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대통령 정통성에 의문” 민주당의 뒤늦은 각성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4/24 09:47
  • 수정일
    2013/04/24 09:4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대통령 정통성에 의문” 민주당의 뒤늦은 각성
 
“어차피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vs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편집부 | 등록:2013-04-23 13:11:32 | 최종:2013-04-23 15:42:3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 뒤늦게 각성한듯한 민주통합당 문희상 대표


“네가 진작 했어야 할 일을 내가 해주지” (영화 다크나이트)

지난해 말 국정원게이트의 꼬리가 잡힌 이후 시민들은 그동안 제1야당이 진작 했어야 할 일들을 대신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정보기관의 대선개입을 부정선거에 준하는 행위로 보고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던 것은 재야인사들과 언론, 시민들이었습니다.

선거개입을 지시한 국정원장의 내부지령이 공개됐고, 이를 실제로 실행하던 직원이 현장에서 발각된지 4개월이 지났습니다. 국정원게이트가 현 정권의 정통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안임은 드러난 사실만 봐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이런 정황이 밝혀진 뒤에도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은 ‘엄정 수사 촉구’ 수준의 모범생같은 태도로 일관해 왔고, 대통령과 여당은 오히려 이 사건을 ‘국정원 여직원 감금사건’으로 규정하고 역공을 펼쳐왔습니다.

제1야당이 뜨뜨미지근한 태도로 일관하자 국정원사건과 관련된 ‘제대로된 목소리’는 재야와 시민사회에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표창원 교수는 “워터게이트를 능가하는 헌정유린사건”으로 규정했고, 박찬종 변호사는 “정권은 유한하지만 경찰은 영원해야 한다”며 일침을 가했습니다. 경찰의 수사가 지지부진했던 중요한 이유는 이렇게 제대로 된 목소리가 재야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경찰의 입장에서 재야의 목소리와 원내 127석을 가진 제1여당의 목소리는 그 무게감이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건과 관련해 수많은 논평을 발표했던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이같은 평가가 억울할지 모르나, 국정원사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제 역할을 못했다는 비난은 피할 길이 없습니다. 국정원사건의 전말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상황에서 워터게이트를 떠올리지 못했던 민주당의 모습은 낫놓고 ㄱ자 모르는 백치와 다름없었습니다.


이제야 번지수 찾은 민주당

이제 여건이 무르익었다 판단한 것일까요? 어제 민주통합당이 국정원사건과 관련해 대여 총공세모드로 전환한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국정원게이트는) 국정원과 경찰이 야합해서 저지른 헌정파괴 국기 문란 사건이다. 민주당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전 국민을 기만한 두 기관의 반국가 범죄를 결코 묵과하지 않겠다. 이번 사건은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과 관련된 중차대한 사건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 경찰의 중간발표 직후 국정원 여직원은 무죄라며 민주당에 인권 유린에 대해 사과하라고 한 적이 있다. 거짓말임이 명명백백해졌다. 민주당은 경찰과 국정원의 천인공노할 범죄행위에 대해 국정조사 등 모든 걸 동원해 진실을 밝히겠다. - 22일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민주당이 공식적으로 국정원사건과 정권의 정통성의 연계를 이야기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어 설훈 의원은 수위를 더욱 높여 박근혜 대통령을 압박했습니다.

 

국정원의 불법 대선 개입이 없었다면 대선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 사실대로 밝혀졌다면, 대선 결과는 어땠을까? 대선 당시 새누리당, 국정원, 경찰 등은 민주당에 잘못을 덮어씌우면서 민주당이 불법을 자행한 것처럼 만들어놓았다, 거짓말이었고 결국 민주당은 대선에서 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거짓 위에 세워진 대통령 아닌가? 그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서 철저하게 파헤치도록 지시해야 대통령으로서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검찰은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정원을 확실히 수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정통성에 분명한 의문이 있을 것이다. - 22일 설훈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

 

