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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의 정세토크] "9월 남북 정상회담 난항 겪을 수 있다"
지난 13일 남북이 고위급회담을 통해 9월 중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양측이 구체적인 날짜를 합의하지 못하면서 실제 회담 추진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당시 북한 수석대표였던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이하 조평통) 위원장이 종결회의에서 "북남 회담과 개별 접촉에서 제기한 문제들이 만약 해결되지 않는다면 예상치 않았던 그런 문제들이 탄생될 수 있고 또 일정에 오른 모든 문제들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을 두고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의 취소나 연기 조치 등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리 위원장의 발언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핑계를 대면서 판문점 선언 이행에 미적거리는 태도를 보이지 말라는 것"이라며 "판문점 선언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남북 정상회담을 할 수 있느냐는 논리"라고 풀이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통해 좋은 합의서를 만들어 놓았는데, 아무것도 실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양측이 만나서 뭐하겠냐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며 "모든 문제들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고 했는데 여기에는 정상회담도 포함돼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북미 간 협상에 따라 남북 정상회담의 개최 여부도 달라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정 전 장관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북한에 가서 협상한 이후에도 북미관계 변화의 신호가 나오지 않는다면 이는 북핵 문제에 진전이 없다는 뜻이고, 결국 남북 정상회담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정 전 장관은 현재 한반도 국면에서 한국이 이렇다 할 역할을 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지금 두 개의 장애물 앞에 놓여있다. 미국이 발목을 잡고 있는 북핵 문제와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라는 북한의 압박"이라며 "북미 관계가 어느 정도 풀릴 조짐이 보이면 판문점 선언 이행과 관련해 용기를 가지고 미국을 설득할 수 있을텐데 지금 양쪽이 모두 막혀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장관은 그럼에도 한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풀어나가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9일 미국 NBC 방송과 인터뷰에서 '한미 양국은 올림픽 기간에 합동 군사 훈련을 연기하는 문제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혀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를 이끌었고, 이것은 이후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시발점이 됐다"며 "당시 용기를 가지고 미국과 이야기했을 것이다. 지금은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인터뷰는 14일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세 번째 정상회담이 8월 말에서 9월 초에 열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는데요. 하지만 지난 13일 진행된 남북 고위급회담에서는 9월 중에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것 외에 구체적인 날짜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남북이 정상회담 날짜를 정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세현 : 북한이 정상회담 준비보다는 다른 데에 신경을 더 쓰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의 고위급회담 대표단 명단을 봤을 때 정상회담보다는 이른바 '외상 장부'를 가지고 오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의 고위급회담 수석대표인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과 대표단 중 한 명인 박용일 조평통 부위원장은 정상회담을 논의하려고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윤혁 철도성 부상과 박호영 국토환경보호성 부상, 박명철 민족경제협력위원회 부위원장은 정상회담과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김윤혁 부상은 철도와 도로 현대화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나온 것이고, 박호영 부상은 산림녹화 사업을, 그리고 박명철 부위원장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관련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나온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즉 북한의 회담 대표단 5명 중에 3명은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나온 셈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남한은 전혀 대응하지 않고 정상회담만을 위한 대표단을 꾸렸습니다.
물론 북한이 먼저 정상회담과 관련한 논의를 하자고 제의하긴 했지만, 북한은 이 제의를 하면서 남한을 불러 들여 '정상회담을 하고 싶다면 판문점 선언을 착실하게 이행하라'라는 주문을 한 셈입니다. 북한이 정상회담 날짜에 대한 칼자루를 쥐게 된 것이죠.
리선권 위원장이 회담 종결회의에서 "쌍방 당국이 제 할 바를 옳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북남 회담과 개별 접촉에서 제기한 문제들이 만약 해결되지 않는다면 예상치 않았던 그런 문제들이 탄생될 수 있고 또 일정에 오른 모든 문제들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은 남한이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핑계를 대면서 판문점 선언 이행에 미적거리지 말라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아마 리 위원장은 판문점 선언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남북 정상회담을 할 수 있느냐는 논리를 펼쳤을 겁니다.
즉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 27일 정상회담을 통해 좋은 합의서를 만들어 놓았는데, 아무것도 실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양측이 만나서 뭐하겠냐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정상회담 합의문에 나와 있으니 문 대통령이 평양에 방문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문 대통령이 평양에 올 때 뭐라도 하나 가져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겁니다.
