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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도 원했던 전직 대법관의 ‘도장 파워’

이재용도 원했던 전직 대법관의 ‘도장 파워’

 

 

등록 :2018-03-10 11:26수정 :2018-03-10 16:11

[토요판] 뉴스분석 왜?
‘전직 대법관’에게 매달리는 이유
한줄짜리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문이 두려운 의뢰인들은 ‘제대로 된 판결이라도 받아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상고이유서에 전직 대법관 도장만 찍어도 최소한 ‘문전박대’는 당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를 하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한줄짜리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문이 두려운 의뢰인들은 ‘제대로 된 판결이라도 받아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상고이유서에 전직 대법관 도장만 찍어도 최소한 ‘문전박대’는 당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를 하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 대법관의 임기는 6년입니다. 대법관으로서의 임기가 그렇다는 말. 명예로운 대법관에서 퇴임하면 또 다른 ‘시장’이 그를 반깁니다. 전직 대법관이란 이름값만으로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것입니다. 명예와 부를 다 가지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불가능에 가까운데 말이죠.

 

“여건이 허락한다면 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2008년 2월22일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상당 기간 사건 수임이나 영리활동은 제쳐놓고 공익활동에만 전념할 생각이다. 도장 찍어주고 몇천만원씩 받는 그런 일은 안 한다.”(<중앙일보> 2015년 7월1일)

 

차한성 변호사는 2008년 3월부터 6년 동안 대법관을 지냈다. 퇴임 후 1년 동안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를 지낸 뒤 2015년 2월 변호사 등록을 했다. 당시 대한변호사협회는 그의 변호사 개업 철회를 요청하고 개업 신고를 반려했다. 특정인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변호사 등록은 허가제여서 ‘범죄를 저지르고 일정 기간이 지나지 않은 경우’ 등의 결격 사유가 있으면 심사를 통해 거부할 수 있지만, 개업은 신고만으로 가능했다. 법무부도 “변호사 업무를 하는 데 문제가 없다”며 차 변호사 손을 들어줬다. 차 변호사는 “법무법인(태평양)이 만든 공익재단 이사장을 맡으려고 개업 신청을 했다. 돈벌이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고 항변했다.

 

차 변호사가 말한 “상당 기간”은 ‘2년’이 좀 못 됐다. 그가 2017년 3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권선택 전 대전시장의 상고심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린 것. 그리고 다시 1년이 못 돼 그의 이름은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상고심 변호인단에 등장했다.

 

이번에도 대한변협이 나섰다. 변협은 지난 3일 성명을 내어 “전관예우 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차 변호사의 사임을 촉구했다. “지나친 요구”라며 버티던 법무법인 태평양은 7일 오후 “사회적 우려를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그를 변호인단에서 뺐다. 이 부회장 사건 주심으로 차 대법관과 경북고, 서울대 법대 동문인 조희대 대법관이 배정된 직후였다.

 

 

전직 대법관을 찾는 이유

 

전관예우(前官禮遇)란 판사나 검사로 재직하다 변호사로 개업한 사람이 맡은 소송에서 그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거나 절차상 특혜를 주는 것을 말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특혜라, 한쪽에선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선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한다.

 

지난해 7월 문재인 정부 들어 열린 첫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박정화 당시 대법관 후보자는 “법관 전관예우가 있다고 생각 안 해봤다”고 말했다가 의원들의 질타에 시달려야 했다. 일선 단독판사부터 대법관까지 전관예우의 존재를 ‘겉으로’ 인정하는 판사는 아무도 없다. 오죽하면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해 9월 취임사에서 “전관예우가 없다거나 사법 불신에 대한 우려가 과장된 것이라고 외면하지 말자”고 말했을까.

 

 

대법관 출신 차한성 변호사
이 부회장 상고심 수임했다 사임
“엉성한 항소심 논리 비판 직면
대법원 향한 메신저 필요했을 수도”

 

‘한줄’ 심리불속행 기각 급증에
대법관 출신 찾는 의뢰인도 늘어
‘영구 수임 제한’ 개정안도 발의 
“법 개정 필요성 주목받는 계기 돼야”

 

 

