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분명 처방을 둘러싼 풍경-
오늘 아침, 지역의 한 노동조합 간부와 전화로 직업병 투쟁 관련 고민을 나누던 중이었다. 느닷없이 질문이 날라왔다.
“근데, 성분명 처방이 뭐가 문제인거에요?”
그렇다, 오늘은 다음 달 예정된 정부의 ‘성분명 처방 시범실시’에 반발한 개인병원의 의사들이 오후에 집단 휴진을 한다는 날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침 출근길에 우연히 듣게 된 라디오 뉴스에도 이 건과 관련한 관계자들이 나와서 각자의 입장에 대해 전화인터뷰를 하고 있기도 했었다.
‘이게 지역의 한 금속노조 간부가 관심을 가질 정도의 사안이였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찰나였다. 정부의 성분명 처방 사업 관련 의지는 이미 올해 초부터 공공연하게 의사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었고, 의협에서 날아오는 스팸메일(?)을 통해서 의사들의 논리도 익히 알고 있던 나는 그저 ‘효과도 없고 밥그릇 싸움이나 하는 정책들 가지고 쌩쇼들 하고 있네’ 라는 냉소만 흘리고 있던 와중이었기 때문이다.
성분명 처방?
성분명 처방은 지금처럼 의사가 약의 상품명이 아니라 안에 들어있는 성분이름을 가지고 처방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타이레놀의 성분명은 아세트아미노펜이다. 문제는 타이레놀이라는 이름을 딴 약이 열 가지가 넘고, 아세트아미노펜이라는 성분이 들어가 있는 약은 수백 가지가 넘는다는 사실이다.(의사들이 사용하는 의약품 검색 사이트에서 검색해본 결과 ‘타이레놀’이라는 이름으로는 12종의 약이 유통 중에 있었으며, ‘아세트아미노펜’을 포함하고 있는 약은 순수 아세트아미노펜이 112개, 다른 성분과 섞여 있는 아세트아미노펜이 304개나 되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웬만한 종합감기약에는 거의 다 아세트아미노펜이 용량의 차이는 있지만 포함되어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의사들이 싼 카피 약(오리지널 약을 모방.복제하여 만들어내는 약)은 안 쓰고 비싼 오리지널 약(제약회사가 직접 연구.개발한 약)만 써서 국민들의 약제비가 상승’하므로 ‘약가 절감’을 위해 성분명 처방을 하겠다고 한 것이다. 여기에 의사들은 ‘어떤 약을 선택하는지는 의사들의 전문 영역인데 미세한 용량차이에 의해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책임을 면해 주지도 않으면서 건강보험 재정 절감만을 위해 정책을 도입하는 것은 문제’라면서 집단적인 행동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약사들은 ‘의사의 잦은 처방 변경 때문에 약국의 재고가 재앙 수준’이라면서 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정부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양한 제약회사에서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약을 만들게 되고, 이 수백 가지의 약 중에서 의사는 한 가지 약을 고르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핵심은 의사와 약사의 권고를 따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다양한 약 중에서 어떤 약을 ‘구매’하게 할지 결정하는 걸 의사와 약사 중 누가 하게 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간접 선택의 과정과 정부가 운운하는 비싼 약가의 이면에는 제약회사의 이윤 챙기기가 있다
약가 절감? 꿈 깨세요
의사들이 어떤 약을 선택하느냐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약의 효과가 아니라 어떤 제약회사의 로비를 받느냐이다. 대학병원의 곳곳에는 말끔한 수트를 차려입은 제약회사 영업직들이 진료실과 연구실을 누비면서 의사들을 만나고 있다. 임상 수련을 위해 내가 참관을 했던 유명한 한 선생님의 진료실에는 환자들도 넘쳐났지만 제약회사 직원들도 넘쳐났다.
인턴 때 모 의국의 회식에는 제약회사 직원들이 예의 그 말끔한 수트를 차려입고 동석을 해서 공손히 술도 따라 주고, 고개를 돌려 공손하게 술을 받아 마시고 (심지어 한낱 인턴인 나한테도 말이다.) 회식비를 전부 계산했다. 그날 먹은 쇠고기 등심은 최악의 맛이었다.
제약회사 직원들은 본인의 회사에서 개발한 약을 가지고 임상실험을 하는 그 교수님을 해외 학회를 보내드리고 본인들의 약에 대한 효과를 발표하게 한다. 이를 위해 비행기 표와 호텔을 미리 예약해드리고 하루의 발표를 포함한 며칠간의 외유를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이렇게 들어가는 비용은 결국 상품인 약의 가격에 반영되고 이러다 보니 약값이 오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정부가 약가가 높은 게 문제라면 연구비나 의국 지원금처럼 다양한 형식으로 진행되는 리베이트를 근절하고 약가를 낮추는 게 우선이다. 성분명 처방을 하게 되면 제약회사의 영업직 직원들은 약국으로 향하게 될 것이므로 결국 약가를 낮추는 효과는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미미할 것이다. 영업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 수는 있지만 영업 비용이 줄었다고 약값을 인하할 제약회사는 이 땅에 없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상품명에 따른 약 효과의 차이? 의대 교육 과정부터 바꾸세요
나는 환자한테 직접적으로 약을 많이 처방하는 의사가 아니라 수백 가지 의약품의 이름도 모르고 의사들이 이야기하는 ‘미세한 차이에 의한 부작용’이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 그래서 나는 처방전을 낼 경우에 의약품 검색 사이트에서 적당한 성분명을 찾아서 우리 병원에서 처방이 가능한 상품을 골라내서 처방을 한다. 아니면 의사 친구한테 전화를 해서 우리 병원에 해당 성분을 가진 약이 뭐가 있는지 물어본다.
