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나 통신원(남북공동응원단 홍보팀장,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정책국장)
평창올림픽이 ‘평화’올림픽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평창에서 전국으로 울려퍼진 “반갑습니다” “우리는 하나다” “다시 만납시다” 외침들. 이 현장에 ‘남북공동응원단’이 있었다.
평화올림픽이 국민들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순간을 목도한 우리는 통일운동에 자신감을 얻었다. 남북공동응원단이 느낀 평창올림픽의 의미와 소감을 전한다.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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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평창으로 향했나 - 단일기가 물결이 되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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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내내 낮이나 밤이나 단일기를 든 환영이 계속됐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
평창올림픽이 시작될 때를 돌이켜보면, 자칫 아찔한 장면들이 있었다. 만경봉호가 남북의 바닷길을 열며 묵호항에 도착하는 순간, 항구에는 북측 국기를 불태우며 “돌아가라!”고 외치는 이들이 있었다.
“손님을 초대해놓고 차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국민들의 염원과 동떨어진 일부세력의, 말 그대로 ‘난동’이었는데 이를 처음에 막지 못한 것이 통일운동가 한 사람으로서 가슴 아팠다.”
김병규(응원단 운영팀장, 한국진보연대 반전평화위원장)
삼지연 관현악단 공연을 앞둔 강릉아트센터 앞에도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북측 국기를 태우려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개막식 현장에서도 곳곳에 평화올림픽 ‘반대’ 집회가 예고되어 있었다.
그러나 하루하루 올림픽이 진행되면서, 평화올림픽을 반대하는 이들의 소동은 맥을 못 추고 가라앉았다. 남북공동응원단의 ‘장외’ 응원이나 다름없는 환영활동과 이에 호응한 국민들 덕분이었다.
응원단은 평창과 강릉 등지를 단일기로 뒤덮었다. 대학생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거리에서 단일기를 들고 통일노래를 부르며 환영분위기를 만들었고, 개막식 날에는 전국에서 모인 평화통일 활동가들이 단일기 거리를 만들었다.
어느새 평창에서는 관중들은 물론 자원봉사자들도, 버스 기사도, 관계자들까지도 모두가 자연스럽게 단일기를 들었다. 우리가 들기 시작한 단일기가 하나의 물결이 되는 것을 본 순간, 우리는 ‘평화올림픽을 원하는 것은 국민들의 마음’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응원도, 평화도 우리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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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공동응원단은 경기장 관중들 앞에 서서 응원을 지휘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
남북공동응원은 생각보다 어려운 조건에서 시작했다. 응원단 좌석은커녕 입장권을 구하는 것조차 어려워 단일팀의 첫 경기에는 고작 11명만이 입장할 수 있었다. 이후 경기마다 응원단은 새벽부터 줄을 서가면서 간신히 표를 개별 구매해 입장해야 했다.
단일기를 공급하는 것도 ‘일’이었다. 아이스하키 경기마다 4-5천장의 단일기가 필요해 준비한 단일기는 금새 동이 났다. 특히 ‘독도가 있는 단일기’를 달라는 시민들의 성원이 대단했고, 경기가 끝나도 버려지는 단일기가 단 한 장도 없었다.
긴급 모금을 통해 단일기를 제작해야 했다. 개막식에는 미처 단일기를 충분히 배포하지 못했는데 개막식 공동입장의 순간 관중석 가득 단일기가 나부꼈다면 그것이야말로 평화올림픽 시작의 선언이 아니었을까. 못내 아쉬운 장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남북의 만남을, 감동을 만들었다. 경기장에서 처음 만났지만 같은 구호, 같은 박자로 응원소리를 맞추어내고 단일기 파도타기를 만들었다.
22일 북측응원단이 강릉 정동진에서 ‘깜짝’ 공연을 하던 날, 전농 회원들은 진행 중이던 행사를 축소하고 달려가 눈물의 공연을 만들었다. 24일 원주체육관 북측 응원단의 마지막 공연에는 6천명의 시민들이 체육관을 가득 채우고 박수를 보내며 화답했다.
주어진 것은 없지만 갖은 노력 끝에 만들어 낸 남북의 만남. 남북관계의 현 주소를 드러내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응원도 평화올림픽도 저절로 찾아오지는 않았다.
시민들이 외치는 ‘우리는 하나다’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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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장 앞에서 응원단이 나눠준 단일기를 들고 입장하는 시민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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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이 출전한 경기장 곳곳에는 어김없이 '우리는 하나다' 현수막이 내걸렸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
“아이스하키 경기장에 가득했던 수천명의 관중들이 한 목소리로 ”우리는 하나다!”를 외칠 때의 그 소리! 정말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고윤혜(응원단, 부산대학생겨레하나)
남북공동응원단 활동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은 경기장을 가득 채운 시민들의 목소리다. 관중들은 숨죽이며 경기를 지켜보다가도 한 목소리로 응원을 했다.
14일 일본과의 경기에서 마침내 첫 골이 터졌을 때는 경기장이 터져나갈 듯 했다. 20일 단일팀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경기장 3층 구석에서부터 ‘힘내라’ 함성이 시작되면 경기장 전체 관중들이 한마음으로 단일팀을 응원했다.
시민들의 한 목소리를 이끌어낸 것은 관중 앞에 서서 응원을 지휘한 남북공동응원단이었다. 응원단 좌석이 보장되지 않았지만, 응원단은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전체 응원단이 지휘자가 되어 관중들과 함께하는 응원을 만들어냈다.