프레시안 : 리선권 위원장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고 발언한 것을 보면,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지 못할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닌가요?
정세현 : 리 위원장이 고위급회담 종결회의에서 "북남 회담과 개별 접촉에서 제기한 문제들이 만약 해결되지 않는다면 예상치 않았던 그런 문제들이 탄생될 수 있고 또 일정에 오른 모든 문제들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정상회담도 포함돼있는 걸로 봐야 합니다.
북한은 지난 고위급회담에서 남한에 "남북 정상끼리 만나서 합의했던 것이 전혀 이행하고 있지 않은데 어떻게 만나냐, 날짜는 정해져 있는데 당신들이 오늘 이후에 어떻게 하는지 보고 연락줄게"라는 입장을 보였을 겁니다.
프레시안 : 그런가하면 북미 간 판문점에서 실무회담을 진행하면서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데요.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 가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면 남북 정상회담의 일정도 잡힐 것이라는 관측이 있습니다.
정세현 :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 가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 정부에서는 이번에는 미국이 북한에 줄 것을 뭐라도 가져가지 않겠나라는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북미 관계가 돌아가는 모양새가 되면 그 때 남북 정상회담을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 간 이후에도 북미관계가 변하는 신호가 나오지 않는다면 이는 북핵 문제에 진전이 없다는 뜻이고, 이렇게 되면 남북 정상회담이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프레시안 : 결국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려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이 잘 되길 기다려야 하는 상황인가요?
정세현 :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가 시작될 수 있도록 미국이 인센티브를 준다면 남북 정상회담도 할 수 있겠죠. 다만 그만큼 남북 정상회담의 효용성은 떨어질 겁니다. 이런 식으로 미국에 따라가다가는 백날 하청업체 역할만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프레시안 : 당초에는 남북 정상회담을 북한의 정권 수립일인 9월 9일과 유엔총회가 열리는 9월 18일 사이에 진행할 경우, 우리가 북미 협상에서 중재 역할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습니다.
정세현 : 9월 정상회담이 현실화된다면 우리는 북한에 "비핵화에 대해 좀 유연하게 움직여서 미국이 종전선언과 관련된 진전된 입장을 내놓을 수 있도록 유도해라. 그런 사인만 주면 우리가 미국도 설득해서 미국도 움직이게 만들겠다"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면서 중재자 역할을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북한은 "그 문제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에 방문하면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되받아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은 남한에게 비핵화 문제는 자신들이 알아서 할테니 "너희는 판문점 선언이나 제대로 하라"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죠. 이렇게 서로 방향이 엇나가니까 접점이 만들어지기 어려운 겁니다.
▲ 지난 13일 판문점 북한지역 통일각에서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렸다. 사진은 회담장에 입장하고 있는 남한 수석대표 조명균(오른쪽) 통일부 장관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북한이 남한에 요구하는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려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서 예외를 인정받아야 하는데요. 하지만 정부는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시설 점검을 위한 개성 방북마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대북 제재를 뛰어넘는 선택을 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정세현 : 개성공단의 기계 설비를 확인하러 가는 것이 개성에 돈이 들어가는 문제가 아님에도 정부는 이를 허가하지 않았죠. 북한은 아마 이런 것도 불만스러웠을 겁니다. 북한은 전반적으로 남한의 태도가 적극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은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 나가며"라고 명시했습니다. 이건 10.4선언에서 합의된 남북 사업들을 추진하자는 뜻인데요. 여러 사업들 중에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사안들이 있을 겁니다.
북한은 이런 부분들을 생각할 겁니다. 제재에 저촉되지 않고도 실행할 수 있는 사업들이 있는데도 남한이 굼뜨게 행동한다는 것이죠. 따라서 남한 정부가 제재와 관계없는 사업들에 대해 북한, 미국과 협의하는 등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실제 북한이 원하는 것은 대북제재 해제를 통한 경제 발전보다는 체제 안전 보상이 우선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정세현 : 북한은 미국의 전폭적인 제재 완화까지는 기대하지 않지만, 남북 간 대북 지원이나 협력은 적어도 중국 수준으로는 해야 하는거 아니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미국 눈치를 보고 있긴 하지만 슬슬 북한과 경제적 부문에서 교역을 트고 있는데, 정상회담까지 했던 남한이 중국이나 러시아만큼도 해주지 않고 철통같이 틀어 막고 있으면 어쩌냐 하는 불만을 가질 수 있죠.
