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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선언을 위한 진짜 협상, 시작됐나? - 미 국방부, 북미 협상에 응하다

<연재> 장대현의 한반도 정세 동향 (9)
장대현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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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18  07:21:04
페이스북 트위터

1. 품페이오의 ‘강도적’ 방북

1) ‘북한만의 비핵화’ FFVD

7월 5일 품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평양으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자신의 트위터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합의한 FFVD를 향한 우리의 노력을 지속하기를 기대한다”고 쓴다. 이번 방북의 목적이 FFVD라고 표방한 것이다.

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란 것으로 최근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즉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대신 품페이오가 사용하는 언어다. CVID와 FFVD는 어떻게 다를까? 공개된 답안지는 없다.

6.12 북미정상회담 하루 전 오후 4시까지도 “오직 수용 가능한 것은 CVID”라고 장담했다가 정작 그것 없는 공동성명이 발표된 이후 그가 고안해낸 용어라는 것. 또 하나, 그 적용 대상이 한반도 전체가 아니라 오직 북 만이라는 점에서 둘은 동류라는 것 정도를 말할 수 있다.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1) 새로운 북미 관계 2) 영속적이고 안정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3)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4) 미군 유해 송환 등 네 가지에 합의했으므로, 그 이후 첫 번째 실무 협상은 그 4개 주제를 다루는 것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품페이오는 합의 사항에 있지도 않은 “북한의 FFVD”를 위해 길을 떠난 것이다.

7월 6일 북미는 3시간에 걸쳐 회담과 실무만찬을 한다. 그 직후 품페이오는 “첫날 회담을 방금 마무리했다. 우리 팀의 활약이 자랑스럽다”고 트위터를 날린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나워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평양 현지에 동행한 기자단 6명에게 “비핵화 검증을 포함, 핵심사안을 다루기 위한 실행 그룹을 만들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한다. ‘검증’을 위해서는 먼저 ‘신고’가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이 발표는 북이 신고와 검증에 합의했거나 그 합의에 매우 가까이 다가간 것처럼 들리기에 충분하다.

평양 체류 2일 차, 북미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회담과 실무오찬을 한다. 이틀 동안 9시간의 협상을 마친 품페이오는 평양 순안 공항에서 수행 기자단에게 12일 판문점 유해 송환 협상 합의를 포함, “거의 모든 주요 쟁점에서 진전을 이뤘다”는 총평을 한다. FFVD를 목표로 평양에 가는 것이라고 못 박은 사람의 말이 이러하니, “북한만의 비핵화”에 진전이 있는 것처럼 비친다.

2) 교착국면 뛰어넘을 허들, 종전선언

하지만 그것은 ‘품페이오 쇼’였다. 그가 떠난 저녁 북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이틀 간 의 협상 경과를 공개한다. 간추리면, 북은 공동성명의 1) 새로운 북미 관계 관련 “북미 간 다방면적인 교류 문제” 2) 평화체제 구축 관련 “정전협정 65돌을 계기로 한 종전선언 발표 문제” 3)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관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생산 중단을 물리적으로 확증하기 위한 미사일 엔진시험장 폐기 문제” 4) 미군 유해 발굴 및 송환 관련 “실무협상 조속 시작 문제” 등을 제기했다.

그러나 미국은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나왔다.” 또한, “평화체제 구축 문제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이미 합의된 종전선언 문제까지 멀리 뒤로 미루어놓으려 했다.”

그 결과 “신뢰가 공고화되기는커녕 우리의 비핵화 의지가 흔들릴 수 있는 위험한 국면에 직면했고” 이는 “북미 정상이 합의한 새로운 방식을 실무 전문가들이 훼손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계적, 동시적 해법이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다. 성명은 끝으로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심을 아직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가 이미 다 합의된 것처럼, 또는 이미 실행중인 것처럼 선거 유세 현장에서 단골로 홍보해온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동결의 완료, 미군 유해 송환 등은 북미 간 다방면적인 교류, 종전선언과 동시에 풀려 나가는 것임이 이로써 모두에게 명백해졌다.

