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5/11/25 00:22
Filed Under 이미지적 인간

(스포일러 왕~창 있음다.)

 

정말 당황스러웠다. '여성'들은 모르는 군대 이야기라기에, 이렇게 군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영화가 없었다길래 궁금증이 생겼었다. 그러나... 너무 익숙했다.

 

그렇게 많이 들은 군대 이야기와 군대라는 권력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이런 저런 일들 말고도 우리가 모르는 더 '치명적'인 무엇이 있단 말인가?

 

 

윤종빈 감독은 졸작이라는 이 작품으로 단박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충분히 그럴만 했다. 긴장감 있는 교차편집과 다양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시나리오, 그리고  생생히 살아나는 캐릭터까지... 대단히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했다. 왜 사람들이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지닌 감독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존의 영화처럼 영상이 아름답거나 스타일이 죽이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런 아쉬움이나 부족함이 '군대'라는 상황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더욱 현실적인 힘을 가지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대중성을 지닌 것은 분명하지만 작품성이라는 것은 영화의 '내용'이 소위 '사회비판적'이라는 사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영화에 묘사된 상황들이 너무나 익숙했다. 보통은 군대를 안 가게 되는 여성이 그리고 가 본적도 없는 내가 익숙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그것은 아마도 소위 '운동권'들의 군대이야기속에서 불평으로 혹은 불만이라고 얘기되었던 것에 대한 기억들이 연이어지면서 그 상황들을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미 권력과 계급에 의한 폭력관계라는 것이 굳이 군대가 아니어도 우리 사회에서는 익숙한 일이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린치와 비인간적인 또는 비합리적인 행위가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곳이 군대라는 사실은 하나도 놀랍지가 않았다. 계급구조를 이용한 통제와 폭력, 거부할 수 없음에 대한 낭패감과 좌절은 전혀 놀랍지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궁금하게 생각한 것은 이런 군대라는 곳에서의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그 속에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다. 그 많은 운동권들이 군대에 갔다왔건만 군대는 변하지 않았다. 군대라는 구조적 모순 자체가 문제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그리고 왠지 내가 들은 그 많은 군대 이야기중에 고참이 되어서 있었던 얘기를 구체적으로 들은 기억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부분의 군대 이야기는 태정이 여자친구에게 그러는 것처럼 허풍으로 부풀려지거나 이등병이나 일등병 시기에 고참한테 당해서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안에서의 군대는 분명 폭력이 재생산되고 되물림 되는 곳이다. 승영이 그러하였듯 저항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엔가 순응하게 된다. 그래야 군생활을 '잘'하는 또는 이제야 제대로 하는 중간고참이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죽어버리는 승영과 지훈처럼 그런 간극을 괴로워하거나 적응을 못하면 낙오되는 곳이다. 아니 그렇다라고들 한다.

 

 

그런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나는 '말년'의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별로 없다. 워낙에 피해자의 입장에 섰던 때가 기억에 남고 인상적이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말년'의 그것은 또는 고참으로서의 그것은 기억하기 싫은 기억인 것이 아닐까?

 

남자들이 군대 시절을 기억하기 싫다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군대 이야기를 하는 것은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또는 순응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기억을 하기 싫은 것이고 오로지 '피해자'로서의 기억만을 받아 들이고 이야기하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의 제목이 '용서받지 못한 자'인 것은 그들이 '가해자'로서의 드러내기와 자신에 대한 인정과 반성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의 구조와 계급사회 속에서 어쩔수 없었음은 인정한다고 치자. 내가 때리지 않으면 또는 내가 정치적으로 살아남지 않으면 결국에는 맞고 밟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치자. 그래서 이 땅의 남성들은 그런 '자책감'과 '죄의식' 속에 사회적인 폭력(가부장의 문제든 계층의 문제든, 직장내 권위의 문제든)을 재생산하는 과정에 가담하게 되는 '학습'의 과정을 인정한다 하자.

 

그들이 '가해자'로서 가지고 있는 기억과 반성, 죄의식에 대한 드러내기가 군대라는 구조를 바꿀수 있는 첫단추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서 받지 못한 이 땅의 많은 남자들이 자신의 가해자로서의 경험을 그리고 폭력의 생산 주체로서의 경험을 이야기할때, 변화의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용서'가 가능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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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5 00:22 2005/11/25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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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영화보고나서 트랙백.

    Tracked from / 2005/11/26 04:15  삭제

    해미님의 [[용서받지 못한 자] '가해자'임을 드러내기] 에 관련된 글. 시네큐브에서 개봉했다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kong 2005/11/25 1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영화였구남. 하이텍투쟁 패러디포스터만 보아서 원본은 첨보네그려 ^^. 해미 말대로, '말년'의 이야기는 나 역시 들어본 적이 없네. 당신의 예리한 시선. 그들도 가졌으면 싶으이.

  2. 이재유 2005/11/25 14: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고참 때 얘기도 잘 하는데^^... 근데 이 영화는(보지 못했습니다) 사병들 간의 관계에 대해서만 다룬 것 같네요. 근데 저는 장교와 사병 간의 문제가 더 심각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 경험에 비춰 보자면... 장교들은 자본가가 노동자를 차별 대우하듯이 사병들을 감언이설과 이간질로 그렇게 대우하고 있지요. 제가 생각하기에 이 영화가 좀더 깊이 파고 들어가 장교와 사병간의 관계를 다루지 않은 것이 아쉽다는 생각^^... 그리고 군대 내에서 사병들간의, 계급을 뛰어넘어 단결할 수 있는 계기도 있다는 것도 주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이 영화가...

  3. 이재유 2005/11/25 14: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잠깐 생각해 보니 언뜻드는 생각이 있는데요. 어쩌면 이 영화는 거의 모두가 사병 출신인 노동자들에게 도덕적 자괴감과 패배주의를 안겨 줄 수도 있겠다는 삐딱한 생각도 들었네요^^.

  4. 해미 2005/11/26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콩/ 언니두 함 봐바요. 영화 잼나요.
    이재유/ 자괴감과 패배주의를 줄 수는 있겠죠. 사병출신인 노동자들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저는 오히려 일상의 파시즘의 근원을 바라보는, 또는 자신에게는 너무 관대한 우리의 시선에 대한 아쉬움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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