변호사나 국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2013년 6월 변호사 76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90.7%가 전관예우가 존재한다고 답했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우리 국민의 사법제도 신뢰도는 27%에 그쳤다. 설령 실제로 전관예우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판사들은 인정하지 않더라도, 의뢰인들은 예우를 기대하고 전관을 찾는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의 전관예우는 심리불속행 제도와 관련이 깊다. 심리불속행이란 형사 사건을 제외한 민사·가사·특허 사건의 원심 판결이 상고심을 제기할 수 있는 여섯가지 요건(헌법·법률의 부당한 해석, 기존 판례와 다른 해석, 새로운 판례 변경의 필요성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 더 이상 심리를 진행하지 않고 간단한 사유만 적어 상고를 기각하는 처분이다. 대법원의 정상적인 업무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무분별한 상고가 급증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정 이유)으로 1994년 도입됐다. 판결문엔 “상고인의 주장은 특례법이 정한 사유를 포함하지 않고… 이유가 없다고 인정되므로 상고를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는 간략한 문장만 적힌다.

 

비싼 수임료를 내고 상고심까지 갔는데 한 문장짜리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문을 받은 의뢰인은 기가 막힐 수밖에 없다. 한 변호사는 “왜 졌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심리불속행 판결문을 받게 되면 의뢰인에게 할 말이 없다”고 말한다. 제도 도입 이후 심리불속행으로 처리되는 사건은 꾸준히 증가했다. 민사 사건의 경우 2005년 59%이던 심리불속행 기각률은 지난해 77%에 달했다. 심리불속행으로 기각된 사건도 2005년 약 4000건에서 지난해 1만건으로 크게 늘었다.

 

‘제대로 된 판결이라도 받아보고 싶다’는 의뢰인들은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상고이유서에 전직 대법관 도장만 찍어도 최소한 ‘문전박대’는 당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를 하기 때문이다. 수치로도 증명된다. 2006년 <한겨레>가 전직 대법관 5명과 전·현직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3명의 변호사 시절 수임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이들이 맡은 사건들의 심리불속행 기각률은 6%에 불과했다.

 

판검사들의 전관예우가 비판을 받자 국회는 2011년, 퇴직 1년 전부터 퇴직한 때까지 근무한 법원이나 검찰청이 처리하는 사건을 퇴직 후 1년 동안 맡을 수 없다는 내용을 변호사법에 포함시켰다. 대법관들이 사법 신뢰도 하락의 당사자로 지목받자 일부 대법관들은 임기 중에 “퇴직 뒤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김영란 전 대법관(2004.8~2010.8), 박시환 전 대법관(2005.11~2011.11), 양창수 전 대법관(2008.9~2014.9) 등은 지금도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퇴임한 대법관을 향한 ‘감시’가 강화되자 ‘꼼수’도 등장했다. 퇴임 뒤 로스쿨 석좌교수로 갔다가 1년 정도 지난 뒤 로펌으로 향하는 과정이 대세로 자리잡았다. 차한성 전 대법관, 신영철 전 대법관, 안대희 전 대법관 등이 이런 과정을 밟았다.

 

퇴임 뒤 1년만 잘 버티면 변호사로 개업해 대법원 사건을 수임하는 데 아무런 법적인 문제가 없다. 인고의 시간을 잘 버티면 돌아오는 건 사건이고 수임료다. 경쟁자들이 줄어 독점이 가능하다. 대한변협이 2016년 9월 대법관 출신 변호사 38명이 6년간 수임한 대법원 사건 중 판결이 선고된 1875건을 분석한 결과 수임 순위 상위 10명이 전체 사건의 70% 이상을 가져갔다. 변협은 “재직기간 연고를 이용하는 경향이 매우 높고, 고교 동문이 주심인 대법관의 사건을 수임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이재용은 왜 차한성이 필요했을까?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 사실상 승리한 이재용 부회장이 대법관 출신 차 변호사를 선임해 논란을 자초한 배경엔 의문이 남는다. 이 부회장 상고심은 형사사건이라 심리불속행과 무관하다. 국정농단의 ‘동조자’(이 부회장은 ‘피해자’라 주장한다)인 이 부회장의 상고심은 국민의 관심이 쏠린 재판이다. 문전박대를 당하긴 불가능하다는 말.

 

한 변호사는 “대법관들에게 말이 먹히려면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상고심 심리에 대비해 “최대한 많은 안전장치”를 마련 중이라는 뜻이다.

