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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 두개골 함몰시킨 돌망치는 바로…"

[기고] '장준하 선생 겨레장' 추도사

한완상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3-31 오후 5:04:37

 

박정희 정권 당시 유신 독재를 반대하다 숨진 고 장준하 선생의 유해가 3월 30일 경기도 파주시 장준하공원에 안장됐다. 지난해 8월 고인의 유해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두개골 함몰 골절이 발견되면서 타살 의혹이 재점화돼 땅 밖으로 나온 지 7개월여 만이다.

'장준하 선생 겨레장 위원회'는 이날 오전 9시
서울 시청광장에서 발인제를 시작으로 겨레장을 치렀다. 이날 행사에는 고인의 부인 김희숙 여사 등 유족 20여 명이 참석했다. 정치·법조·학계·시민사회단체의 인물들도 참석해 고인의 넋을 애도했다.

운구
행렬은 고인이 유신 시절 수감 생활을 한 서대문형무소 앞을 지났다. 한완상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겨레장의 추도사를 손수 작성해, 국가가 나서서 고인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한 전 총재의 추도사 전문이다. <편집자>

장준하 선생은 민족 광복과 해방 그리고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참으로 치열한 삶을 사셨습니다. 일제가 우리 민족 말살에 광분했던 1941년 선생은 학병으로 강제 징집되어 중국 전선에 일제의 총알받이로 끌려갔습니다. 선생은 다른 학병 동지들과 함께 일본군 병영을 탈출하여 한국광복군이 되었습니다.

그때 장 선생은 김준엽 동지, 윤경빈 동지, 김우전 동지, 그리고 저의 처남인 박승헌 동지 등 32명과 함께 중국 서주에서 중경까지, 그리고 일부는 서안까지 길고 험난했던 6000리 대장정에 나섰습니다. 풍찬노숙의 대장정이었으며, 밤에는 돌베개를 베고 잔 고난의 대장정이었습니다. 이 장정은 한국독립운동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일제가 항복하자, 장 선생께서는 백범 김구 선생을 모시는 일에 더욱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백범께서 흉탄으로 쓰러지시고, 조국의 분단은 더욱 고착되는 비극의 현실을 장 선생께서는 안타까워하셨습니다.

6.25 동족상잔의 아픔이 아직도 겨레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을 때 선생께서는 월간 <사상계>를 통해 우리 민족과 겨레가 마땅히 나아가야 할 정신적 방향을 제시하셨습니다. 이승만 문민 독재가 친일 세력의 협력으로 날로 부패해가고, 날로 독선적으로 치닫게 될 때, <사상계>는 한낱 월간 잡지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민족 광복과 조국 민주화를 향한 또 하나의 빛나는 장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승만 문민 독재가 박정희 군사 독재로 바뀌면서, 참으로 얄궂게도 광복군 장준하 선생은 일본 장교 박정희 소장과 정면충돌하게 됩니다. 얼마나 서글프고 분한 일이었습니까.

선생은 박정희 정권이 3선 개헌을 통해 장기 집권을 획책할 때, 그리고 유신 체제 출범을 계기로 총통제 같은 영구 집권을 구체화해 나갈 때 광복군의 그 불타는 애국심으로 박정희 정권에 더욱 용기 있게 맞서 싸웠습니다. 지금무효화가 된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선생은 1974년 15년형을 받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습니다. 병보석으로 출소했지만, 유신 체제가 더욱 그 광기를 뿜어내던 1975년 8월에, 선생은 홀연히 경기도 포천 약사봉 아래서 시신으로 버려져 있었습니다. 해방 전 선생의 그 험난했으나 값진 광복 대장정과 해방 후 민주화 대장정이 어찌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수 있단 말입니까. 유신 체제는 서둘러 추락사로 단정했지요. 그런데 정말 기적 같은 일이 터져 나왔습니다.

