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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사법부의 또 다른 실책, ‘변.포.판’

양승태 사법부의 또 다른 실책, ‘변.포.판’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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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0일 특수활동비 상납 및 공천개입 혐의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가 열렸던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형사대법정 417호 전경. 해당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 없음. / 공동취재단

지난 7월 20일 특수활동비 상납 및 공천개입 혐의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가 열렸던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형사대법정 417호 전경. 해당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 없음. / 공동취재단

 

최근 종영한 JTBC <미스 함무라비>에서 그려지는 고등부장 이상 고위 법관의 모습은 ‘꼰대’스러워도 재판에 있어서는 철저한 판사로 그려진다. 실제 대다수의 판사들은 드라마 속 판사와 유사하다. 작품의 원작자가 현직 판사라는 점도 현실성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요즘 법원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리 아름다운 모양새는 아니다. 밖으로는 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가 장기화될 조짐이고, 안으로는 ‘재판을 하지 않는 고위 판사’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변포판(변호사로 나가는 것을 포기한 판사)’은 늘 있어 왔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문제가 되고 있는 ‘변포판’은 사정이 다르다. 이미 판사의 ‘꽃’이라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을 거치고, 나아가 법원장 경험까지 있는 소위 ‘원장급 고등부장판사’가 새롭게 등장하는 변포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양승태 대법원장 전임인 이용훈 대법원장은 임기 말인 2010년 법관인사 이원화 제도를 사법개혁의 중요 과제로 도입했다. 법관인사 이원화 제도는 지방법원 판사와 고등법원 판사를 분리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지방법원 판사는 계속 지방법원을 순환하며 하급심을 책임지고, 고등법원 판사는 항소심을 전담함으로써 각 심급의 전문성을 기르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이원화를 통해 사법관료화의 폐해로 지적돼 온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지방법원 부장판사→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자연스럽게 폐지하고, 기수나 경력 면에서 대등한 위치의 고법 판사 3명이 재판부(합의부)를 구성해 항소심 재판의 전문성과 내실을 키우자는 것이었다. 그 결과로 불복률(상고율)을 낮추는 효과까지 기대됐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 7년이 지난 지금 이 제도는 ‘고위 변포판’만 양산한 채 고등법원의 골칫거리로 전락한 상태다. 
 

법관 인사 이원화제도 골칫거리로 
당초 로드맵에 따르면 이 제도는 2017년에는 안착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양승태 코트는 전임 대법원장의 역점사업에 관심이 없었다. 하급심(1·2심)의 충실화를 통해 상고율을 낮추는 방법보다는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상고법원’ 도입에 주목했다. 법원조직법 등 기존 고등부장과 고법 판사의 재판 안배를 위한 법 개정 노력도 당연히 이뤄지지 않았다. 2011년 처음으로 고법 판사 모집을 할 때 지원하지 않고(당시 고법 판사 첫 지원 기수는 23~25기), 지방법원 부장판사로 남아있던 23기 판사들이 2016년 정기인사를 앞두고 고등부장 승진대상이 되면서 잡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고법부장 승진제도 폐지를 명시적으로 하지 않은 채 이원화를 가져가면서 스텝이 꼬인 것이었다. 고법 판사에 지원해 고법 부장으로 승진할 기회가 사라진 고법 판사들과 지법 부장으로 남아있으면서 고법 부장 승진대상자가 된 동기 간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졌다. 거기다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 정기인사를 넉 달여 앞둔 2015년 11월 코트넷에 고법 부장 승진제도를 계속 운영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게시글을 올리면서 이원화 제도의 동력이 급격히 약화됐다.