 

승마 지원 관련 72억9천만원, 한국동계스포츠 영재센터에 16억원의 뇌물을 공여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던 이 부회장은 항소심에서 승마 지원액의 절반인 36억원만 뇌물로 인정돼 실형을 면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업무수첩의 증거능력 △부정청탁 여부의 입증 범위 △재산국외도피죄의 구성요건에 대한 판단 △자동차와 말의 소유권과 뇌물 여부, 뇌물액 산정 기준 등의 쟁점에서 1심과 정반대의 판단을 내렸다. 이들 쟁점은 상고심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는데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들 쟁점 중 상고심에서 뒤집힐 가능성이 가장 큰 대목이 ‘안종범 업무수첩’의 증거 인정 여부다. 안종범 업무수첩의 증거능력은 영재센터 16억원 뇌물 혐의와 직결된다. 안 전 수석이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고 인정한 업무수첩은 다른 국정농단 재판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인정됐다. 수첩에 적힌 내용의 진위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단독으로 만나 지원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간접증거는 된다는 취지였다.

 

반면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는 “업무수첩을 행위의 간접증거로 인정하면 우회적으로 수첩에 적힌 내용의 진실성을 인정하는 증거로 사용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독특한 논리를 폈다. 수첩에 적힌 내용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이상, 그런 대화나 지시가 있었다는 간접증거로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 논리는 1주일 뒤인 지난달 13일 최순실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김세윤)에 의해 다시 뒤집혔다. 재판부는 “단독 면담 당사자가 진술하지 않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 그와 관련된 간접사실이나 정황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증명할 수밖에 없다”고 전제했다. 이어 “업무수첩 내용으로만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대화 내용을 증명한다는 게 아니라 수첩과 안종범 전 수석의 진술, 면담에 이르게 된 경위, 면담 전후 대통령의 말과 행동 등 간접사실들을 종합해 대화 내용을 증명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업무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업무수첩을 간접증거로 사용한다고 그게 곧 우회적으로 수첩에 적힌 내용의 진실성을 인정하는 증거가 되는 건 아니”라고 덧붙였다. 마치 이재용 항소심 재판부를 향해 말하는 듯하다.

 

‘최순실 재판부’는 “소유권이 삼성전자에 있었다”며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가 뇌물로 인정하지 않았던 말과 자동차에 대해서도, “실질적 소유권은 최순실·정유라씨에게 있었다”며 뇌물로 인정했다. 용역대금 36억원에 말 구입비와 보험료 등 36억원이 추가됐다.

 

결국 국정농단 관련 재판 중 유일하게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만 안종범 업무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유일하게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만 이 부회장이 최순실·정유라 모녀에게 제공한 말과 자동차를 뇌물로 보지 않았고 사용 이익 역시 산정하지 않았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이 부회장 항소심은 법조계 안팎에서 비판을 받았고 법리적으로 엉성한 부분이 많다. 전원합의체로 갈 가능성도 있는데 대법관들에게 자신들의 논리를 전파하려면 어느 정도 ‘급’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정도로 (상고심 결과에 대해) 확신을 못 하고 불안해한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대법원 사건 수임 제한은 가능할까?

 

다행히도 ‘유전무죄’와 ‘전관예우’의 만남은 차 변호사가 물러나면서 실현되지 않았다. 아마 이 부회장은 상고심 선고가 내려질 때까지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국회엔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대법원 사건 수임을 금지하는 변호사법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 등 19명이 발의해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된 상태다. 개정안엔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검찰총장 등 법조 고위직 출신 변호사들의 변호사 등록을 퇴직 후 2년 동안 제한하고, 고등법원 부장판사나 검사장급 이상 고위직 출신 변호사는 퇴직 전 근무지 사건을 2년 동안 수임하지 못하는 등 전관예우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는 대책을 담고 있다.

 

물론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한다’ ‘왜 대법관에게만 제한을 가하냐’는 반발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19대 국회(2012~2016)에도 비슷한 내용의 변호사법 개정안들이 발의됐지만 통과하지 못했다. 박영선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을 검토한 국회 법사위 정연호 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에 “대법원과 법무부는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하여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입장”이라고 전했다.

 

19대 국회에서 ‘퇴직 대법관의 대법원 사건 3년 수임 금지’ 개정안을 발의했던 판사 출신 서기호 변호사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발의를 했는데 위헌 논란이 불거지면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인사청문회에서 (퇴직하면) ‘교수 하겠다’ ‘개업 안 하겠다’는 구두 약속만 할 게 아니라, 의지가 있다면 법원과 국회가 앞장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한성 변호사의 이재용 부회장 사건 수임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번 논란이 “변호사법 개정의 필요성이 주목받는 기회”(김현 대한변협 회장)가 될 수 있을까.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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