또한, 성명에서 북은 그들이 생각하는 종전선언의 의미를 최초로 객관화한다. 그것은 1) 한반도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공고한 평화보장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첫 공정 2) 북미 사이의 신뢰 조성을 위한 선차적인 요소 3) 근 70년간 지속돼온 한반도의 전쟁 상태를 종결짓는 역사적 과제 등 세 가지다. 1)의 첫 공정, 2)의 선차적 요소 등으로 거듭 강조한 것처럼 북은 “우리의 비핵화 의지가 흔들릴 수 있는 위험한 국면” 즉 현재의 교착 상태를 뛰어넘는 허들이 종전선언이란 것을 분명히 했다.

3)에서 북은 종전선언이 ‘전쟁상태를 종결짓는’ 것이라 말한다. 이는 우리 언론 등이 종전선언을 “국제법적 변화를 동반하지 않는 단순한 정치적 선언”이라고 나름 편리하게 해석한 것과는 같지 않다. 전쟁상태를 종결지으려면 ‘종결’행위를 수반해야 한다. 그 핵심은 1953년 7월 27일 북과 정전협정을 체결한 이후 지금까지 북과의 전쟁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유엔사령부의 존재와 관련된다.

2. 품페이오에게 없는 것, 군사 분야 권한

품페이오는 6.12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활자로 박힌 미국의 대북 협상 창구다. 그러나 그는 명실상부하지 않다.

장면 하나. 6.12 북미정상회담 당일 오후 단독 기자회견에서 트럼프가 한미군사훈련 중단을 선언한 다음 날(6.13) 품페이오가 서울에 왔다. 6월 20일 <중앙일보>에 따르면 6월 13-14일 방한 기간 중 품페이오는 “올해 8월 예정된 UFG만이 아니라 ‘모든 연합 군사훈련’을 잠정 중단 대상으로 통보했다.” 6월 14일 오전에는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만났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공언과 품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전언이 있었음에도, 그날(6.14) 오후 4시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대북 군사적 압박에 대해 유연한 변화가 필요하며, 한미연합훈련에 대해서도 신중한 검토를 하겠다”는 선에서 말을 조절하고, “구체적 내용은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라”고 여지를 남겨둔다.

그날 저녁(6.14) 송영무 국방장관이 매티스 미 국방장관과 통화한다. 그러나 매티스는 훈련 중단을 언급하지 않았다. 6월 15일 청와대는 “한미 간 긴밀한 논의를 통해 조만간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할 뿐 더 나아가지 못한다.

장면 둘. 요지부동이던 매티스가 “이번 UFG훈련 하나만 중단”을 공식 발표한 것은 6월 18일(현지시간)이다. 이와 관련, 당일(6.18) 트럼프가 우주군 창설을 결정, 미 국방부에 인력과 예산을 추가로 얹어주는 타협을 한 것은 지난 글(6.19)에서 봤다.

그런데, 트럼프 측의 절충이 하나 더 있다. 같은 날(6.18) 품페이오는 “김정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으며, 이에 따른 대가로 트럼프 대통령은 정전 협정을 바꾸고 안전 보장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발언, 종전선언이 북의 비핵화에 대한 대가라고 규정한다. ‘북의 선비핵화’를 다시 꺼낸 든 것이다.

품페이오의 이런 입장 변경은 우리 외교부 강경화 장관에게 옮겨진다. 6월 18일 오전 둘의 통화가 있은 직후 강경화 장관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품페이오 장관과 통화한 사실을 공개하며 종전선언과 관련 “올해 안으로 추진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목적”이라고 말하면서도 “시기, 형식은 유연성을 가지고 대처해 나가고자 한다”고 추가한다.

