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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도 술프다

8월 첫째주에 어린이집을 방학을 하여

부득이하게 아이들이 아빠에게 갔다...

 

아직 까지 내 품을 벗어나지 못하는 둘째는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하여간 조금의 틈도 없이 온전한 시간만이 요구되는 육아에 지쳐 있던 터라

휴식이 필요하기도 하였다.

 

일요일 아이들을 낮잠 자는 시간을 틈타 서울로 돌아왔다.

 

11시 30분 쯤 아이들이 긴 낮잠으로 밤에 잠을 자지 않아

영석이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나와 있단다.

작은 아이는 징징대고, 큰 아이는 공차기를 하잔다

 

한꺼번에 두가지 욕구를 해결해 줄라니 평소의 나처럼 손이 두개임이

감사할 것이다.

 

자정이 가까와 설에 도착해 샤워한다.

아이들 있을 때는 샤워도 초재기처럼 하는데

너무나 여유로운 샤워 시간이다.

비누칠도 한번 더하고, 물로 오래동안 깨끗이 씻는다.

어느 틈에 "아-- 좋다"라는 말이 나와 머슥하게 혼자 웃는다.

"위기의 주부들 2"를 본다.내가 위기의 주부인가?

시간적 설래임과 여유에 잠이 오지 않는다.

 

안방에 이불을 두개나 깔고도 아이들이 구르고, 말고 놀아

좁았는데 하나만 깔아도 자리가 많이 빈다. 여유있는 공간!!

이런 것을 말한다.

 

아침 6시30분에 눈을 뜬다. 더 잔다.

아이들 챙겨 어린이 집에 보내지 않아도 되니

달콤한 아침잠을 더 챙겨 본다. 아침 시간이 이렇게 길었나 싶게 여유 만빵이다.

 

월요일 출근하여 일하고 퇴근후 친한 직원과 맥주 바에 가서 여러가지

맥주를 마신다... 시끄러운 메탈음악을 듣고 있는데 영석이 전화 왔다.

애들이 울고 불고...나는 빠에 있음을 자랑하고 음악도 들려준다.

 

한때 메탈그룹에서 드럼을 치던 영석이 부럽다는 눈치!!

 

화요일 한남언니들 만나서 또 맥주를 마셨다.. 아이들 둘씩 있는 우리들

"새끼들 " 운운하며 엄마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간을 전혀 낼 수 없어 분기에 한번 만나는 우리의 아쉬운 회동에 대해서도

불안한 40대의 삶에 대해서...난 아직 30대 이지만 곧 바라보고 있으므로

 

영석이 전화 왔다 애들을 목욕 시킨단다. 좁은 공간에 둘을 넣으니

작은 애가 형을 쳐서 형이 작은 애를 밀었다는 이야기와

그래서 래곤이를 한대 때려 주었다는 이야기..

애를 패지 말아라 아동학대로 고발한다며 약간 협박하고

먼저 작은 애를 물에 당궈 놀게 한다음 래곤이를 넣어야 한다는

생활을 지혜를 알려준다.

 

3살 터울 나는 아이들 잦은 다툼과 그것을 중재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큰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 주어야 한다.

큰 아이는 이유 있는 행동을 하지

작은 아이처럼 즉흥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래곤이의 합리적인 이유를 충분히 경청하고 그래도 무엇이 잘 못되었는지 알려주어야한다.

영석은 그래도 동생을 때리는 것은 나쁘다며 아들을 때리다니

에고 무식한 아빠다..

 

작은 애가 자꾸 자다가 깨서 30분마다 선잠을 잤다고 한다.

고생한다 위로하지만 속으로 "에고 샘통"이다한다.

 

애들아 난 지금 "슬프고도 술프고 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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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

여름 휴가를 갔다온지 일주일이 지났다.

 

출발부터 평탄치 않았던 집중 오후

원주까지 갔다가 7시간 만에 닭갈비 먹고 돌아왔다.

기력 상실 집에서 비와 함께 쳐져 있다가

속초에 갔으나 여전한 비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했다.