때로는 저지르는 것도 방법
프레시안 :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9월 중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미국 국무부는 비핵화와 남북관계 진전이 같이 가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비핵화와 관련한 움직임 없이 남북관계가 앞서가면 안된다는 지적인데요.
정세현 :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운전자론'을 들고 나왔는데, 실제 올해 문 대통령이 동북아 정세를 좌지우지하다보니 미국이 견제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미국이 다시 운전자 자리에 앉겠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미국에서 남북관계와 북한 비핵화는 같이 해야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즉 미국은 한국의 외교적 이니셔티브가 커지는 것을 견제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25년 동안 이어져왔던 북핵 문제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압박을 통해 북한의 핵이나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포기하게끔 유도하는 정책은 실패했습니다. 압박이 강해지면 북한은 오히려 더 핵과 미사일을 보유하려 했죠.
미국은 최대한의 압박을 하면 북한이 비핵화 일정표를 내놓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이거 착각입니다. 이전 정부들이 했던 실패사례를 반면교사로 생각하지 않고 또 반복하고 있는 셈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 가졌던 지난 6월 12일(현지 시각) 싱가포르에서의 정상회담과는 달리, 실무자 급으로 내려오면서 북한의 압박이 북핵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이야기가 노골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이 먼저 비핵화를 해야 한다, 비핵화 전까지 제재 풀지 않겠다 등등 선(先) 비핵화에 대한 이야기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25년 동안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원인으로 회귀하는 느낌으로 좋은 징조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데도 미국이 이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북한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최대 압박 전술이 북한을 회담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좀 더 북한을 조이면 미국이 반대급부를 주지 않고도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동북아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계속 강화시키면서 중국도 누를 수 있다고 계산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는 트럼프가 설사 평양에 간다고 해도 북한 비핵화는 이루기 어렵습니다.
폼페이오 장관이 지난 7월 북한에 방문해서 북한이 핵 탄두를 60개 보유하고 있고, 8월까지 일정 비율을 신고하고 반출하라고 요구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핵을 없애는 순서는 '핵 물질 반출 → 핵 시설 파기 → 핵 무기 폐기 또는 반출'입니다. 이렇게 가야 하는데 폼페이오 장관은 핵무기부터 가져가겠다는 겁니다. 출구에서 내놓을 것을 입구에서 내놓으라고 하니 북한은 그렇게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 지난 7월 7일 마이크 폼페이오(오른쪽)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회담 차 평양 백화원 초대소 영빈관으로 들어서고 있다. ⓒAP=연합뉴스
또 북한은 핵 탄두를 25개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폼페이오 장관이 말한 개수와 상당히 차이가 납니다. 여기서 불일치가 나오면 끝없는 말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을 것 같아 보입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북한에 핵 탄두가 60개나 있다는 미국의 정보가 구체적 근거가 있는지 여부입니다. 만약 이 정보가 실체가 없다면 협상은 어렵습니다. 미국이 북한의 능력을 정확히 알고 압박할 경우 북한이 손을 들 수 있지만, 북한의 핵 무기 개수도 제대로 모른다면 아마도 북한은 미국을 '뭣도 모르는 웃기는' 것들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무튼 김정은 위원장은 북미 간 논의가 실무급으로 내려가 버린 이후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실무관료들이 디테일 차원에서 북미 정상이 싱가포르에서 했던 합의를 흔들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지난 8월 1일 미군 유해를 송환하면서 보낸 편지안에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미 정상 간 합의했던 양측의 새로운 관계 설정, 평화 구축, 비핵화 등 이른바 '삼궤 병행'을 미국 실무자들이 사실상 거부하고 있는 모양새이기 때문에,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대신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북한에 보내기로 했습니다. 즉 북미 간 2차 정상회담이 당장은 개최될 가능성이 낮아진 것이죠.
이같은 상황에서 남한은 남북 정상회담을 먼저 열어서 북한을 좀 설득시키고 이걸로 다시 미국을 설득해서 종전선언과 비핵화를 동시에 이행하는 식으로 협상 프로세스를 출범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북한은 고위급회담에서 그건 북미 간에 할 일이라면서 남한에게는 판문점 선언이나 잘 이행하라고 한 것 같습니다.