4.27 판문점선언에 “올해 안에 종전선언”이 명시됐다는 점에서, 또한 청와대가 6.12 북미정상회담 계기 종전선언 성사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명백한 굴절이다. ‘트럼프, 품페이오 팀’은 훈련중단 카드를 얻기 위해 종전선언 카드를 접은 것이다. 오른쪽 바퀴를 끼우기 위해 왼쪽 바퀴를 빼야 하는 그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페달을 밟아도 자동차는 제자리에 맴돈다.

3. 북, 미 국방부와 직접 협상 시작

지난 6월 20-21일 판문점에서 유해송환 협상이 열리자, 트럼프는 6월 21일(현지 시간) 미네소타 선거 유세에서 “우리는 위대한 전사자 영웅들의 유해를 돌려받았다. 사실 이미 오늘 200구의 유해가 송환됐다”며 득표활동에 즉각 연결한다.

미국을 위해 전사한 이들을 미국 정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이데올로기가 절실히 필요한 미 국방부에게도 유해송환은 각별한 일이다. 7월 10일 미 국방부의 <전쟁포로, 실종자 확인국(DPAA)>이 유해 발굴, 송환에 대가를 지불하지는 않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부담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은 미 국방부의 그런 입장을 반영한다.

7월 12일 유해송환 실무협상이 불발되자 북이 미국을 바람맞혔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이는 오보다. 7.12 유해송환 협상은 애초 북미 간 합의사항이 아니었다. “7월 12일 판문점에서 유해송환 책임자가 만나기로 합의했다”는 품페이오의 발언(7.7)에 “하루 또는 이틀 변동이 있을 수는 있다(한겨레. 7.13)”는 말이 딸려 있는 것이 그 증거다. 그럼, 품페이오의 7월 12일과 북의 ‘하루 또는 이틀 변동’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날짜가 아니라 협상에 참가하는 양측 대표의 성격이 알맹이다.

“정부 핵심 당국자는 미 측에서 ‘12일 ○시에 나가겠다’고 통보했는데 북한에서 답이 없었다. 약속이 확정됐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동아일보. 7.13).” 품페이오는 일방적으로 북에 통보하고 유해송환 실무협상단을 판문점에 보냈다.

그런데 북은 이 돌발 상황에서 품페이오 측과 소통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판문점 남북 연락 회선을 통해 우리 측에 ‘북-유엔사 간 직통전화’ 복구 의사를 유엔사 측에 전달해 달라고 요청, 그것을 복구한다. 그리고 이 선을 통해 유엔사에 장성급 회담을 제안한다. 북이 품페이오와는 별도로, 미 국방부와 직접 협상에 나선 것이다. “유엔사 측은 미 국방부에 북측 제의 내용을 전달하고 회신을 기다리는 것으로 알려졌다(조선일보. 7.13).” 그리고 미 국방부는 북의 협상 제의를 수용(6.12)했다.

7월 15일 북미 장성급회담이 열렸다. 회담은 북측 통일각에서 약 2시간 진행됐다. 무슨 말이 오갔을까? 알 수가 없다. 참석자와 회의 내용이 모두 비공개다. “유엔군 측에서는 마이클 미니핸 유엔사령부 참모장 겸 주한미군사령부 참모장(공군 소장)이 수석대표로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한겨레. 7.16).” 북측 대표는 언론도 아예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품페이오가 애초 상정했던 유해송환 실무협상보다 높고, 넓은 주제를 다뤘을 것이란 사실이다.

북미 장성급회담 직후 품페이오의 성명 ”이미 발굴된 유해의 송환 문제를 포함, 다음 조치를 조율하기 위한 미국과 북한 관료들의 실무급 협의를 16일 시작할 것”이라는 대목도 힌트를 준다. ‘유해송환 다음 조치’란 무엇인가? 미 국방부의 협상 상대인 북은 7월 7일 외무성 성명에서 유해송환과 종전선언을 동전의 양면처럼 규정했다.

“미 CNN 방송은 "양측이 미군 유해 합동 발굴에 합의했으며, 200구 가량의 미군 유해가 14~21일 내로 송환될 것”이라고 보도했다(조선일보. 7.17).” 종전선언도 그렇게 다가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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