진실의 자기 폭발이 예수 부활 사건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지난해 8월, 그러니까 지하에 묻힌 지 37년 만에 선생께서는 무덤에서 나와 지금은 새로운 영의 몸으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묘소 이장을 위해 가족들이 묘를 열어보았습니다. 그곳에 선생의 두개골이 입을 열어 타살된 흔적을 마치 모두 와서 꼼꼼히 살펴보라는 듯 저희들에게 속삭였습니다. 아니, 37년간 은폐되었던 진실이 마침내 청천벽력처럼 소리치며 저희들에게 다가오셨습니다. 권위 있는 법의학자의 감식 결과 선생의 죽음의 진실이 마침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지난 37년간 저희들은 그 진실을 규명할 수 없다고 너무 일찍 체념하기도 했고, 진실을 끝까지 밝혀내려는 용기가 부족해서 침묵을 지키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선생께서는 지하에서 37년간 가위눌리듯 소리치셨는데, 저희들은 그 진실의 외침을 듣지 못했습니다. 세상이 진실을 말하지 않을 때 저 돌들이 진실을 외친다고 했는데, 이제 선생의 그 두개골이 진실의 돌이 되어 벽력처럼 외치는 듯합니다.
 

▲3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에서 고 장준하 선생 유족과 민족지도자 장준하 선생 겨레장위원회 회원들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유해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옮기고 있다. ⓒ뉴시스

도대체 누구의 돌망치가 선생의 두개골을 그토록 선명하게, 동그랗게 함몰시켰을까요?

먼저 한국광복군을 토벌하는 일에 광분했던 일본제국 군대 같은 폭력 세력이 떠오릅니다. 바로 그들이 그 돌망치가 아니겠습니까.

민족 분단을 고착·강화시키면서 정치 권력을 독점했던 반민족적 세력이 바로 그 돌망치가 아니겠습니까.

인간의 자유권적 기본권과 생존권적 기본권을 존중해주면, 부패한 권력을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한 반민주 세력이 바로 그 돌망치가 아니겠습니까.

<사상계> 같은 민주·민족·민중의 등불 역할을 했던 겨레의 월간지를 증오하고 두려워한 반지성적·반민중적 세력이 바로 그 돌망치가 아니겠습니까.

무엇보다 벌거벗은 권력으로 진실을 얼마든지 쉽게 훼손할 수 있고, 그 진실을 감쪽같이 영원히 숨길 수 있다고 자신했기에 자기들끼리 낄낄대며 신나 했던 정치 테러리스트들이 바로 그 돌망치가 아니겠습니까.

이제 저는 정중하게 말씀드립니다. 국가가 장 선생 사망의 실체를 이제는 밝혀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선생의 그 깨진 두개골의 외침에 정부는 정의롭게 대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선생의 조용한, 그러나 처절한 절규가 자유, 정의, 그리고 평화를 갈망하는 이 땅의 모든 겨레들의 함성으로 힘차게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가 소상하고 공정하게 진실을 밝힐 때, 선생의 억울한 죽음을 애통해하는 모든 이 땅의 씨알들이 새 정부를 믿고 지지할 것입니다. 진실 규명만이 용서와 화해의 새 질서를 세워 나갈 수 있습니다.

장준하 선생은 결코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의 육신은 이미 흙으로 돌아가셨으나, 그의 영의 몸, 사회의 몸, 역사의 몸은 겨레와 함께 살아계십니다. 분단된 조국이 평화와 공의로 하나 되기를 온몸과 마음으로 갈망하는 모든 겨레의 마음 속에 선생은 시퍼렇게 살아계십니다.

선생께서 오늘 이 노제에 친히 오시어 저희들의 손을 잡으시고 미완의 해방과 광복을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대장정을 이끌어주시길 바랍니다. 이제 하늘에서 딱딱한 돌베개 대신 선생을 흠모하는 겨레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따뜻하고 부드러운 베개를 베시고 편히 쉬소서. 편히 쉬소서.

2013년 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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