 

동계올림픽을 주최하겠다는 런투평창은 거의 폐허가 되었고

자연에 가까워 보였던 자연은 그만큼 처참하게 망가져있었다.

 

농작물이 잘려나간 밭과

가정집의 뒤벽을 넘어 온 흙들..

정말 자연은 무섭다. 겸손하게 살아야지

 

속초에 어렵게 도착하여 일관되게 시체놀이를 하던

우리 부부와 아이들은

 

막간 비그침을 이용하여 동해 망상해수욕장의 통나무 집으로 이동하였다.

영석이는 배가 아프다면서 일관된 환자자세였고

래곤이는 오래 간만에 만난 비오지 않는 날씨와 차 없는 거리로 흥분하여

발에서 축구공을 놓지 않았다.

 

평소 많이 달려보지 않은 서울아이 티를 내듯이

여러 곳에 찰과상을 입고...그래도 <축구하기 위해 태어난 아이>임을 자청하며

열심히도 놀았다.

 

초복이라 시댁 식구들을 초대하여 삼겹살을 구워먹고

저녁에는 연금매장에서 가격 저렴한 병맥주를 열심히 사먹었다.

 

은미와 고즈넉한 밤

가끔은 돈이 평화를 부를 때도 있다는 짧은 생각!!

 

영업하지 않는 카페 테리아에서 래원이는 열심히 뛰어 놀고

또 막간 은미와 난 병맥주를 먹었다...  아주 꾸준히

 

래곤이 이렇게 묻는다.

"엄마 엄마는 은미이모하고 좋은 친구야

  맨날 친하게 둘이서 술을 먹어?'

 

좋은 친구?

10년이나 차이나는 나의 어린 여동생이

이제 나의 10년지기 친구가 된 거 같다...ㅋㅋㅋ

 

래곤이는 흐리고 추운 날씨에도 수영을 하더니

반짝 해가 갠 떠나는 날 본격적인 수영을 하였고

고래 화석 박물관에서 공룡과 화석을 본다음

천곡석회 동굴 방문하였다.

 

래곤이 머리에서 떨어질 듯한 석회암과 습기가 무서웠는지

안전모를 묻잡고 고갤 들지 못한다... 정말 무섭단다.ㅋㅋㅋ

 

동해의 자랑인 해물찜을 땀을 뻘뻘 흘리며 먹고

포만감에 설로 돌와  왔다.

 

돌아 오면서야 도데체 돈을 얼마나 쓴거야 하며 짧고 잘은 머리가 돌아간다

아이고 두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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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힘들다

 

처음에 강원도에서 설로 올라온 래곤이는 잘 적응하는 듯 하더니

이제 슬슬 문제를 보이기 싫어한다.

 

월요일날 남자애들이 너나 없이 좋아하는

태권도를 너무 싫어한다. 월요일날 태권도가 싫어서

일요일부터 어린이집 가기 싫은 걱정이다.

 

남자애들에게 가정 인기 많은 친구와

목조르기 한판으로 원수가 되었다.

갠 너무 친구들을 괴롭히는데 그래도 인기 많은게

참 이상하고 속상하다고 한다.

 

목조리기 당해서 거의 죽을 뻔 눈물이 났다는 아이는

선생님께 구원 요청을 했으나 반응이 없어서

구원요청에 대한 무기력증에 빠졌다.

 

별로 비난 받지 않고 자란 아이는

선생님의 지적을 단순히 사건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본인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 들여 좀 기죽었다.

 

티격태격하는 스트레스를

어린동생에게 푸는 듯 동생을 몰래 몰래 때리는 듯도 하다.

 

잘 지내야 될텐데...모든 것이 내 맘 같지는 않다.

그런게 아이의 인생 중에 하나고 난 어떻게 위로해야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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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나를 위해

금쪽은 안돼어도 은쪽같은 하루를 휴가내고

<비폭력대화와 갈등다루기>라는 강좌에 참석했다.

 

어느날 내담자와 엄청나게 갈등하고 있는

어느새 폭력적인 언행을 서슴치 않는 나와 동료를 보며

슬픈 결심이었다.

