원을 넘는데... 아파트 관리비만도 16만원인데... 도대체 나보고 26만원 가지고 어떻게 살라는 건지? 그러면서도 최저생계를 보장한다는 것인지? 처음에는 실무과정에서 착오가 있으려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도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최저생계비가 워낙 낮게 책정되었을뿐만 아니라 장애로 인하여 추가로 지출되는 비용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의료비도 비급여가 많아 저같은 중증장애인도 모두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도대체 약값도 안 되는 생계비로 어떻게 살라는 말입니까? 그래서 보건복지부장관에게 국무총리에게 민원을 제기했지만 아무런 답변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답답합니다. 주위 사람들의 도움과 빚에 의지해야 하는 내가 너무 한심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최저생계를 보장한다는 기초법이 너무나 원망스러웠습니다. 한때는 죽음을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수급권을 반납하고 노점을 다시 시작하려고도 했는데, 한 번 반납한 노점자리를 다시 얻기란 불가능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명동성당에서 그것도 추운 겨울에 텐트농성을 결심한 것은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비단 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서부터입니다. 수많은 수급자가 그리고 차상위 계층이 말도 안 되는 제도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는 현실은 저에게 한편으로 힘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명확히 해주었습니다. 저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저와 꼭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조건이 저와 같은 행동으로 표출되지 못하게 하는 것일 뿐이지 정부를 원망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텐트농성을 계획하고 결정하면서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이 투쟁이 저 혼자만의 투쟁이 되지는 않을까? 나의 투쟁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많은 단체에서 저의 텐트농성에 관심을 가져 주시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텐트농성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정말로 저 같이 가난한 사람들의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로 거듭나기를 희망합니다. 벌써 두 명의 수급권자가 자살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더 이상 수급자들이 자살하거나 저 같이 자살을 생각하지 않도록 바뀌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시민, 사회, 장애인 단체에 부탁드립니다. 비록 지금은 저 혼자 텐트농성을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저와 함께 하리라는 믿음으로 시작합니다. 저와 같은 사람들이 분명 많을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많은 단체들이 저의 투쟁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비록 경험은 많지 않지만 정부를 상대로 하는 투쟁에서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농성에 지지를 보내주십시오. 그리고 저의 투쟁이 꼭 승리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이 모두가 여러분들의 두 팔에 달려있습니다. 저는 분노를 표출한 것일 뿐입니다. 이 분노를 더 모아서 큰 힘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더 이상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유지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그럼 명동성당 텐트에서 뵙겠습니다.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수급자 최옥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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