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6/09/20 11:19
Filed Under 이미지적 인간

이런 저런 스트레가 만땅인 요즈음, 가을을 타는지... 괜히 혼자 어딘가를 떠돌면서 영화를 보고 혼자 있는 것이 좋아진다.

 

그렇게 문득, 그리고 불현듯 '영화보기'를 갈구하고 있는 요즈음...

 

그렇게 불현듯 보게된 영화가 '호텔 르완다'였다.

 

개봉하기 전부터 르완다의 인종 내전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만듦새가 훌륭하다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봐야겠다고 점찍어 놓았었던 영화였다. 개봉 후 한참이 지난 영화는 몇 군데 걸려 있는데가 없었고, 영화관에는 나를 포함해서 고작 대여섯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비극은 르완다를 점령했었던 벨기에때문에 시작된다. "뭐가 다른거야?"라고 반문하는 한 백인기자의 궁금증처럼 100만명이 죽었다는 후투족과 투치족은 신분증에 찍혀있는 도장으로만 확인이 가능하다.

 

벨기에인들이 조금 더 피부의 검은색이 약하고, 코가 좀더 좁은 사람들을 골라 '투치족'이라고 명명하고 그들에게 모든 권력을 주면서부터 비극은 시작된 것이다.

 

주인공 폴은 "아프리카 흑인"이라는 변하지 않는 사실 때문에 친구 백인들에게 버림을 받게 된다. 그저 영리하고 수완 좋은 호텔 중간관리자에 불과했던 폴은 그 변하지 않는 사실때문에 영웅이 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뇌물로 관리들한테 잘 보이고 사람의 심정을 잘 헤아리는 말들로 본인의 정치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즐겁게 살던 폴은 내전의 화염속에서 보건부장관에게 폭스바겐까지 바쳐가며 전근시켜(여기서 궁금해진다. 보건부장관한테 뇌물을 준거면 르완다의 의료체계는 공공의료 체계란 말인가?) 결혼하게 된 투치족인 그의 부인을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시작해 1,268명의 생명을 구하는 영웅이 된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폴의 아내 타티아나가 아닐까 한다. 그저 자신의 가족만을 생각하는 폴에게 이웃 사람들을 버리고 갈 수 없다고 울부짖어 결국 모든 사람들을 호텔로 데려오는 것은 결국 '그녀'이다.

 

 

이 영화의 진정한 볼거리는 사실, 이 영화가 폴의 영웅담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평범하기 그지 없던 폴이 영웅이 되는 과정에 무게를 둔다기 보다는 '내전'이라는, 그 것도 외세에 의해 이식된 모순에서 기인된 '내전'이라는 공간에서 다양한 계급적/계층적 모순들이 그대로 드러내는데 오히려 드라마의 무게를 더 싣고 있다.

 

자기들은 평화 '유지군'이지 평화 '지원군'이 아니라며 철수해버리는 UN의 모습속에는 평화를 만들기를 원치도 않고 그럴 능력도 없고 관심도 없는 서방세계의 모습이 오롯이 묻어난다.

 

호텔에 머물던 백인들만... 오로지 백인들만 출국하게 되는 그 버스를 바라보는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있는 흑인들의 눈빛속에는 그저 절망만이 담겨있다. 별 4개짜리 호텔에 머물던 돈많은 백인 관광객들은 자국의 자국민 보호를 위한 노력으로 눈물겹게 고국으로 무사귀환한다.

 

다음엔 호텔로 피난해있던 많은 흑인들중 외국에 유력인사들을 아는 사람들이 있는 고위층, 부자 흑인들만 특별 전세기를 통해 탈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자치군의 습격을 받고 호텔로 돌아오게 된다. 결국에는 탈출의 기회도 외국에 아는 유력인사가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세계 어디에도 르완다의 고아를 받아줄때는 없다"고 외치는 헨렌 헌트의 모습이 '남'들의 불행과 재앙에 너무도 무관심한 우리를 그대로 꼬집는 것 같다.

 

결국, 난민촌이나 다름 없던 호텔에서 뇌물과 발악으로 생을 연장하고 있던 폴과 1200여명의 흑인들은 투치족의 반란군이 기세를 확장하면서 안전한(?) 난민촌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그 호텔에 있던 1200여명은 원래 난민촌에 있던 많은 사람들에 비해 먼저 탄자니아로 가는 버스에 오르게 된다. 그나마... 그 호텔에 있던 사람들은 그 난민들 보다 더 안전한 상황에 더 빨리 가게 되는 것이다.

 

"버스에 자리가 없다"는 이야기에 남겨져 있었던 난민촌의 많은 전쟁고아들이 "자리는 만들면 된다"는 폴의 손에 이끌려 버스를 타러가면서 영화는 끝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뜨거웠다.