 

임상심리상담가는

20세기는 개성과 자기발전으로 자기영역을 확장한 것이 결국 폭력으로 이어진다면서

21세기는 상호등등과 타인과의 연결성이 중요하게 된다고 한다.

 

3살박이가 걸음마를 배울 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부모가 달려가  돌부리에게 "때찌! 때찌!"도

하지 말라도 한다.

그러면 아이는 내가 아닌 다른 것에 대한 비난과 폭력을 배우게 된다는 거다. 

 

"니가 조심해서 걸었어야지" 하고 아이를 나무라지도 말라도 한다

그러면 아이는 나에 대한 비난과 폭력을 배우게 된다

 

그냥 아이 아픈 그 상황을 받아 들이고 아이의 아픔과 슬픔을 공유하는 수 밖에 없다고.

 

타인을 놓아주고 연결하는 것에 대해 자유와 책임이 함께

공존하는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는 것인가 보다.

 

비폭력의 지름길은 세련된 기술을 버리고

타인도 나와 같은 역사와 슬픔과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

인격체라는 인정..

 

하여간 뭘 배웠느냐 보다 온전히 나를 위해 휴가된 하루가

괜시리 대견하고 즐거운 하루였다... 

 

남편은 내가 정신과 상담 받는 다고 수선을 떨고 있지만

난 맘이 편해진다...조금 그를 놓아 주고 있나보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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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다. 비우다.

집을 뒤집고 청소했다.

둘째 낳고 복직후 1년에 한번 한 대대적인 행사가

시작부터 녹녹하지 않았지만 하여간 금요일 저녁에서 일요일 저녁까지 매달렸다.

 

우선 안방 서랍장을 차지 하고 있던 영석이의 서랍을 비웠다.

대부분 엄청나게 사둔 속옷인데(유난히 욕심이 많다)

약간만 눅눅해도 입지 않고 싸들고 다녀 설 집 것은 거의 무용지물이다.

 

작년에 정리할 때도 그래도 미쳐 비우지 못한 공간인데

이번에 확 정리해서 아이들과 나의 서랍장으로 온전히 사용하고자 한다.

 

토요일 청소를 위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냈다.

원래 매주 토요일 출근하지 않아 등원하지 않았던 아이들은

쭈뼛쭈뼛 싫어했지만 아이들은 간만에 없는 평안한 오전시간 커피조카 입안에서

여유롭게 머무는 듯 했다.

나만의 시간이라는 것이 이렇게 나른하고, 조용하고, 안락할 수 도 있다.

 

청소하다 보니

사용하지도 못하면서 쌓아둔 재활용 품들이 너무 많았다.

6년차 벗겨진 후라이 팬 부터, 솥, 주전자, 검게탄 냄비

충동적으로 구매한 싸구려옷에, 남이주는 호의를 무시못한 것들

재미로 들고 들어온 알뜰매장 재활용들까지

뒷꿈치 까져 신지 못한 신발....

 

간소한 살림이 얼마나 생활을 정리정돈해주는지

맘 굳게먹고 버리는 것도 뼈를 깍듯(?) 힘든 선택이었다.

 

적게 취하고 적게 부리고 합리적으로 소비하면서 살아야지

덕지 덕지 불은 살림 처럼 내 삶도 그렇게 군살만 붙어 있었나 보다.

 

버리는 것이 고통스러운 나의 증후군 정말 버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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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품을 팔아야지

한심한 스머프...님의 [죽음의 공포..] 에 관련된 글.

주변의 죽음을 맞이한 건 시아버지가 처음이다.

 

집안이 워낙 장수하는 집안이라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외할아버지가

모두 다행이도 건강하시기 때문이다.

 

시아버님은 정말 지역사회에서 인정받는 인자한 분이셨다.

매력적이고 인품있는 가정적이고 멋쟁이인...

