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5/01/07 19:09
Filed Under 이미지적 인간

연말연시... 그 동안 쌓여있던 영화에 대한 갈증을 해소했다.

정말 간만에 보고 싶은 영화를 보러 혼자 겨울 거리를 타박 타박 다녔다.

몇일간 잠깐씩의 조용한 산책을 통해 만난 영화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룩 앳 미', 그리고 '노 맨스 랜드'까지...

 다이어리에 작은 메모로 남겨있는 내 산책의 동행들을 조금씩 꺼내보려고 한다. 

 

먼저... 노 맨스 랜드.

 

이 영화는 재미있다. 어처구니 없고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그들이 날리는 대사와 조그마한 참호안에서 벌어지는 화해의 가능성과 경계는 영화 속 눈부신 하늘만큼이나 밝다. 영화를 보는 대부분의 시간동안 관객들은 세 주인공의 행동과 말에 웃을 수 밖에 없다.

 


 

보스니아에서 보스니아 내전을 찍어온 다큐멘터리 감독의 극영화 데뷔작이라는 영화는 감독이 다큐를 찍어온 시선과 시간이 얼마나 예리하고 깊은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보스니아와 세르비아가 대치하고 있는 전선의 한 가운데에 덩그라니 무인도처럼 떨어져 자기편도 상대편도 보이지 않는 참호안... 부대 배치를 받고 야음을 틈타 이동하던 보스니아 민병대가 새벽 세르비아군의 공격을 받는다. 담배를 가지고 티격 태격 농담따먹기를 하던 동료들이 모두 사망하고 혼자 참호에 떨어진 한 남자와 다 죽었는지 정찰을 하러온 세르비아 신참 병사... 그리고 깨어나보니 지뢰위에 누워있게된 보스니아의 한 남자...

 

이렇게 세 남자는 전쟁터 한 가운데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을 친다. 적인 그들은 알고보니 한 친구를 같이 알고 있었고, 그냥 어리버리한 신참병사일 뿐이다.

 

그런 그들이 그 좁은 참호안에서 살기위해 버둥대면서 결국에는 서로를 죽이는 비극에 이르고 만다.

 

이들을 구출해 내기 위한 UN의 노력은 가식적이기 그지 없다. 특히 총사령관 쯤으로 보이는 남자의 몰염치에는 화가 날 지경이었다. UN에서 맨날 얘기하는 '평화 어쩌구...'식의 멘트에 구역질이 났다. 심지어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사이를 이간질하는 듯한 발언에서는 나도 모르게 '*팔'이 튀어나왔다.

 

거기에 특종을 쫓아 우왕좌왕하는 언론의 모습... 그들의 사람이 보이지 않는 특종에 대한 집념은 몇 년전 퓰리처상 수상 사진전인지 지랄인지를 가서 느꼈던 분노와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세르비아 병사와 보스니아 병사가 서로 총질을 하고 죽어가는 긴박한 순간... 언론이 한 말은 '찍었어?'가 전부였다. 이러한 그들의 자세는 '여전히 지뢰위에 누워서 죽기만을 기다리는 또 한명의 보스니아 병사가 있는 참호'라는 특종을 UN의 속임수에 내어주며 '전쟁터에 있는 다른 참호와 똑같은 참호'로 인지하는 우를 범하게 만든다.

 

게다가 그 보스니아 병사로 눌러진 폭탄은 EU에서 만들어 진거다. 사람이 터지는 것은 누르고 있는 폭탄이라니... 언론과 UN의 호들갑스런 난장이 지나고 난 뒤에 참호에 똑바로 누워있는 보스니아 남자의 모습은 정말 잔인하게 느껴졌다.

 

'살인은 막지 않으면 동조하는 것'이라는 상투적인 영화속의 대사가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이었다. 작년 김선일씨의 죽음을 지켜보며 느꼈던 분노와 상처가 영화를 보며 고스란히 되살아 났다.

 

전쟁이라는 아이러니 속, 갈등이 모여 있는 작은 공간인 참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경쾌하지만 잔인하게, 그것도 매우 아프게 반전을 이야기한다. 세명의 병사가 결국 모두 죽는 것... 그렇게 전쟁은 절망적인 것이다. 아무리 언론이 쇼를 하고, 미국이.. 그리고 유럽이 영웅주의적 난장을 부려도 전쟁은 '우리'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고, 지뢰위의 병사처럼 잔인한 것이고, 그 모든 상황을 둘러싼 인간 군상처럼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 잔인함에 분노가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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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07 19:09 2005/01/07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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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좋은영화추천

    Tracked from / 2005/01/09 03:34  삭제

    * 이 글은 해미님의 [[노맨스랜드] 경쾌함이 잔인하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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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미 2005/01/07 19: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포스터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무 경쾌하고 밝아서... 하지만 그 경쾌함과 밝음 기저에 깔려있는 군인들의 긴장과 지뢰위의 병사의 처참함이 나에게 남은 이미지이다.

  2. NeoScrum 2005/01/08 0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이 영화를 인터넷에서 구해서 보고 비슷한 시기에 스페인군이 코소보에 '평화유지군'으로 들어가서 하루동안 격는 이야기를 영화화한 '비상전투구역(Guerreros)'라는 영화를 봤는데(실화인지는 모르겠음), 전 뒷 영화가 더 좋았어요. 이라크로 가게 될 한국 병사들, 혹은 보내려는 인간들에게 꼭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기회되면 한번 보세요.

  3. NeoScrum 2005/01/08 0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국내 포스터가 너무 희화화 된 것 같아요. 각국의 포스터들을 찾아봤는데.. 대체로는 아래 주소와 같은 수준이더군요.
    http://www.imdb.com/gallery/ss/0283509/Ss/0283509/NML_Poster.jpg?path=gallery&path_key=0283509

  4. molot 2005/01/08 16: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들어갔어요? 전 잘들어와서 잘 잤는데 기억 속에서 약 삼십분이 공백으로 남아있네요--;;

  5. 해미 2005/01/08 18: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오/ 흠... 기회가 어떻게 생길라나요? 보구 싶어진당... 글구 포스터두 잘 봤어요. 그 정도 수준이 적당했을거 같은데 우리나라 포스터는... 좀 그래요.
    molot/ 잘 들어가셨다니 다행임다. ^^

  6. rivermi 2005/01/09 0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미님 안녕~
    <노맨스랜드>영화볼까보아요~ 추천하시는거죠?^^(봐야지봐야지)

  7. 해미 2005/01/09 0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rivermi//넹~~ 추천하는거 맞습니다. ^^

  8. hongsili 2005/01/09 0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 와서 젤 아쉬운 것 중에 하나가 영화... 자국산, 블록버스터(이를테면 중국 영화지만, 영웅 류) 이외에는 볼 수 있는게 별로 없구만요. 뉴욕같은 데는 좀 다르려나..

  9. 해미 2005/01/09 0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홍실이/ 하긴 미국에 비하면 그나마 한국은 다양성이 남아 있는 나라겠군요. ㅋㅋ '나다의 마지막 프로포즈'도 진행되고 씨네큐브에서 여러편의 영화를 동시에 상영하구 있는 지금... 아주 좋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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