실제 미국 정보 당국자가 평양에 계속 드나든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북미 간 이미 물밑 접촉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은 별도의 중재자가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프레시안 : 트럼프 정부 입장에서는 여론 때문에라도 북한이 양보하는 듯한 모습을 만들어야 하는데, 폼페이오 장관이 기존과 같은 입장으로 북한에 다시 들어간다면 북미 간 협상 성과는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정세현 :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선 비핵화보다는 비핵화와 종전선언 및 체제 보장을 동시에 이행하는 결단을 내려서 폼페이오 장관에게 이를 지침으로 내려야 합니다. 북한이 비핵화 일정표를 내놓으면 미국은 종전선언 일정표를 내놓는 식으로 서로 맞춰가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은 비핵화가 다 될 때까지 제재를 유지된다고 선을 그어 놓았습니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하고 싶지 않게 유도하기 위해 사방에 장벽을 쌓아놓는 것 같습니다. 비핵화는 단계적으로 갈 수밖에 없고, 따라서 핵물질 신고나 사찰단이 들어가게 되면 그 다음 단계를 유도하기 위해 제재를 완화하는 식의 반대급부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북한도 비핵화 조치를 추진하지 않겠습니까.
최근 미국 실무자들의 언행을 보면 북한의 선행동을 요구하던 기존 미국 대북정책의 '르네상스'가 전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한 정부에서 이걸 뛰어 넘으려면 대통령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좀 질러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어차피 이렇게 가봐야 아무것도 안되기 때문에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때로는 저질러 놓고 설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도 있습니다. 1998년 금강산 관광을 처음 시작할 당시 북한의 금창리 지하 핵시설 의혹이 나왔고, 북한은 '대포동 1호'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한반도 정세가 상당히 좋지 않았죠.
이에 김대중 대통령이 임동원 당시 외교안보수석비서관에게 금강산 관광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습니다. 임동원 수석비서관은 이럴 때는 모험을 좀 해야 한다고 말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그렇지"라고 맞장구를 쳤다고 합니다. 그렇게 금강산 관광은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금강산으로 가는 첫 배가 출항하던 1998년 11월 18일, 당시 이 장면을 도쿄에서 지켜보던 빌 클린턴 대통령은 감탄했다고 합니다. 대통령이 고민할 때 용기있게 말할 수 있는 참모의 한 마디로 상황이 이렇게 풀린 셈입니다. 만약 사전에 여러 실무자들에게 의견을 물어봤다면 대북 여론이 좋지 않다는 구실로 금강산 관광길은 열리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정부가 이러한 선례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 대통령도 이와 똑같은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현재 국면을 만든 장본인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지난해 12월 19일 미국 NBC 방송과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은 "한미 양국은 올림픽 기간에 합동 군사 훈련을 연기하는 문제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혀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를 이끌었고, 이것은 이후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시발점이 됐습니다.
문 대통령이 이러한 인터뷰를 할 때 용기를 가지고 미국과 이야기했을 겁니다. 당초 한미 연합훈련은 합법적이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불법적이라고 말했던 와중에, 본인의 말을 바꾸고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때처럼 지금 남한이 역할을 해야 합니다. 돌파구를 열어야 합니다.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 때문에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보다는 몇 가지라도 해보는게 중요합니다. 지금은 아이디어보다는 용기있게 추진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 지난해 12월 미 NBC 방송과 인터뷰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프레시안 :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서도, 터키에서도 너무 무지막지하게 나가는 측면이 있어서요. 한국 정부가 용기있게 뭔가를 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정세현 : 미국의 일방주의가 극에 달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북핵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도 트럼프 대외 정책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일방주의가 실무자들로부터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게 걱정스러운 대목이긴 합니다.
우리는 지금 두 개의 장애물 앞에 놓여있습니다. 미국이 발목을 잡고 있는 북핵 문제와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라는 북한의 압박이 그것입니다.
북미 관계가 어느 정도 풀릴 조짐이 보이면 판문점 선언 이행과 관련해 용기를 가지고 미국을 설득할 수 있을텐데 지금 양쪽이 모두 막혀있는 상태입니다. 북미관계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판문점 선언 역시 북미 관계에 달려있기도 하고요.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성과가 있으면 좋겠지만, 미국이 북한의 선행동만 요구해서는 곤란합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판문점 선언까지 만들었기 때문에 이를 이행하는데 미국이 견제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대통령이 직접 나서기 보다는 참모들이 풀어줘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직급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비서관이든 행정관이든 현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추진하는 의지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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