나도 친정아버지와 완존히 다른 그분의 매력에 혼자 흐뭇했던 적이 있었는데

 

어느날 부터 아버님이 많이 마르셨고,

둘째를 낳을 때쯤 영석이는 자기 집으로 돌아 갔는데

아버님의 건강이 예전 같지 않은 거 같다고만 이야기하는 통에

게다가 만삭이라 몸이 무겁고, 만사가 귀챦았던 시기라

솔찍히 큰 신경쓰지 않았던 나의 무심도 지금 생각해보면 참 죄송하단 생각이든다.

 

그리고 뭐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보시기도 전에 아버님은 운명하셨다.

 

집을 몇번씩 들어 먹고 무던히도 속썩이면서도 인생을 즐기셨던

어머님이 통곡하셨고,

 

정신병원에 들락날락하며 자기자식도 아버님이 다 키우게 만들었던

형님이 통국했다.

 

영석은 울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정말 멸날 몇일 새벽부터 들이 닥친 신도들의 복음성가에

유족들은 힘들어 했는데, 우리 아버님도 저렇게 부지런히 남의

명복을 빌러 다니셨겠다 하며 다시 슬펐다.

 

아버님이 남겨놓은 부채로 상속포기작업을 하면서

영석은 혼자가 상속을 포기하고 형님과 어머님이 부채 및 재산을 상속하는 것으로

작업을 했는데..

어머님과 형님은 내가 왜 그 빚을 상속받냐고 펄펄 뛰시고

나도 영석이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

 

펄펄 뛰는 두분께

"같이 살면서 진 빚인데 그럼 책임지는 모습이라도 보이라"는 침착하고 싸늘한 한마디

아버님이 남긴 것이 빚이든, 재산이든 한번에 다 버리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그렇게 난 개인적인 준비도 없이 아버님깨 해드린 것도 없이

아버님이 돌아 가셨다.

 

연배의 어른을 보면 그 매력적이었던 모습이 그리워 지곤한다.

 

말기암의 고통을 가족에게 내색 없이 어찌견디셨을까?

그분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였을까?

나에게 하고 싶으셨던 말씀이 있으셨을까?

다시 보고 싶어졌다...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발품을 팔아서 평소에 안부를 물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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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내보다

 엄마가 아프고 막상 서울서 병원을 결정해야 되니

 어디로 할지 난감 그자체다.

 

평소 친분 있다 싶었던 의사 선배들은

그 경륜이 있어서인지 대수롭지 않다, 아무병원이나 가라하고

원하는 정보를 주는데 성의가 없다.

뭐 또 병원이야기냐 하는 정도의...

 

하여간 친구중에 신경정신과 하는 친구한테는 이미 신세도 지고 있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연락도 하기 싫고 하여

영석이 친구중에 교수님 소리 듣는 친구한테 조언 좀 들어볼까하고

영석이한테 한바퀴 돌려 말을 건낸다.

 

이영석 한마디 "어떻하냐 나는 아는 의사 없는데"

 

시아버지 돌아 가실 때도 아무런 의학적 신세 지지 않고 고스란히

아버님의 사망을 받아 들인 아이니...물론 시아버지의 사망이

영석이의 탓이라는 소린 아니다..

 

난 그래도 혼자 급한 맘에 영석이 친구의 싸이(이 친구 열심히 한다)에

사실 안면있는 학교선배이기도 하니까 자위하며

질문을 남긴다. 그래도 너무 한다리 건너 두다리라고 다시 지운다...

 

그 망설임의 짧은 틈새에 이선배가 내 글을 보았는지

엄마 끌고 종합병원 지친 순회를 하고 돌아오니

내 싸이에 "실수로 글을 지웠습니다로 시작하는..."라는

친절한 글이 남겨져 있다.

순간 울컥하는 무엇이...

 

내 사내보다 남이 이렇게 친절할 수도 있구나...

 

다시 읽어 보니 온통 남편 욕인거 같은데

영석이에 대한 비난이 아니다..그냥 내가 느끼는 ....그럼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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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아프다

평소 기골이 장대한 엄마가

허리가 아파 병원 물리치료와 주사를 맞았다.

당뇨수치가 평소 보다 조금 높게 나온 엄마는

만팔천원에 맞은 주사가 부작용나 운신할 수 없게되어

강릉아산 응급실로 직행했다.