“관중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누가 앞에 서서 응원하자고 하면 당황스러울 수도 있지 않나. 그래서 ‘우선 신뢰를 주자’고 마음먹었다. 경기 시작 전에 먼저 단일기를 나눠주며 자기 소개와 인사도 하고, 응원구호를 연습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내 앞의 관중들이 온 몸과 표정으로 응원에 동참하는 것을 보면서, 매 순간 감동받았다”
권순영(응원단 서울팀장, 서울겨레하나 운영위원장)
“시민들을 주인공으로 만든 통일응원이라고 자부한다. 무엇보다 관중들이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 가능했던 일이다. 국민들이 단일팀을 믿고 지지하는 마음을, 응원으로 만들어 낸 것이 자랑스럽다.”
전기훈(응원단 기획팀장, 부산민중연대 선전국장)
20대 통일의식이 걱정이라면? 민족을 만나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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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측응원단의 모습. 남북 20대 응원단이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
남북공동응원단의 대다수는 20대 대학생들이었다. 북측 사람을 만나는 것이 처음인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통일을 책으로, 역사로 배운 학생들. 이들에게 응원단 활동은 남다르고 값진 경험이었다.
처음 북측응원단과 마주치자 수줍어하며 ‘하이파이브’를 위해 손을 내밀던 학생들. 북측 응원단이 손뼉을 마주쳐주자 폴짝폴짝 뛰며 기뻐하던 학생들. 20일 단일팀의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까지 모두 빠져나간 경기장. 마지막으로 떠나는 북측 관계자에게 “다시 만납시다”라고 인사를 건네는 대학생들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
북측응원단 200여명의 연령대는 17세에서 30세이고, 20대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남측응원단에도 대학생 100여명이 있었다. 이들은 같은 곳에서 10여일을 보냈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인사하지 못했다.
이 젊은 20대들이 그저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만나 대화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단일팀 선수들이 친한 언니 동생이 되었던 것처럼 20대 남북응원단 사이에도 그 못지않은 정과 민족애가 싹틀 수 있지 않았을까.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단일팀 논란과 20-30대에서의 부정적 반응에 대해 ‘요즘 20대 통일의식이 걱정’이라는 말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정말 젊은 세대의 통일 의식이 걱정된다면 해결방안은 쉽다. 우선 만나게 해야 한다. 직접 만나고, 대화하는 것만큼 통일의식이 달라지는 계기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다음세대를 위해 우선 해야 할 일이다. 남측응원단과 북측응원단이 제대로 만나지 못한 것이 끝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응원 현장에서, 통일운동 자신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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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공동응원단의 최대 성과는 ‘자신감’이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
남북공동응원단 활동을 마치고 응원단이 가장 크게 얻은 성과는 ‘자신감’이다. 스무 살 대학생부터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을 생생히 경험했던 사람까지. 다양한 세대의 응원단은 시민들과 호흡하며 ‘우리가 힘을 합치면 다시 통일시대를 열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대학생들은 “시민들이 통일을 싫어하진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다들 너무 좋아해주셨다”고 고백하고, 보다 나이 많은 세대는 “2000년대에 비해 마음의 벽이 크지 않을까 했는데, 아직 뜨거운 통일열망이 살아있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고 말한다.
“응원단을 준비하며, ‘시민들이 얼마나 호응할까?’하는 걱정도 있었다. 남북교류가 멈춰있던 시기, 종북몰이에 우리 스스로 위축된 것도 있었다. 그러나 관중들 표정과 몸짓에서 마음속에 살아있는 통일열망을 확인했고, 그 에너지가 발산되는 걸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구나’ 통일운동의 자신감을 가장 크게 얻었다.”
이원규(응원단 응원팀장, 6.15부산본부 사무처장)
평창 이후 민간통일운동의 역할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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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공동응원단이 포즈를 취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
27일, 판문점에서는 패럴림픽 실무회담이 열렸다. 판문점을 오가는 남북이 벌써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그러나 같은 시기 통일대교 앞에서의 ‘소동’은 여전했고 앞으로도 남북관계는 크고 작은 우여곡절을 겪을 것이다.
이제 우리의 고민은 본격적으로 열릴 화해시대 ‘민간통일운동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로 이어진다. 평창올림픽에서 남북공동응원단 활동은 그런 의미에서 소중한 경험과 교훈을 준 생생한 현장이었다.
연초부터 매우 빠르게 또 조심스럽게 준비된 평창올림픽이었다. 오랜만에 열린 남북대화에서 과제는 산적했고, 정부도 안정적으로 ‘관’이 주도하는 올림픽을 치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평화올림픽은 결국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으로 완성되었다.
그 과정에 민간이 만들어낸 응원이 톡톡한 역할을 했다. 올림픽에 방문한 김영남 상임위원장, 김여정 제1부부장이 “우리는 하나다”에 감동받았다 말하고, 문재인 대통령도 “공동응원이 전 세계에 감동을 줬다”고 언급한 것처럼 말이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 개선의 전기가 마련되었다. 남북이 신중하게 열어낸 길에서, 남북공동응원단은 남북을 잇는 뜨거운 환영열기를 만들어 냈다. 이는 고스란히 평화올림픽의 밑거름이 되었고 앞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동력이 될 것이다. 남북관계 복원이 본격화되는 만큼 앞으로는 보다 원활한 민관협력을 당부하고 싶다. 민간 통일운동은 이번 남북공동응원처럼 남과 북의 마음과 마음을 잇는 안내자로서 역할을 해 나갈 것이다.”
이연희(6.15남측위 기획위원장,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사무총장)
남북관계가 열리고 많은 기회의 장이 열릴 것이라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어떤 기회도 저절로 찾아오지는 않았다. 경기장 사람들의 손에 단일기를 쥐어주기까지 넘어야 했던 산, 그렇게 우리가 건넨 단일기가 큰 파도와 물결을 만들어낸 장면을 기억하며, 우리는 이번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간직하고 다음 통일운동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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