양승태 사법부의 또 다른 실책, ‘변.포.판’

변호사 업계 불황으로 법복 안 벗어 
여기에 양승태 코트가 사법개혁 과제로 평생법관제와 법원장 순환보직제를 가져오면서 법관인사 이원화 로드맵이 꼬였다. 고등법원이 대등한 3인의 고법 판사 재판부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고법 부장들이 법원을 떠나야 가능했던 것이었다. 이 부분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이용훈 코트의 실책이기도 하다. 당시 제도 도입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한 부장판사는 “2010년 이원화 시뮬레이션을 할 때 전제가 됐던 것이 고등부장들의 ‘용퇴’였다. 당시(2010~2011년)까지만 해도 고등부장들이 원장으로 나가면 법원장 임기가 끝남과 동시에 사표를 냈다. 정년은 남았지만 후임들을 위해 퇴직을 하는 관행이 있었다. 거기에 맞춰 행정처에서도 로드맵을 짰던 게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제가 바뀌면서 이원화 제도 역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았다. 평생법관제 및 고위법관 취업 제한 등에 따라 고법부장들이 사표를 내지 않기 시작했다. 법원장으로 나갔던 고법 부장판사들도 임기를 마치고 고등법원으로 돌아왔다. 고등법원 내 고위 법관 적체가 벌어진 것이다.

문제는 법원장에서 돌아온 일부 고등부장판사들의 업무행태였다. 차관급인 고등부장판사는 근무평정에서도 제외된다. 평가가 사라진 자리에는 자리 보전만 남았다. “특조단에서 추가공개한 문건 중에 ‘승포판(승진을 포기한 판사)’ 관리문제가 있던데 지금 법원의 최대 문제는 일하지 않는 ‘변포판’이다. 원장급 고등부장들은 ‘노안’, ‘체력저하’ 등을 이유로 일을 안 한다. 판결문 초고도 재판연구원(로클럭)에게 다 맡겨버린다. 그러면서 나갈 생각은 전혀 없다. 그들보다 더 나이 많은 대법관들도 1년에 수천 건의 사건을 처리하는데 원장급 고등부장판사들은 영감 노릇이나 하고 있다. 지금 고등법원은 고법 판사와 고법 부장판사 간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심각한 상황이다.”(A 지법 부장판사)

“항소심의 충실이라는 당초 목표와 달리 어떤 재판부는 서로간의 불만과 갈등이 심해 재판장인 고법 부장판사와 고법 판사가 아예 서로가 맡은 사건을 건드리지 않는 곳도 있다. 예전에는 2인 합의라고 해서 재판장과 주심판사가 판결문 작성과정에서 계속 상의하며 결론을 내렸는데 이제는 각자가 맡은 사건은 각자가 알아서 결론내려버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가장 최악의 경우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 피해는 결국 재판 당사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B 고법 판사)

원장급 고법 부장판사들이 나가지 않는 원인은 결국 변호사 업계 불황이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국내 대형로펌으로의 취업이 제한됐다고 하더라도 소규모 로펌으로 가거나 개인사무실을 차리는 것에는 제한이 없음에도 이들이 퇴임하지 않는 것은 결국 계산기를 두드렸을 때 법원에 남아있는 것이 이득인 상황으로까지 변호사 업계가 내몰렸기 때문이다.

전 서울변회 간부는 “대형로펌은 비용과 수익을 철저히 따지는 곳”이라며 “이미 국내 대형로펌들은 몇 년 전에 국내로 몰려드는 외국계 로펌에 대비해 송무파트의 판사들을 대거 뽑아놓은 상태라 유지비용만 해도 상당한 돈이 드는 고위 법관을 굳이 대기표 받아가며 뽑아갈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 중견 로펌 대표 변호사는 “법원장급 고위 법관들은 대형로펌에서 ‘모셔’가지 않는 이상 자기 사무실을 차리려면 고용변호사도 여러 명 둬야 하고, 차량도 있어야 하고, 사무실도 어느 정도 규모있게 마련해야 하는데 사건 수임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쉽지 않은 결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업계 불황이 일하지 않는 변포판을 양산하고, 고등법원 운영도 파행을 빚고 있는 것이다. 한 법원장급 고등부장판사는 “자리만 차지하고 일을 하지 않으면 후배 판사들에게 부끄러운 일이고 적폐다”라고 비판했다. 한편 서울고등법원은 자체적으로 고법판사TF를 구성, 지방 고등법원으로 발령받는 고법 판사에 한해 재판장 역할을 맡기는 등의 개선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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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7290952001&code=940301#csidx757f84af30a04fa9b70731713dc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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