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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망친 대통령제, 시민 100명이 뽑은 대안은?

서울 성북구 개헌 공론조사 참가자 절반은 ‘4년 대통령 중임제’ 선호

17.12.02 20:19l최종 업데이트 17.12.02 20:19l

 

 2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평생학습관에서 열린 성북공론조사. 참가자들이 테이블에서 정치 구조 개편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다.
▲  2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평생학습관에서 열린 성북공론조사. 참가자들이 테이블에서 정치 구조 개편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다.
ⓒ 신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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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중임제를 추천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좋아하는 분들 계실 텐데, 선거 이벤트 공약이었어요. 지금 정의당보다 훨씬 좋은 복지 공약이 많았는데, 5년 안에 다 하겠다고 국민을 현혹했어요. 촛불집회 때 영하 날씨에 나가서 집회하는 거 힘들었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정경훈씨) 

"권력구조의 장단점 있다 생각해요. 안보 의식이나 정치 풍토를 봐서 5년 임기제를 더 추천합니다. 다 좋은 점이 많지만, 안보나 이런 실정에 맞게 하는 것으로 추천합니다. 효율적 국정 운영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광자씨)

70여 명의 시민들이 2일 오후 2시 서울 성북구 성북평생학습관 대강당에 모여 권력구조 개편 개헌 법안 마련을 위한 성북 공론 조사를 진행했다. 이날 10개의 원탁 테이블에 6~7명씩 모여 앉은 시민들은 4시간에 걸쳐 '개헌' 이야기를 나눴다.  

시민들은 저마다 대통령 중임제, 의원내각제 등에 대한 의견을 말했다. 시민들은 숙의민주주의와 분임형 권력 등 대학교 강의에나 나올 법한 단어를 인용하면서 자신이 바라는 정치 체제의 장점을 이야기했다. 

대통령제 개헌에 대한 시민 의견 수렴, '박근혜 같은 실패 어떻게 막을까?'

 

이날 개헌 공론 조사는 대통령제 개헌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들으려고 마련됐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가진 공통된 문제 의식은 '어떻게 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것인가'였다. 

지난달 25일 1차 모임에 이어 이날은 2차 모임이었다. 공론조사에는 총 100명의 시민이 선정됐다. 성북구가 자체적으로 선정한 시민참여단 50명과 지역정당 추천 50명으로 구성됐다. 이날 참여한 사람들은 총 70명, 정확히 70%의 높은 출석률을 보였다. 

공론조사는 우선 권력 구조에 대한 4가지 입장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과 질의 응답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먼저 전문가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권력구조에 대해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저마다 20분동안 판촉 활동하듯 시민을 설득했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현행 5년 단임제 유지, 고원 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4년 중임제 대통령제, 강상호 국민대 겸임교수는 혼합이원집정부제, 박동천 전북대 교수는 의원내각제를 각각 주장했다. 첫 번째 순서를 맡은 박동천 교수가 의원내각제 장점을 설명하자, 시민 3명이 질문하려고 동시에 손을 들었다. 

질문자들은 국내외 역사를 거론하면서, 박 교수 주장에 반박했다. 고광식씨는 "의원내각제는 제2공화국에서 실패를 맛본 제도"라며 "과반을 몰아줘도 내부 갈등, 대통령과 총리 불화로 비극적 최후을 맞는다"라며 의원내각제에 회의적인 의견을 밝혔다. 

정치 전문가 4명, 시민들의 반박성 질문에 진땀
 

 2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평생학습관에서 열린 '권력구조 개편 개헌방한 마련 성북 공론조사'에는 총 70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  2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평생학습관에서 열린 '권력구조 개편 개헌방한 마련 성북 공론조사'에는 총 70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 신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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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박성 질문을 받은 박 교수는 자신의 논리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박 교수는 "제2 공화국이 넘어진 것은 박정희 때문"이라며 "스페인이 최근 연립정부가 구성 안돼 선거를 3번 했는데, 혼란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안정적인 정치 변화가 가능한 게 의원내각제"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를 비롯해 나머지 전문가 3명도 역사와 정치이론을 동원한 시민의 날카로운 질문에 진땀을 뺐다. 전문가들 설명을 모두 들은 시민들은 잠깐의 휴식 후 테이블 토론을 이어갔다. 시민 1명당 1분 동안 자신이 지지하는 개헌 구조를 이야기하고 토론했다.

종합토론서 의원내각제 두고 논박 이어지면서 분위기 절정

토론 분위기는 종합 토론으로 접어들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의원내각제를 주장하는 정주원씨와, 이에 맞서 홍광희씨는 단상 앞에서 5분 넘도록 토론했다. 의원내각제가 안보에 위협을 가져올 수 있다는 홍씨의 지적에 전혀 상관 없다는 정씨의 반박이 쉴새 없이 오갔다. 

홍광희: "안보 위기가 쟁점입니다. 의원 내각제를 하면 의회를 열고, 과반이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안보 위기 상황에서) 과반이 과연 신속하게 참여할 수 있을까요?"

정주원: "의원내각제는 정책이나 방향을 의회가 다 결정하는 게 아니라 다수 정당이 내각을 꾸려서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형태 자체로는 (대통령제와) 다를 게 없습니다."

논쟁이 치열해지면서 두 사람 모두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지만, 의원내각제를 위해서는 더 많은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마무리했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한 시민이 "국회의원 임기를 2년으로 줄여야 한다"라고 하자, 테이블에선 박수 갈채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조사에 참여한 박준식(24)씨는 "정치 소식은 대부분 신문이나 에스앤에스(SNS)로 단편적, 일방적으로 접했는데, 지금처럼 쌍방향으로 토론하니 더 배울 점이 많았던 것 같다"면서 "토론하면서 직접민주주의 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라고 말했다.  

시민들, '4년 대통령 중임제' 가장 선호, 현행 유지도 29%
 

 2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평생학습관에서 열린 '권력구조 개편 개헌방한 마련 성북 공론조사'에는 총 70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  2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평생학습관에서 열린 '권력구조 개편 개헌방한 마련 성북 공론조사'에는 총 70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 신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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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이 끝난 뒤 참석자 설문 결과도 흥미로웠다. 공론조사 참여를 전후한 시민들 생각의 변화가 뚜렷하게 읽혔다. 일단 선거 제도 개편에 공감한 시민들의 비율은 조사 참여 전 45%에 불과했지만, 조사 참여 이후 64%로 크게 늘었다.  

국회의원에 대한 신뢰도는 크게 하락했다. 국회의원을 '매우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이 사전 조사에선 49%였지만, 조사 참여 이후 59%로 늘어났다. 

시민들은 4가지 권력구조 가운데 4년 대통령 중임제를 가장 선호했다. 전체 참가자의 51%가 4년 중임제를 선택했고, 현행 5년 대통령 단임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비율이 29%로 뒤를 이었다. 반면 의원내각제는 10%, 이원집정부제는 6%에 그쳤다. 

공론조사를 주관한 곽노현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은 "개헌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국내 최초로 기초 지방자치단체인 성북구에서 개헌과 관련한 공론 조사를 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일"이라며 "개헌 공론 조사의 역사적인 물꼬를 튼 것"이라고 자평했다. 

곽 이사장은 이어 "사실 참여 시민들에게 2만 원 수준의 교통비 정도만 지급했을 뿐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는 것은 그만큼 정치에 관심이 많다는 걸 방증한다"면서 "공론 조사 결과를 국회 등에 전달해 개헌 논의 불씨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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