 

강릉아산은 10일이나 아무일 아니라며

엄마에게 퇴원을 종용했고, 엄마는 운신할 수 없어서

진통제를 맞고 버텼다.

 

결국 엄마는 허리에 맞은 주사가 염증으로 곪았다는

판정으로 3주나 병원에 입원 염증제게술을 받았다.

누렇게 튜브를 통에 나오는 고름....

 

하여간 병원에서도 술병을 놓지 못한 아빠를 보며

엄마가 "언제 죽나 했더니 먼저 죽게생겼다"

하니 한숨섞인 혼자말을 보며

참 결혼이 그렇게 끊기 힘든 족쇄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현재 재발 수술을 하라는 병원판정과

아빠에게 엄마를 맏길 수 없는 우린 어떻게 해야할 지 갈팡질팡이다.

 

딸들이 모여 모두 아빠 성토를 하니

엄마 웃으며 "요즘은 밥상도 펴준다"한다.

 

그걸 잘해주는 거라도 그렇게 만족하며 살아야 하나

몸이 부스러질때까지 말이다.

 

부부관계란 우습다.  각자 알아서 살아야지...

누굴 탓하고, 누굴 위해 사냐....

 

아픈 사람만 불쌍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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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턱쏘다!!

래곤이 어린이집 친구중에는 유빈이라고

부모님이 산동네 떡볶이집을 하는 친구네가 있다.

 

언제 보육연대를 한번 해보까하고 김밥과 떡볶이를 빙자하여

방문했었는데, 너무 어린 부부가 아이둘을 키우는데

아이의 아빠는 거의 집에 있고, 통통하고 젊은 엄마가

떡볶이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보육연대로 비비적 거려 볼까 했는데

젊은 엄마가 아이를 교회에 보내라는 전도성 발언에

나의 보육연대의 꿈을 깨어지고 말았다.

 

하여간 월요일에 미쳐 밥을 취사예약하지 못한 나는

래곤이가 또 친구네 집에 방문하겠다는 계획을

못이기는 척하고 따라 갔다.

 

래곤이는 친구와 얼싸안으며 우리는 영원한 친구임을 다짐하는

뭐 그런 약속같은 것을 하고 놀고 나와 래원이는 김밥과 떡볶이

를 먹고 저녁 허기를 채웠다.

 

이번엔 래곤이 주말에 놀이터에 숨겨놓은 보물을 찾으러 가야겠단다.

놀이터에서 래곤이 래원이는 뛰어놀고, 난 저녁 바람을 맞으며

요가 비스므레 하게 몸을 풀고 놀았다.

 

바람이 소리내어 지나가고, 어둠이 사뿐이 어깨위로 앉을 때쯤

오래간만에 맞은 고기냄새에 살판난 모기를 등살에 이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왓다.

 

월요일이니 까이꺼 대충 씻기고 잠이들면서

매일 밥하느라고 달라 붙는 아이를 떨구고, 밥 달라고 아우성하는

아이에게 소리치던 고단한 노동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한 시간들...

이제 아이들과 나를 위해 자주 한턱을 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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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책

금요일 영석이가 지친 몸을 이끌고 설로 올라 왔다고 한다.

저번 주는 너무 아이들이 보고 싶다면서

전화로 하소연하였었다.

 

그럼 다독이며 빨리 아이들 곁으로 돌아오라고 도닥였어야

하는데 참 나도 문제다..

 

"아이들 보고 싶다는 말이 이제서야 나오니?

 참 이르기도 하다. 이렇게 떨어져 산지 2년이 되어간다"며

 타박이 앞서니 말이다.

 

모든 상황을 즐기지 못하고 갈등으로 몰고 가는 나의

대화에도 문제가 있는거 같다.

 

7월에는 휴가를 내서라도

"폭력대화와 갈등다루기"라는 그룹 상담을 받아봐야겠다.

 

4만원 입금...

 

어느 선배는 나보고 이렇게 된 상황을 자책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것도 자책의 일종인가 ?

 

하여간 난 좀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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