 

미국과 영국을 축으로 하는 서방세계의 극단적 이기주의와 자국민보호 주의 따위는 이미 익숙하다. 그저 착취의 땅으로만 생각하는 그들의 외부세계에 대한 인식은 다시 한번 확인되는 사실일 뿐이지 눈물이 흐를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그리고 100만명이 죽은, 시체로 도로가 덮이는 그런 극악무도한 상황에서 오히려 온갖 불평등과 계급/계층의 문제가 극명하게 매 순간마다 드러난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여전히 이라크에서 그리고 레바논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무서웠다.

 

나는 르완다내전의 정치적 이유와 배경을 모른다. 혹시 모른다. 르완다의 내전이 단순한 민족갈등이 아니라 벨기에를 등에 업은 투치족의 착취에 저항하는 민중의 항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배경은 이 영화에서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는 엄청난 학살을 자행한 '후투족'에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란 상황에서 벌어지는 그저 평범한(!) 이야기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평범한 현실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내전이라는 상황에서 날것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가슴이 뜨거워졌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09/20 11:19 2006/09/20 11:19
TAG :

트랙백 주소 : http://blog.jinbo.net/ptdoctor/trackback/238

  1. Subject : 영화르완다

    Tracked from / 2006/09/21 01:43  삭제

    해미님의 [[호텔르완다] 평범한, 그래서 가슴 뜨거운] 에 관련된 글.

  2. Subject : 호텔 르완다..그 전쟁의 기억

    Tracked from / 2006/09/21 02:25  삭제

    해미님의 [[호텔르완다] 평범한, 그래서 가슴 뜨거운] 에 관련된 글. 지난주에 대추리 들어갔을 때 봤던 영화. 나름 감동의 물결 영화였던 것 같은데 여럿이서 떠들며 봐서 인지 그런 감동

  3. Subject : Hotel Rwanda ★★★★

    Tracked from / 2006/11/19 17:44  삭제

    관련 영화 : http://www.imdb.com/title/tt0395169/ ‘르완다’가 아프리카 대륙의 어디쯤에 있는 나라인줄 나는 모른다. 언젠가 스쳐지났을 ‘르완다 내전’은 150만명이 학살당하고 250만명...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kong 2006/09/21 0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콩은 되짚어 생각할 여지가 참 많은 영화였다고 생각하면서도, 질리도록 아프고 무거운 느낌을 재경험할 엄두가 안난다는... 이렇게 조목조목 정리하다니! (당신을 정리녀로 임명합니다~ ^^)

    암튼 '만듦새가 훌륭하다'라는 소문에는 나 역시 100% 동감.

    심지어 '아내가 후투의 노리개가 될 바에야 자결하는 게 낫다'라는 생각이나 '남편이 구해줄 때까지 숨어서 기다리는 여성(들)'의 모습, 그리고 학살 이전부터 가족의 안위를 노심초사해온 남편과 은근히 대비되는 '대책없이 착하기만 한 여성'의 모습들을 보면서 거기나 여기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마저도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을 통해 다시한번 뒤집어버리는 걸 보면서, 영화를 만든 이들의 속깊은 고민 혹은 치밀한 계산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우.

  2. yayar 2006/09/21 08: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영화의 명 대사는 호텔에 숨어 있는 사람들 보고 외국인들에게 전화를 하라고 하면서 주인공이 말하는 "We must shame them into sending help"인 듯 합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영화를 이미 봤다는 미국인 친구와 대화를 해보니 그 친구도 이 대사를 기억하더군요.

    참고로... 한겨레에 예전에 르완다 사태의 배경에 대한 기사가 올라온 적이 있었습니다.
    http://h21.hani.co.kr/section-021019000/2004/04/021019000200404140505020.html
    (로그인 필요)

  3. 해미 2006/09/21 1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콩/ 정리만 잘 하죠. ㅎㅎ
    yayar/ 기사를 읽어보니 더 끔찍해지네요. 그 대사두 그렇구요. 에효...

  4. 디디 2006/09/21 15: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 평론가는 이 영화를 서구인의 시각을 철저히 내면화해서 후투족을 야만으로 투치족을 문명으로 그리고, 서구인들을 훌륭하게 묘사한 제국주의적 영화로 평가하더군요. 흠. 사람들이란 참,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읽었죠. ㅋ 아무튼 엄청 가슴시린 경험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는 것.

  5. 해미 2006/09/22 1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디디/ 그 평론가의 의견에 일부 동의해요. 그런 제국주의적인 영화가 맞기는 하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결국에 영화를 본 사람은 후투족이나 투치족의 편이 아닌 전쟁의 반대편에 서게 되는거 같거든요.

About

by 해미

Notice

Counter

· Total
: 419075
· Today
: 304
· Yesterday
: 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