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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거미 수컷은 왜 ‘죽음의 교미’를 선택할까

과부거미 수컷은 왜 ‘죽음의 교미’를 선택할까

조홍섭 2018. 03. 23
조회수 1689 추천수 1
 
잡아먹지 않는 젊은 암컷보다 잡아먹는 성숙한 암컷 선호
나이든 암컷이 번식위해 다량의 페로몬으로 유혹 가능성 
 
b1.jpg» 갈색과부거미 암컷(사진)은 짝짓기 도중 종종 수컷을 잡아먹는다. 그러나 수컷은 나이 든 암컷을 선호하는 불합리해 보이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튜 필드,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짝짓기에 나선 거미 수컷은 교미한 경험이 없는 암컷을 선호한다. 다른 수컷과의 정자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다. 많은 거미 수컷은 짝짓기 뒤 자신의 교미기 끄트머리를 잘라 암컷의 생식기를 막는다. 무엇보다 젊은 암컷은 짝짓기를 하면서 수컷을 잘 잡아먹지 않는다. 수컷은 또 다른 암컷에 정자를 퍼뜨릴 수 있다.
 
그런데 갈색과부거미는 색다른 짝짓기 행동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거미 수컷은 생식 능력도 우수하고 잡아먹힐 우려도 없는 젊은 암컷을 마다하고 성숙한 암컷과 짝짓기를 한 뒤 먹히는 길을 택한다. 성숙한 암컷 가운데서는 나이 든 쪽을 고른다. 나이가 들수록 생식 능력은 당연히 떨어진다. 이 거미 수컷은 왜 이런 납득하기 힘든 선택을 하는 걸까.
 
b2.jpg» 짝짓기를 마친 뒤 낳은 알집을 보호하는 갈색과부거미 암컷. 칼 아말리,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스라엘 연구자들이 갈색과부거미를 온실에서 기르면서 연구한 결과가 과학저널 ‘동물 행동’ 최근호에 실렸다. 연구자들은 먼저 성숙한 암컷에게 잡아먹히더라도 수컷이 선택할 특별한 이득이 있는지 살폈다. 암컷 생식기를 틀어막을 확률이 높아지는지 또 짝짓기 시간을 늘려 정자로 수정시키는 알이 늘어나는지를 보았지만 별 이득이 없었다.
 
성숙한 암컷은 짝짓기를 위한 의식도 길고 복잡하다. 젊은 암컷에겐 거의 필요 없는 짝짓기 의식을 몇 시간 동안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실험에서 젊은 암컷과 짝짓기에서 죽은 수컷은 하나도 없었지만 성숙한 암컷을 만났을 때는 57%나 잡아먹혔다. 사실 이 문제는 심각해서, 대부분의 거미 수컷은 짝짓기 때 암컷의 밥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젊은 암컷을 고르거나, 기온이 낮아 암컷의 동작이 굼뜰 때를 노리고, 또는 먹이를 먹고 있는 암컷에 접근하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수컷을 포식하는 성숙한 암컷이 젊은 암컷보다 다산성이지도 않다고 밝혔다. 젊은 암컷과 짝짓기했을 때 다른 수컷의 정자와 경쟁이 붙는 등 불리해지는지를 조사했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연구자들은 “수컷 갈색과부거미는 높은 에너지 소비와 낮은 생식 성공률, 그리고 무엇보다 훨씬 높은 잡아먹힐 확률에도 젊은 암컷보다 성숙한 암컷을 선호하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이런 수컷의 행동은 수수께끼”라고 논문에 적었다.
 
b3.jpg» 수컷 갈색과부거미의 불합리해 보이는 행동의 배경에는 나이 든 암컷의 절박한 번식 본능이 작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매튜 필드,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진화한 이유는 뭘까. 연구자들은 앞으로 연구해 볼 만한 가설로 나이 든 암컷 거미일수록 더 많은 양의 페로몬(성호르몬)을 분비해 수컷을 유인할 가능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거미 암컷은 둥지에서 화학물질을 공기 중으로 풍긴다. 수컷은 먼 거리를 쏘다니며 이 신호를 감지하고 암컷에 접근한다. 이번 연구 결과는 암컷이 나이에 따라 다른 성분과 양의 페로몬을 방출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연구자들은 “거미의 밀도가 낮아 수컷을 만날 확률이 낮고 산란기일이 촉박해 자칫 수정되지 않은 알을 낳을 가능성이 있는 나이 든 암컷은 생식에 다급하게 몰린다”고 설명했다. 
 
갈색과부거미는 건조한 열대·아열대 지역에 널리 분포하며 인가 근처에도 많이 산다. 독거미이기는 하지만 독성이 악명 높은 검은과부거미에는 독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hevy Waner et al, Male mate choice in a sexually cannibalistic widow spider, Animal Behaviourhttps://doi.org/10.1016/j.anbehav.2018.01.016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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