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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신고리 공론화, 한수원과 정부출연 연구소의 역할은?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7/10/06 10:56
  • 수정일
    2017/10/06 10:5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발행 2017-10-05 14:54:37
수정 2017-10-05 14:5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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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세상을 위한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시민행동이 15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현 상황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론화위원회 회신공문은 신고리 시민행동의 주요 요구에 모호하게 답변하고 있다며 공정성, 중립성을 지키고 설명자료 내용의 자율성 보장과 한수원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건설 재개측 활동 중단 등을 요구했다.
안전한 세상을 위한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시민행동이 15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현 상황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론화위원회 회신공문은 신고리 시민행동의 주요 요구에 모호하게 답변하고 있다며 공정성, 중립성을 지키고 설명자료 내용의 자율성 보장과 한수원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건설 재개측 활동 중단 등을 요구했다.ⓒ뉴시스
 

“그럼 산업부 장관도 재생에너지 전문가인데, 산업부 장관이 전문가 자격으로 ‘건설중단 측’ 발표를 해도 된다는 말인가요?”

지난 21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사무실에선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정부출연연구소 관계자의 ‘건설재개측’ 활동에 대한 논쟁이 오고갔다. 건설 중단측은 원자력연구원 산하 원자력정책센터장이 계속 ‘건설재개측’ 패널로 토론회에 참여하는 문제를 제기했고, 건설재개측은 ‘개인적인 입장을 발표하는 건데 그게 뭐가 문제냐’며 논쟁은 평행선을 달렸다.

그러던 중 산업부 장관 이야기가 나왔다. 공직을 맡고 있는 이에게 ‘개인적인 입장’이란 언제나 애매하다. 그동안 건설 재개측은 정부가 신고리 5,6호기 백자화를 기정사실로 하고 ‘짜고치는 고스톱’을 치고 있다며, 정부의 중립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질문에 대한 건설 재개 측의 답변은 ‘그렇게 하세요.’라는 것이었다. 정부가 중립을 선언한 상태에서 산업부 장관이 나올 리도 없고, 설사 나오더라도 모양새가 안 좋을 것은 누가 봐도 명확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의 ‘중립요구’, 그런데 공기업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선거 공약은 ‘신고리 5,6호기 백지화’였다. 따라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출범 이전부터 탈핵단체들은 문재인 정부의 공론화 결정에 대해 ‘공약 후퇴’라며 비판했다. 또한 신고리 5,6호기 건설 공사를 중단시킨 것도 정부였다. 이미 문재인 정부는 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 금지, 신규 핵발전소 건설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에 이런 정책을 널리 알리고 집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보수언론과 보수 야당의 탈핵정책 비판이 이어지자, 정부와 여당은 ‘중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명목상 국민들에게 판단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지만, 더 현실적인 이유는 보수 진영의 반발을 염두해 둔 변화였다. 특히 형식상 중립을 지켜야 할 정부와 달리 여당의 경우 대선 공약을 지키고 폭넓은 국민 여론을 수렴할 의무가 있지만,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반면 보수 야당은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입장을 홍보하고 있다.

정부의 공약은 ‘신고리 5,6호기 백지화’이지만, 이미 공론화가 시작된 상황에서 십분 양보해서 정부가 중립을 표명할 수 있다. 그간 국민의 의사결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그럼 정부의 범위는 어디까지 인가?

신고리 5,6호기를 건설하고 있는 한수원은 공기업 한전의 자회사로 주식의 100%를 한전이 소유하고 있다. 한수원을 통하지 않고 신고리 5,6호기에 대한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다. 안전성, 경제성 등 공론화의 주요 토론주제는 물론이고, 건설 기간과 투입금액 등 모든 정보는 한수원이 독점하고 있다. 심지어 정부의 담당 부서인 산업부 조차 한수원이 정확한 내용을 보고해주지 않으면 내용을 알수 없다. 이런 가운데 한수원이 공론화 과정에서 한쪽 편 ‘선수’로 뛰는 것은 이미 공정치 못한 게임이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한수원은 그동안 ‘건설 재개 측’ 토론자로 참여하기도 했고, 각종 회의에 참석했다. 오히려 자신들이 주요한 이해당사자라며 공론화 자체를 주도하는 모습까지 보여왔다. 더구나 한수원의 홍보 물품인 부채와 핸드폰 케이블 등이 길거리에서 ‘신고리 5,6호기 건설재개’ 유인물과 함께 배포되는 현실은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물량 공세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 심각함을 보여준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 역시 마찬가지이다. 소위 ‘국책연구소’라고 불리는 이들 기관은 우리나라 정책을 그동안 좌지우지해온 곳들이다. 이들의 영향력은 일반 대학 교수나 전문가들에 비해 월등히 높다. 원자력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등 이번에 쟁점이 되었던 연구소들은 그간 우리나라 핵발전 정책과 에너지정책을 총괄해 온 곳이고 현안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의 연구자들이 정부에게 중립을 요구하는 ‘건설재개 측’ 패널로 참석해서 시민들을 설득하겠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다. 정부 출연연구기관 구성원이 외부 발제를 위해서는 기관장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는 사실상 연구소의 암묵적 지원에 의한 ‘건설재개 측’ 활동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중단 촉구 기자회견에서 환경운동연합회원들 경주 지진을 기억하라며 신고리 원전 공사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중단 촉구 기자회견에서 환경운동연합회원들 경주 지진을 기억하라며 신고리 원전 공사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한 차례 해프닝이 아니라, 이후 제대로 된 기준이 있어야

혹자들은 정부 출연연구소 소속 연구자들의 ‘다른 목소리’를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고 묻기도 한다. 이명박 정부 당시 4대강 사업에 반대했던 사례 등 정부 출연연구소의 ‘다른 목소리’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외국의 경우 정부 출연연구소 내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를 가진 연구자들이 상호 토론을 벌이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다양한 목소리를 막는 건 연구자의 양심이나 생각을 제약한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문제는 원자력계의 이러한 목소리는 ‘다른 목소리’나 ‘소수 의견’이 아니라는 점이다. 원자력계는 그간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발전해 왔다. 이런 면에서 이번 신고리 공론화 과정에서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건설 재개측’ 활동 문제는 단순히 몇몇 개인이나 특정 기관의 문제라기보다는 탈핵정책 추진과정에서 원자력계 전체의 반발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정부 출연연구소의 ‘건설재개측 활동’ 문제는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원자력계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공론화 보이콧’도 불사하겠다는 내용의 기자회견도 한 상태이다. 합숙토론과 최종 투표를 앞둔 상태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주요한 것은 앞으로 정부가 수차례 공론화를 더 진행할 예정이라는 점이다. 이미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계획에 대한 공론화를 조만간 진행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다른 갈등 사안에 대해서도 공론화 계획이 추진 중에 있다. 즉 공기업과 정부 출연연구소의 역할 문제는 이후에도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공론화 과정에서 정부, 시민단체, 공기업, 정부출연연구소의 역할이 명확히 재정리되었으면 한다. 이는 국회 또한 마찬가지이다. 보수 여당들은 신고리 5,6호기를 국회에서 논의하자고 제안했으나, 정작 전력계획이나 핵발전소 문제를 국회에서 논의하기 위한 법 개정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반면 여당은 한차례 소나기만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형국이다. 정책 결정을 국민들에게만 던져놓고 국회나 정치권이 뒷짐지고 있는 것 역시 올바른 모습이 아니다. 이것이 이 문제가 논쟁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발전된 모습으로 나아가는 최소한의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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