나는 내가 상품명을 잘 모르는 게 누군가의 건강을 위협하는 문제라고 느낀 적이 없다. 문제가 있다면 엄청나게 많은 약 중에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약은 오로지 우리 병원의 어느 의사가 신청해서 병원으로 들어와 있는 약뿐이라는 것이다.
수백 가지 상품의 ‘미세한 차이’가 정말 문제라면 의과대학의 교육은 완전한 실패다. 의과대학 학생들은 상품명이 아닌 성분명으로 약에 대해 배우고, 의사가 되기 위한 시험에서도 약의 성분만을 문제로 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백 가지의 상품의 미세한 차이 때문에 성분명 처방이 안 된다는 의사들의 주장 역시 어불성설이다.
물론, 복합되어 있는 성분과 용량에 따라 약의 효과는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어린이나 노인, 또는 특별한 경우에는 이런 미세한 차이가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상품 자체의 차이라기보다는 성분과 용량의 차이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처방에서 조정 될 수 있으며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할 정도라면 환자를 자주 불러서 보거나 환자가 조금의 이상이라도 발생하면 의사에게 문의를 할 수 있도록 하면 되는 문제이다. 그리고 성분명 처방을 생물학적인 효과가 같음이 입증된 약제로 한정해서 그 범위를 점차로 늘려 가면 되는 문제이다.
오리지널 약과 카피 약의 차이? 공부를 좀 더 하세요
그리고 의사들이 주장하는 오리지널 약과 카피 약의 효과 차이, 더 나아가 약의 효과를 이야기할 때에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약의 효과에 대한 연구비는 그 약을 만든 제약회사에서 주기 때문이다.
얼마 전, 고혈압에 대한 전 세계적 치료지침이 바뀌었다. 고혈압이 있을 경우에 1차적으로 사용하라는 약제가 갑자기 바뀐 것이다. 물론, 치료지침의 변화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훌륭하다고 알려진 논문에 실린 결과 때문이었으며 지침은 상품명이 아닌 성분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치료 지침을 바꾸게 만든 논문의 연구비는 해당 성분으로 된 약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만드는 제약회사가 지급했다는 의혹이 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의혹이 사실인지 정확히 확인을 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의혹에 대해 대부분의 의사들이 ‘그러면 그렇지’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편, 이렇게 논문을 통해 다양한 약의 효과를 비교해서 어떤 약이 더 좋다는 의견은 대부분 논문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런 논문이 공개 된다는 사실자체에 ‘출판 편견(publication bias)’이라는 것이 작용한다는 사실도 유념해야 한다.
출판 편견은 논문이 세상에 공개되는 것은 ‘차이가 있음’을 드러내는데 치중한다는 것이다. 즉 약의 효과가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서 한 연구면 ‘차이가 있다(기왕이면 연구비를 대준 제약회사의 약이 더 효과가 좋다는...)’는 결과가 나올 경우에 논문을 쓰게 되고 이 논문이 세상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차이가 없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외과의사 봉달희’라는 한 드라마의 ‘안중근’이라는 의사가 소중했던 이유는 과장의 신약의 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 효과가 없음을 넘어 부작용이 있다는 어마어마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발표’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신약을 만든 제약회사 돈을 받아서 진행 했을 게 뻔한 그 연구의 결과를 과학적으로 솔직히 밝혀 낼만큼 정의감이 있고, 그것을 밝혀낼 수 있을 정도의 학문적 능력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의사들이나 약사들이 어떤 약이 어떤 약보다 더 좋다고 이야기할 때는 근거가 되는 논문을 꼼꼼히 살펴야 할 뿐만이 아니라 연구비를 어디에서 줬는지 같은 약에 대해 다른 연구 결과는 없는지 신중히 살펴야 하는 문제다. 따라서 오리지널 약이 카피 약보다 효과가 좋다는 의사들의 생각은 그저 본인의 눈앞에 보이는 것만 믿기 때문이고 공부가 부족한 탓이라 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제약자본
이렇게 성분명 처방을 둘러싸고 정부와 의사가 갑론을박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제약회사와 약의 상품화라는 앙꼬가 빠진 진빵이다. 이번 정부의 성분명 처방은 국민 건강에도, 건강보험 재정에도 별로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제약회사가 자신들의 이윤과 자신들의 상품(약)을 많이 팔기 위해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환자들의 선택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행위를 중단하지 않는 이상 지금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약값을 낮추고 재정을 절감하는 것이 목표라면 정부의 정책 방향은 제약회사의 제 배를 불리기 위한 악순환의 고리를 잘라내는데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약의 효과가 걱정이라면 의사들은 효과에 대한 객관적 근거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제약 회사와의 커넥션을 과감히 끊어내야 한다. 연구 성과와 연구의 의의를 빌미로 약값을 올리는데 기여하는 지금의 행태를 당장 중단하고 국민들에게 호소를 해야 한다.
약을 만들고, 약의 효과를 만들고, 약을 선택하게 만드는 제약회사의 손아귀에서 놀고 있는 정부와 의사들의 꼴이 우습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익에 준해 조용히 강 건너 불구경을 하고 있는 약사들도 우습다. 그리고 어떤 정책이 도입 되더라도 결국에는 약을 만들고, 효과를 만들어서 퍼뜨리고, 약을 선택하는 과정에 개입해서 자신들의 이윤을 불려갈 거대 제약자본들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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