이들 발언의 핵심은 “선거개입이 아니었다면 대선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다”입니다. 사건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꼬박 4달이 걸린 셈입니다. 민주통합당은 진작 머리에 띠를 둘렀어야 했습니다. 그동안 자신들의 정치적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사건의 핵심에 관한 언급을 언론과 시민사회에 떠맡겼던 것이죠. 늦은감이 있지만 민주당의 각성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관련글 - 권은희 과장의 분노와 라면상무의 분노

▲ 국정원사건의 국면전환을 이끌어낸 권은희 과장


‘분노의 각성’ 이끌어낸 양심의 힘

용기있는 양심의 힘은 참 놀랍습니다. “한마디만 더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경찰고위층의 협박까지 적나라하게 폭로한 권은희 과장의 용기는 점차 회의론이 지배하던 국정원게이트의 국면전환을 이끌어냈습니다. 수사과정에서 경찰고위층이 지속적으로 부당한 압력을 가했다는 그녀의 폭로는 경찰의 지지부진한 수사과정을 지켜보며 냉소와 회의로 돌아섰던 시민들에게 ‘분노의 각성’을 이끌어 냈고, 유약함의 상징과도 같았던 민주당에게 조금이나마 야성을 되찾아 주었습니다.

경찰로부터 국정원사건 수사를 넘겨받은 검찰특별수사팀은 어제 대선개입의혹 수사과정에서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으로 고발당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조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검찰의 수사의지를 액면 그대로 믿기는 힘들지만, 권은희 과장의 폭로와 검찰의 수사의지 천명, 민주당의 공세 등 몇 일 사이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국정원게이트를 둘러싼 기류의 변화를 감지하게 해줍니다.

이러한 기류의 변화는 그동안 '여직원 감금'에 대해 책임지라며 궁색한 역공을 펼쳐왔던 대통령과 여당측의 입장을 곤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더이상의 역공이 어려워진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방어하는 차원에서라도 수사에 협조해야 할 상황에 몰렸습니다.


“어차피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vs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전자는 현실을 말하고 있고, 후자는 당위를 말하고 있습니다. 비이성과 편법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희망과 당위를 말하는 사람들이 순진한 몽상가 취급을 받기 쉽습니다. 분명한 것은 모든 변화는 당위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입니다. 냉소와 회의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약 표창원 교수나 권은희 과장이 ‘어차피 밝혀내지 못할거야’라고 생각했다면 사건의 양상이 어떻게 흘러갔을까요? 아찔합니다. 그들은 이번 싸움이 쉽지 않은 싸움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당장 코앞에 와 있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고난의 길을 택한 이유은 현실보다 당위를 먼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인들의 용기 앞에서 “어차피 밝혀지지 않을거야”라는 범인들의 회의는 한없이 초라해집니다.

문희상 대표의 발언처럼 민주당이 국정원게이트의 전모를 밝히는데 당력을 집중한다면 얻을 것이 많습니다. 대선 이후 비정상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민주당의 당권경쟁은 많은 지지자들을 등돌리게 만들었습니다. 민주당으로서는 국정원게이트가 등돌린 민심을 되찾아 올 마지막 기회일지 모릅니다.

현재 실질적으로 제도정치권 내에서 수사기관을 압박할 수 있는 세력은 127석의 의석을 가지고 있는 민주당이 유일합니다. 이런 이유로 야권지지자들은 민주당을 바라보는 입장과 무관하게 민주당의 공세를 지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놓고 먼 미래의 대안을 논할 한가한 상황이 아닌 것이죠. 당위를 떠나서라도 민주당이 국정원사건에 사활을 걸어야 할 현실적인 이유입니다.

뒤늦게 포문을 연 만큼 민주통합당이 제1야당에 걸맞는 위엄으로 사건의 진상이 명명백백히 밝혀질 때까지 제 역할을 다하길 기대합니다.


( * 시사블로거 다람쥐주인님이 23일 자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필자의 동의하에 소개합니다 - 편집자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